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를 실감하시나요?
네, 완전! 밖에 나가면 정말 많은 분이 알아봐 주시니까 뭘 못 하겠어요. 그래도 할 건 다 하지만.
언프리티 랩스타 이전과 이후, 가장 달라진 점은 무엇인가요?
스케줄이 갑자기 많아져서 하루도 쉬는 날이 없어요. 몸은 힘들지만, 항상 바라왔던 거라 괜찮아요. 아, 몰래 촬영을 하시는 건 좀 부담스러워요. 사진 찍어 드릴 수 있으니까, 몰래 찍어서 올리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세 달을 달려오셨는데, 더 달리셔야겠네요?
워밍업이었죠. 이제부터가 시작이에요. TV로 치면 예고편!
예전엔 치타를 검색하면 동물이 나왔는데, 요즘엔 치타씨가 나와요. 왜 치타인가요?
별명이었어요. 전 소속사 사장님께서 장난처럼 부르시던 애칭이었는데, 이번에 <언프리티 랩스타> 나가고 나서 어느 팬 분이 “혹시 치타가 치명적인 타격의 줄임말인가요?” 하더라고요. 이미지도 맞고 잘 지었다고 생각해요. 주춤하다 보면 다시 검색에 동물 치타가 올라오겠죠. 열심히 해야지.
메이크업과 스타일링을 직접 하신다고 들었어요. 특별히 신경 쓰는 이유가 있나요?
제가 좋아서도 있지만, 공연 준비의 연장이에요. 제가 쓴 가사는 제가 제일 잘 알잖아요. 화려하고 멋지기만 한 게 아니라 표현하고자 하는 그대로를 전달하고 싶어요. 관객이 와! 할 수 있도록. 그래서 다 직접 해요. 제 나름의 콘셉트를 잡고, 표정이랑 눈빛도 연습하고 준비해요.
그 모습에 많은 사람이 반했어요. 치타 새끼가 되려면, ‘My type’의 가사처럼 하면 되나요?
래퍼는 자신의 얘기를 가사에 담아요. 첫 부분부터 “내 이상형은 나보다도 더한 새끼”라는 직설적인 표현으로 시작해요. 제 이상형이 딱 그거죠.
<Show me the money 시즌 1> 때와는 많이 달라졌어요. 외모도 그렇지만, 여유로운 모습 때문인지 분위기도 많이 달라요. 그간 어떻게 지내셨어요?
거의 3년인데 시간을 무시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전반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면서 성장했고, 가사에 깊이 있게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랩을 뱉는 것도 연습이지만, 가사를 쓰는 것도 크거든요. 많이 썼으니, 늘 수밖에 없어요. 안 늘면 안 해야죠.
인상 깊은 가사가 많은데요. 주로 어떻게 쓰세요?
전시회도 다니고, 영화도 보고, 책도 많이 봐요. 서점에 자주 가는데 책 제목만 봐도 크게 오는 책이 있어요. 특히 김훈 작가님의 『칼의 노래』는 정말 사랑하는 책이에요. 몇 번을 읽었는지 몰라요. 강한 문체도 좋고, 형용사가 엄청 화려하면서 차분한데 멋있더라고요. 날카롭기도 하고.
그렇게 쓴 가사가 반응이 좋으면 어때요?
언프리티 랩스타에서 정글, 덤불 할 때, 산이 오빠가 “그림이 그려졌어요.” 이런 피드백을 해주셨잖아요. 그런 반응을 보면 희열감이 쫙 밀려와요. 가사뿐만 아니라 그 느낌 전달도 잘한 게 되니까.
‘정글’은 힙합 씬을 의미하나요?
‘100km’라는 노래의 가사인데, “정글에서 꽃이 되길 거부했다. 맹수가 됐다.”라고 이야기해요. 정글은 먹고 먹히는 곳이지만, 누군가를 밟고 일어선다기보다 살려면 자기 것을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의미였어요. fair하게 말이죠. 예쁜 걸 할 수 있지만 나는 하지 않겠다. 남에게 보호받지 않고, 내 힘으로 너를 씹어 먹겠다는 걸 빗대서 이야기했어요. 이런 의미가 숨어 있는데 누가 캐치해주면 기분 좋아요.
지금 알려주고 싶은 가사가 있다면?
마지막 트랙에 쓴 가사인데요, “음악이 내 영순위 안식처이자 홈, 가드 올리고 바운스에 다 실어버려 혼”이라는 가사가 있어요. 지금의 제 마인드, 음악에 대한 생각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문장이에요.
