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밤이었다. 매운 게 당겨 주문한 떡볶이는 배달이 밀렸다며 한 시간 반이 넘어서야 도착했다. 콧노래를 부르며 떡볶이와 주먹밥을 세팅하고, 보던 영화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10분이나 지났을까. 딩동! 모바일 메신저에 낯선 이름이 떴다. “저기요.” 뭐지? 대답이 없자 한참 뜸들이던 상대가 덧붙였다. “저 아까 배달 갔던 사람인데요. 나이가 어떻게 되요?ㅎㅎ” 순간 핸드폰을 잡고 있던 손과 사고회로가 동시에 얼어붙었다. 묻는 그와 달리 난 웃음이 나지 않았다.

 

 

순식간에 여러가지 시나리오가 떠올랐다. 가장 내 마음과 같은 버전은 이렇다.

1. 답장을 쓴다. “네가 내 나이 알아서 뭐하게요. 다신 문자 하지 마라.”

2. 차단한다.

결론은? 열 받은 그가 날 패기 위해 우리 집 앞으로 온다.

 

다음 버전은 좀 더 간접적이다.

1. 떡볶이 집에 전화를 건다.

2. 당신의 직원이 저를 불편하게 했다고 말한다.

3. 사장님이 내게 사과를 한다.

4. 사장님이 그에게 불같이 화를 내며 해고한다.

결론은? 직장을 잃은 그가 분노에 사로잡혀 우리 집 문을 두드린다.

 

몇 번의 시나리오를 더 시뮬레이션 해본 후 깨달았다. 나의 불쾌감을 해소하는 것보다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쪽이 내 신상에 더 이롭다. 만약 내가 첫번째 버전으로 행동해서 변을 당한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러니까 왜 답장을 보냈대? 가만히 있지, 위험하게!” “미친놈을 뭐하러 자극해?” 심지어 우리 엄마도 “그러니까 배달 음식을 시켜 먹으면 어떻게 하냐”고 나를 혼냈다.

 

 

마치 <동물의 왕국> 속 초식동물이 된 기분이다. 숨어 있던 맹수가 튀어나와 목덜미를 물면 속절없이 먹이가 돼야 하고, 다치지 않으려면 눈에 띄지 않는 곳에 처박혀 있어야 하는. 사람들은 환한 대낮에는 점잖게 문명화된 척 굴면서 어두운 골목, 인터넷, 술자리에서는 동물들의 논리를 가감없이 받아들이고 재생산한다.

 

하지만 초식동물도 욕구는 똑같다. 아무 걱정 없이 떡볶이, 치킨, 탕수육을 시켜 먹고 싶고, 야근한 날 어두운 골목길을 천천히 걸어 가고 싶다. 볕 좋은 날엔 바깥에 속옷을 널어 뽀송뽀송 말리고,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은 채 창문을 활짝 열 수 있는 오후를 꿈꾼다.

무엇보다 내가 홀로 살고 있다는 사실이 공격의 빌미가 되지 않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이미 세상의 반은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누군가에겐 자연스러운 일상이 다른 한쪽에겐 조심의 대상이 돼야 한다는 거. 정말 타당한 일일까? 약하니까, 여자니까 응당 감내해야 하는?

 

 

그렇다면 지금이라도 무기를 장착해야 할 것이다. 위급 버튼을 누르면 독성 물질이 나와서 이틀 동안 눈을 뜰 수 없는 스프레이, 지방질 따위 간단하게 썰어버리는 핵 장미칼, 라이츄보다 더 찌릿해서 저승 고개 한 번에 넘을 수 있는 전기 충격기 등등. 개인적으로는 현관문에 달린 렌즈 앞에 이런 기능이 생기면 좋겠다. 낯선 홍채가 음험한 눈으로 집 안을 5초 이상 스캔하면 피눈물 고인 눈동자가 자동으로 확! 등장하는. 간 떨어져서 다신 못 일어나게.

 

왜? 너무한가? 맹수들의 수법은 날로 잔인하고 고도화되는데 초식동물들의 무기는 너무 보잘 것 없으니 형평성을 맞춰야지.


[810호 – 독립일기]

Illustrator 남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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