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해보자. 우리 대다수는 관습적으로 대학에 왔다. 다들 가기에, 딱히 안 가면 뭐 할지 몰라서, 일단 취업할 때 조금이나마 유리하려고. 내가 무엇을 배워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겠다는 목표를 갖고 대학엔 온 20대는 드물다.

 

그래서 때론, 대학을 가지 않은, 혹은 대학을 그만둔 20대들이 삶에 관한 더 큰 배움을 얻곤 한다. 관습 밖에서 앞으로 살아갈 길에 관해 자기 자신의 힘으로 더 치열하게 고민한 덕이다.

 

대학 밖 20대 4명을 만났다. 소속으로 정의되지 않는 그들은 자기만의 기준을 찾아 진짜배기 인생 공부를 하고 있었다. 대학내일은 독자에게 대학을 그만두라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대학이란 울타리 안에서, 삶에 대한 고민 없이 하루하루를 보내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기획을 준비했다.

25살, 생활여행자, 내게 인기 많은 나

<유지혜>

만약 ‘24살에 대학에 다닐래? 책을 낼래?’라는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당연히 책을 낼 것이다. 대학은 언제든지 갈 수 있으니까.

남들처럼 대학 다니다가 스물 셋에 처음 간 유럽에서 ‘각성’했다. 대학 공부가 꼭 필요할까 싶었다. 2학년 2학기까지 마친 뒤에 복학하지 않았다. 스물 넷에 여행 에세이 『조용한 흥분』을 냈다. 작가가 됐고, 가수 선우정아의 노래 ‘봄처녀’ 뮤직비디오에 출연했다. 대학에 돌아갈 생각은 없어서 지금은 제적 상태다. 유지혜는 새 책 『나와의 연락』 출간을 앞두고 있다.

2학년까지 마치고 대학을 그만뒀다. 2년만 더 다니면 졸업인데, 이유가 궁금하다.

2학년 여름방학에 처음 유럽을 여행했었다. 넓은 세상이었다. 가자마자 너무 좋아서 학교 생각이 안 났다. 두 번째 간 유럽에선 ‘그냥 복학 안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거창한 결심은 아니었다. 안 가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생겼을 뿐이다. 대학을 그만두지 않으면, 어릴 때 꿈꾼 삶을 못 살 것 같았다.

 

어릴 때 꿈꿨던 삶은 무엇이기에?

‘언제나 여행을 떠나는 사람’이다. 어릴 때 부모님과 자주 놀러 다녔다. 아빠 트럭을 개조해서 세 식구가 함께 다녔다. 외국은 아니지만 국내로 많이. 여행지에서 그림을 그리며 자유롭게 살았다. 하지만 점점 원하지 않는 삶을 살게 된 것 같다.

 

학교 밖에서 무엇을 배웠나?

사회다. 돈을 벌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적응하고, 상처 받는 일…. 물론 학교를 졸업한 뒤에 배울 수도 있겠지. 선택의 문제다. 나는 스물넷에 세상을 배우기로 선택했다. 내가 대학교 3~4학년의 즐거움을 모르듯이, 사람들도 나의 즐거움을 모를 것이다. 나는 학교 밖에서 즐겁게 배웠다. 대학에 안 가도 되겠다는 확신이 있었다.

 

어떤 순간에 확신을 얻었지? 대학 졸업장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영국에서 두 달간 돈을 벌면서 혼자 지냈다. 내 힘으로 혼자 잘 할 수 있겠다싶었다. 여행지에서 좋은 일만 있던 것은 아니다. 누구와는 틀어졌고 싸우기도 했지만, 모든 것은 배움이었다. 다녀와서 책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교에 돌 아갈 마음은 없었다. 그만둬야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저 학교는 자연스럽게 지워졌다.

 

23살에 유럽을 여행하고, 24살에 책 『조용 한 흥분』을 냈다. 작가가 됐고, 인스타그램에서의 인기는 여전하고, 뮤직비디오에도 출연했다. 계획했던 일인가?

