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이 되고, 대학생이 된 여러분들은 세상에 두 가지 타입의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술을 즐기는 ‘술잘먹’과 술을 못 마시는 ‘술못먹’. 하지만 두 종족은 융화되기 쉽지 않다. 특히 비교적 소수인 술못먹 입장에서는 왜 항상 모든 학교/과 행사의 끝마무리가 ‘술’인지 이해할 수 없다.
물론 술을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다. 마시기 싫으면 안 마시면 그만이다. 하지만 함께 어울리는 자리에 ‘술’이 끼면, 술잘먹과 술못먹 사이에 알 수 없는 불편한 기류가 흐른다. 이 이야기는, 술못먹 외길 10년을 걸어 온 에디터가 그간 술잘먹들과 어색한 술자리를 즐길 수 있었던 노하우다.
영화관과 지하철, 축구, 소개팅 자리, 그리고 술자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위치선정이다. 맹모삼천지교라는 말이 있지 않았나. 주변 환경이 오늘 당신의 술자리 흥망을 좌우한다. 당연하지만 주당일수록 술을 권할 확률이 높다. 설사 티를 안 내더라도 술을 먹지 않는 사람을 내심 재미없다고 생각할 거다. 술못먹이라면 이런 주당 옆 보다는 당신이 맨 정신에 놀아도 괜찮을 만한 베이스캠프를 차리는 게 낫다. 자, 그럼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
티나지 않게 술을 안 먹으려면 맨 구석자리에 앉는다? 틀렸다. 시선이 잘 안 닿는 맨 구석 자리는 금방 소외되고, 술잘먹조차 금방 지루해지는 자리다. 잊지 말자. 이건 ‘술을 먹지 않기 위한 팁’이 아니라 ‘술못먹이라도 즐겁게 놀 수 있는 팁’이다. 놀고 싶은 술못먹을 위한 최고의 좌석은 맨 끝에서 한 칸 안쪽 자리다.
풍수적으로 전, 좌, 우, 대각선까지 5인에 둘러싸인 안정감 있는 포메이션이라 소외된 기분 없이 여러 사람과 이야기를 할 수 있다. 게다가 당신처럼 술 못 먹는 다른 사람도 알아서 구석 자리로 빠져 있으니 4인 테이블이 술못먹과 술먹이 적절히 섞인 조합으로 구성된다. 이 얼마나 안정적인가! 장담하건대, 적당히 말재주만 있다면 이 자리에서 심심할 일은 없다.
술자리에서는 빈 잔을 채우고 – 짠을 하고 – 목으로 넘기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동질감을 느낀다. 오바 좀 하자면, 술자리는 같은 목적으로 같은 활동을 하며 친목을 쌓는 장소다. 그러니 남들 짠할 때 꿈뻑꿈뻑 있지 말고 똑같이 잔을 들어 위화감을 상쇄하자.
소주잔에 사이다라도 따라 마시면 효과가 두 배. 이렇게까지는 안해도 되는데, 더 효과를 거두려면 페리에/페레그리노 등 녹색병 탄산수를 준비하거나 콜라+사이다를 섞어 콜사 폭탄주라도 말아도 좋다. 특히 콜라1: 사이다2 비율 폭탄주는 소맥/맥주와 색이 흡사하다! 처음엔 비웃던 그들도 좀 알딸딸해지면 당신이 술 안 먹는다는 사실을 잊는다.
만약 2차로 칵테일이라도 하러 간다면 논 알콜 맥주나 칵테일을 시키자. 나는 하도 자주 껴서 놀아서 ‘버진 피냐 콜라다’라는 어려운 논알콜 칵테일 이름까지 외워 뒀다. 그리고 항상 별 것 없는 이딴 주스에 내 피 같은 8000원을 썼다는 사실에 분노하지만…
아시아권에는 묘하게 타성적인 주도(酒道)가 있어, 자작을 싫어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부류는 자기 잔이 오래 비어 있으면 “아, 술을 안 주네”라면서 남이 따라 줄 때까지 심술을 부린다.
