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삐삐,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냐옹, 냐옹.” “응, 잘 놀았어? 어우, 배고파 죽겠네. 먹을 게 뭐가 있지?”

 

분주하게 돌아다니는 발걸음을 들으며 숨을 죽인다. 애꿎은 싱크대 서랍이 열렸다 닫히고, 침 삼키는 소리가 긴장된 냉장고 안에 퍼진다. 쿵, 쿵, 쿵. 드디어 우리 차례인가! 문이 열리고 형광등 불빛이 쏟아져 들어온 순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목청을 높인다. “여기야, 여기!” “야, 나 좀 봐!”

 

제일 먼저 고함을 지른 양념 멸치볶음이 간택되었다. 다른 반찬들이 그를 부러운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역시 쌩쌩한 신입이라 스피드가 좋군? 경각심을 느끼며. 하지만 애석하게도 약 3초 후, 양념 멸치볶음은 제 자리로 돌아오고 말았다. 위 칸과 아래 칸을 넘나들며 우리를 들었다 놨다 하던 손은 끝내 야속한 말만 남기고 문을 닫아버렸다. “그냥 불닭볶음면 먹어야겠다.”

 

 

저 멀리 물 끓는 소리에 양념 멸치볶음이 울음을 터뜨렸다. 다른 반찬들의 핀잔도 이어졌다. “야, 뉴비가 울긴 왜 우냐. 너 여기 온지 얼마나 됐어?” “흑흑, 짜증 나는데 어쩌라고요. 어떻게 두 달 동안 방치할 수가 있어!” “난 반년 넘었거든?” 오징어 젓갈이 대차게 쏘아 붙였지만, 혈기왕성한 양념 멸치볶음은 지지 않고 받아쳤다.

 

“님이 더 불행하면 내 불행은 아무것도 아닙니까? 아니, 반찬은 신선할 때 먹는 거 아니에요? 왜 이렇게 묵혀두는 거야? 전쟁 나면 먹으려고? 이게 냉장고지, 저장고냐?” 구구절절 맞는 말에 다른 반찬들의 얼굴에도 그늘이 졌다.

 

나 역시 양념에 절어 힘없이 가라앉은 몸을 보자 절로 한숨이 나왔다. “처음엔 파릇파릇했는데 냉장고 안에만 있었더니 진짜 축 늘어진 파김치가 돼버렸네.” “나도.” “누군가의 끼니를 책임지겠구나 상상하면서 얼마나 신났는데. 이건 뭐, 감옥이야.”

 

 

투박한 손이 내 몸 주변에 야무지게 냉동팩을 붙이던 게 떠올랐다. 혹시나 샐까봐 여러 번 테이프를 감았던 것도. 오들오들 떨며 택배 기사 세 명의 손을 거쳐 여기까지 왔다. 기차를 타고 땅 끝에서 서울까지 온 오징어 젓갈, 딱 두 번 밥상에 오르고 유배 중인 멸치볶음(이 냉장고 안에는 무려 그냥 멸치와 양념 멸치 볶음 둘 다 있다.)도 누군가의 정성으로 이곳에 도착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놈의 불닭볶음면, 떡볶이, 스파게티에 밀려 형광등 불빛 잠깐 보는 게 소원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다행이야.” 잠자코 있던 멸치볶음이 말했다. “뭐가?” “우리가 소금을 온몸에 바르고 있어서 명줄이 길다는 게. 3일 만에 골로 가버린 숙주나물을 생각해봐. 그렇게 허망하게 죽긴 싫어.”

 

과연 그럴까? 나는 이를 악물고 버티다가 새하얀 백태를 두른 채 요단강을 건넌 콩자반을 떠올렸다. “차라리 빨리 가는 게 낫지 않아?” 숨 막히는 비닐봉지 안에서 꽁꽁 얼어버린다는 시간과 공간의 방으로 말이다. 매일 희망고문을 당하는 것보단 그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때, 잔뜩 우울해진 냉장고의 정적을 깨는 소리가 들려왔다. “얘들아….” 동굴, 아니 사실 무덤이라 불리는 제일 아래 칸에서였다. 이곳에 있는 누구보다 가장 오래된 반찬. 반찬계의 적통 ‘할머니 산’ 김치였다. 전설에 의하면 냉장고보다 먼저 이 집에 와 있었다고. 약 2년여를 묵힌 그의 몸에서 얼마나 신맛이 날지, 나로서는 상상도 되지 않았다. 커다란 자주색 통 안에서 사색의 끝을 경험한 그가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에게나… 자기의 날이 온단다…….”

 

다음 날, 저녁 7시. 현관문이 열리고 어김없이 모든 반찬들의 심장이 달음박질친다. 냉장고로 걸어오는 속도가 심상치 않더니 벌컥 문이 열린다. 그리고 거침없이 제일 아래 칸으로 향하는 손. “설마!” “헐?” 늘 그 자리에 있던 자주색 통이 바깥세상으로 나가고 있었다. 부처님 같이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미처 닫히지 않은 문 밖에서 들리는 소리.

 

“엄마, 나 김치볶음밥 해 먹으려고 하는데 김치랑 또 뭐 넣어야 돼?”


[815호 – 비독립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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