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열심히 해라.” 때로는 덕담으로, 때로는 충고로 우리가 가장 많이 들어온 말 중 하나일 것이다. 조기교육으로 시작해 현재의 취업 준비에 이르기까지 한평생(!)을 죽어라 공부만 했다. 그러나 하면 할수록 이상하다. 뭘 배우는지도 모르겠고, 배우긴 배웠는데 할 줄 아는 것도 없다. 지금껏 풀어온 그 많은 시험문제는 왜 삶의 문제를 푸는 일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걸까? 그럴수록 우리는 유일한 해결책인 양 ‘더’ 공부해야 한다고 믿는다. 사회학자 엄기호, 정신과 전문의 하지현은 대담집 『공부 중독』에서 온 사회가 이 같은 공부 중독의 악순환에 빠져 많은 것을 망치고 있다고 지적한다. 공부를 하라고 하여 공부만 하였는데, 그 공부 때문에 망하게 생겼다니…. 배울수록 무능력해지는 우리에게, 지금 정말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공부 중독의 주요 증상 6


공부 좋아하는 사람 있나? 적어도 난 아니다. 지긋지긋하다. 그래도 참고 공부했던 건 그게 내 인생에 도움이 될 거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공부가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우릴 망치고 있었다. 내가 이러려고 10년 넘게 학교를 다녔나….


 

01 호기심을 잃어버렸다

“이거 알아서 뭐해요?”

 

사방이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두려움과 호기심을 동시에 느낀다. 문학 수업을 듣다가 잘 몰랐던 작가 이름을 맞닥뜨렸을 때도 마찬가지다. ‘나만 모르는 거 아냐?’ 하는 두려움과 ‘저 사람은 어떤 글을 썼을까?’ 하는 호기심. 이때 호기심을 충족하려면 두려움을 억누르고 한 발짝 다가가야 한다.

 

손들어 질문하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읽거나. 이렇게 모르는 것을 알게 되는 과정이 공부다. 그러나 입시 공부는 학생들의 두려움만 잔뜩 키웠다.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답을 알기도 전에 ‘틀렸다’며 빨간 줄을 그었고, 빨간 줄이 많을수록 더 많이 혼났다. 왜 틀렸는지 충분히 이해할 새도 없이 다음 문제를 풀어야 했다.

 

학창 시절을 거친 사람들에게 여전히 공부는 불쾌한 경험이다. 틀려서 혼났던 일만 떠오른다. 몰랐던 것을 알아가는 기쁨, 앎의 재미를 잃어버린 것이다. “나는 헤어디자이너가 될 건데 「관동별곡」을 배워서 어디 써먹어요?” “철학과 나와서 먹고살 수 있어요?” 호기심을 잃어버린 우리는 이제 ‘당장 써먹을 수 없는’ 공부에는 눈길도 주지 않는다.

 

02 차별이 몸에 익어버렸다

“저 사람이랑 나랑 같아요?”

 

“왜 수시 합격자가 정시 합격자랑 똑같은 대우를 받아요?” “지역균형선발제로 입학한 애들은 등록금 더 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위 질문들에는 사실 같은 말이 숨어 있다. ‘내가 얼마나 힘들게 공부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힘들게 공부한 이유는살아남기 위해서다. 선생님·부모님 말씀대로라면, 사회에서 살아남는 방법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뿐이었다.

 

서울의 이름 있는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건 기껏해야 한 반에 서너 명 안팎. 압박감을 견디며 원하는 대학에 입학한 이들은 ‘투자한 것만큼 돌려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일종의 보상심리 같은 거다. 그러나 이런 마음으로 학창 시절에 코피 나도록 공부(투자)한 사람은 너무 많고, 좋은 일자리(보상)는 턱없이 부족하다.

 

나는 쟤보다 수능을 훨씬 더 잘 봤는데 비슷한 처지가 되었다는 사실이 억울하다. 불공평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성적에 따라, 학교 이름에 따라 차별 대우하는 게 오히려 공평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 생각은 취업한 후에도 이어진다. ‘왜 비정규직에게 정규직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쉽게 줘요? 내가 얼마나 힘들게 취업했는데….’

 

 

03 답이 정해져 있지 않은 문제는 풀지 못한다

“그래서 답이 뭔데요?”

 

인터넷 커뮤니티에 초등학생들의 주관식 답안지가 재밌는 게시물로 자주 올라온다. 예를 들면, ‘국가 살림을 위한 돈을 어디에, 어떻게 나누어 쓸지 계획한 것’이 무엇인지 묻는 문제의 경우, 답은 ‘예산’이지만 네티즌들은 ‘최순실’이라 쓴 답안을 보며 창의적이라고 칭찬한다. 현실은 다르다. 모든 문제의 답이 정해져 있다.