사실 술 먹는 사람들끼리는 자작보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게 일종의 문화, 암묵의 룰이니 누굴 탓할 건 없다. 자리가 술자리인 만큼 누군가의 잔이 빌 때마다 잔을 채워 주도록 하자. 솔직히 이 정도만 해도 술 마시고 안 마시고를 떠나서 센스쟁이 등극이다.
보통 잔이 비면 술을 받고 술병을 되돌려 따라주는데, 이 때 당신도 술잔에 음료를 받아주자. 이 얼마나 센스 있고 배려심 넘치는 술못먹인가! “에헤이, 잔이 비었네 이 친구!”하면서 생색을 내면 받는 사람 쪽에선 오히려 주춤한다. 자기가 사리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든다. 이 걸 몇 번 반복하다 보면 당신 잔이 빌 때 알아서 음료수를 채워주는 신기한 배려까지 해 준다! “하, 이 친구, 아주 잘 마시네!” 라며. 응? 너 취했구나?
술이 한 병 두 병 들어가며 분위기가 무르익다 보면 마음 속 장막이 걷히기 시작한다. 사실 지금부터가 당신이 조금 피로해지는 시기다. 얼굴이 붉어진 헬보이 헬걸의 아무말 대잔치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평소 멀쩡할 때 하지 않던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한다. 물어 본 적도 없다. 뜬금없이 고백을 하거나, 쌓인 불만을 얘기하고, EDPS(음담패설)를 쏟아내는 친구들도 생긴다. 술자리에 항상 ‘진실게임’ 같은 자결게임이 있는 이유이며, 술자리가 어느 자리보다 흥미진진한 이유다.
취기 0%인 당신이 제정신으로 버티기 가장 힘든 시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뺄 필요 없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도록 하고, 만취자들 사이에 있다면 만취자들처럼 놀아라. 오히려 실언하지 않고 제정신으로 진심을 나누기 좋은 기회 아닌가. 적당히 수위를 맞추며 놀자. 다 취했으니까 기억 못 할 거라 생각하고 아무말이나 하면 적응하기 한결 수월해진다. 취한 친구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혼자 제정신으로 들을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잖아?
술자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구토, 다툼, 행방불명, 노상방뇨, 노숙 등 돌발 사태 발생 확률이 높아진다. 안타깝지만 신입생 환영회처럼 음주경력 짧은 구성원들이 많을 수록 더 그러하다. 약수터용 수레(a.k.a 구루마)에 실려 과방까지 실려간 후배, 누워 자다가 토사물을 역류시킨 활화산(이건 좀 위험하다), 과방 소파에서 속옷 차림으로 잠든 신입생 등 초보 음주러들은 흑역사가 만만찮다.
이럴 때 술자리에서 취하지 않은 당신은 아웃사이더나 죄인이 아니라, 히어로다. 어려움에 처한 친구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자. 사람 몇 살린다는 생각으로 택시를 잡아주거나, 근처 자취방에 데려다 준다던가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잊지 말자. 만취한 녀석들의 인사불성인 이 모습을. 당신은 그들의 흑역사를 두 눈에 담은 유일한 산 증인이다.
다음 날 퀭한 눈으로 당신을 마주친 친구들이 당신에게 인사를 건넨다면 반갑게 맞아 주자. 음… 사실 먼저 인사하려고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부끄러워하겠지만 사실 당신 아니었으면 어젯밤 여럿 객사했을지도 모른다.
“어제 기억이 안 나. 멀쩡한 XX만 죽어라 고생했겠네…” “야. 너 진짜 대단하다. 술 한 모금도 안 마시고 어떻게 그 자리에 있었냐?” 등 숙취로 고생하는 동기들이 내게 건네던 말이다. 그럴 때마다 난 항상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어유, 무슨 소리야! 나는 완전 재밌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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