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점 하나 내 것이었으면….” 예쁜 카페나 편집 숍을 만나고 한번쯤 꿔봤을 꿈. 다이아몬드 수저가 아니면 영영 꿈으로만 남을 일, 혹은 아주 먼 훗날에나 가능한 일이라고 여겼겠지. 그렇지 않다는 증거가 여기에 있다.

 

똑같은 붉은 벽돌 주택들이 다닥다닥 줄지어 있는 연희동. 굳이 찾지 않으면 알아차리기도 쉽지 않은 곳에 자리한 빈티지 상점 오데옹이다. 황동 촛대, 유리병, 타일, 린넨들… 예쁘고 비싸 보이는 빈티지 제품들로 빼곡하지만, 이곳을 만든 것은 특별한 능력이나 대단한 저축이 아니다.

 

“생활이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하고 싶은 일과 깊이 빠져들어 좋아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어요” 순도 99%의 취미로 오데옹을 열었다는 정세희 대표에게, 좋아하는 공간에서 좋아하는 것들에만 둘러싸여 일하는 먹고사니즘에 대해 물었다.


오데옹 상점 정세희 대표

 

 

EDITOR :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봅니다. 이런 상점, 누구라도 가질 수 있습니까?

 

정세희 : (약간 당황) 음… 물건을 고르고 배치하는 감각만 있다면요? 어려워 보이지만 감각도 꾸준히 연습하면 좋아집니다.

 

E : 감각을 연습할 수 있다고요? 학원이라도 끊어야 하나요.

 

: (단호하게) 학원은 도움이 안 됩니다. 저는 무의식중에 따라하게 될까봐 잡지도 안 봐요. 이태원 빈티지 거리도 안 가봤어요. 똑같이 하려고 컨트롤 C, 컨트롤 V 하면 거기까지가 한계거든요.

대신 좋아하는 걸 꾸준히 파죠. 제 경우는 여행, 영화, 노래였고요. 혼자여행 가서 거리를 걷고, 영화 보고, 잔디에 누워서 음악 듣고. 그러면서 비슷한 느낌의 빈티지 소품들을 상상하는 거예요.

 

E : 뭔가 오덕후 느낌? 알고 들어서 그런지 플레이 중인 BGM조차 이국적인데요.

 

: 맞아요, 오덕후처럼!(웃음) 상점의 분위기를 자주 바꾸는데, BGM도 분위기에 맞춰 선곡하는 편이에요. 얼마 전 체코를 다녀오고 나서는 나서 영화 <대니쉬 걸> OST를 계속 틀고 있어요.

 

E : <대니쉬 걸>은 덴마크가 배경인데, 이상하게 체코와도 어울리네요. 유럽 스웩끼리는 통하나 봅니다.

 

: 스웩은 잘 모르겠지만(웃음) 제가 느낀 체코는 아름답지만 슬픈 느낌이 드는 나라였거든요. (벽에 걸린 수채화를 가리키며) 여행 하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직접 그리기도 했고요. 주변을 잘 보시면 체코에서 가져온 소품들도 숨어 있어요.

 

E : 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여행에서 받는 영감?

 

: 영감이라고 하니까 거창하지만, 맞아요. 오데옹 자체가 여행 때문에 생겨나기도 했고요. 파리에 처음 갔을 때 오데옹 거리에서 묵었거든요. 충격적으로 좋았죠. 파리의 오래된 건물이나 거리의 분위기를 좋아하거든요. 어둡고, 스산하고, 그로테스크한 게 취향이라서.(웃음) 돌아와서 지명인 ODEON에 읽기 편하게 뒤에 G를 붙여 브랜드를 만들었어요. 거리를 직접 촬영한 포스터와 엽서가 오데옹의 첫 제품이었고요.

 

01 이번 분기 오데옹의 테마는 체코. 정세희 대표가 직접 그린 체코의 풍경이 포인트.

 

E : 직접 촬영하셨다니. 뭔가 들을수록 자신감이 사라지는데요.

 

: 오픈 초에는 가져오는 물품보다 직접 디자인하고 만든 물품의 비중이 높았어요. 앞치마, 담요, 양초 전부 취미로 만들기 시작했던 것들이에요.

 

E : 혹시 전공이 특별했던 건 아니에요? 미학이라거나, 디자인이라거나.

 

: 입시 때도 미술학원은 다닌 적이 없고, 대학에서 직물을 전공하기는 했지만, 오데옹을 만들 때 학교에서 배웠던 것이 도움이 됐던 건… 1도 없는 것 같습니다.(웃음) 굳이 꼽자면 좋은 천을 알아보는 눈?

 

E : 눈 하니까 이런 소품들을 매의 눈으로 어떻게 찾아내는지도 궁금한데요.