작가가 될 것이라곤 상상하지도 못했다. 아직도 스스로 작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여행하다가 생각을 정리하려고 썼던 글들을 SNS에 올렸는데 사람들이 좋아해줘서 엄청난 행운이었다. 원래부터 이렇게 사랑 받았던 것은 아니다. SNS 스타도, 인기인도 아니었다.

 

파워 인스타그래머의 인기 없는 과거? 상상이 잘 안 된다.

지금의 나는 자신감이 넘쳐 보일지도 모르겠지만, 중학생 땐 열등감이 심했다. 부모님은 등록금이 비싼 대안학교에 나를 입학시켜주셨다. 친구들은 모두 부자였다. 우리 집이 창피하기도 했었다. 경제적 부담을 염두에 두면서 지내는 것은 언제나 스트레스였다.

 

외모 콤플렉스도 있었다. 나는 안경 쓰고 머리 짧은 못생긴 아이였으니까.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재미있게 보냈지만, 남들과 비슷한 이유로 많이 흔들리곤 했다. 요즘도 때때로 흔들린다. 나는 무엇을 잘하는 사람일까? 대체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대학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 가족의 반응이 궁금하다.

아빠는 나를 완전히 지지했고, 엄마는 “아깝다, 왜 그만두느냐”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대학에 계속 다녔다면 책을 내지 못했을 것이다. 만약 ‘24살에 대학에 다닐래? 책을 낼래?’라는 선택의 순간이 온다면, 당연히 책을 낼 것이다. 대학은 언제든지 갈 수 있다. 외국에선 할아버지도 원할 때 대학에서 공부한다. 나이가 들면 공부를 못 한다는 것은 편견이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없나? 취업이라든지.

만약에 물질적인 풍요를 추구한다면, 지금 내가 선택한 길에서 더 많이 벌 것이다. 취업하는 것보다 말이다. 내가 잘하는 것을 계속 하면 된다. 완벽하게 계획하진 않지만, 나에 대한 확신이 있다. 사실 유럽 여행 가기 전에 6개월 동안 여의도 금융회사에서 일했다. 회사원으로 살아도 불행하지 않을 것 같았다. 잠깐이었지만 재밌는 회사 생활이었다. 그때의 경험이 있어서 다행이다. 아예 몰랐다면 그 세계에 관해 말할 수는 없으니까.

 

당분간은 대학에 돌아갈 생각이 없다고 했다. 외롭고 불안할 때도 있을 텐데, 내 선택이 맞았다고 확신하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처음에는 잘 못해도 조금씩 더 잘하게 된다고 믿는다. 책도 처음에는 멋모르고 냈듯이. 덕분에 내년이 기대된다.

 

스스로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는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22세, 아마도 최연소 세계 일주 여행자, 미래의 쿠엔틴 타란티노

<박웅>

될 놈은 되 고 안 될 놈은 안 된다. 될 놈이 대학 졸업장 없어서 안 된다? 말이 안 된다. 그리고 난 될 놈이고!

친구들이 수능 시험장에 들어갈 때 홀로 호주로 떠났다. 약 1년간의 외국인 노동자 생활로 세계 일주 경비를 벌었다. 스무 살과 스물한 살을 6대주 24개국의 국경을 넘나들며 보냈다. 한국에 돌아와 그 시간이 오롯이 담긴 『수능 대신 세계일주』라는 책을 냈다. 인세로 여행도 가고, 강연도 하며 더 남다른 20대를 준비하는 중이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수능을 보지 않고 호주로 떠났다. 이런 간 큰 학생을 봤나.

대한민국 20대 10명 중 9명이 거치는 테크트리가 있다. 웬만하면 4년제 대학가야 하고, 서울에 있으면 좋고, 남자는 군대 다녀오고, 취업 준비를 한다. 어렵게 어렵게 취업하면 학자금 대출을 갚아야겠지. 그렇게 31~32살 까지의 그림이 다 짜여 있는게 싫었다. 그대로 가면 몇 년 후에 땅을 치고 후회할 것 같았다.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내 인생을 갈아엎어 봐야겠다 싶었다.

