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돗토리는 어때?” 일본 돗토리현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기 전, 서울 지리만큼 도쿄의 맛집을 꿰고 있는 친구에게 물어봤다. 모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돗토리에 다녀온 뒤, 요즘은 침대에 누우면 그곳이 떠오른다. 간이역에서 불어오는 바람, 살랑살랑 흔들리던 싱싱한 풀, 그리고 조용한 사구. 올 겨울, 잘 알려진 일본이 아닌 조금은 특별한 일본의 시골이 궁금하다면, 돗토리현을 보여주고 싶다.

 

코난과 눈알 아빠를 좋아하는 귀여운 도시

 

돗토리현 중부 유라역 주변의 마을

 

작정이라도 한 듯 만화를 향한 애정을 뽐내는 도시가 있다. 바로 일본의 돗토리 현이다. 이곳에서 나는 감히 “만화를 좋아한다”고 말하기가 부끄럽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면 한 시간 만에 요나고 공항에 도착한다. 쌀 미(米)에 아들 자(子)를 쓰는 요나고(米子) 공항은 ‘기타로 공항’으로도 불린다.

 

‘코난 역’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유라 역’

 

일본에서 사랑 받는 요괴 만화 『게게게의 기타로』를 그린 만화가 미즈키 시게루의 고장이기 때문이다. 이 만화의 인기 캐릭터인 메다마오야지(눈알 아빠) 그림이 온갖 곳에 있다. 눈알 만주, 눈알 인형, 눈알 동상, 가로등의 눈알…. 눈알들이 모두 나를 본다. 징그러웠는데 자꾸 보니 귀엽다. ‘눈알 아빠’가 들으면 서운하겠지만, 돗토리현의 명물은 단연 『명탐정 코난』이다.

 

만화 캐릭터를 형상화한 가게 조명

 

 

약을 잘못 먹고 초등학생이 된 코난과, 늘 헛다리를 짚다가 마취총을 맞고 잠드는 모리 탐정. 이를 창조한 만화가 아오야마 고쇼의 고향이 돗토리 현이다. 그래서 온통 코난 천지다. 올 겨울 한정판으로 이용 가능한 외국인 전용 교통 패스는 ‘코난 패스’. 코난 박물관에 코난 등신대까지. 코난 박물관에 들어가자 코난과 똑같이 생긴 남자아이의 사진이 보인다.

 

메다마오야지(눈알 아빠) 만주

 

만화가 아오야마 고쇼의 어린 시절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사립탐정 만화가를 꿈꿨다”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탐정 만화가를 장래 희망으로 쓸 수 있는 유년 시절이 부럽다. 나는 코난이 그려진 기차를 타고, 돗토리 여행을 시작한다.

 

『명탐정 코난』이 그려진 기차

 

TIP.

여행의 시작은 요나고 공항에서 가까운 돗토리 서부부터. 사카이미나토 항구와, 돗토리현 중부의 코난 박물관이 있다. 돗토리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코난 스탬프를 전부 찍으면 코난 도시락통을 준다. 이거, 꽤나 탐난다.

 


거짓말 아닙니다, 들어가자마자 매끈해지는 미사사 온천

 

미사사 강

 

아침을 세 번 보내면 병이 낫고 예뻐진다는 미사사(三朝) 온천. 이게 웬 약장수 같은 말인가. 하지만 물에 들어가자마자 의심은 사라진다. 매끈매끈해진다. 거짓말이 아니다. 어라, 이게 말이 되나? 혹시나 싶어서 얼굴도 넣어본다. 역시나 바로 보들보들해진다.

 

무료로 이용 가능한 미사사 온천 거리의 족욕탕

 

온천에 함유됐다는 라듐 때문일지도 모른다. 손부터 팔뚝과 허리와 정강이까지 매끈하다. 이 기분에 중독돼 몇 번이고 숨을 참고 물에 얼굴을 박는다. 머리에 수건을 얹고 단정하게 탕 안에 들어가 있는 일본 사람들은, 이런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 같다.

 

에도 시대 거리를 보존한 시라카베도조군. 미사사 온천에서 버스 타고 15분 정도

 

온천에서 못 나가겠다. 결국은 머리가 어지러워서 비틀거릴 때쯤 나왔다. 고와진 피부가 상할까봐 맥주도 못 마시겠다. 온천수가 흐르는 족욕탕이 거리에 있다.

 

 

무료다. 양말 벗고 그냥 들어가면 된다. 족욕탕에선 온천물도 마시게 해준다. 물론 발을 담근 그 물은 아니다. 갯벌(!) 맛이 난다. 뜨뜻한 물에 날계란을 푼 듯 약간 짭쪼름하면서 텁텁한데 건강해질 것 같은 맛이다. 족욕하면서 홀짝이니 집에 가기 싫어진다. 온천물은 이렇게 마을 곳곳을 타고 흐른다.

 

 

미사사 강 옆엔 누구나 무료로 들어갈 수 있는 노천 온천이 있다. 밤이 되면 주민들이 나와 강을 바라보며 별빛 아래에서 정갈하게 온천을 즐긴다.

 

TIP.

JR구라요시 역에서 내려 미사사 온천행 버스를 타면 15분 정도 걸린다. 료칸에 숙박하지 않아도, 온천만 할 수 있는 료칸들이 있다. 나는 1500엔으로 ‘이잔로 이와사키’라는 큰 온천에 갔다. 인근 ‘시라카베도조군’에는 식당과 걷기 좋은 길 그리고 카페가 많다. 에도 시대의 거리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말장난으로 인기 있는 카페

 

돗토리현 내의 카페

 

돗토리현 내의 카페

 

일본에선 스타벅스를 ‘스타바’라고 부른다. 하지만 돗토리현에는 지난해까지 스타벅스가 없었다. 그리하여 말장난을 좋아하는 돗토리현의 지사(=시장)님은 이런 말장난을 남겼다. “돗토리현에 ‘스타바’는 없지만 ‘스나바’는 있다.”

