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 연재했던 웹툰 <치즈인더트랩>(이하 치인트)이 완결됐다. 마지막 에피소드는 주인공 홍설이 자신의 대학생활을 회상하는 장면으로 연출 돼 있다.

 

누구보다 치열했고, 때때로 엿 같기도 했지만, 그래도 행복했던 날들. 순간 나의 대학생활과 웹툰이 오버랩되면서 울컥하고 말았다. 인생의 한 시절이 끝나버린 기분이었다. 유정선배를 보면서 캠퍼스 로망을 키웠고, 김상철을 비롯한 민폐 캐릭터에 함께 분노했었는데…

 

 

헛헛한 마음이 쉬 가라앉지 않아서, 오랜만에 <치인트>를 정주행해봤다. 그리고 베스트 에피소드 7가지를 내 맘대로 뽑아 봤다. 아직 유정선배를 보낼 준비가 안 된 동지들에게 이 글을 전한다.

 


1. 유정, 홍설 첫 만남 (1부 7화~9화)
Feat. 전설의 서류 사건

두 주인공의 캐릭터가 확실히 드러나는 대표적인 에피소드. 모두에게 좋은 평판을 듣는 천사표 유정은 사실 속으로 사람을 가리고, 자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은근히 무시하는 이중적인 성격의 소유자다. 한편 홍설은 타인과의 관계에 극도로 예민한 유형의 사람. 홍설이 유정을 관찰하고 그의 음흉함(?)을 알아채는 과정에서 둘은 서로에게 불쾌함을 느낀다.

 

여기서 그 유명한 ‘서류 사건’이 터진다. 홍설이 떨어뜨린 서류를 유정이 발로 차면서 “조심하라”고 경고한 것. 많은 독자들이 <치즈인더트랩>을 스릴러물(?)로 오해하게 만든 장면이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은근히 갈등하던 두 사람은 서로를 본격(?) 미워하게 된다.

 

공감 포인트
남들보다 곱절로 예민한 사람이라면 격하게 공감했을 에피소드다. 필연적으로 여러 사람을 만날 수밖에 없는 대학생활에서,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드는 사람의 심리를 섬세하게 묘사했다. 자신에게 조금이라도 좋지 않은 감정을 품은 사람을 귀신같이 캐치해내고 잠도 못 잘 정도로 신경 쓰고.으…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지끈하다.

 


2. 조별과제 에피소드 (1부 45~2부 1화)
Feat. 김상철, 손민수, 이다영. 발암 삼총사의 무임승차 공격

 

<치인트>가 대중적으로 주목받는데 일등 공신을 뽑는다면, 아무래도 조별과제 에피소드가 아닐까. 조원 간 협동이 중요한 조직행동론 과제에서, 홍설은 최악의 조합으로 조 배정을 받는다. 취업준비 한답시고 아무것도 안 하는 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4학년 선배(=김상철), 의욕은 있으나 자료 찾아오라고 하면 나무위키 긁어오는 무능한 동기(=손민수), 자기 과제만 열심히 하는 얄미운 언니(=이다영).

 

공부도 잘하고 성적에 욕심도 있는 우리의 주인공은 그렇게 독박을 쓰게 된다. 문제는 조원 간의 협동을 중요시한 교수님이 혼자 과제를 다 한 홍설에게 D학점을 줬다는 거다. 무임승차자 때문에 학점도 망치고, 전액 장학금도 놓쳐 휴학 위기에 놓인 홍설은 결국 크게 폭발한다.

 

이 에피소드를 눈 여겨 봐야 할 또 하나의 이유는, 조별과제 사건이 일으킨 나비효과가 이후 홍설과 유정의 주요 갈등 원인이 되는 장학금 에피소드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공감 포인트
우리가 조별과제를 하면서 인간에 대한 회의감을 느끼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싱크로율 100%. 경험자들은 알겠지만, 무임승차자들 특징이 그렇게 바쁘고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면서, 지들 술 마시고 연애할 시간은 있다는 거다. 또 얄미운 게 개인 과제는 악착같이 해온다. 아, 쓰다 보니 또 열 받네.

