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 역사 강사 설민석이 나와 시인 윤동주 이야기를 했다.  MC 유재석은 낭랑한 목소리로 <쉽게 씌여진 시>를 낭독했다. 시험에 윤동주의 시가 나오면 무조건 ‘자기반성과 성찰’이 언급된 선택지를 고르라던 문학 선생님의 말씀만 어렴풋이 기억났을 뿐. 오랫동안 잊고 살던 시였다.

 

돌이켜보면 윤동주의 시는 숱하게 배웠지만,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상상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 바랐던 청년. 나라를 빼앗긴 시대에 우리말로 시를 쓰던 이. 그가 얼마나 고된 삶을 견뎌야 했을지, 나의 느슨한 애국심으로는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부끄러웠다.

 

조금이라도 덜 부끄러운 마음으로 새해를 시작하고픈 염원에서, 그의 흔적이 남아 있는 청운동 ‘윤동주 문학관’을 찾았다. 12월 30일, 시인의 생일을 며칠 앞둔 날이었다.

 

종로구 청운동 3-100 ‘윤동주 문학관’

 


인왕산 자락, 문학청년 윤동주가 시심을 키우던 곳

“계절이 지나가는 하늘에는 가을로 가득 차 있습니다”
-<자화상> 中

 

‘윤동주 문학관’은 대학 시절 그가 하숙하던 종로구 누상동 바로 윗 동네, 청운동에 있다. 두 동네는 인왕산 자락을 따라 이어져 있는데 윤동주는 이 길을 따라 걷길 즐겼다. 아침에 일어나면 인왕산 중턱까지 산책하며 산골짜기 아무 데서나 세수를 하곤 했고, 밤에 시를 쓰다가도 나와 걸었다.

 

평생을 주권 없는 나라의 학생으로 살았던 시인. 생각해 보면, 그에게 청운동 하숙 시절은 인생의 마지막 호시절이었다.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고, 하늘과 바람과 별을 만끽할 수 있었던 시간. 그렇게 생각하니 멀리 보이는 인왕산이 왠지 짠하게 느껴졌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자화상> 中

윤동주 문학관 뒤편으로 올라가면 ‘시인의 언덕’이라는 산책로가 있다. 실제로 윤동주는 이곳 인왕산 자락 길을 따라 산책하길 즐겼다고.

 


윤동주 문학관, 그의 시 같은 삶을 담은 공간

“나는 무엇을 바라 홀로 침전하는 것일까?”
-<쉽게 씌여진 시> 中

 

다시 윤동주 문학관 전시실로 내려왔다. 폐쇄된 청운동 수도가압장을 개조해 만든 건물이다. 총 3개의 전시실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각의 장소에서 텍스트, 공간, 영상으로 시인의 일생을 돌아볼 수 있도록 꾸며져 있다.

 

윤동주가 즐겨 보던 책들의 표지. 오직 일본어로만 읽고 쓰도록 허락한 시대에 그는 우리말로 된 시를 읽고 썼다.

 

새삼스레 윤동주는 참 자기 같은 시를 썼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시를 쓸 때 종이에 옮겨 적기까지 오랜 시간 숙고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남긴 메모만 봐도 그가 얼마나 끊임없이 성찰하는 사람이었을지 짐작할 수 있었다.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바람이 불어> 中

시인이 죽은 뒤에야 세상에 나온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천성이 선하고 여린 사람이었지만, 그는 내면에 굳건한 민족의식을 품고 있었다. 중학생 때 신사 참배 거부 의사를 밝히며 학교를 자퇴했을 정도로 의식이 남달랐던 소년은, 대학생이 되어 시집을 내기로 한다. 한글이 엄격히 금지된 시대에 한글로 쓴 시를 출판한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건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어려운 형편 때문에 출판은 좌절됐고, 결국 시집은 그가 죽고 나서야 세상에 나왔다. 그 시집이 바로 우리가 아는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다.

 

윤동주는 시집의 제목을 ‘병원’이라고 지으려고 했다고 한다. 세상에 온통 환자뿐이니, 이 시집이 혹시 앓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며.