 

대학에 간 후, 휴학계를 내고 세계 일주를 해도 되지 않았을까?

까놓고 말해서 내가 대학 가서 세계 일주를 했으면 이렇게 인터뷰할 수 있었을까? 솔직히 대학에 안 간 게 지금 내게 메리트가 됐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여행을 떠날 땐 그렇게까지 생각 못 했지만, 여러모로 그 판단이 현명했다고 본다. 그리고 대학에 갔다면 세계 일주 이후의 움직임이 매우 제한됐을 거다.

 

모두가 대학에 가는 시대인데 겁나진 않았나.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된다. 될 놈이 대학 졸업장 없어서 안 된다? 말이 안 된다. 그리고 난 될 놈이고! 그런 자기 확신으로 호주에서의 시간도 버텼다.

 

호주에서 1년이 좀 안 되는 시간 동안 세계 일주 경비를 모았다. 어떤 일을 했나?

청소, 하우스 키핑, 바에서 서빙 등등 육체노동을 했다. 돈 떼인 기억이 아직도 강렬한데….(웃음) 한국인 매니저가 있는 청소 업체에서 일했는데 150만원 정도를 못 받았다. 두 달 반 동안 사정이 있다, 곧 준다 하며 미루더라. 다행히 막 판에 괜찮은 리조트에서 일하게 되어 거기서 모은 돈으로 1년 넘게 세계 일주를 할 수 있었다.

 

인생 공부를 제대로 했겠다.

내 밥그릇 잘 챙기는 건 확실히 배웠다. 혼자 어린 나이에 돌아다니다 보니 내가 요구하거나 선을 긋지 않으면 손해 볼 일이 많더라. 가만히 있으면 누가 챙겨주지 않으니까 내 몫에 대해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 했다.

 

12년 동안 학교에 앉아 공부를 하다가 여행을 떠난 건데, 가장 달랐던 점은 뭔가?

여행을 할 땐 내가 시간을 장악할 수 있다. 언제까지 여기 있을 것인가. 떠날 것인가. 스스로 결정한다. 학생 때와 달리 완벽하게 내 뜻대로 시간을 쓸 수 있다는 게 좋았다. 지금 소속 없이 프리랜서로 사는데, 역시 그 점이 제일 좋다.

 

여행하면서 엄수한 원칙이 있다면?

스케줄에 묶이는 게 싫어서 비행기 표를 미리 사지 않았다. 돈을 좀 더 주더라도. 그리고 지나친 목적성 역시 경계했던 것 같다. ‘난 이번 여행을 통해 달라질 거야’ 혹은 ‘뭘 얻을 거야’ 매일 생각하면서 다니면, 지치기 마련이고 오래 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냥 하루하루의 여행을 열심히 즐겼다.

 

『수능 대신 세계일주』의 서문에 세계 일주를 통해 ‘기억’을 얻었다고 썼다. 그 ‘기억’이 앞으로 본인의 삶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거라 생각하나?

기억을 다른 말로 치환하면 ‘경험’일 테다. 2년 동안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좀 차분해졌다. 예전엔 조금만 좋은 일이 생겨도 내 인생이 금방이라도 대박 날 것 같았고, 나쁜 일이 생기면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게 아니란 걸 알 게 됐다. 좀 더 의연하게 살 수 있을 것 같다.

 

본인의 이야기가 담긴 기사 밑엔 꼭 이런 댓글이 달린다고 했다. “그래서 앞으로 뭐 할 건데?”

내년에 군대를 다녀오면 20대 고졸자로서의 삶이 시작된다. 망하든 안 망하든 영화를 한번 해봐야 여한이 없을 것 같다. 오랫동안 영화 평론가가 꿈이었는데, 올해 <곡성>을 보고 영화를 직접 만들고 싶어졌다. 요즘엔 샤워하면서도 시나리오 생각을 한다.

