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북에서 H의 이름을 검색한다. 프사가 참 잘 나왔네, 좋아 보인다. 연애 중이구나. 취업도 했고. 날 잊고 잘 지내는구나. 난 아직 널 잊지 못했는데.
열다섯 살 여름. 고입을 앞둔 나는 학원에서 사인, 코사인 그리고 탄젠트와 씨름 중이었다. “나 네 옆자리 앉아도 되냐?” 왁스로 한껏 세운 샤기컷, 삼각함수처럼 뾰족한 얼굴. H와의 첫 만남이었다. 그리고 단박에 깨달았다. ‘나는 이제 좆 됐구나.’ 초식동물의 육감이었다. H는 나를 잡아먹는다. 학창 시절 수많은 괴롭힘을 당하면서 체득한 것이다. H가 흘린 담배 냄새가 육감에 확신을 더했다. “응, 그래, 앉아.” H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상냥하게 대답했다.
이미 수업은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제발 수업이 빨리 끝나길, 내가 삼각함수를 빨리 익혀 이 학원에서 벗어나길. 하지만 애석하게도 종이 치자마자 H가 내 이름을 부른다. “민상아, 내가 친구 소개해줄까?” 사실상 명령문이었던 의문문, 거절할 용기가 없다. 순순히 따라갈 수밖에.
누가 봐도 폭력이 일어나기에 적당한 뒷골목엔 세 명의 아이가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다리가 떨려왔다. 오줌이 마려웠다. 그때 한 아이의 얼굴이 낯익게 다가왔다.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통통하고 항상 생글생글 잘 웃어 주변 사람들까지 기분 좋게 하던 친구. 순간 마음이 놓였다. “어? 안녕!” 나도 모르게 반갑게 인사를 하고야 말았고, 화답은 주먹으로 받았다. 일순간 눈앞에 스파크가 일었다.
사냥은 시작됐다. 내가 누군지 알고 반말을 하냐, 공부 좀 한다고 수업 시간에 설치는 거 보기 싫다, 계집애 같다 등등 주먹보다 아픈 말들을 내뱉었다. 사춘기 남학생들의 아드레날린을 그렇게 온몸으로 받아내면서 도덕 교과서에 나온 순자의 성악설을 떠올렸다.
폭력은 그 아이가 학원에서 쫓겨나기 전까지 계속됐다. 그나마 덜 고통스러웠던 것은 학원 선생님들이 몰랐다는 것. 선생님께 이르지 않는 의리 있는 피해자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H가 나 아닌 다른 학생을 때린 날, 그는 학원에서 쫓겨났다. 피해 학생은 폭행 사실을 바로 학원에 알렸고, 학원은 최선을 다해 상황을 수습해줬다. 그 와중에 난 그 친구에게 말했다. “H가 나까지 때렸다고는 말하지 말아줘.” 그렇게 소동은 끝이 났다.
10년 넘게 소망했다. H가 망했으면, 아니 죽었으면 좋겠다고. 그리 고 10년이 넘어서야 나는 H의 페북에 들어가볼 정도의 용기가 생겼다. 막장을 사는 H를 확인하고 싶었다. 프사를 보니 삼각함수 같은 얼굴은 그대로였다. 예상과 달리 4년제 대학에 진학했고, 유학도 다녀왔다. 남성성을 과시하기 위한 복근 사진도 있었다. 그리고 나를 때렸던 3명과는 여전히 친구로 지내고 있었다. 내가 생각한 일진의 말로와는 사뭇 달랐다. H는 아주 잘 지내고 있었다.
페북 메시지 창을 켰다. 감히 잘 살고 있느냐고. 그 흔한 권선징악 레퍼토리가 왜 너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냐고. 격정적인 문장과는 달리 자판을 두드리는 엄지는 행여나 전송 버튼이 눌릴까 손끝을 섬세하게 세운 모양새였다. 비참했다.
H의 몰락을 확인하지도, 그에게 죄를 묻지도 못했다. 다만 H의 페북에서 빠져나온 후, 그와 멀어졌다는 안도감이 들었을 뿐이다. 10년이 넘게 흐르며 내 상처가 아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물지 않은 상처 위에 세월이 켜켜이 퇴적하는, 그뿐이었다. 그 날 이후 H의 페북에 들어가지 않는다. 죄를 묻지 못한 채, 내 맘속 공소시효는 그렇게 끝나갔다. H가 이 글을 읽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묻는다. H, 날 기억해? 난 네게 부끄러움으로 남았을까? 잘 지내니? 그것 참 유감이다.
[813호 – 20’s voice]
Writer 강민상 sdfh2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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