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 재래시장 ⇢ 목욕탕

계획 따윈 고양이나 줘버려. 발길 가는 대로 다니는 게 진짜배기 여행이다,는 개뿔. 계획 없이 도쿄로 날아갔다가 생고생으로 일관한 여행자의 타산지석 도쿄 스토리. 도쿄 이렇게는 가지 마세요.


 

힙한 나에겐 로컬스러운 여행이 어울리지

 

 

도쿄 첫날, 신비로울 정도로 작은 호텔방(타산지석1: 숙소 검색에 공을 들입시다). ‘로컬스럽게’ 보내야겠다는 마음을 먹었다. 관광지 따윈 가지 않고 현지인처럼 즐기는 게 힙한 나에게 어울리는 일이지.

 

계획은 이렇다. 1) 우에노 동물원에서 한가롭게 유람한다. 2) 재래시장 아메야요코초에선 활력을 만끽한다. 3) 목욕탕에서 몸을 녹인다. 4) 우연히 발견한 숨은 맛집에서 생맥주를 마신다.

 

캬~ 로컬스럽게 훌륭하다. 고백하자면 이 아이디어는 『고독한 미식가』의 작가 구스미 마사유키가 쓴 목욕탕 유람기 『낮의 목욕탕과 술』에서 베꼈다. 책에서 동경 최고 대중탕 ‘다이고쿠탕’을 언급 했던 게 떠올라 구글 맵으로 검색했다. 닛포리 지역이라고? ‘우에노’에서 가깝네. 굿. 호텔 앞 주점에서 맥주를 두 잔 마시고 잤다.

 

 

이튿날. ‘나는 지금 일본 지하철에 타고 있어!!’ 일본에서 지하철을 탈 때마다 늘 근사한 기분을 느낀다. 90년대, 일본 문화가 불법이던 시절 생긴 로망이다. 불법 비디오로 훔쳐본 일본 도시 풍경은 괜스레 신비했다. 광고판 속 꼬불꼬불 히라가나의 획도 좋다. 풍경에 수묵화처럼 흑백을 남기는 세라복도 마음에 든다.

 

야매로 배운 일본어 실력으로 광고 문구를 읽어봤다. “하루가 힘들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해냈다. 힘든 날 나의 진짜 친구는 개와 위스키.” 회사원과 개와, 위스키가 나란히 앉아 석양을 마주하고 있다. 왠지 바보 같지만 멋있어.

 

뭐지? 우에노 역 앞엔 어마어마어마한 수의 일본인들이 거대한 물결을 이루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5월 초는 일본의 최대 연휴다. 도쿄 구석구석 어디나 인파로 몸살을 앓는다(타산지석2: 5월 초 일본은 피하세요). 게다가 우에노 동물원이 위치한 공원은 각종 박물관이 위치한 피크닉의 성지다. 어린이날+동물원+박물관+ 공원=어린이 지옥이었다.

 

동물원 표 사려고 기다란 매표소 줄에 합류했다. 기다리 고 기다리고 또 또 기다리니 어느덧 내 차례가 왔다. “동물원 표 한 장 주세요.” 점원 얼굴에 미안한 표정이 든다. 안 돼. 미안하지 마.

 

“쓰미마셍데스가 여긴 박물관 표만 팔아요. 동물원 표는 안쪽으로 쭉 들어가셔서 동물원 입구에서 사셔야 해요.”

 

아… 기다림의 시간이 무위로 돌아갔다. 눈썹을 내리고 있는 힘껏 실망감을 표현한 후 줄 옆으로 빠졌다. (타산지석3: 동물원 앞 매표소에서 표 사셔야 합니다.)

 

 

자연사박물관 앞에서 거대한 흰수염고래 동상을 감상했다. 인파를 헤치고 동물원 입구에서 섰더니 거리낌이 들었다. 우리에 갇힌 동물들이 불쌍해져버렸다! 내 동물권 감수성이 이렇게 올라온 건가. 흰수염고래 동상에서 하나코를 연상했기 때문인 지도 모른다.