 

영화감독이 되기 위해 하고 있는 공부가 있나?

영화를 잘 찍으려면 테크닉보다 인문학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문을 매일 읽고, 새로 나온 소설, 영화 잡지나 서적을 챙겨 읽는다. 물론 책만 읽으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너무 책에만 코를 박고 있으면 세상 물정을 모르게 되고, 길바닥 경험만 하면 인문학적 깊이가 모자라서 허접한 인간이 되니까. 밸런스를 맞춰야 한다.

 

박웅이 만든 영화는 어떤 영화일까?

롤 모델은 쿠엔틴 타란티노다. 기본적으로 영화는 무조건 재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에 나온 “마음대로 살 것이다. 마음대로 잘 살 것이다”는 문장이 참 멋졌다. 마음대로 잘 사는 건 어떤 걸까?

난 돈이 행복과 연관 없다는 소리를 믿지 않는다. 마음대로 살되 반지하에서 라면만 먹고 살고 싶진 않다. 기본이 된 사람이라면 하기 싫은 일을 꾸역꾸역 하며 돈 버는 것보다, 하고 싶은 일을 해서 경제적 여유를 가질 확률이 더 높다고 본다. 요즘 같은 저성장 시대엔 더욱 남는 장사고. 마음대로 살아야지. 한번 사는 인생.

25세, 크게 될 디자이너, 자타공인 악바리

<조윤여>

대학이란 걸 포기하고 갔으니까 그 친구들보다 더 잘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은 확신한다. 고졸이든, 박사든, 석사든 상관없이 내 실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족보를 달달 외워야 하는 공부가 싫어 1년 만에 대학을 그만뒀다. 디자이너의 꿈을 품고, 학위 대신 실무 능력을 빡세게(!) 키워주기로 유명한 패션 스쿨에 들어갔다. 남들 다 있는데 나만 없으면 찜찜해서 놓지 못했던 증명서들. 모두 버리고 택한 젊은 디자이너의 마이 웨이.

국립대 물리학과를 다니다 자퇴했다. 요즘 위너(winner)라는 이과생이었는데, 왜 그만뒀나?

고등학교 때 물리랑 화학을 좋아해서 ‘지구물리학’이라는 전공을 선택했다. 그런데 일반 대학 물리를 지나 전공 수업에 들어가니까 이해가 하나도 안 되더라. 모두가 족보를 달달 외워서 시험을 쳤다. 교수님들은 풀이를 해주신 적이 한 번도 없다. 인강도 없고 물어볼 사람도 없으니 답답했다. 족보와 토씨 하나 다르지 않은 시험지를 보며 이런 공부가 맞나 싶었다. 당연히 성적도 안 좋았고, 의욕도 없었다. 지금이라도 내가 좋아하는 진짜 진로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선택한 게 ‘패션’이다. 왜였나?

6개월간 정말 많이 고민했다. 잊고 있었는데, 내가 어릴 때 옷 만드는 걸 좋아했더라. 중학교 수련회 때 엄마에게 미니 재봉틀을 사달라고 해서 친구들 옷을 다 만들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일단 해보기로 했다. 아직 어리니까.

 

부모님은 대학을 그만두고 패션을 하겠다는 딸에게 뭐라고 하셨나.

‘고졸’ 꼬리표가 붙는 것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셨다. 처음엔 당연히 반대했는데, 언니가 함께 설득해줬다. 언니는 지금 행정학 박사 과정을 밟고 있다. 공부를 끝까지 한 언니가 공부만이 답이 아니라고, 패션 쪽도 비전이 있다고 이야 기하니까 허락해주셨다.

 

본인은 두렵지 않았나?

