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결혼이라는 제도로만 가족을 만들어야 할까? 이 기사는 이런 의문에서 시작됐다. 애인보다 잘 통하는 소울 메이트는 정녕 가족이 될 수 없는 걸까? 연인으로서 평생 함께 사는 것은 안 될 일인가? 그리고 왜 남자는 여자와, 여자는 남자와만 가족이 될 수 있는 거지? 세상엔 셀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사랑과 관계가 존재하는데!

지금 가족과 살고 있습니까?

 

 

피가 섞인 혈연관계이거나, 결혼한 남녀거나. 우리나라가 법으로 정한 가족의 정의는 딱 여기까지다. 이에 맞는 경우만 법적인 공동체로 인정받는다. 주거, 복지, 세금, 상속, 입양 등에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혼인신고를 한 남녀가 아니면 ‘가족’에게 주어지는 혜택은 하나도 받지 못한다. 물론 입양도 불가능하다. 4인 가족이 주류이던 시대의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한 법이다.

 

하지만 이제 4인 가족은 평균이 아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년 사회조사’에 따르면, 올해 4인 가족의 비중은 고작 18.8%.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는 비율 역시 29.2%에 불과했다. 이뿐인가. 지난해 혼인율은 1970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앞으로 더더욱 부모와 자녀가 함께 사는 ‘정상가족’의 비율이 줄어들 거란 이야기다.

 

빈자리엔 이미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들어서고 있다. 동성 커플을 비롯해 마음 맞는 친구와 평생 함께 살거나, 결혼 대신 연인으로서 살림을 합치는 등. 이들은 자신이 택한 가족 안에서 행복과 소속감을 느끼며 산다. 그럼에도 자주 이런 질문에 부딪힌다. “결혼 안 해?” 사회 통념은 이 모든 동거를 그저 결혼 전 잠시 거쳐 가는 과정이라고 여긴다. 결혼을 안 하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는 듯이.


사오고 싶은 제도들

 

 

이미 오래전부터 다양한 가족 구성을 인정한 나라들은 동거를 보호하는 제도를 만들어왔다. 스웨덴은 1988년부터 ‘동거인 법’을 시행했다. 동거인들은 파트너가 죽은 후 자신 몫의 재산을 분배받을 수 있고, 자녀 교육이나 복지에서 차별받지 않는다. 프랑스에선 결혼과 동거 사이에 ‘PACS(시민 연대 계약)’라는 완충지를 만들었다.

 

성별 상관없이 서로를 파트너로 등록하면 세금 소득공제, 거주권 보장, 아이에 대한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샌프란시스코를 비롯한 미국 8개 주에서도 동거를 ‘파트너십’으로 인정한다. 이런 제도들을 통해 한집에 살면서 각자 내왔던 세금을 한 번만 낼 수 있게 됐고, 파트너가 쓴 돈에 대해서도 소득 공제가 가능해졌다.

 

소소하지만 생활에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부담이 줄어든 것이다. 평생을 함께 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엉뚱한 친가족에게만 재산이 상속될 거라는 불안도 사라졌다. 이 제도들의 공통점은 젊은 세대의 삶의 방식을 반영한 결과물이라는 거다.

 

“요즘 애들은 책임감이 없어서 결혼을 안 하려고 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미비한 법적 울타리를 보완한다. ‘만사결통’이라고 말하는 대신, 결혼보다 간편한 등록·해소 절차로 진입장벽을 낮춘다. 성별에 상관없이, 연인이 아니더라도 가족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한다. 현실과 법의 괴리를 줄여 나가려고 노력할 때, 더 많은 이들의 행복을 포용할 수 있다.


생활동반자법, 그리고 파트너 등록법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움직임이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은 18년째 동거 중인 자신의 경험을 바탕 삼아 2014년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했다. 서로를 ‘생활 동반자’로 등록하면, 결혼한 사람들이 받는 혜택과 법적 권리를 상당 부분 보장받는 내용이다.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소속 모임 ‘풀하우스’는 요즘 ‘파트너 등록법’ 지지 서명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누구나 원하는 사람을 파트너로 삼고 다음 세대를 키울 수 있는 권리가 있음을, 그리고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보게 하자는 취지다.

 

캠퍼스 안 또래들의 인식부터 바꾸고자 영화 상영회도 기획했다. 다가오는 12월에 ‘한국에서 비혼커플이 출산과 양육을 한다면’이라는 테마로 상영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가족의 자격

 

 

글의 시작에서 우리나라 법이 정한 가족의 정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가족은 무엇인가? 기사를 위해 인터뷰한많은 동거인들은 대답했다.