 

윤동주를 회상하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반듯하고 깨끗한 사람’이라고. 결코 다른 이를 헐뜯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 사람. 분노하거나 탓하는 대신 언제나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 1 전시실을 둘러보고 나니, 마치 원래 아는 사람인 듯 건실한 청년 윤동주의 이미지가 또렷하게 그려졌다.

 

‘오뚝하게 솟은 콧날, 부리부리한 눈망울, 한 일(一)자로 굳게 다문 입, 그는 한 마디로 미남(美男)이었다.’ -정병욱, 『잊지 못할 윤동주』 中

 


시인의 영혼을 짓밟은 사건, 창씨 개명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참회록> 中

 

2전시실과 3전시실은 용도 폐기된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여 만들었다. 2전시실은 열린 우물로 1전시실과 3전시실을 이어 주는 역할을 한다. 벽에는 물탱크로 쓰던 시절 생긴 물때가 그대로 남아 있다.

 

윤동주 문학관 2전시실 열린 우물

 

세월이 남긴 쓸쓸한 흔적을 보면서, 이상하게도 1전시실에서 봤던 윤동주의 학적부가 자꾸 떠올랐다. 윤동주라는 이름 위에 빨간 줄을 긋고 대신 ‘히라누마 도슈’라는 일본식 이름을 써넣은 종이. 창씨 개명의 낙인이었다.

 

당시 윤동주는 일본 유학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창씨 개명을 선택했다고 한다. 창씨 개명을 하지 않으면 일본 유학을 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학교 졸업 후 뚜렷한 진로의 방향을 잡지 못하던 시인에게, 일본 유학은 힘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관문이었을 것이다.

 

비록 창씨개명은 했지만 자신의 시집 원고에는 언제나 윤동주로 표기했고, 외국 친구들에게도 자신의 이름을 윤동주로 소개했다.

 

시인의 영혼과 생활인의 현실 사이에서 갈등하던 이즈음에 썼던 시가, 교과서에도 많이 나오는 <참회록>이다. 창씨 개명 신청하기 5일 전에 쓴 시라고 생각하고 다시 읽으니 마음 한 켠이 저릿했다. 목숨을 걸고 우리말로 된 시집을 내려고 했던 사람의 비참함이 전에 없이 가깝게 다가왔다.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참회록> 中

시인, 광복 직전에 세상을 떠나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 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쉽게 씌어진 시> 中

 

‘윤동주 문학관’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소를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이 3전시실을 말한다. 2전시실이 열린 우물이라면 3전시실은 닫힌 우물로, 건물 제일 안쪽에 있어서 녹슨 철문을 힘껏 밀고 들어가야 닿을 수 있다. 이곳에서 15분에 한 번씩 윤동주의 일생을 담은 영상이 상영된다.

 

용도 폐기된 물탱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여 만든 닫힌 우물. 시인의 일생을 담은 영상을 보고, 사색하는 공간으로 조성했다.

 

영상이 끝나고 배경 음악이 천천히 잦아들어 숨소리만 남은 순간. 나는 이곳이 시인 윤동주가 홀로 침전하던 남의 나라의 육첩방 같다고 생각했다.

 

구멍에서 새어 나온 한 줌 빛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춥고 캄캄한 방. 그곳에서 시인은 수많은 부끄러움을 헤아리며 시를 썼을 것이다. 내 나라를 빼앗아간 남의 나라에 있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 하나. 고생하는 부모님에게 기대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 하나. 스스로 무언가를 하지 못하고 방에 앉아 시를 쓰고 있는 것에 대한 부끄러움 하나.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쉽게 씌어진 시> 中

이 시를 마지막으로 윤동주는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옥사한다. 1945년 2월, 6개월만 기다리면 시인이 그토록 원하던 광복이었다.

 


P.S.

시인의 나이가 스물일곱이라는 것을 이번에야 알았다. 올해 나와 동갑이었던 청년은 이틀 뒤면 동생이 된다. 먼저 간 그가 남겨 준 소중한 땅에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지 다시 한번 치열하게 생각해 보리라 마음을 다졌다. 작심삼일 짜리 새해 다짐이 되지 않길 바라며.

 

 

윤동주 문학관
위치 서울시 종로구 청운동 3-100
전화번호 02-2148-4175
관람시간 10:00-18:00 (월요일 휴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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