대학을 그만두는 건 진짜 큰 용기가 필요했다. 수능 보면 대학 가는 게 당연한 분위기고, 주변에 대학을 그만둔 사람도 없었으니까. 사실 처음엔 패션디자인과 쪽으로 편입하려고 했다. 그런데 편입을 하려면 2학년 때까지 다녀야 하고, TO도 너무 적어서 현실적으로 1년 준비론 힘들겠다고 판단했다. 기초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혼자서 할 엄두는 나지 않아 실무 위주의 패션 스쿨을 선택했다.

 

그곳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해외에서 들어온 패션 스쿨이라서 한 학기가 세 파트로 나눠져 있다. 4~5주 동안 하나의 과제를 소화하고 한 주간 평가 기간을 가진다. 4년제 대학에서 한 학기에 재킷 하나를 만든다 면, 거기는 3분의 1학기에 하나를 만드는 거다. 짧은 기간에 압축적으로 배우고, 다 소화해야 한다. 디자인한 옷을 패턴 뜨는 것부터 봉제까지 모두. 한 학년 올라갈 때마다 진급 시험도 치렀다. 합격 못 하면 퇴학이다. 솔직히 웬만하면 다 붙여줄 줄 알았는데 진짜 떨어뜨리더라.

 

1년에 180명 들어가서 80명만 졸업한다는 풍문을 들었다. 사실인가?

그렇다. 그 정도로 힘들기 때문에 졸업하면 인정을 해준다. 학위 인정은 안 되지만, 패션 쪽에선 “그 학교 나왔으면 잘 배웠겠네” 하는 분위기다. 나도 정말 악착같이 해서 졸업했다.

 

패션 스쿨 다닐 때와 대학 다닐 때 스스로 어떤 차이점이 있었나?

대학 다닐 땐 등록금 내고 수업에 빠져도 죄책감이 별로 안 들었다. 그래서 몇 번 빠질 때까지 봐준다고 하는 마지노선에 딱 맞춰 결석하고, 수업도 열심히 안 들었다. 그런데 패션 스쿨은 내가 선택한 거니까 어떻게든 잘하고 싶었다. 내가 그렇게 독한지 처음 알았다.(웃음) 며칠 밤새서 과제 해가고, 주말에 친구들도 안 만나고 일상을 다 바쳤다. 대학이란 걸 포기하고 갔으니까 그 친구들보다 더 잘되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은 확신한다. 고졸이든, 박사든, 석사든 상관없이 내 실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내가 가능성이 있구나’ 용기를 얻거나 확신 하게 된 계기가 있나?

올 초에 열린 ‘중국 대학생 입체재단 디자인대회’에서 은상을 받았다. 대회에 외국인을 받아 준 것 자체가 올해 처음이고, 평소 중국 시장에 관심이 많았는데 결과가 좋아서 기뻤다. 부모님도 되게 신기해하셨다.

 

패션 스쿨을 수료한 후에 계획은 어땠나?

1학년 때 인턴을 한 번 해본 후 깨달았다. 난 회사와 맞지 않는다는 걸. 하루빨리 현업에서 내 브랜드를 하고 싶었다. 현재 ‘GATELESS’라는 쇼핑몰을 운영 중이다.

 

그 과정의 일환이라고 보면 되나?

내 브랜드를 하기 전에 자금을 모으고, 소비자의 눈높이도 알고 싶어서 시작했다. 옷을 디자인해서 팔려면 자금이 많이 필요하니까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에서 시작한 거다. 결과가 썩 좋진 않았는데, 판매와 유통 메커니즘을 이해하게 된 좋은 경험이었다. 예전엔 그냥 내가 좋아 하는 것만 했다면, 이젠 ‘단가가 이 정도면 판매가가 나올까?’까지 고려하게 되더라. 마케팅까지 혼자 하다 보니 현실감각이 생겼달까.

 

요즘엔 핸드메이드 액세서리를 주력으로 하 고 있던데.