 


3. 장학금 에피소드 (2부 46~48화)
Feat. 누가 그런 식으로 도와 달래요? vs 널 위해서 그런 거야

 

조직행동론 사건으로 전액 장학금을 타지 못한 홍설이 다음 학기에 휴학하려 하자, 유정이 자기 리포트를 직접 버려가면서 장학금을 양보한 사건. 본인이 졸업을 앞두고 있기 때문에, 다음 학기에 친해지지 못하면 그녀를 다시 못 볼까 봐 한 행동이었다고 나중에 밝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것을 자기 힘으로 해내려고 했던 홍설에겐 상처가 되는 일이었다.

 

장학금 문제로 싸우던 두 사람이 어떻게 화해했느냐도 이 에피소드의 관전 포인트다. 한참 냉전 중이던 두 사람은 우연한 계기로 마주쳐 어영부영 마음을 풀고 넘어간다. 하지만 유정표 잔인한 행동에 대한 홍설의 찝찝함은 여전하고, 유정도 홍설의 화난 포인트를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시간이 흘러갔다는 게 문제. 이후에 두 사람은 비슷한 맥락에서 또 갈등하게 된다.

 

공감 포인트
<치인트>의 매력 중 하나는 누구나 한 번쯤 겪어봤을 감정을 극적으로 묘사하는 것이다. 홍설과 유정의 싸움도 사실 어떻게 보면 연인 간의 흔한 입장 차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스릴러스러운(?) 연출과 주인공의 비현실적인 외모 덕분에 특별해 보일 뿐…

 


4. 백인호의 눈물 (2부 54화)
Feat. 세상에서 내가 제일 한심한 놈인 것 같아

늘 깐죽거리고 진지한 구석이라곤 없던 백인호가 처음으로 눈물을 보인 에피소드. 그간 백인호는 사람들이 “앞으로 뭐할 거냐”고 물으면 빈정거리면서 대답을 회피해 왔다. 하지만 그가 방황하는 데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다.

 

촉망받는 피아노 영재였지만, 불의의 사고로(할많하않…) 손을 크게 다쳐 꿈을 포기해야 했고. 그에게 남은 건 허영이 심한 누나와 꿈을 포기하면서 생긴 상처. 애써 쿨한 척 살던 백인호는 우연히 자신의 옛 스승이 텔레비전에 나온 걸 보고 무너진다. 스승은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된 다른 제자를 두고 ‘생에 한 명뿐인 제자’라고 표현했는데, 사실 그 말은 백인호에게 먼저 했던 것. 꿈을 포기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함께 울 수밖에 없는 에피소드다.

 

사족이지만 길 한복판에서 비 쫄딱 맞으며 우는 백인호를 보고, 홍설이 말없이 다가가 우산 씌워주는 장면도 개인적으로 참 좋아한다.

 

공감 포인트
누구에게나 한 번쯤 그런 시기가 오는 것 같다. 뭐 하나 되는 일은 없고 친구들 모두 꿈을 찾아 열심히 살고 있는데 나만 뒤쳐진 것 같을 기분이 들 때. 꼭 백인호처럼 극적인 사건을 겪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에피소드다.

 


5. 홍설 가출 에피소드 (타인의 관계 3부 56화~59화)
Feat. 그렇게 노력해도 칭찬 한번 안 했잖아요!

 

가출 에피소드에는 평소 맏이병을 앓던 홍설이 참다 참다 폭발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그녀는 형편이 어려운 집안의 맏이로서, 장학금을 못 받을까 봐, 취직을 못할까 봐 늘 전전긍긍한다. 하지만 전형적인 남아선호사상(…)을 가진 아빠는, 딸은 시집가면 끝이라며 유학도 남동생만 보내주고, 용돈도 남동생에게만 준다. 이에 서운함을 느낀 홍설은 집을 나와 버린다.