 

: 국내에서는 거의 구매를 안 해요. 말씀드렸다시피 오데옹은 제 오덕질의 결정판이라, ‘해외직구’ 해오던 빈티지 판매자들이 있거든요. 최근에는 직접 현지 마켓에 가서 판매자 분들에게 보부상처럼 구입해 오기도 하고요.(웃음)

기준은 명확합니다. 제가 갖고 싶은 물건만 사요. ‘안 팔리면 내 것’이라는 바람직한 마음가짐이죠.

 

E : 취미 생활의 확장판이군요! 그런데 보통 취미를 일로 하지 말라는 말 많이 하잖아요.

 

: 분명 좋아하는 것에 둘러싸여 일하는 건 행복하지만, 그만큼 무언가 뺏긴 느낌도 들어요. 여행 겸 출장으로 체코에 간 건데 거의 즐기지는 못했어요. 자기 직전까지 일 생각만 하게 되더라고요. 좋아하는 일로 사랑까지 받으려면 완전히 몰두해야 하니까요. 오데옹 오픈 후에는 남자친구와도 한두 달에 한 번 씩 만나요.

 

E : 일 년에 6번 만나는 거예요?! 연애… 괜찮아요?

 

: 다행히 응원해주는 친구라.(웃음) 평소에도 영업 시간은 짧지만 계속해서 일의 연장이에요. 오후 3시쯤 문을 열고, 저녁 7~8시 쯤 닫거든요. 주말에도 어떤 물건을 가져오고, 어떻게 배치할지 고민해야 하니 쉴 수 없죠.

 

02 황동 촛대와 문고리, 유리병 각각의 색감까지 매일 신경 쓰지.

 

E : (부러움에 말을 잇지 못하다) 그래도 출퇴근 시간 너무 소중하네요. 다음 여행지, 아니 출장지는 어디예요?

 

: 5월쯤 다시 파리 가려고요! 워낙 빈티지 시장이 잘되어 있거든요. 아, 빈티지를 좋아하고 유럽 배낭여행까지 계획 중이라면, 방 브(Vanves) 플리마켓은 꼭 들러보시면 좋겠어요.

 

E : 아무래도 빈티지 제품은 대부분 물 건너오니 비싸지는 거겠죠?

 

: 보통은 원가에 몇 % 붙여 판매해서 그럴 거예요. 근데 저는 ‘나라면 이 정도 가격이면 구매하겠다’를 적정선으로 하고 있어요. 어떤 제품은 적자를 내면서 판매하는 것도 있죠.(웃음)

 

E : 사업…괜찮아요?

 

: 처음 오픈 했을 때는 완전히 적자였어요. 거의 5개월 정도? 그런데 의외로 스트레스는 받지 않았어요. 유명인도 아니고, 본래 잘 알려진 공간도 아닌데 처음부터 잘 되면 이상하죠. 요즘은 회사 다닐 때보다 수입이 좋아요. 하지만 물건을 가져올 때는 큰돈이 확 나갔다가, 판매를 하면 또 돈이 들어왔다가 하는 식이라 좀 더 두고 봐야 할 것 같아요. 아직 오데옹을 찾아주기 시작하신지 2~3개월밖에 안 됐거든요.

 

E : ‘망할 수도 있겠다’라는 두려움은 없었나요?

 

: 특이한 건가? 애초에 저는 ‘오픈해서 성공하고 떼돈 벌어야겠다’는 생각 자체를 안 했어요. 잘 안 되면 회사 계속 다니면서 월세 내지 뭐 그랬죠. 단지 공방처럼 제가 좋아하는 것들로만 채워진 제 공간을 갖고 싶었어요.

그래서 처음부터 너무 많은 투자는 좋지 않은 것 같아요. 초기 비용 액수가 너무 커지면, 그만큼 두려워지니까.

 

03 화보 촬영에도 종종 협찬되는 소품들. 유럽 영화 스틸컷이라해도 믿겠지?

.

E : 본인이 준비한 총알을 우리에게만 살짝 공유해준다면?

 

: 이거 다 말해도 괜찮나? 한 2000만원 정도였어요.

 

E : 그게 가능해요? 인테리어 하면 끝나는 돈 아닙니까? 혹시 막 집에 있는 수저가 다 금이라거나, 퍼내도 마르지 않는 엄카 찬스가 있었다거나….

 

: 전혀 아니죠! 오히려 부족할 때 제대로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언제든 하고 싶은 대로 가게를 낼 수 있다면 지금과 마음가짐 자체가 달랐겠죠.

 

E : 그럼 오데옹을 가능케 한 일등공신은?

 

: 우선 좋은 자리를 특가에 구했고….