 

최대한 빠른 시간에 문제가 요구하는 답을 찾는 것이 공부의 목표다. 또 다른 답은 없을지 고민하는 건 시간 낭비라고 여겨진다. 효율적인 공부에 익숙해진 학생들은 대학에서도 ‘정답 찾기’에만 집착한다. 토론식 수업이 유독 힘든 이유다. 교수님이 정답을 말해주면 바로 다음 장으로 넘어갈 수 있을 텐데.

 

정답도 아닌 다른 애들의 의견을 듣느라 쓸데없는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될 텐데. 정답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자기 생각을 말하는 것도 주저하게 된다. 아니, 다양한 의견을 듣지 않으니 자기만의 의견도 가질 수 없다. 어디서 들은 말을 그대로 옮길 뿐이다. 심지어 데이트를 할 때도 가장 효율적인 코스를 검색해 그대로 따라 한다. 정답을 찾는 동안 나만의 답, 나만의 생각은 사라져버렸다.

 

04 숫자로 사람의 가치를 평가한다

“그쪽은 스펙이 어떻게 돼요?”

 

학교 다닐 때 부모님의 친구나 친척 어른들을 처음 만나면 여러 가지 질문을 받게 된다. 질문은 대부분 비슷비슷했다. 예의상 이름과 나이를 묻고 나면 항상 빠지지 않는 공식 질문으로 이어진다. “공부는 잘하니?” 친구들이랑 뭐하고 노는지, 최근에 재밌게 본 TV프로그램이 뭔지 묻는 사람은 없었다.

 

나이 다음으로 나를 설명할 수 있는 건 늘 반 등수와 평균 점수였다. 획일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건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도 마찬가지다. 자연스럽게 학교 이름, 토익 점수, 연봉 액수로 사람을 평가한다. 학창 시절의 성적 스트레스는 고스란히 ‘학벌 스트레스’, ‘연봉 스트레스’, ‘스펙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05 뭐든지 학원에서 해결하려 한다

“이건 어디 가서 배우죠?”

 

“연애를 책으로 배웠어요.” 이건 연애를 잘 모른다는 말이다. 그걸 알면서도 여전히 뭘 배워야겠다 싶을 땐 책을 펼치고, 학원에 등록한다. 학교 가기 싫다고 그렇게 노래를 불러놓고 정작 졸업한 뒤에도 자기 인생을 학교처럼 만들고 있다. 그게 왜 잘못일까? 배우고, 배운 것을 익히는 것까지가 학습(學習)이라면 학교에는 ‘학(學)’밖에 없다.

 

우리나라 초·중·고등학교의 목표는 시험에 나올 내용을 최대한 많이 배워서 더 높은 점수를 받는 것. 교과서를 익혀 완전히 자기 것으로 소화하지 않아도 객관식 보기 중 하나를 고르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니 인생도 학원에서 배우기만 하면 될 것 같다. 별별 학원이 다 생기고 서점에는 분야별로 자기계발서가 쏟아진다.

 

픽업 아티스트라는 신종 직업은 뭐든지 수학 공식 외우듯 배울 수 있다는 믿음이 낳은 괴물이다. 학교에서 코피 나도록 공부하느라 삶을 못 누렸던 사람들이 다시 학원에서 삶을 공부한다. 그렇게 자격증을 여러 개 따도 배운 것을 익힐 곳은 없다. 다른 학원에서 또 배울 뿐이다. ‘배우긴 배웠는데 할 줄 아는 게 없다’는 탄식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06 공부를 보호막 삼아 나를 가둔다

“저 아직 공부중인데요?”

 

20년 넘게 괴롭혀온 공부가 도움이 될 때도 있다. 취직 안 하냐는 질문에 답해주기 싫을 때 ‘공부하고 있어요’ 한마디면 다들 더 이상 괴롭히지 않는다. 공부 중독에 빠진 나라에서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보호막이다. 문제는 보호막에 익숙해진다는 데 있다. 내 능력이 얼마나 되는지 깨닫고, 남에게 평가까지 받는다는 건 사실 두려운 일이다.

 

공부 중일 때는 이 힘든 과정을 겪지 않아도 된다. 단지 준비가 덜 됐을 뿐이니까. “난 여전히 가능성 있고, 준비만 끝나면 무엇이든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만능감을 유지할 수 있다. 야박하게 말하면 정신 승리다. 적당한 정신 승리는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공부 보호막 속에서는 기회가 왔을 때에도 삶의 다음 단계로 넘어갈 용기를 내지 못한다.

