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독자

대학교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고 있는 졸업반 학생입니다. 저는 왜 글만 읽으면 졸음이 몰려올까요. 이 졸음퇴치법은 없을까요. 요즘 「대학내일」에 우울한 글들이 너무 많아서 재밌는 내용으로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글만 읽으면 졸리신다니, 혹시 이 글을 읽다가도 꾸벅꾸벅 조실지 걱정되네요. 그래도 이 글은 본인 고민 때문에 쓴 것이니, 부디 얼굴에 분무기 물을 뿌려가면서라도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실은 질문자님의 고민을 접한 뒤, 제가 오히려 고민에 빠져버렸습니다. 그건 바로 ‘책’을 읽으면 졸린다는 게 아니라, ‘글’만 읽으면 졸린다 하셨기 때문입니다. 작정하고 노력하면 인생에서 책 따위는 외면하고 지낼 수 있습니다.

졸업하시면 이제 책과 담을 쌓아도 되고, 입사 후 직장 선배가 업무에 도움이 된다며 책을 추천해도 “한국 책 잉크에서 나오는 독소에 호흡이 곤란해지는 아나필락시스 쇼크(anaphylactic shock)를 앓고 있다”며 둘러 댈 수도 있습니다. 이 질병은 심할 경우 의식 저하와 사망까지 유발한다니, 악한이 아니라면 이해해줄 겁니다(책이 이렇게 위험할 수 있다니, 왠지 작가로서 반성하게 되네요).

 

하지만, 질문자님은 책이 아니라, ‘글만 읽으면 졸음에 빠진다’고 했습니다. 제가 문자에 과민하게 집착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작가는 조사 하나가 마음에 안 들어 단어와 씨름하며 인생을 보내는 족속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문자 그대로 반응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여, 혹시나 질문자님이 연애편지를 받자마자 애인 앞에서 코를 드르렁 골며 자버린 건 아닌지, 배낭여행 중에 길을 찾으려고 가이드 서적을 펼쳤다가 갑자기 쓰러져버린 건 아닌지, 줄을 서서 마침내 입장한 맛집에서 메뉴판을 보자마자 곯아떨어진 건 아닌지, 이러다 행여 나중에 결혼식장에서 서약문을 읽다가 그만 졸려서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하품을 하다가 결국은 쓰러져버리는 건 아닐지, 걱정에 걱정을 거듭했습니다. 이런 경우라면, 죄송하지만 저는 답변을 드리기 난처합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질문자님이 실은 ‘책을 읽을 때’ 졸린다 치더라도, 제가 묘수를 떠올리지 못했다는 겁니다. 그런데, 제 고민을 접한 아내가 “보세요! 제 학창 시절 비법이에요!” 하더니, 갑자기 액션배우 장 클로드 반담처럼 다리를 찢어 두 발을 벽면에 붙였습니다. 그러고선, “전 이 자세로 시험공부 했어요!”라고 했습니다.

이런 비법이라면, 물파스를 사용할 수도 있고, 빨래집게를 사용할 수도 있고, 작심하면 코털을 뽑아가며 독서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질문자님도 아시잖아요. 이건 미봉책일 뿐이라는 것을요. 실제로 제 아내도 학창 시절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면, 두 다리를 찢어서 발까지 벽에 붙인 채 누워서 아침을 맞이한 자기 모습을 발견하고 경악한 적도 많았다 합니다. 그 탓에 재수를 했다며, 회한에 젖기도 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드릴 말씀은 아주 원론적인 것입니다.

 

김이 샐지 모르겠지만, 책을 펼치기 전에 내 안에 존재하는 지적 호기심과 애정을 먼저 펼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원리에 대한 지적 열망, 이야기에 대한 애정, 문장이 풍기는 기품에 대한 관심이 찻주전자처럼 끓을 때, 졸음은 자연히 물러납니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가장 큰 차이점은 바로 ‘문자’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간은 ‘기록하는 동물’입니다.

문자가 발명된 이후, 인류의 거의 모든 애정과 증오, 눈물과 웃음, 깨달음과 실수의 역사가 기록돼 있습니다. 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갈 수 없고, 죽은 작가를 무덤에서 깨워서 대화할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대신 책을 펼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수백 년, 수천 년에 걸쳐 얻은 깨달음을 소파에 기댄 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이런 생각으로 책을 펼쳐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책을 펼치기 전에 먼저 펼쳐야 할 것은 우리의 호기심과 지적 열망입니다. 그럼, 즐거운 독서 하시길!

 

추신: 참고로, 제 책은 졸리지 않습니다. 일단, 『베를린 일기』부터….

 


<About Anything>은 이번 회를 마지막으로 물러납니다.

그간 ‘졸지 않고’ 읽어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806호 – about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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