 

하나코는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코끼리’로 별명 붙은 비운의 코끼리다. 일본 이노카시라 동물원의 콘크리트 우리에서 평생 홀로 지내다가 지난해 69살로 사망했다. 외로움과 비좁은 공간 탓에 정신이 나갔다고 한다. 유튜브 영상에서 본 말년의 하나코는 하루 종일 좌우로 몸을 흔들고 있었다. 뭐야 우울해졌어. 동물원 포기. 차라리 우에노 거리로 가보자. 뭐가 있긴 있겠지.


이태원 + 광장시장 + 니뽄간지 = 아메야요코초

 

 

이태원과 광장시장을 한데 섞은 다음 ‘일본스러움’를 한 바가지 끼얹으면 우에노의 재래시장 아메야요코초가 된다. 흥이 넘치는 거리다. 한낮인데도 주점 앞 야외 테이블에선 일본인들이 생맥주를 몇 잔이고 마셔댄다. 닭꼬치를 뜯는 회사원, 장어를 음미하는 문신 아저씨. 산토리 생맥주 큰 것 한 잔에 280엔. 우리 돈으로 3000원. 시원한 맥주를 벌컥벌컥. 으… 삐루가 노미따이.

 

자판기 옆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옆에서 함께 담배 피우던 초미니 스커트 센 누님과 눈이 마주쳤다. 대단한 기운이다! 눈을 내리깔음으로써 존경의 의사를 표했다.

 

옷집도 눈에 띈다. 일본인들은 미국 60~80년대 빈티지 디자인에 열광하는 편으로 미국보다 더 오리지널한 미국 빈티지 스타일을 고집한다. 아메야요코초 구제 거리엔 버즈릭슨부터 하와이 셔츠까지 훌륭한 구제 옷을 저렴하게 판다. 미쿡 간지가 줄줄 흐르는 하와이 셔츠를 3만원대로도 구할 수 있다.

 

 

귀여운 점원이 있기에 말을 걸었다. “소방혼라고 적힌 이 옷들은 뭔가요?” “에도 시대 일본 전통 소방관들의 혼을 담은 브랜드입니 다.” “(무슨 미친 소리지?)왜 하필 에도 시대?” “에도 시대에 소방관들은 일본의 영웅이었어요. 이 티셔츠는 어떠신가요?” 욱일승천기가 떡하니 박힌 그래픽 티셔츠. 이거 입고 귀국했다간 욕 퍼 먹겠구만. 정치적으로 무난한 셔츠를 구입했다. 점심으로 소바를 먹은 후 다이고쿠유로 향했다.

 

일본 대중탕을 ‘센토’라고 부른다. 후지산이 그려진 목욕탕 벽화, 일본식 정원은 센토만의 매력. 뜨거운 물에 몸을 푹 녹이고 느긋이 정원을 관람하는 건 일본 여행의 숨은 재미다. 『낮의 목욕탕과 술』에 따르면 내가 지금 향하는 다이코쿠유는 “목욕탕을 좋아하는 사람 이라면 반드시 한 번은 가봐야 할 목욕탕 중의 목욕탕”! 일본 전통 미감으로 목욕탕 마니아들의 마음을 훔쳤다고 한다.

 

미카와시마 역에서 내리면 5분 거리인데, 실수로 우구이스다미 역에 내리는 바람에 한참 걸었다. 북적대던 중심가와 달리 사람이라곤 없다. 지루해서 걷다가 마주친 사람들을 수첩에 적기 시작했다. 초등학생 4명, 2인용 자전거에 꼬마를 태운 아주머니 2명, 목욕 바구니를 흔들며 걸어가시는 할아버님. 응? 할아버님도 다이코쿠유로 가시는군요. 그나저나 골목은 왜 이렇게 좁아지는지? 골목 모퉁이를 돈 순간 마침내 다이코쿠유가 내 눈앞에 자태를 드러냈다.