 

현실 속 비루한 내 모습을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열정 페이’를 저항 없이 받아들이는 과정도 비슷하다. ‘난 준비가 덜 되었고 공부를 더 해야 돼, 노동은 현장에서 공부할 수 있는 기회야, 그러니까 난 월급 대신 ‘공부 기회’를 받는 거야.‘ 취업 압박을 피하기 위한 보호막에 스스로 갇혀버린 셈이다.

 

Editor_ 기명균 kikiki@univ.me

Illustrator_ 원대한

 


급한 대로 셀프 치료 5


그래서 우린 망한 건가? 속단하긴 이르다. 공부만 해온 시간보다 아직 살아보지 못한 삶이 더 길게 남아 있기 때문이다. 공부 때문에 망하기 싫다면, 내 삶을 내 손으로 제대로 꾸려보고 싶다면, 그동안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여 세상을 읽어왔던 프레임부터 바꾸어야 한다. 가볍게 몸 푸는 심정으로, 아래의 다섯 가지 생각에서부터 출발해보자.


 

01 쫄지 말고 쉬는 시간 가지기

“인생 그렇게 쉽게 안 망한다!”

 

12년 동안 계속 수업 시간이었는데, 대학 와서 쉬는 시간 좀 가진다고 인생 안 망한다. ‘갭이어(gap year)’를 통해 스펙 말고 오롯이 경험을 쌓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도 좋다. 20대에는 ‘이 일을 하고 싶다’ 만큼이나 ‘해보니까 이건 아니다’인 것을 찾는 것도 중요하다.

 

“바리스타? 6개월 정도 해봤더니 생각한 것하고 다르더라. 나는 좀 더 활동적인 게 좋아.” 경험을 통해 이런 판단을 늘려가야 앞으로 운신할 수 있는 삶의 폭이 커진다. 그런 것을 알아가는 시간은 결코 낭비나 실패가 아니다.

 

한국은 표준화된 삶의 스타일이 너무 강력하게 작동하는 사회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금 밖으로 조금 벗어났다고 해서 ‘난 망했어’ 여기지 않는 삶이다. 사실 금을 막상 벗어나보면 그게 별 것 아니었단 것도 알게 된다. 남들 따라 트랙을 뛰다가 삐끗 벗어났는데, 거기엔 그냥 잔디밭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허탈한 동시에 후련하지 않을까?

 

잔디밭에 있는 사람이 하나둘 더 보여야, 트랙을 나오려는 사람도 많아진다. ‘굳이 저렇게 살지 않아도 되는구나’를 확인하고 현재의 획일화된 삶에서 벗어나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생각이 공유되는 것이다.

 

02 다른 누구도 아닌 내게 ‘좋은 삶’ 찾기

“엄빠, 언젯적 얘기를 하는 거예요?”

 

‘졸업정원제’를 아는지? 80년대 초반엔 입학이 아닌 졸업 때 학생 정원을 설정하는 ‘졸업정원제’가 있어서 대학 입학이 비교적 쉬웠다. 게다가 졸업할 땐 한창 호황기, 일자리 수에 비해 대졸자가 모자랄 정도였다. 지금의 486 부모 세대는 솔직히 말해 ‘시대 운’이 좋은 세대였다.

 

나라의 상승세에 올라탔으니, 공부에 노력을 들이면 곱하기 2의 혜택을 받았다. 문제는 현재를 사는 자식에게도 같은 방식의 성공을 강요하는 것. 그만큼의 성과가 나지 않는 것은 ‘노오오력’이 부족해서라고 여긴다. 그때나 지금이나 시대를 읽지 않아서다. 부모 세대가 호황기의 수혜를 받았다면 우리는 불황기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눈이 있다면 저 통계를 보라. 구직자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부모 세대가 익혔던 삶의 기준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지금은 80년대가 아니고, 내 삶은 부모의 삶이 아니다. 부모가 원하는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이 아니라, 오로지 현재 시점에서 내게 ‘좋은 삶’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내게 가장 어울리는 삶, 내가 행복할 수 있는 삶은 나 말고는 알 수가 없는 법이다.

 

 

03 쓸고퀄 평균의 압박에 속지 않기

“우리가 올려다보는 그거, 평균 아니야.”

