from Reader
제 앞길을 정했습니다. 전 이제 글을 쓰며 살 겁니다. 외롭고 험난한 길이 되겠지요. 혹시 작가님은 어떻게 처음 글을 쓰게 됐나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은 있지만, 도대체 어떤 방향으로 쓸지, 어떻게 써야 할지 생각이 많습니다. 이런 저런 조언 부탁드립니다.
미국의 소설가 폴 오스터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의사나 정치가가 되는 것은 하나의 진로 결정이지만, 작가가 되는 것은 다르다. 그것은 선택하는 것이기보다 선택되는 것이다. 글 쓰는 것 말고는 어떤 일도 자기한테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걸어갈 각오를 해야 한다.”
사실 저는 독자님께서 하신 질문을 수차례 받았습니다. 그리고 제 에세이에도 여러 번 밝혔습니다. 저는 적성에 도무지 맞지 않는 부서로 발령을 받아 사표를 썼습니다. 내심 타 부서 이동을 바라며 말이죠. 그때 사직 사유를 묻기에 솔직히 말은 못 하고, 엉겁결에 “작가가 될 겁니다!”라며 엄포를 놓았습니다.
그런데 “아! 그래. 자네라면 작가가 될 줄 알았어! 결심 축하하네”라며 사표가 일사천리로 수리되는 바람에 정말로 글을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게, 이때껏 제가 표면적으로 답해온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스토리의 이면에는 제 내밀한 욕망이 숨어 있습니다. 제가 그 상황에서 엉겁결에 작가가 되겠다고 말한 것은, 실은 한동안 ‘작가가 되어볼까’ 하는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배알 꼴린다’는 말 들어보셨지요. 저는 이런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니까, 출근해서 회사 업무를 보는 중에 ‘뭔가 창의적인 표현들’이 마구 떠오르는 겁니다. 즉, 머릿속에 창작을 관장하는 신이 ‘어서 받아 적으라고. 지금이 기회야!’ 하고 자꾸 속삭이는 겁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도 평소의 저라면 도저히 떠오르지 않을 멋진 표현들이 활화산의 용암처럼 마구 터져 나왔습니다.
‘아아! 지금 쓰지 않으면 안돼! 지금 받아 적지 않으면 안 돼!’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습니다. 하지만, 말했다시피 그때는 업무 시간이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반복하다 보니, ‘배알이 꼴렸습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듯, 하고픈 일을 못 하니 정말 물리적으로 배가 아팠습니다.
거칠게 말하면,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그때 알았습니다. 언젠가는 제가 회사를 그만둘 것을요. 그리고, 언젠가는 제가 가지고 있는 검고 투박한 노트북과 오랜 시간을 보내리라는 것을요.
다시, 폴 오스터의 말로 되돌아가보죠. 저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비록, 부서 이동이라는 사건이 있었기에 사직서를 썼지만, 그것은 하나의 기폭제가 되었을 뿐이었습니다. 부서 이동을 겪기 전부터 회사에서 모니터를 보고, 보고서를 제출하고, 결제를 받기 위해 줄을 서 있는 매일 제 안에는 ‘글을 써볼까?’ 하는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었습니다.
아니, 좀 더 솔직하게 말하면 ‘글을 써야 할 시간에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하며 자책했습니다. 그 채찍질을 스스로 감내하다가, 부서 이동을 겪자 ‘도저히 못 하겠군’ 하며 터져버린 겁니다.
자, 아시겠죠. 독자님도 폴 오스터가 말한 것처럼, 그리고 제가 겪은 것처럼, ‘글을 쓰지 않고서는 못배기는 상태’가 돼버린 것입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신내림을 받으면 무속인이 되거나, 생을 끝내야하듯, 글을 쓰고픈 욕망이 온몸을 휘감으면 작가가 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건투를 빕니다.
자 그럼, 한 명의 작가로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솔직해야 합니다. 사실은 문체를 이기고, 솔직한 사실 고백은 가식적이고 수려한 사실의 나열을 이깁니다. 그리고, 달라야 합니다. 세상에 작가는 모기떼만큼이나 많습니다. 그러니, 등단을 하고, 책을 내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작가로 평생을 살기 위해서는 여타 작가들과 달라야 합니다. 내 글만의 인장(印章)이 찍혀야 합니다.
그 외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성실함입니다. 때로 지치고, 창의력이 떨어지고, 아무것도 하기 싫지만, 그때에도 손가락을 움직여야 합니다. 비록 공개하지 않을 글을 쓸지라도, 혼자만의 글이 될지라도, 작가는 꾸준히 써야 합니다. 작가는 단 하나의 위대한 작품을 쓰는 사람이 아니라, 범작이라도 꾸준히 쓰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건필하시길.
최민석의 <About Anything>
소설가 최민석이 「대학내일」 독자를 위해, ‘원하는 소재’라면 무엇이든 써드립니다. ‘작가 최민석이 나를 위해 써주었으면 하면 소재가 있다!’라고 생각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환영합니다. 최민석 작가의 이메일(searacer@naver.com)로 직접 ‘나만을 위한 글’을 주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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