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엄마가 이상하다. 이유 없는 짜증이 늘었고, 몸이 아프지 않은 날보다 아픈 날이 더 많아졌다. 누구보다 강인하던 사람이 별것도 아닌 일로 울고, 약한 소리를 한다. ‘안 그래도 요즘 힘들어 죽겠는데 엄마까지 왜 갑자기…’ 여기까지 생각했다가 아차 싶었다. 우리 엄마에게도 갱년기가 온 거다.

 

“갱년기가 오면 몸도 아프고 마음도 힘드니 가족들이 잘 도와주어야 한다.” 어디서 주워듣긴 들었는데, 엄마도 나도 아빠도 처음이라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어떨 땐 달라진 엄마가 버겁기도 하다. 이럴 땐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갱년기 엄마를 둔 자식의 흔한 고민 네 가지를 모아, 정신의학과 전문의 김병수 교수님께 물었다.

 


고민1. 엄마가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해요


갱년기가 시작된 엄마가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해요. 원래 저희 엄마는 힘든 상황에서도 항상 웃는 밝은 분이셨는데… 갑자기 너무 달라지셔서 걱정이 됩니다. 전업주부시라 주로 집에 계시는데, 집안일 하면서 한숨을 많이 쉬세요. 혼잣말도 느셨어요. “이렇게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식구들은 나한테 관심도 없다” 뭐 이런 말들. 아! 밤에 잠도 잘 못 주무시는 것 같아요. 같이 나가서 맛있는 거 먹고 기분전환하자고 하면 피곤하다면서 거절하시네요. 제가 어떻게 해드리면 좋을까요?

 

 

갱년기가 되면 감정 변화가 심해져 쉽게 우울해지고, 불안해집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별문제 없었던 것들도 비관적으로 인식되는 겁니다. 아마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질 거에요. “당신 때문에 지금까지 내가 고생했다”, “너희들 위해서 살았는데, 이제 다 컸다고 엄마에게 이럴 수 있냐” 원망 섞인 말들을 쏟아내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겠죠.

 

그런 엄마의 마음을 달래드리기란 쉽지 않습니다. 같이 영화 보자, 맛있는 것 먹자, 운동하자, 뭘 말해도 싫다거나 귀찮다고 할 겁니다. 이럴 때 중요한 것은 엄마에게 변함없는 관심을 보여주는 것 그 자체입니다. 엄마가 거절하더라도 계속해서 적극적으로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번번히 거절하니 답답한 마음도 있겠지만, 이런 권유라도 하지 않으면 엄마는 “나에게 관심 없다”며 더 서운해 할 겁니다.

 


고민2. 엄마가 매일 아파요

 

요즘 엄마 몸이 너무 안 좋아져서 걱정입니다. 두통을 달고 살고, 바람 불면 뼈 마디마디가 쑤신다 하세요. 지난번에 집에 갔을 때는 열이 심하게 나서 정말 놀랐어요. 문제는 약도 안 먹고 병원에도 안 가시려 하는 겁니다. 갱년기 때는 원래 다 그런 거라나요? 집에서 나와 살다 보니 옆에서 챙겨줄 수도 없는데… 우리 엄마 이대로 괜찮은 걸까요?

 

 

갱년기의 대표적인 증상이 신체 통증입니다. 온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합니다. 뼈마디도 아프고, 소화도 안 되고, 머리도 아프고, 화끈거리고, 땀도 나고, 가슴도 답답하고, 몸도 무겁고… 일일이 나열하기가 힘들 정도니까요. 그렇다고 해서 무슨 큰 병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갱년기가 되면 통증에 민감해져서 평소라면 의식하지 못했을 신체 감각도 큰 통증으로 느껴집니다. 동시에 통증을 참아내는 내성도 약해지죠. 또 심리적으로 민감해지기 때문에 통증에 대한 괴로움도 더 커집니다.

 

병원에 가더라도 왜 아픈지 병명도 안 나오고, 치료도 제대로 안 되니까, 갱년기 어머니들은 답답해합니다. 아마 사연 속 어머니도 속으로는 불안해하고 계실지도 몰라요. 통증에 대한 뚜렷한 원인이 없었다면, 심리적인 갱년기 증상일 가능성이 제일 높습니다. 심리적인 갱년기 증상은 우울증에 준해서 치료를 받으면 좋아질 수 있어요. 어머니를 잘 설득하셔서,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면 좋겠습니다.

