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액정이 박살난 지 일주일째다. 지난 토요일 진주에서 본 필기시험은 나름대로 만족스러웠다. 나이가 있는 수험자들이 꽤 보였다. 책을 가까이해온 나는 이 시험에서 유리할 거라고 확신했다. 오픈채팅방이라는 곳에 들어가서 익명으로 대화도 해보고, 신입으로 지원한 어린이들을 보며 그래도 나는 그들보다는 앞서겠거니 하며 여유롭게 웃었다.
계약직으로 일했던 경험도 양분이 될 거라며 나를 토닥였다. 필기 합격을 기다리며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자기소개 멘트를 준비하고 있었는데 웬걸. ‘귀하의 우수한 역량에도 불구하고….’ 짜증이 올라왔다. 점수 정보 공개를 요구해야 하나 싶어 기관 홈페이지를 들어갔다.
하지만 부질없다. 이렇게 한다고 바뀌는 것은 없다는 자괴감이 밀려왔다. 나의 직장이 아니었겠지, 인력으로 되는 일은 아닌 것이지,라고 마음을 고쳐 먹었다.
오늘도 퇴근하고 도서관으로 향해 채용 공고를 봤다. 채용 마감 일정을 메모했다. 자기소개서를 미리미리 준비하며 퇴고의 과정을 거쳐 다듬어야 할 텐데, 막상 누군가가 내 자소서를 꼼꼼히 읽을까 싶다. 자소서에 큰 공을 들였다가 떨어지면 상실감이 너무 크다.
경험으로 나온 데이터는 서류에 무심해야 합격한다고 말한다. 면접에서 깨갱 했던 나였기에, 요즘 나의 제일 고민은 ‘어떻게 하면 말을 조리 있게 할 수 있을까?’이다. 말하기에 일가견이 있다는 전직 정치가이자 현 작가의 책을 읽었다. 말에는 그 사람의 인격과 가치관이 담겨 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해 생각해본다.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의 답을 아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저는 ㅇㅇ기관이 반드시 채용해야만하는 인재입니다” 정도일까?
「대학내일」을 보다가, 성장통을 겪는 스무 살을 위한 글을 읽었다. 그 글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문장인 ‘누구나 각자의 전쟁터가 있지’를 인용했다. 성장통을 겪을지라도 요즘은 스무 살이 부럽다. 나의 스무 살을 떠올려본다. 그때 떠올리던 28살의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은 거리가 있다. 상상하던 모습과 전혀 닮아 있지 않다.
28살에는 당연히 안정적인 직장과, 모아놓은 결혼 자금과, 날만 잡으면 결혼할 수 있을 오빠야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현재 나는 여전히 고용 안정을 위해 필기시험을 보러 다니고, 미래의 안락보다 현재의 아메리카노를 택하느라 빈털터리이다.
단 한 명의 누군가와 내 삶을 공유하고 있지도 않다. 28살에는 성숙한 어른이 되어있을 줄 알았지만, 여전히 나는 대학 졸업할 때의 나이인 25살에 머물러 있다. 내가 선택하고 책임져야 할 삶의 무게가 무겁다. 나의 선택을 내가 책임져야 하는 것이 두렵다. 신이 뿅~하고 나타나 선택하라고 정해주면 좋겠다. 그러면 결과가 나쁘더라도 남 탓할 수 있지 않을까.
며칠 전 출근길 갑자기 손에 힘이 빠져 핸드폰을 떨어뜨렸는데, 액정이 깨져버렸다. 액정을 수리하려면 AS센터에 며칠은 맡겨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핸드폰이 필수인 취준생에게 며칠은 너무 길다. 핸드폰으로 합격자 발표를 기다려야하니까.
바쁜 하반기 공채 시즌인 만큼, 며칠씩 핸드폰을 못 쓰는 상황만큼은 막기 위하여 액정수리를 다음으로 미뤘다. 어쩌면 나는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는 것일지도 모른다. 정호승 시인은 이렇게 말했다.
“그대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AS센터에서는 액정을 수리하려면 핸드폰 저장 내용을 리셋해야 한다고 한다. 수리되어 깨끗하게 태어난 핸드폰으로, “합격을 축하합니다”라는 문자를 받을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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