 

‘함께 있으면 의지가 되는’, ‘내 선택이 마음에 안 들어도 나를 지지해주는’, ‘함께 생활하고 거기서 안정감을 느끼는’ 존재라고. 상대가 꼭 피붙이가 아니어도, 혼인신고로 맺어진 사이가 아닐지라도 말이다. 이제 우리도 ‘기승전결혼’ 말고,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상상해볼 수 있지 않을까?

 

+ 참고 및 인용
류민희 외, ‘생활동반자 사례자 포커스 인터뷰를 통한 정책 욕구 조사’, 2014.10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비혼 동거 커플의 증가와 프랑스의 시민연대계약(PACS), 2016.4


예를 들면 이런 가족들

 

 

우현과 성균, 3년차 남남 커플

 

 

 

가족을 소개해주세요.

 

저희는 서울에 사는 평범한 회사원이고, 길에서 데려온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살고 있어요.

 

한국에서 남남 커플로 사는 것에 대한 고충이 있을 것 같아요.

 

20대에는 크게 느끼지 못했어요. 그땐 모두 자유롭게 놀고 연애하니까요. 그런데 30대가 되고 친구들이 가정을 꾸리기 시작하면서 내 삶과는 굉장한 괴리감이 느껴져요. “왜 결혼 안 하냐” 묻는데 얼버무리는 것도 한계가 오고요. 나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데, 당당하게 소개할 수 없는 점이 아쉽죠.

 

또 연애의 다음 단계가 매우 모호해요. 보통 연애를 하다 자연스럽게 결혼을 고민하고, 인생의 2장으로 넘어가게 되잖아요. 그런 요소가 관계에 큰 원동력이 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우리는 10년을 같이 산다 해도, 언제든 헤어질 수 있는 단순 연인인 거예요. 결혼이 아니더라도, 삶의 동반자로서 다음 단계를 함께 그려보고 싶어요.

 

가족 제도에 대한 두 분의 바람은 무엇인가요?

 

제도 이전에 다양성을 포용하는 사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무조건 ~해야 해” 못 박는 분위기에서는 소수자들의 권리에 대해 논의 자체가 이루어지기 힘드니까요.


김애영 교수와 박순경 전 명예교수, 30년 터울의 사제지간, 25년째 함께 사는 중

 

 

두 분이 학교에서 처음 만나신 거죠?

 

그렇죠. 대학교 3학년 전공 수업에서 선생님을 처음 봤어요. 난 어릴 때부터 자기 세계가 강한 애라 늘 허기에 시달렸거든. 세상이 재미가 없었어. 그런데 선생님 강의를 듣고 공부가 하고 싶어졌어요. 그때부터 열심히 쫓아다녔지.

 

어떻게 함께 살게 되신 거예요?

 

91년에 선생님이 통일운동을 하다 잡혀 들어갔어요. 그때 내가 석방대책위를 꾸렸어요. 106일 만에 재판받고 나오셨는데, 당시엔 최소
1년은 걸린대서 살던 아파트를 정리하고 선생님 집에 짐을 놓고 활동을 한 거죠. 그런데 석방된 후 선생님은 이미 해직이 되신 거야. 그때
결심했지. 선생님이랑 같이 살아야겠다고.

 

아무리 존경하고 좋아하는 선생님이라도 같이 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결벽증도 있고, 보통이 아니셔(웃음). 100번 중 99번을 잘해도 한 번 잘못하면 그것대로 야단을 맞아. 그게 갑갑해도 내가 잘 맞추는 편이에요. 살림, 돈 관리도 내가 다 하거든. 은퇴하신 구십 넘은 양반은 맨날 서재에서 공부하시고. 그래도 나는 선생님이 참 귀해요. 저분을 만나고 진짜 좋아하는 일을 찾으면서 내 인생이 많이 달라졌잖아.

 

 

교수님도 가족이 있는데, 부모님이 선생님 모시고 산다고 서운해하진 않으셨어요?

 

그러진 않으셨어요. 결혼하라고 닦달하지도 않으시고. 그랬다면 선생님과 같이 살기 힘들었을지도 몰라요.

 

오랜 시간 가족으로 살아오셨는데, 법적 가족이 아니라서 불편했던 적은 없었나요?

 

주민세 따로 내고, 선생님 의료비 내가 다 계산하는데도 연말정산에 전혀 포함이 안 돼요. 혈연관계가 아니라서. 그런 게 힘들어요. 아무런 증명도 없고, 그냥 서로 각자인 거지. 그렇다고 내가 선생님 양녀로 들어갈 순 없잖아. 난 내 부모님이 계시니까.

 

지금 김 교수님이 60대, 박 교수님이 90대시잖아요. 존경하는 선생님의 시간을 30년 터울로 따라가는 기분은 어떤가요?

