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물건을 사는 메커니즘은 선거에서 정치인을 뽑는 과정과 유사하다. 돈 주고 물건 사는데 자꾸 최선이 아닌 ‘차악’을 고른다는 소리다. 왜일까? ‘차악’ 쇼핑 뫼비우스의 띠는 이렇다.

 

인터넷 서핑을 하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만난다. 가격을 확인한다. 입이 떡 벌어진다. 고고한 자태가 몇 날 며칠 눈에 아른거려 업무 효율성이 바닥을 긴다. ‘그냥 화끈하게 결제하고 열심히 일하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지만, 나는 신용카드가 없다. 그러니 미리 ‘땡길’ 돈도 없다. 이럴 줄 알고 안 만들었지! 과거의 내가 설계한 ‘빅 픽처’에 고통 받는 것도 역시 나다.

 

그러다 보면 슬쩍 포기가 된다. 그래, 내가 가지기엔 너무 비싸다. 보급형 검색을 시작한다! 네이버 지식 쇼핑에 있는 거의 모든 물건들을 클릭해보며 비슷한 느낌이 나는 저렴이를 찾아 헤맨다. 그렇지만 디자인을 카피한 제품은 또 사고 싶지가 않다. 조악한 재료로 모양만 엉성하게 흉내 낸 바람에 괜히 내가 부끄럽고, 날 설레게 했던 그 느낌도 없다.

 

저렴하지만 자신만의 디자인을 갖추고 나름의 느낌도 있는 그런 제품은? 없다. 그렇게 스마트폰을 하도 들여다본 탓에 안구건조증이 극심해진 걸 느끼는 순간, 그냥 다 집어던지고 싶어진다. 가장 삐뚤어지는 시기다. 아, 몰라. 짜증 난다. 그냥 남들 사는 거 사자. 이 과정을 거쳐 우리 집에 이케아 국민 책상, 국민 행거, 국민 스탠드, 국민 화장대, 국민 수납장이 들어오게 되었다.

 

 

처음 자취를 시작하면서 일기장에 ‘온전히 나만의 취향으로 채운 우주’ 운운했던 것이 무색하게, 나는 세상에서 제일 그저 그런 물건들에 둘러싸여 살고 있다. 아, 딱 하나 빼고. 이사 초기부터 1년째 될 때 까지 망하는 쇼핑의 테크 트리를 반복적으로 타면서도 끝내 사지 못 했던 물건이 책장이다. 책도 그닥 안 읽으면서 책장에 대한 로망만 가득한 죄로, 대충 벽돌을 쌓아 임시 책장을 만들어 연명하던 차였다.

 

그러던 어느 날 내 눈에 날아든 물푸레나무 책장. 5단짜리 훤칠한 키에 나무 모양 시트지나 MDF밖에 모르던 내 눈을 번쩍 뜨게 한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빛깔. 나뭇결 모양조차 어찌나 고급스러운지 3대를 물려줘도 손색이 없을 자태였다.

 

가격은 약 오십만원. 반 백만원 이잖아…! 통장 한 귀퉁이가 숭덩 잘려져 나가는 것 같은 공포였다. 내가 과연 오십만원짜리 책장을 가질 자격이 있는가, 매일 밤 자기 전 곱씹었다.

 

결국 며칠 뒤 보급형을 찾아 또 검색의 바다에 뛰어들었고, 두 달 동안 약 300개 정도의 책장을 본 것 같다. 어딘가에 있을 거야. 그렇게 비싸지 않으면서도 내 마음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책장이. 그러나 안타깝게도 보면 볼수록 확실해졌다. ‘그만 한 게 없다.’

 

방향을 바꿔 한 달 넘게 평화로운 중고나라에서 잠복을 시도했다. 딩동! 20만 원 짜리 매물이 올라왔다. 당장 트럭을 렌탈해야 해! 방방거리다가 금세 또 고민에 빠졌다. 5년을 썼는데 20만원? 상태가 어떤지도 모르는데. 차라리 30만원 더 주고 새 거 사는 게 낫지 않나? 무엇 하나 마음을 정하기 쉽지 않았다.

 

 

이 단계에서 피폐해진 심신을 핑계 삼으며 “빡쳐! 그냥 무난한 거 사자!” 라고 급선회했다면, 우리 집엔 또 하나의 ‘국민 OO’이 생겼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에겐 정말 다행히 학습 능력이라는 게 존재하고, 나는 생애 처음으로 차악이 아닌 ‘최선’을 택했다.

 

불쌍한 나를 하늘이 어여삐 여겼는지, 내가 석 달간 동동거리는 동안 그 책장 회사의 아울렛 세일 기간이 됐고 매장 DP용으로 10만원 싸게 살 수 있었다. 크고 아름다운 물푸레나무 책장이 들어오면서 내겐 신비한 능력이 생겼다. 밥을 안 먹어도 책장을 보면 배가 부르고, 거기 꽂혀 있는 책들이 다 재밌어 보여서 독서량이 1.3배 정도 늘었다.

 

무엇보다 최고로 갖고 싶었던 물건을 손에 넣어서인지 다른 물건에 대한 물욕도 몇 달째 0에 수렴 중이다. 엄마는 “얼마나 가나 보자”고 말했지만, 나는 이제껏 몰랐던 세상의 비밀을 알게 된 기분이다. 절실함 없이 사는 10개의 물 건보다 갖고 싶어 미칠 것 같은 1개가 더 마음을 풍요롭게 한다는 걸. 그러니 괜한 물건 사지 맙시다. 뒤돌아 후회하지 말고.


[821호 – 독립일기]

Illustrator 남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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