 

돗토리현 내의 카페

 

돗토리현 내의 카페

 

‘스타바’에서 한 글자를 살짝 바꾼 ‘스나바’는 일본어로 ‘모래사장’이라는 뜻. 돗토리현의 유명한 모래 사구를 이르기도 한다. 돗토리현의 명물인 커피와 사구를 동시에 자랑하는 지사님의 말장난 덕에, 돗토리 현에 들르는 사람들은 카페 ‘스나바’를 꼭 찾는단다. 맛은 둘째치고서라도.

 

TIP.

돗토리시의 ‘카페 소스’는 만난 사람들마다 추천하던 맛집이다. 커피 맛이 좋다고 한다. 나는 두 번 갔는데 두 번 다 자리가 없어서 못 갔다. 돗토리시의 ‘Nana’s green tea’, 구라요시 시라카베도조군에선 맷돌 커피를 먹을 수 있는 카페 ‘구라(久楽)’도 유명하다.


따뜻하고 담백한 술안주의 천국, 이자카야 탐방

 

달달한 진흙새우 구이

 

눈앞의 화려한 안주들에 정신이 팔린다. <고독한 미식가> 속으로 들어온 것만 같다. 먼저 돗토리현과 인근 지역에서만 난다는 진흙새우. 날것으로도 먹고 구워서도 먹는다. 달달한 맛이 일품이다. 그다음은 소 힘줄 조림. 쫀득쫀득하고 부드러운 식감에, 고소하면서도 달콤해 계속 입으로 들어간다.

 

따뜻한 지자케

 

나는 누룩에 절인 오징어 젓갈을 계란말이에 얹어 먹는다. 일본의 지역 술인 따뜻한 ‘지자케’ 도 곁들인다. 돗토리현 특산물인 게 전골이 보글보글 익어가는 동안, 어묵 안에 참마를 쏙 넣은 철판요리를 맛본다. <고독한 미식가>처럼 “음~ 따뜻하군”, “음식 사이의 궁합이 좋아~” “일품이야”를 나도 모르게 되뇐다.

 

돗토리 역 근처의 이자카야 ‘카바’

 

마지막은 오차즈케. 녹차에 가츠오부시와 밥을 넣고, 연어구이나 명란 혹은 우메보시(절인 매실)를 고명으로 얹는다. 나의 선택은 매실이다. 짭쪼름하고 새콤한 매실이 고소한 밥물과 완벽하게 어우러진다. 부러울 것이 없다.

 

사카이미나토 항구의 게 요리집 ‘류구노쿠라’

 

 

TIP.

사카이미나토 항구 근처에선 게 요리를 먹자! 갓 잡은 신선한 게가 그득하다. 돗토리 시에선 돗토리 역 인근 이자카야 ‘카바’를 추천한다.


바다 옆 황홀한 풍경, 돗토리 사구

 

돗토리 사구 근처 해안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다

 

돗토리 사구는 돗토리현 동쪽 해안가에 맞닿아 있다. 처음에는 ‘사구가 크면 얼마나 크겠어?’ 싶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본 돗토리 사구는 웅장하다. 제주도 오름처럼 생긴 널찍한 공간이 모래로 꽉 차 있다. 바로 그 옆은 동해다.

 

바다와 맞닿아 있는 돗토리 사구

 

풀 한 포기 자라지 않는 사구 옆에서는, 물고기와 해파리와 상어같은 생명체가 헤엄치는 바다가 펼쳐진다. 남북과 동서로 드넓게 뻗어있는 돗토리 사구는, 일본의 사구 중에서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돗토리 사구 근처 해안에서 자전거를 탈 수 있다

 

가만히 걸으며 풍경을 감상해도 좋고, 자전거를 빌려 바다 위를 달리는 기분을 만끽할 수도 있다.

 

TIP.

돗토리 사구에 간다면 근처의 하쿠토 신사도 들러보자.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이뤄준다는 흰토끼 전설이 내려온다.


시골 풍경이 흐르는 빵집

 

돗토리현의 시골 마을 거리

 

책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에 나온 빵집 ‘다루마리’는 돗토리현 지즈정(町)에 있다. 돗토리 역에서 기차를 타고 1시간 반은 더 들어가는 시골 마을이다. 기차가 자주 다니는 곳은 아니지만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는, 언젠가 본 잡지 인터뷰 때문이었다. 빵집 ‘다루마리’는 천연균으로 빵을 만든다.

 

빵집 ‘다루마리’의 천연효모 빵

 

그리고 빵집 주인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행복한 사람이 빵을 만들어야 맛있는 빵이 나온다고. 실연한 사람이 빵을 만들면 그 기분이 전해져 텁텁하고 슬픈 빵이 나온다고.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빵집 ‘다루마리’ 전경

 

행복한 기분으로 글을 써야 좋은 글이 나오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햇볕 잘 드는 창가에 앉아 빵을 씹으며 구름을 바라본다. 빵집에서 배를 채운 뒤 시골길을 걷는다. 걷다가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명란 파스타를 먹었다. 세상에! 가는 곳마다 맛있다. 오늘 하루도 성공이다.

 

빵집 ‘다루마리’의 천연효모 빵

 

TIP.

돗토리역에서 지즈역으로, 지즈역에서 나기역으로 간다. 빵집 ‘다루마리’는 오전 10시부터 문을 여는데, 빵이 떨어지면 문을 닫기 때문에 미리 전화하고 가면 좋다.


Photographer _주태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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