 

지금의 중·고등학교는 상위 몇 명의 학생을 서울대에 보내고 교문에 플래카드 거는 것이 목적이 된 학교다. 상위 몇 프로를 위한 교육을 하는 셈이다. 그러면서 공부에 대한 기대 평균치가 너무 높아졌다. 한국은 그렇잖아도 평균이 되어야 한다는 압력이 지나치게 높은 사회다. 평균이 되지 못하면 패배한 인생, 낙오한 인생이라는 자괴감마저 들도록 만든다.

 

함정은 그것이 결코 네버 평균이 아니라는 것! 우리는 여태껏 쓸고퀄 평균의 압력에 속아왔다. 전국 수능생을 65만, 인 서울 10개 대학 정원을 대략 3만으로 칠 때, 상위 ‘4.5%’를 대학생의 평균이라 말하고 있다. 연봉 역시 20대 기업에서 받는 연봉을 평균이라 말한다. 상위 몇 %를 ‘평균’이라 부르는 뻔뻔한 논리는 졸지에 그 밖의 전부를 ‘모자라는 사람’으로 만든다.

 

사회가 심어준 불필요한 좌절감, 자조감이 내 삶을 장악하도록 두는 것은, 분하게도 사회에 거짓말에 지는 일이다. 미디어에서 자꾸 평균, 평균 떠들어도 속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사회가 말하는 평균은 결코 평균이 아니고, 나는 결코 기준 미달의 모자라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잊지 말자.

 

04 나눠주는 정답 말고, 경험으로 해답 찾기

“여행에 족보 같은 건 필요 없어”

 

자유여행패스 ‘내일로’ 기차 여행에는 인터넷을 떠도는 모범 답안이 존재한다. 어디 가서 뭘 타고, 뭘 보고, 무슨 식당에서 뭘 먹고, 어느 숙소에서 자고. 그래서 좋긴 한데, 이걸 알고 나면 다른 길로 갈 수 없게 된다. 여행에 답이 존재한다니, 얼마나 효율적으로 이 많은 코스를 다 돌았는가로 경쟁한다니 이상한 일이다.

 

공부를 통해 몸에 밴 효율성 탓이다. 안전한 답만 찾으면, 의외성이나 낯섦, 타자를 지나치게 위험한 것으로 인식하고 거부하게 된다. 하지만 개인의 ‘성장’은 바로 그 낯설고 새로운 것을 만날 때 나온다. 삶이 풍요로워지는 것도 이를 통해서다. 여행지에서 가려던 길을 벗어났을 때, 우연히 만난 현지인과 친구가 되었을 때, 잊지 못할 추억이 생긴 적은 없는지?

 

삶에는 결코 가르칠 수 없고, 스스로 겪어야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존재한다. 여행이 그렇고, 연애가 그렇고, 인간관계가 그렇듯이 살면서 터득해야 하는 것에는 매뉴얼도, 족보도, 정답도 없다. 오로지 내가 풀이한 해답만 있을 뿐이다. 이 해답들이 모여야만 삶의 크고 작은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적응력이 생긴다.

 

 

05 답정너인 사회를 향해 내 목소리 내기

“이건 왜 능력이 아닌데요?”

 

대체 무엇이 능력이고, 무엇은 능력이 아니란 걸까? 사회가 답정너다. 이미 ‘능력’이라 부를 것을 정해두었다. 이 사회는 성적이나 자격증으로 정량화되지 않는 건 능력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공부를 잘하지 못할 때 우리는 쉽게 “전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능력이 없어요.” 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나는, 아무 능력도 없는 사람인가? 단적으로 말해, 그런 사람은 없다. 쉽게 자조하지 말고 사회에게 왜 다른 것은 능력이 아닌지 되물어야 한다. “저 어릴 때부터 요리하는 거 좋아했는데 요리사 되려고 일단 주방에서 일 좀 배워보려고요.” 이것을 능력으로 안 쳐준다는 사회, 펄쩍 뛰거나 앓아 눕는 부모를 향해 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한다.

 

경쟁 압력이 높을 대로 높아진 사회에서 김을 빼듯이 그 압력을 풀어낼 수 있는 건 다양성 뿐이다. 서구나 일본은 자연스레 라이프스타일의 다양화가 진행된 사회다. 대학에 갈 수도, 안갈 수도, 결혼을 할 수도, 안 할 수도, 공동가족을 만들 수도 있다. ‘이 길 하나만 있는 건 아니구나’ 깨닫고, 자신이 원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스스로 선택하고 조정할 수 있어야 한다.

 

Editor_ 김신지 summer@univ.me

Illustrator_ 원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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