 

우리 선생님과 살면서 난 내 앞날을 미리 경험하는 것 같아요. 예방 주사를 놓는 것처럼. 요즘 선생님의 걱정은 당신이 세상을 떠나면 내가 어떻게 살 지예요. 연세 많은 분들은 그게 가장 절실한 문제인 거야. 남은 사람에 대한 걱정. 그런데 나는 담담해요. 그런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해왔거든요.

 

다시 태어나도 박 교수님과 함께 살고 싶으세요?

 

뭐, 다시 태어나봐야 알지. 못 알아보면 어떡하나.


여성 생활 문화 공간 ‘비비협동조합’, 전주에 있는 비혼 여성 생활 공동체

 

 

여러분이 모이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13년 전, 전주에 사는 비혼 여성 6~7명이 작게 모임을 시작했어요. 그땐 30대라서 각자가 추구하는 일이 있었고, 삶에 대한 고민도 많았어요. 결혼이 아니라도 내 삶을 구성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을 텐데, 결혼함으로써 겪게 될 ‘아내로서의 삶, 엄마로서의 삶’보다 현재의 나를 더 잘 돌보고 싶다는 점에서 마음이 잘 맞았어요.

 

‘비비’라는 이름의 생활공동체로 지내신 지는 얼마나 된 건가요?

 

우리의 소모임이 생활 공동체적 지향을 가지고 있다고 확인한 건 2006년 경이에요. 순차적으로 공공임대 아파트에 입주하면서, 각자의 주거 공간을 둔 채 연대하는 1인 가구 네트워크를 형성했죠. 2010년에 ‘비비’라는 문화공간을 열어 지역 주민과 비혼 여성을 위한 공동체 프로그램을 진행해왔어요.

 

비혼들에게 공동체가 필요한 이유는 뭘까요?

 

비혼을 택한 사람들에게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있어요. 안전 문제, 질병이나 갑작스러운 위험 상황에서 날 챙겨줄 사람이 없다는 게 두렵죠. 그래서 공동체가 필요해요. 혼자서도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타인과 잘 어울려 살 수 있도록 기댈 언덕이 돼주는 거죠.

 

법적 가족이 아니라서 느꼈던 한계가 있나요?

 

한 친구가 질환을 앓고 있었는데요. 가족에게 알리고 싶어 하지 않아 했어요. 그런데 수술 동의서를 가족밖에 못 쓰니까 어쩔 수 없이 전화를 했죠. 정작 병간호는 친구와 이웃이 함께 해줬지만요.

 

현재 한국에선 혼인 신고를 한 남녀와 혈연관계만 가족으로 인정되어 보호받잖아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사실 우리나라만큼 ‘피는 물보다 진하다’고 생각하는 집단이 없어요. 반면 강한 혈연 주의에 대한 반작용과 피로도도 만만치 않게 높죠. 시간이 걸리겠지만, 다양한 가족 구성원을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야 해요. 제도적으로나 인식으로나 둘다요. 그리고 사회 시스템이나 복지가 세대주 중심이 아니라 개개인의 권리를 보장해줄 수 있는 방식으로 개편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Sandrine & Georges 프랑스의 PACS 커플
답은 그들의 아들 Alex가 해주었다.

 

 

부모님의 러브 스토리가 궁금해요.

 

엄마가 독립 기념일에 친구들과 해변에 놀러갔는데, 거기서 아빠를 처음 만났대요.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갈 때쯤, 혼인계약서를 쓰고 싶지 않아 동거를 선택했고요.

 

부모님이 동거 커플이란 이유로 달랐던 점이 있나요?

 

전혀요. 일상에서 저희 부모님과 다른 부부들이 다르다고 느껴본 적 없어요. 사람들의 시선도 마찬가지고요.

 

프랑스에서는 ‘PACS’라는 제도로 동거 커플도 법적으로 보호받는다고 들었습니다.

 

아빠가 돌아가시면, 집을 포함해 두 분이 공동으로 산 모든 물건의 50%가 엄마에게 가게 돼있어요. 나머지 50%는 자식들의 몫이고요. 만약 자식들이 불효막심한 인간이라면 문제가 될 수도 있죠. 엄마가 반대해도 집을 팔아버릴 수 있으니까요.

 

한국에선 혼인 신고를 한 남녀만 부부로 인정하고, 법 외 가족은 세금이나 상속 등에서 혜택을 받지 못합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전통을 이해할 순 있어요. 하지만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처사고, 자기가 남과 다르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겐 상처가 될 거예요. 뭔가를 강요하는 건 언제나 옳지 않아요.

 

알렉스가 생각하는 가족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난 내 옆을 지켜주는 친구들을 가족처럼 여겨요. 그 친구들은 내 선택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절 이해하고 받아들여주거든요. 가족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시시비비를 가리기보단 품어 주는 존재요. 제게 가족은 우정, 지지와 비슷한 뜻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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