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열 시 반이 되면 어김없이 휴대폰 알람이 울린다. 그러면 아빠는 텔레비전 볼륨을 낮추고 전화를 건다.

 

“어머니, 잘 계셔?”

 

레퍼토리는 똑같다. 아빠는 할머니에게 자신이 몇째 아들인지 묻는다.

 

“넷째여?”

 

할머니는 매번 이렇게 헷갈려하고, 아빠는 조금 서운한 목소리로 말한다.

 

“무슨 넷째야, 어머니한테 전화하는 게 다섯째뿐이 더 있어요.”

 

할머니는 그제야 알지이, 하며 안부를 묻는다. 치매약은 잘 챙겨 먹고 있냐고, 다 떨어지면 꼭 알려달라고 당부하고는 아빠는 통화가 끝날 때쯤 숨을 흡, 들이쉬고 힘주어 말한다.

 

“사랑합니다, 어머니.”

 

전화를 끊으면 아빠는 다섯째 아들에서 무뚝뚝하고 말 없는 가장으로 돌아온다. 마찬가지로 말 없고 무뚝뚝한 첫째 딸인 나는 이 모든 대화에 관심이 없는 척, 과일만 집어 먹는다.

 

아빠는 육 형제 중 다섯째, 그러니까 뒤에서 두 번째 아들이다. 나는 이 위치가 어떤 위치인지 알 수 없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안부전화를 해서, 부끄러워하면서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그것이 다섯째 아들이 엄마를 사랑하는 방식인 것이라고 어렴풋이 짐작만 할 뿐이다. 형들 그룹에 속하기는 어리고, 그렇다고 완전히 막내도 아닌 애매한 위치. 그 위치에서 인생의 반을 살아오다가 아빠는 아빠가 되었다. 아빠 노릇에는 형 동생도 없으니 아빠는 유일무이, 첫 번째가 된 것이다.

 

아빠를 첫 번째로 만든 장본인인 나는 아빠를 많이도 괴롭혔다. 어릴 때는 아빠의 퇴근 시간만 기다렸는데, 크면서는 아빠가 그저 무섭고 거추장스러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가끔은 기꺼이 아빠의 실망이 되고 싶기도 해서 교복을 입고 담배를 피우거나 새벽에 몰래 집을 나갔다. 사라진 나를 찾기 위해 같은 도로를 빙글빙글 돌던 아빠의 차를 나는 건물 옥상에서 무표정으로 내려다보기도 했다.

 

이 모든 것들이 아빠의 가슴에 수많은 생채기를 남겼을 것이다. 하지만 아빠도 나를 나름의 방식으로 괴롭게 했다. 화를 잘 참지 못하는 아빠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불안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나도 딸이 처음이고,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니까.

 

담임선생님이 부모님을 학교로 호출했던 날이었다. 집으로 가는 길 내내 화를 내던 엄마와 달리 아빠는 내 앞에서 묵묵히 걷기만 했다. 나는 아빠의 발이 닿았던 곳만 골라 밟았다. 그날 집에서 아빠는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후로 나는 더 이상 도끼눈으로 아빠를 노려보지 않았고, 아빠는 퇴근 후에 ‘아버지 학교’라는 곳에 나가기 시작했다. 그곳에서 배운 것 중에 하나가 ‘포옹하기’였는지 아빠는 출근하기 전에 가족 모두를 꼭 안았다. 나는 늘 몸이 통나무처럼 굳은 채로 포옹을 했지만 아빠의 양복 냄새를 맡으면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작가가 되고 싶다고, 학교 수업을 빠지면서까지 백일장이나 공모전에 참가해 상을 받던 때 아빠는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가 내 이름이 적혀 있는 수상자 명단을 스크랩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하던 그 해에 아빠는 내게 노트북을 선물했다. 이미 입력되어 있는 유저 네임을 보고 나는 웃을 수밖에 없었다. “미래 작가 장효정”이라니. 너무 촌스럽고 사랑스럽지 않은가.

 

우리 둘은 여전히 서로 말이 없다. 내가 다섯째 아들이라는 자리와 누군가의 아빠라는 자리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아빠도 첫째 딸이라는 내 위치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섯째 아들인 그가 어머니를 사랑하고, 가장인 그가 첫째 딸을 사랑한다는 사실은 확실히 알고 있다. 나는 전화로 사랑한다고 하지는 못하지만, 아빠의 퇴근 시간에 맞춰 아파트 단지 앞에서 서성거리다가 우연인 것처 럼 함께 집에 들어가고, 아빠가 좋아하는 기네스 맥주를 냉장고에 채워 넣는다. 아빠는 첫째 딸의 이 바보 같은 사랑 방식을 알까.


[819호 – 20’s voice]

Writer 장효정 ellisa6661@naver.com 계속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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