 

이 목욕탕이 전설의 레전드?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목욕탕을 잘못 찾아왔다. 다이코쿠유(대흑탕, 大黑 湯)와 다이코쿠유(제국탕, 帝國湯)를 헷갈렸다. 전자는 유명한 목욕탕이 맞고, 내가 간 제국탕은 순도 100% 동네 주민용 목욕탕. (타산지석4 : 남들은 모르는 숨은 장소를 갈 땐 정확히 알아보세요.) 제국탕 전체 크기는 고등학교 교실의 1.2배 정도.

 

연필로 그리면 다음과 같다. 네모를 그린다. 네모의 위쪽은 탕, 아래쪽은 탈의실이다. 네모 중앙에 세로로 줄을 긋는다. 그 줄이 남탕·여탕을 나누는 낮은 벽. 줄의 제일 아래를 지우개로 조금 지운다. 거기가 입구이자 제국탕의 유일한 직원 할머니가 있는 공간이다. 할머니가 고개를 왼쪽으로 기울이면 남탕, 오른쪽으로 기울이면 여탕이 보인다.

 

우키요에 스타일로 산과 바다를 그린 벽화 아래 탕이 있다. 목욕탕에 발을 담근 순간 “아 XX!” 지옥처럼 뜨겁다. 열탕에 잠겨 손님들을 관찰한다. 손님은 ‘마른 영감탱이(경상도에선 어르신을 친근하게 영감탱이라고 부른다)’ ‘수염 대머리’ ‘페페 영감탱이’ 이렇게 3명이다.

 

마른 영감탱이는 다 말랐는데 배만 동그랗게 솟아 있다. 앞머리가 많이 까진 장발로 전체 룩은 동양 설화 속 아귀하고 비슷하다. 몸을 청결히 가꾸는 의식에라도 참여하는지,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온종일 면도 중. 페페 영감탱이는 씨름 선수처럼 풍채가 좋으며 얼굴이 슬픈 개구리 페페처럼 생겼다.

 

수염 대머리 청년은 일본 구마모토현 출신으로, 33살까지 헬스 트레이너로 일하다가 깨달은 바가 있어 일본 전역을 여행 중인 방랑자, 처럼 생겼다. 건장한 몸에 대머리이고 수염이 났다. 조심스런 두 영감탱이와 달리 어푸어푸 호쾌하게 씻더니 정원 대청마루에 철퍼덕 앉아 햇볕을 쬔다.

 

 

일본 목욕탕에 왔으면 라무네(일본식 사이다) 정도는 마셔주는 게 정석이다. 라무네를 마시며 정원에 앉아 있노라니 그런 마음이 든다. ‘그리 나쁘지 않아.’

 

제국탕엔 모든 게 반들반들 닳아 있다. 전통을 팔아먹으려는 인위적인 예스러움이 아니다. 80년대 어느 날 주인 할머니가 심드렁히 “이제 아무 것도 바꾸기 싫어졌어”라며 일체의 업그레이드를 멈춘, 그 후로 켜켜이 쌓인 세월의 감각이 제국탕 전체를 감돌며 내 마음을 편안히 만든다.

 

소설가 커트 보니것은 말했다. “제 삼촌이 안타까워한 것은 사람들이 행복할 때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래서 삼촌은 행복할 때 마다 그 순간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 각별히 노력하셨죠. 한여름 사과나무 아래서 레모네이드를 마실 때면 삼촌은 이야기를 끊고 불쑥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도쿄 어느 동네 목욕탕 정원에서 나는 지금 라무네를 마시며 햇볕을 쬐고 있다.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타산지석5 : 자기합리화도 심하면 망상입니다.)


 

도쿄 여행 중 어쩌다 이런 가게에 들렀다

 


[817호 – tra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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