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대학내일」이 남녀 대학생 35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59%는 질외사정을 해본 적이 있다고 답했다.

주변에 물어봐도 질외사정은 드문 일이 아니다.

그 중 남자들에게 ‘왜 그랬냐’고 물으면 저마다 이유가 있다.

조목조목 틀린 이유가.


 

 

가장 흔히들 하는 말이다. 잠금 버튼 누르듯, 수도꼭지 잠그듯 쉽게 얘기한다. 넘치는 자신감과는 달리 2014년의 「대학내일」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10%가 질외사정을 시도하다가 타이밍을 놓친 적이 있다고 답했다. 타이밍을 맞췄다고 100% 피임이 되는 것도 아니다. 정액이 지나가기 전에 요도를 청소하기 위해 나오는 쿠퍼액에도 임신 가능한 정자가 일부 섞여 있다. 쿠퍼액에는 정자가 거의 없으니 괜찮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인간의 몸은 기계와 다르다. 사정 직전까진 쿠퍼액, 사정 직후에는 정액, 이런 식으로 무 자르듯 나눌 수 없다. 극소량의 정자라도 쿠퍼액에 섞여 나오기 마련이다. 하룻밤에 두세번씩 섹스를 할 경우엔 특히 더 위험하다. 이전 섹스 때 요도에 남아 있던 정자가 흘러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냥 하면 안 돼? 오늘 안 위험한 날이잖아.” 이 생각부터가 이미 위험하다. 질외사정이 피임법이 아니듯, 주기법(생리 주기로 가임기를 계산하는 방법) 또한 피임법이 될 수 없다. 이유는 가임기에서 완전히 ‘안전한 날’이 있다고 보기 힘들기 때문. 생리 주기를 관찰하면 가임기와 비교적 안전한 날을 계산할 수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날은 한 달에 며칠 되지 않는 데다가, 정자가 몸속에서 5일가량 살아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더 줄어든다. 그나마도 여성의 생리 주기가 칼같이 규칙적일 때의 얘기. 게다가 많은 사람들이 안전하다고 믿는 생리 기간에도 확률적으로는 임신이 가능하다. 그러니 임신을 원하지 않는다면 ‘안전한 날’이라는 건 그냥 머릿속에서 지우길.

 

 

남자든 여자든 질외사정을 선호하는 이유로 ‘느낌’을 꼽는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성병의 위험을 간과한다. 25세까지의 사람들을 대상으로 조사했을 때 절반 정도가 크고 작은 성병을 겪은 적이 있다고 한다. 콘돔은 임신을 막는 것뿐 아니라 에이즈, 자궁 경부암, 임질 등 다양한 성병을 예방하는 역할도 해낸다. 그래서 동성 간의 섹스에서도 콘돔은 유용하게 쓰인다.

 

두 사람이 정 콘돔 없는 섹스를 원한다면 합의하에 정기적으로 성병 검사를 받으면 된다. 성감은 포기하기 싫고 성병 검사가 번거롭게 느껴진다면, 콘돔을 끼고 윤활액을 사용할 수도 있다. 미국의 한 연구에 따르면 콘돔과 윤활액을 같이 쓰는 경우가 콘돔만 끼는 경우보다 오르가즘 정도가 더 높게 나타났다고 한다.

 

 

여성 파트너가 경구피임약을 먹고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이렇게 말하며 콘돔을 끼지 않으려는 남자들이 있다. 분명히 전달하자. 피임약을 먹는 이유는 너의 성적 쾌감을 위해서가 아니라, 내 몸을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이라고(경구피임약은 피임 목적 외에도, 시험이나 여행 전 생리를 미루거나 심한 생리통을 개선하기 위해 복용하기도 한다).

 

모르는 이를 위해 설명하자면, 경구피임약을 올바르게 복용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21일간 매일 같은 시간에 먹고, 7일간 휴약기를 가져야 한다. 불규칙하게 복용하거나 중간에 약을 건너뛰는 경우 피임 효과가 떨어지고 생리 주기도 달라지므로 주의가 필요하다. 호르몬 제제이기 때문에 복용하는 사람에 따라 울렁거림, 피부 트러블, 부종 등의 부작용을 경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니 자기 몸을 위한 여성의 선택에 관여 말고, 여성 파트너의 원칙이 ‘노 콘돔, 노 섹스’ 라면 그 원칙을 지키는 게 기본이다.

 

 

몇 년 전까지 다양한 장르의 청춘물에서 비슷비슷하게 반복되던 클리셰 중 하나. 젊은 나이의 남녀가 사랑에 빠지고, 며칠 뒤 여자가 임신했음을 알게 된다. 남자는 하룻밤을 꼬박 고민하더니 비장한 표정으로 여자의 손을 잡으며 이야기한다. “내가 책임질게!” 여자는 남자의 품에 안겨 감동의 눈물을 흘리고, 아련한 BGM이 깔린다.

 

뭘 책임지겠다는 건지 도무지 알 수 없다. 혹시, 여자랑 결혼하겠다는 건가? 왜 당연히 너와 결혼할 거라고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여성이 섹스를 하고 임신을 하면 당연히 아이를 낳고 아이 아빠와 결혼하는 것이 정상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힌 발상이다. 혹시, 아이를 책임지겠다는 건가? 네가 무엇으로 육아를 책임질 수 있다고 자신하는지 모르겠다.

 

20대 초중반이라면 돈도 없을 테지만, 아이 밥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것까지 모두 다 너의 몫이다. 대부분은 이런 것까지 생각해보지 않고 순간을 모면하기 위해 둘러댄다. 그건 ‘책임지겠다’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다.

 

그럼 혹시, 임신 중단 수술에 대한 책임을 끝까지 다하겠다는 건가? 어이없게도 이 나라에서는 남자가 책임지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현행법상 낙태는 불법이고, 신고할 경우 낙태를 한 여성과 시술한 의사만이 처벌을 받는다. 최근엔 친고죄가 아니라 누구든 신고할 수 있다는 점을 악용해 한 남자가 전 여친을 낙태죄로 고발하기도 했다. 저출산 대책이랍시고 ‘불법 낙태 단속’을 얘기하는 게 한국 정부다. 그것도 모자라 ‘대한민국 출산 지도’를 배포하고, 고소득·고학력 여성들의 하향결혼을 유도하겠단다.

 

여전히 여성이 ‘출산 도구’로 여겨지는 이곳에서 ‘책임지겠다’는 말은 애초에 틀렸다. 당신이 책임질 건 간단하다. 피임에 대한 최소한의 상식과 상대방의 의사에 대한 존중이다.

 


분명한 것은, 질외사정은 두 사람이 믿고 쓰는 ‘피임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둘 다 원해서 합의했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함께 짊어질 준비가 됐다면 제3자가 이래라저래라 할 권리는 없다. 다만 섹스 때마다 불안을 느끼면서도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아서, 콘돔 얘기를 꺼내기가 민망해서, 혹은 잘 몰라서 질외사정을 하고 있다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섹스의 분위기는 둘이 같이 만드는 것이다.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피임법을 주장하고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섹스하지 않을 권리가 있다. 피임법에 대해 정확히 알수록 본인에게 이롭다.

 

사실 중요한 질문은 ‘왜 질외사정을 하는가?’가 아니다. ‘질외사정으로 안전하고 즐거운 섹스가 가능한가?’다. 질외사정은 임신의 리스크가 크고 무엇보다 성병을 차단할 수 없다. 콘돔은 성병 차단과 피임을 동시에 할 수 있는 도구다.


[809호 – issu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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