취미처럼 만드는 중이다. 부자재를 사서 내 스타일대로 조합하는 식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소비 패턴이 의류 시장은 많이 쇠퇴되고, 잡화가 잘 되는 추세다. 옷이 노력 대비 구매 전환율이 낮은 것에 비해 주얼리는 그리 비싸지 않으니까 반응이 좋다. 지금 목표는 어떻게든 인지도를 쌓는 거다. 옷과 주얼리 모두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 3년쯤은 스타트 업처럼 닥치는 대로 해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나저나 ‘GATELESS’라는 이름이 좋더라.

그렇지? 한번 들어오면 빠져나갈 수 없다는 뜻 이다. 내 브랜드 이름이 될 테니 기억해달라.

24세, 자발적 트럭 운전수, 밴드 보컬

<이찬희>

만약 인디밴드를 하기 위해 대학 타이틀이 필요했다면 나는 대학에 갔을 것이다. 대학에 안 다녀서 마이너스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이찬희는 인디밴드 ‘화랑’의 보컬이다. 중학교 3학년 때 첫 번째 밴드 공연을 학교에서 열었다. 16년 인생에서 가장 멋있는 일이었다. 고등학교 3학년 땐 인디레이블에 찾아가서 일 좀 시켜달라고 했다. 수능은 안 봤다. 이찬희는 지금도 음악을 만든다. 트럭운전으로 돈을 벌고 좋은 악기를 산다. 그리고 말한다. “대학 안 다녀도 마이너스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어요.”

대학에 갈 생각이 없었다고 들었다. 고 3 수능 끝나고 어떤 생각을 했나?

수능은 안 봤다. 5년제 대안학교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학교 커리큘럼에 ‘인턴십’이 있었다. 나는 고3 때 ‘러브락’이라는 인디레이블에 찾아가서 일 좀 시켜달라고 했다. 갤럭시 익스프레스 등이 소속된 음악 레이블이다. 고등학 생이었는데도 진짜 시켜주더라.

 

악기를 들거나 사무를 보고 무대에선 하모니카를 불었다. 대학 생각은 자연스럽게 잊혀졌다. 만약 인디밴드를 하기 위해 대학 타이틀이 필요했다면 나는 대학에 갔을 것이다. 당시 내 관심사는 음악과 예쁜 여성이었다. 대학에 안 다녀서 마이너스가 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대학에 안 가면 마이너스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들 왜 대학에 가려고 하는지 생각해봤다. 사랑받으며 살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닐까? 학벌이나 명예나 지위를 얻으려는 이유는 뭘까? 남자는 여자에게 관심을 얻길 바라고, 여자도 마찬 가지일 것이다.

 

어릴 때부터 대학 생각이 없지는 않았겠지?

부모님이 제도권 교육에 회의를 갖고 계셔서 대안학교에 진학했다. 하지만 나는 대안학교에 다니기 싫었다. 공부도 열심히 했었다. 그때 까진 공부가 어렵지 않았고 허영심도 있었으니까. 때마침 음악을 좋아하게 됐다. 대학은 자연스레 잊혀졌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친구들과 첫 공연을 했는데 사람들이 좋아해주고 나도 잘할 수 있겠더라. 그러면 다른 걸 할 이유가 없지 않나.

 

그렇다면 대학 말고 무엇이 가장 중요했나?

홍대 클럽의 오디션을 뚫는 것, 팬들이 생기는 것, 오늘 연주를 잘 하는 것…. 이게 큰 문제였다. 그래서 대학 생각은 할 겨를이 없었다.

 

대학에 안 간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응이 궁금하다.

걱정은 하셨겠지만 대학을 가고 안 가고의 문제는 아니었다. 음악이라는 막연한 미래를 우려하셨던 것 같다. 친구들도 내게 “왜 대학 안 갔느냐”고 묻지 않았다. 재밌게 잘 살고 있으니까.

 

막노동과 밴드 활동을 병행했다고 들었다. 어떤 스무 살을 보냈는가?