래퍼 이전의 치타는 뭘 하고 있었나요?
사실 춤과 노래를 먼저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입학하자마자 부산에서 일산으로 올라왔죠. 음악하던 사람들과 함께 올라와 합숙하면서 연습했어요. 부모님께서는 저에 대한 믿음이 정말 강하세요. 그래서 나쁜 짓을 못해요.
고등학교를 자퇴하셨던데, 어린 나이에 어떻게 그런 결심을 했나요?
학교를 1학기 정도를 다녔는데 음악에 대한 열정이 넘치는 거예요. 학교에서 배운 걸 어디다 쓸지도 모르겠고, 그 시간에 음악을 더 하고 싶었어요. 엄마한테 전화해서, “엄마 나 학교를 그만둬야 할까봐.” 했더니, “음… 그래 생각은 니가 많이 했을 거고… 충분히 생각했니? 알았다. 엄마 올라갈게.” 하셨고, 바로 그만뒀어요.
그 이후 큰 사고가 있었죠? 당시 기억이 있나요?
2007년 18살 되자마자 1월이었는데, 횡단보도에 서 있던 것만 기억나요. 정신 차리니까 중환자실이었죠.
부모님께서 수술을 반대하셨다고 들었어요.
다 반대하셨어요. 목에 구멍을 뚫기 직전이었는데 반대, 다른 2차 수술을 하면 살 확률이 높아지는데 그것도 반대. 수술을 하면 100% 장애를 가져요. 그래서 결국 인공 뇌사를 선택하셨죠. 심장을 제외한 온몸을 마취시켜, 머리에서 피가 빠질 때까지 기다리는 거예요. 죽을 확률은 크고, 장애 없이 살 가능성은 아주 조금 있었어요.
어떻게 그 확률에 기대를 거셨을까요?
기대라기보다 부모님과 제가 많이 닮았다는 걸 아시는 거죠. 내 딸은 분명한 꿈이 있다. 노래를 하고 목을 쓰는 아이다. 깨어났을 때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걸 알면, 그냥 죽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할 거라고.
동의하세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근데 노래를 다시 하진 않으셨네요?
호스를 너무 오래 꽂고 있어서 처음엔 말도 못 했어요. 노래를 부르는데 고음으로 갈수록 머리가 너무 괴로운 거예요. 학교도 그만뒀는데, 내가 할 건 이것밖에 없는데…. 물론 살아서 감사하죠. 기적적으로 장애도 없었고. 근데 노래를 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랩을 시작하신 건가요?
처음에는 생각도 안 했는데 온갖 노력을 다해도 계속 부딪치더라고요. 그때 전 소속사 사장님께서 톤도 괜찮고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고, 랩을 해보는 건 어떻겠느냐고 제안해주셨어요. 처음엔 멋모르고 시작했어요.
잘 맞았나보네요?
정말 신의 한 수였어요.(웃음)
만약에 래퍼가 안됐다면?
그래도 이쪽에 있었을 것 같아요. 뷰티나 패션일 수도 있고, 혹시 모르죠 연기를 했을 수도. 레슨 받아봤는데 재밌더라고요. 저 연기도 잘해요.
대중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치길 바라세요?
지금 알아주시는 그대로도 좋아요. 랩은 나름대로 인정받았고, 화장이나 패션 쪽으로도 관심을 주시고, 성격이나 인성에 대해 크게 나무라는 사람도 없어요. 저의 많은 모습 중에서 극히 일부분이겠지만 만족해요. 그게 제 모습이기도 하고요. 더 조심해야 하고 부담도 되지만, 정말 기분이 좋아요. 감사하죠.
그렇다면 어떤 래퍼가 되고 싶으세요?
아직은 잘 모르겠는데 캐릭터가 독보적이었으면 좋겠어요. 도시의 랜드마크처럼. 이야 치타네, 이거 치타 목소리네, 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꿈의 무대가 있나요?
슈퍼볼 무대가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지만, 그보다는 오프라 윈프리 쇼나 엘런 쇼 같은 세계적인 토크쇼 무대에 서고 싶어요. 이야기하다가 밴드랑 공연하고. 아, 생각만 해도 좋다.
앨범으로는 언제 만날 수 있나요?
오월 말쯤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제 생일에 맞추려고 생각 중이에요.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확고하게 원하는 게 있다면, 도전하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버리는 걸 너무 아까워하지 말고요. 하나를 잡으려면 하나는 놔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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