 

여담이지만, 이 에피소드는 엉뚱하게도 홍설과 유정이 가까워지는 계기가 된다. 아무도 자신을 최우선으로 생각해주지 않는다는 생각에 우울해하던 홍설을 유정이 진심으로 위로해 준 것. 홍설은 필요할 때마다 항상 옆에 있어주고, 최선을 다해 자길 돕는 유정에게 사랑을 느낀다. 뜻밖의 해피엔딩…

 

공감 포인트
함께 사는 가족은 애증의 관계일 수밖에 없나 보다. 이틀간의 가출 후 쭈뼛거리며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낯설지 않았다.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어느새 웃고 있는 설이의 가족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에피소드였다.

 


6. 속옷 도둑 에피소드 (2부 63화~65화)
Feat. 사람을 다치게 하고 주변 모두에게 피해를 준 나쁜 놈

사건은 홍설이 살고 있는 자취방 일대에 속옷 도둑이 나타나면서 시작된다. 처음에는 여자 속옷을 탐낸 변태의 단순 절도라고 생각했으나, 동성애자라는 이유로 무고한 사람이 벽돌에 맞고, 속옷 주인이 범죄의 대상이 되는 등, 상황이 점점 심각해진다.

 

주민들은 홍설 옆집에 사는 공주용을 직업도 없고 행동도 이상하다는 이유로 의심하지만, 사실 범인은 겉보기엔 멀쩡해 보이는 집주인의 손자! 범인은 그녀가 이사 가기 전에 해코지를 하려고 집에 몰래 침입하지만, 이삿짐 싸는 걸 도와주러 온 유정에게 걸려 호되게 응징 당한다.

 

이 에피소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포인트는, 화가 난 유정이 이성을 잃고 속옷 도둑을 두들겨 팼는데 그걸 홍설이 봤다는 것. 남자친구의 폭력적인 모습을 눈앞에서 보고 충격을 받았으면서도, 자기를 위해서 그랬을 것이라 애써 넘어가는 홍설의 심리 묘사가 압권이다. 이 사건은 앞으로 두 사람의 관계에서도 중요한 단서가 된다.

 

공감 포인트
혼자 사는 여대생이라면, 100% 이해하고 분노했을 에피소드. 남자친구가 같이 있었으니 다행이지, 홍설 혼자 있었다면 큰일을 당할 수도 있었다.

 


7. 홍설 백인호 이별 (3부 108화/4부 20화/4부 34화-35화/4부 65화)
Feat. 왜 잘생긴 백인호씨 떠난다니까 아쉽냐?

 

홍설과 백인호. 악연으로 시작한 둘은 시간이 지나면서 차츰 가까워진다. 홍설은 백인호를 함께 있을 때 편한 몇 안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백인호는 홍설에게 얼핏 좋아하는 감정까지 느낀다. 하지만 마냥 친하게 지내기엔 둘 사이에 남자친구 유정이 있다. 어쩔 수 없이 거리를 둬야 하는 묘한 관계인 셈이다. 백인호는 자신을 쫓던 사채업자가 홍설에게 찾아가 행패를 부리자, 이제 정말 떠나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둘의 이별을 다룬 4부 65화는 <치인트> 팬이라면, (혹은 백인호 팬이라면) 꼭 다시 봐야 할 에피소드. 이별의 순간 담담한 척 뒤돌아서는 백인호와 차마 붙잡지 못하는 홍설의 복잡한 감정이 컷 하나하나에 공들여 묘사되어 있다. 명대사도 유독 많다. “어울려 살아가는 만큼 가끔은 교차점이 있어 만나게 될 때도 있지만, 결국엔 그대로 통과해 버린다.”

 

공감 포인트
한때 내 인생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없는 이들이 생각나는 에피소드. 어른이 되니까 크게 싸우고 헤어지지 않았는데도 다시는 볼 수 없는 사람이 생긴다. 백인호가 사라진 쪽을 보고 “어딜 가든 잘 될 길 바란다”고 소리치는 홍설에게 감정 이입을 했던 에피소드.

 


P.S.

다음 주 목요일 후기까지 나오고 나면 이제 정말 끝이다. 5번은 더 정주행 해야 그들을 보내줄 수 있을 것 같지만 일단은… 굿바이 <치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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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움:  김아영, 박소연 학생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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