 


고민3. 엄마 갱년기 증상이 몇 년 동안 지속되니 솔직히 좀 지칩니다

 

엄마랑 생리대를 같이 쓰는데, 어느 순간부터 생리대가 줄지 않아서 알았어요. 엄마에게 갱년기가 왔다는 걸. 그래서 뭐라도 챙겨줄까 싶어서 갱년기냐고 물어봤는데 화를 버럭 내셨어요. 갱년기가 오면 원래 짜증이 는다면서요? 저희 엄마가 딱 그렇습니다. 화장하면서 피부가 푸석해졌다고 저한테 진심으로 화를 내요. 저 키우느라 고생해서 그렇다고요. 또 가족들이 각자의 사정으로 귀가 늦게 됐는데, 거기에 화가 난 엄마가 문을 잠그고 열어주지 않아서, 온 가족이 찜질방에서 잔 적도 있습니다. 처음엔 우리가 이해하고 잘해드려야지 했었는데 이 증상이 몇 년이나 지속되니 솔직히 좀 지칩니다. 이제 엄마가 짜증을 내면 “또 저러네…”하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엄마가 괜찮아질 때까지 이렇게 무조건 참고 인내해야 하는 건가요?

 

 

갱년기의 감정 변화는 흔한 현상입니다. 가족들도 처음에는 무리 없이 이해합니다. 다만 그 증상이 심해지고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결국 가족들도 지치는 것이죠. 더 안타까운 건, 말로 표현하지는 않지만, 엄마 스스로도 감정 조절 문제로 괴로워하고 있다는 겁니다. 갱년기 여성을 상담하다 보면 “왜 이렇게 가족에게 짜증을 내는지 나도 모르겠어요. 아이들과 남편에게 미안해요”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갱년기 엄마의 감정 변화 때문에 가족도 힘들겠지만, 사실 더 힘든 것은 갱년기를 겪고 있는 엄마입니다. 이걸 우선 이해해야 합니다.

 

감정 변화도 호르몬 변화 때문에 생기는 것이므로, 심한 경우에는 치료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일반적인 경우에는 치료 외의 방법으로도 좋아질 수 있어요. 뻔한 이야기 같지만 꾸준히 운동하고, 기분 전환을 위한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증상 완화에 도움이 됩니다. 또 몸이 피곤하거나, 수면이 부족하면 감정 조절에 더 문제가 생기니, 이런 부분들을 잘 관리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주어야겠죠. 덧붙여서 기분이 처지고 우울하다고 커피나 술로 마음을 달래려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여기에 의존하면 오히려 감정 기복이 더 심해지니 주의해야 합니다.

 


고민4. 아들만 둘이라 엄마에게 도움이 안 돼요

 

며칠 전에 우연히 엄마가 혼자 우시는 걸 봤어요. 그러고 보니 요즘 좀 기운이 없어 보였던 것 같아서 다음날에 아프냐고 물어봤더니 괜찮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넘어갔는데 여자친구한테 말했더니 갱년기 증상 같다고 하네요. 저희 집이 아들만 둘 있어서 그냥 어머니 혼자 극복하시려고 이야기 안 하시는 것 같다며, 뭐라도 챙겨드리라고 하는데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힘들다고 티를 내시는 것도 아니고, 평소엔 집에서 말도 잘 안 하는데 갑자기 데이트하자고 하는 것도 이상하고. 또 평소처럼 지내자니 걱정되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가족 중에 여성은 엄마 밖에 없는 아들만 있는 집. 사실 이런 가족에서 갱년기 여성의 외로움은 더 커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아들 입장에서 엄마가 힘들어하는 것이 눈에 보여도, 어떤 말로 위로해드려야 할지 잘 모를 수 밖에 없고요.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어머니에게 더 많은 관심을 보여야 합니다. 갑자기 애교를 부리거나 낯간지러운 말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간접적으로 은근히 관심을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많아요. 전화를 자주 할 수도 있고, 주말에 가까운 곳으로 가족 여행도 떠날 수도 있고. 직접적으로 “엄마 갱년기 때문에 힘들지”라고 말하지 않아도, 간접적으로 관심을 표현하면 엄마는 ‘애들이 날 도와주려고 하는구나’ 하고 다 알아챕니다.

 

또 하나,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갱년기 여성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남편의 관심입니다. 물론 아들도 관심을 갖고 도와주어야 하겠지만, 더 절실하고 중요한 건, 남편 (아버지)이 아내 (엄마)에게 얼마나 정서적으로 지원을 해 주느냐, 하는 겁니다. 아버지에게 아들이 느끼는 어머니의 변화에 대해서 말씀 드리세요. 갱년기 엄마에게 아들이 도움을 주는 건 쉽지 않지만, 그래도 아버지와 힘을 합쳐 도와드릴 수 있는 것은 많습니다. 그러니 가족이 모두 힘을 모아야 합니다.

 


illustrator 서정화
advisor 김병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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