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군대에서 알았다.

 

학창 시절엔 누구를 좋아한다는 느낌이 뭔지 몰랐다. 여자친구를 사귀라는 친구들 말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무성애자일 수도 있겠다, 싶었을 뿐이다.

 

그러나 단서들은 명확했다. 잘생긴 남자를 보면 기분이 좋았다. 야동을 보더라도 남녀 말고 남남 커플 것을 봤다. 학교에선 여자 같다는 놀림을 많이 받았다. 물론 게이들이 모두 여성스러운 것은 절대로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게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꾹꾹 눌러 외면했던 것 같다. 두려웠다. 인정하면 귀찮아질 테고, 마이너리티로 들어가는 거니까. 그래서 커밍아웃을 하기 전의 시간들은 뿌연 안개처럼 남아 있다. 내가 누구인지를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던 시간들.

 

 

그리고 대학에 들어왔다. 새내기들은 장기자랑을 했다. 여장대회를 할 땐 무조건 피해 있었다. 선배들은 군기를 잡았다. 남자 선배들은 남자 새내기들을 앉혀놓고 물었다. “자, 지구가 멸망했어. 우주선 한 대가 남았는데 이걸 타고 탈출해야 돼. 한 자리는 네가 타고, 남은 한 자리는 우리과 여자애를 태워야 돼. 누굴 태울래?” 무조건 태워야 했다. “없다”고 말했더니 순식간에 공포 분위기로 바뀌었다. 착한 역할을 하는 선배들은 “그냥 아무나 대~”라고 말했다. 대답할 말이 정말 없었다. 분위기를 깰 수 없어서 그냥 친한 여사친의 이름을 얘기했다.

이후에도 그렇게 살았다. 학교생활도 열심히, 공부도 열심히, 게임도 열심히. 딱히 괴롭진 않지만 어딘가 답답한 채로. 그러다가 군대에서 정체성을 깨달았다. 첫사랑을 만났기 때문이다. 그는 군대 후임이었다.


너무 가까운 우정은 사랑이었음을

입대한 지 한 달째, 후임 A가 들어왔다. 내가 한 달 선임이었지만 의지할 데가 없긴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잘 통해서 금방 친해졌다. 부대에는 2층 침대가 여러 개 있었다. 밤에는 친한 사람들끼리 침대에 모여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나도 A의 침대에 가서 얘기하고, A도 내 침대에 와서 얘기했다. 처음에는 가족 얘기 같은 것을 하면서 수다를 떨었다.

 

A는 마초 같았지만, 약한 모습을 숨기려 애쓰는 여린 모습이 있었다. 어쩌면 사람들은 완벽한 모습이 아닌 약한 모습에 끌리는 것 같다. 얘기하고 달래주다가 그 사람 생각을 계속 하게 된다. 친한 선 후임 관계라고만 생각했다. 좋아한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 결국은 내 감정을 몰랐기 때문에 통제가 안 되어버렸다.

 

A가 다리를 다쳐서 군 병원에 입원했다. 나는 휴가 때마다 병문안을 갔다. 그가 다른 부대로 차출될 수도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 말에 펑펑 울고 말았다. 왜 울었을까? 그때까지도 꾹꾹 눌러놓고 있었다. 내 행동은 확실했지만 그때까지도 몰랐다.

 

어느 날 A가 여자를 소개시켜달라고 했다. 한 번도 여자친구를 사귄 적이 없었다면서. 나는 오랜 친구를 소개시켜줬다. 그리고 두 사람은 사귀게 됐다. 잘됐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친한 친구의 포지션으로 조금씩 선을 넘었다. 늘 A를 기다렸고 A와 함께 다녔다. 부대 사람들도 우리에게 사귀냐며 놀리기 시작했다. 같이 놀고 삐 지고 싸우다가 화해하는 일을 되풀이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말해버렸다. 좋아하는 것 같아. 불편한 감정이 쌓여갔다.

두 달 뒤 A는 절교를 선언했다. 나는 화가 났다. 내 친구가 네 여자친구인데 계속 만날 수 있겠어? 너희들 못 만나게 할 거야! 눈에 뵈는 게 없었다. 나중에 A는 펑펑 울고 있었고, 나도 그날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부대 전체가 이 사실을 알게 됐다. 선임이 내게 상담을 권했다. 바로 다음 날 부대에서 상담을 받았다. 상담관이 말했다. “친구가 아니라 연인 같은데.” 그리고 깨달았다. 내가 게이라는 사실을.


 

가끔 미치도록 어이가 없을 때가 있어

온 부대원이 알 정도로 요란한 커밍아웃 뒤에 날 찾아온 사람이 있었다. 같은 부대 후임이었다. 스스럼없이 “얼마 전에 남자친구랑 헤어졌어요”라고 하더라. 그렇게 동료가 생겼다. 복학한 뒤엔 학교 성소수자 동아리에 들어갔다. ‘눈을 떴다’는 개운함이 들었다.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났고 배워나갔다.

사실 친구에서 연인이 되는 것은 성소수자에겐 판타지에 가깝다. 커뮤니티나 앱에서 연인을 만나는 법을 배웠다. 학교 모임, 인터넷 모임, 직장인 모임, 수영 같은 운동 모임 등. 연애 서사는 다 비슷하다. 사귀고 헤어지고 또 다른 사람과 사귀고….

 

대놓고 혐오 표현을 하는 사람들은 없다. 대신에 주변에서 무심결에 하는 말이 들려온다. 예를 들어 식당 옆 테이블에서 “연예인 걔 봤어? 게이 같지 않아?”라든가, 혹은 학교 팀플에서 “그 조교님, 게이라던데요”라고 하거나. 그럴 땐 “잘생긴 사람 중에 게이가 많대요~”라고 조용히 모른 척 넘긴다. 페이스북 대나무숲에 소수자 혐오 글이 올라오면 당연히 마음이 안 좋다.

 

「대학내일」에서 처음 내게 인터뷰를 요청했을 땐, 성소수자들이 대학 친구 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을 물었다. 학교생활에 어려움은 없느냐고, 친한 친구들에게 내 정체성을 솔직히 털어놓지 못해 답답하진 않았느냐고. 실제로 힘든 사람들이 많다. 특히 학풍이 보수적이거나 종교 학교에선, 성소수자가 퇴학당할 수도 있다. 이런 곳에서 학생들이 모여 “동성애자는 돌로 쳐야 한다”고 말한다면, “맞아, 맞아”라고 끄덕여야 학교생활을 제대로 할 수 있다. 지지를 받을 곳이 없다. 자존감은 바닥까지 떨어진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어떻게 제대로 살 수 있을까.

그래서 많이들 아프다. 약을 많이 먹는다. 성소수자 동아리에서 자주 나오는 얘기다. “나 요즘 약 먹는다”거나 “상담 받는다”고. 어제도 한 친구가 자살을 시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는 여전히 살아간다.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따뜻한 지지와 사랑을 원하면서, 행복과 불행을 골고루 느끼면서. 게이로 살아가는 것은 생각만큼 불행하지 않다.

얼마 전 여리여리하고 예쁘장한 게이인 내 친구가 프랑스의 한 클럽에 갔다. 어느 프랑스 남자가 내 친구에게 꽂혔다더라. 그런데 친구는 엄청 중요한 얘기를 빠뜨렸다. 자기가 남자라는 사실을 말이다. 그래서 고민 끝에 털어놨더니 프랑스 남자 왈, “나 남자랑은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어떻게 하는지 가르쳐주지 않을래?” 이게 웬 판타지람. 내가 생각하는 자유는, 이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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