스무 살에 좋아하는 여자애가 생겼다. 그 친구가 힘들어 보여서 내가 먹여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새벽에 인력사무소에 가면 일을 준다. 안전모 쓰고 시멘트 지고 올라간 적도 있었고, 고양이 카페에서 고양이 털 빗질하는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지금도 나는 트럭 운전수로 일한다.

 

이런 말 하면 다들 “힘들었겠다”고 한다. 하지만 슬픈 얘기가 아니다. 내가 선택한 것 이다. 돈을 많이 벌고, 원하는 시간에만 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내가 비싼 악기를 사면, 친 구들은 “너 금수저야?”라고 묻는다. 나는 “그냥 샀어”라고 대답한다. 이면에는 사실 트럭 운전이 있었다.

 

막노동을 하면서 얻은 인생의 교훈은 무엇인가?

모든 건 언젠가 끝난다는 것. 막노동의 대부분은 힘들면서도 지루한 시간들이다. 짐도 나르 고 빗자루질도 하고, 몇 시간씩 가만히 서서 깃발을 들고 있기도 한다. 이쯤 되면 죽을 것 같다는 한계의 최대치가 올라간다. 그래서 일을 바로 해치우겠다는 각오가 빨리 생긴다. “도배 할까?” “응, 지금 전화해.” “녹음할까?” “오늘 밤새 끝내자.” 이런 식으로.

 

또래 친구들이랑 다른 생활을 해오면서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무엇인가?

여가 시간을 활용하는 기술이다. 밴드로 활동 하다 보면, 3분 공연을 위해 3년 연습한다. 그래서 일상이 재밌어야 한다. 3분밖에 안 되는 공연만 재밌으면 남은 시간들은 어떡하겠나. 잉여 시간을 알차게 보내는 기술이 중요하다. 잉여 시간에 연애도 하고, 친구들과 모여서 웃긴 일들도 많이 벌였다.

 

그러나 대학에 가면 시간을 쓰는 방법을 누군가가 정해줄 것이다. 과제를 주니까 컴퓨터를 켜고, 수업이 있으니까 학교에 간다. 어쩌면 이것은 게을러지는 과정이 아닐까? 시간을 이렇게 써도 괜찮다는 면죄부가 생기는 것일지도 모른다.

 

대학에 안 간 것을 후회한 적은 있나?

몇 번 있다. 우선 대학에서 꽁냥꽁냥 연애해 보는 것? 대학에 안 가본 내겐 판타지밖에 없다. 그리고 멋있고 느낌 좋은 사람들에게 자극을 받고 싶다. 대학 3~4학년이 되면 재능의 꽃을 피우는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젊은이들이 모이는 장소가 대학이니까, 다녔더라면 더 많은 자극을 받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중에 시간 강사 할 날이 오면 좋겠다.

 

‘대학 안 가고도 잘 먹고 잘 사는 놈’으로서, 나만의 자부심은 무엇인가?

하고 싶은 것은 꼭 해내려는 자세. 간단한 말 이지만 어려운 얘기다. 무대에 서려면 준비 할 게 많고, 건반 잘 치고 싶으면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시간이 많이 들어갈지언정 부단히 노력해서 해내려고 한다. 옛날엔 ‘잘생겼다’는 말이 가장 듣기 좋았고, 그다음은 ‘재능 있다’ 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재능 운운하는 사람들은 업계에 없기 때문이다. 진짜 하루를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은 재능을 따지지 않는다. 그래서 요즘은 ‘근성 있다’는 말을 듣고 싶다. 부단히 노력하는 내가 자랑스럽다. 예를 들면 부끄럽고 어려운 일에 나를 내던지기. 뭔지 몰라도 시키면 해보기, 다른 사람들이 못 하는 것을 내가 해보겠다는 자세. 이런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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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에서 할머니의 집밥을 기록합니다❜ 미뇨끼 인터뷰

대한민국에서 우리집 이탈리아의 따뜻한 요리 영상을 만드는 미뇨끼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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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밖의 20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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