 

E : 얼마나 특가였기에!

 

: 정확한 가격은 말씀 못 드리지만, 어마무시한 액수는 아니었어요. 오데옹 홈페이지를 오픈하고 부동산 어플을 둘러보는데 학생이라도 충분히 도전해봄직한 액수가 보였죠. 그날 바로 계약 했어요. 꿈결인가 했어요. 물론 저렴한 데는 이유가 있었지만요.

 

E : 대수술이 필요한 상황이었나요?

 

: 심각했어요. 곰팡이 핀 벽에, 겹겹이 썩은 장판에. 인테리어에 가구까지 전부 셀프로 했거든요. 일일이 뜯어내고 미장에 페인트 칠도 직접 했어요. 동생, 엄마, 아빠, 저, 이모부까지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은 다 동원했죠. 안 그랬으면 인건비만 500만원 이상 나왔을걸요? 아, 그런 점에서 다양한 회사를 다녀본 게 도움이 됐네요.

 

E : 대체 어떤 회사를 다니셨던 거예요.

 

: 브랜드 기획, 인테리어 등등 굉장히 다양한 회사에 다녔어요. 돈을 잘 줄 것 같아서 여러 번 옮긴 게 아니라,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그랬죠. 패션 MD를 꿈꾸던 스무 살 때 의상 디자인 회사 인턴으로 들어간 게 시작이었어요.

옷도 만들고싶고, DP도 하고 싶고, 인테리어도 하고 싶고 그러니 직업으로 경험해보자 한 거죠. 재밌어서 하지 않아도 되는 부분까지 하겠다고 했었죠. 날을 새고, 집에 못 가도 좋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상점을 혼자 운영할 때 필요한 세세한 정보들을 쉽게 접하게 됐어요.

 

E : 독특한 운영 철학 때문인지, 오데옹이 더 이상 유명해지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많아요. 덕후의 입장에서는 찬성이지만, 사업주의 입장에서는 어떤가요?

 

: 공감해요. 처음에는 판매도 영 어색하고, 개인적인 공간에 손님이 오는 것 같아 낯설었어요. 하도 떨려서 많이 안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때도 있었을 정도죠.(웃음) 그런데 아무래도 찾아오시는 분들은 저와 취향도 비슷하고, 공감대가 있으니 쉽게 대화하게 되더라고요.

 

04 인기몰이 중인 데미안 책갈피. 문학과 영화에서 이름을 딴 다양한 소품들.

 

E : 어떤 분들이 주로 오시나요?

 

: 근처에 학교가 많으니까, 대학생들이 자주 와요. 아, 그 친구들 한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요. 하고 싶은 게 뭔지 물어보면 뭘 할지 모르겠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제 생각에는 세상에 어떤 직업이 있는지를 몰라서 딱 맞는 일을 고르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TV가 도움이 됐어요. 어려서부터 즐겨 보던 <다큐 3일>이나 <생방송 투데이> 덕분에 하고 싶은 게 많아졌거든요.

 

E : 역시 저는 TV가 바보상자라는 말 안 믿었어요.

 

: 영화나 책도 마찬가지예요! 세상에 무슨 직업이 있는지 일일이 찾아다니며 확인할 수는 없잖아요. 많이 보고 느껴야 여러 가지 선택지를 고민할 수 있는 것 같아요.

 

E : 오데옹 같은 나만의 상점을 선택한 학생들에게 조언한다면요?

 

: 요즘은 정말 특별한 상점들이 넘쳐나죠. 그래서 자신만의 철학과 열정이 중요한 것 같아요. 누군가를 쫓아가기 보다, 세상에 나가 상처도 입고, 영화도 보고, 여행도 다니며 내공을 키우세요! 그래야 오데옹 같은 상점이 아닌 나만의 상점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오덕후 지수 ★★★★★

오덕후의 무한한 상상력이 감각을 만든다. 좋아하는 것에 집중하면 나만의 상점은 더 이상 꿈이 아닐지도.

 

쇼퍼홀릭 지수 ★★★★

고기도 먹어본 사람이 먹는 법. 아이 쇼핑이라도 해서 쇼핑하는 안목을 기르자. 며칠씩 해외 플리 마켓을 누빌 수 있는 체력은 쇼핑의 기본.

 

잡지식 지수 ★★★★

실제로 경험을 하든, TV나 블로그로 연구를 하든 다양한 분야에 대한 지식은 창업에 도움이 된다.

 

연애와 일의 균형 지수  ★★

내 마음대로 문을 열고 닫을 수 있을 것 같지만, 여가시간은 별로 없다. 쉴 때조차 일이 끊이지 않지. 묵묵히 기다려줄 수 있는 천년의 사랑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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