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X발 X나 귀찮아” 길게는 일주일 짧게는 사흘. 매달 생리를 하다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호르몬 때문에 예민해진 것이 아니다. 피와 함께 굴처럼 진득한 조직이 뭉텅뭉텅 떨어져 내리고 아릿한 통증에 시달리는데 기분이 나쁠 수 밖에. 그 와중에 사회는 종족 번식을 위한 숭고한 경험이니 알아서 감내하란다. 근데 그렇게 대단한 일이면 왜 다들 쉬쉬하지?

 

인도 아티스트 루피가 올린 생리혈 묻은 바지 사진은 인스타그램에서 두 번이나 삭제되었고, 미국의 트럼프는 생리를 빗댄 표현으로 폭스의 앵커를 희롱했다. 이제는 생리를 정당하게 대할 때가 되었다. <피의 연대기> 김보람 감독을 찾아간 것도 그래서였다.


<피의 연대기> 김보람 감독

 

 

EDITOR : 보는 내내 모두가 꼭 봐야 하는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김보람 : 만들 때만 해도 “너무 마이너 한 소재 아니냐”라는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생리가 이슈가 될지도 몰랐고요. 사실 좀 두려워서 잠을 잘 못 잤어요. 보고 실망하실까봐. 진지하게 고민해봐야 할 이야기지만, 심각하게 말고 재미있게 만들고 싶었거든요.

 

E : 안 그래도 울다가 웃으면서 봤습니다. 생리라는 소재를 다루면서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요?

 

: 요즘 이 질문을 제일 많이 받아요.(웃음) 그런데 현실적이고 경제적인 부분이 힘들었지, 막상 촬영하면서 힘들었던 적은 없어요. 저와 프로듀서, 촬영감독, 애니메이션감독, 스태프 분들 전부 다 여성이라 더 힘을 냈던 것 같아요. 인터뷰이들도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셨고요. 개인 사정으로 인터뷰를 못한 분은 있어도 안 한 분은 없죠. 널리 홍보된 것도 아니고, 1인 기획사에 갓 데뷔한 감독인데도 무사히 영화가 나올 수 있었던 데는 주제의 힘이 컸다고 생각해요.

 

 

E : 맞아요. 오래도록 금기시되어왔지만, 사실 생리를 하거나, 해봤던 사람 이라면 누구나 하고 싶었을 이야기예요. 영화를 만들게 된 계기도 상당히 재미있어요.

 

: 우연히 유럽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그들은 생리대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됐죠. 저는 한 번도 탐폰을 사용해보지 않았거든요. 몸에 넣는 건 분명 질 건강에 안 좋고, 이물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친구들은 “너희가 탐폰을 안 봐서 그러는데 이물감도 없고, 축축한 생리대와 안녕할 수 있다”는 식이었어요. 충격이었죠.

 

E : 각자 편리한 방식이 있겠지만, 탐폰이 이토록 보편적일 줄은 몰랐어요.

 

: 아시아 쪽은 아무래도 보수적인 성향이 있는지라 중국도 탐폰을 거의 안 쓴다고 해요.

 

E : 공부하는 기분으로 영화를 보게 되더라고요. 탐폰은 이집트의 파피루스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역사가 긴데, 하나도 아는 게 없을 수 있지 싶어요.

 

: 일회용 탐폰은 표백이 되어 있고, 빨리 흡수하고 건조하는 약품을 넣어 서, 많이 사용하면 질 건조증이 생기기도 해요. 요즘은 그런 부작용을 방지하고자 천연 탐폰이 나오고 있죠. 직접 실로 떠서 만든 탐폰이나, 자연 소재인 해면 탐폰은 빨아서 다시 사용이 가능해요.

 

E : 건강도 문제지만, 착용에 대한 거부감도 커요. 탐폰 트라우마는 흔히 목격할 수 있잖아요. 겨우 넣었는데 빼다가 쇼크가 오거나, 실이 끊어져 누군가에게 빼달라고 하고 싶었다거나.

 

: 재밌는 게 다른 사람의 손은 들어가도, 내 손은 못 넣겠다는 사람이 많다는 거예요. 여성은 본인 몸인데도, 손을 넣어 만져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어요. 가장 많이 들은 이야기가 “탐폰을 써보고는 싶지만, 손을 넣는 게 두렵다”라는 거였어요.

 

 

E : 내 몸은 내가 제일 잘 아는데, 생식기만 그렇지 못하다는 게 사뭇 이상하네요. 생김새를 꼼꼼히 관찰해본 적도 없는 것 같아요.

 

: 아기를 목욕시킬 때, 남자 아기들은 온 가족이 보는 앞에서 고추를 말리거나 보잖아요. 반면 여자 아기들은 빨리 이불로 감싸 가리죠. 여성이라면 어렸을 적 “만지지 마, 지지야!”라는 말 한 번쯤 들어봤을 거예요.

 

야동에서는 여성의 생식기를 실제와 다르게 왜곡하거나, 더러운 곳 취급하기도 하죠. 성교육 시간에도 남성의 자위나 몽정에 대해서는 당연하게 이야기하면서, 여성의 자위는 일반적이지 않다고 보고요. ‘여성의 성기는 불결하거나 은 밀하게 감춰야 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무의식중에 퍼져있는 것 같아요.

 

E : 여성 성기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 생리도 낯설 수밖에요. 인터넷에 올라온 “생리 참았다가 나중에 싸면 되지”라는 글만 봐도 인식이 고대 그리스 수준에서 멈춘 것 같아요.

 

: 여성의 생식기에서 나오는 피니까 더 더럽다고 여기는 것 같기도 하고요. 양이 많으면 피가 샐 수도 있고, 옷이나 의자에 묻을 수도 있어요. 피 냄새가 날 수도 있죠. 그런데 손가락질을 받잖아요. 코피가 흐르면 다들 걱정해주지 않나요?

 

 

E : 애초에 현대적인 ‘날개형 생리대’의 역사도 불과 몇십 년밖에 안 되었죠. 그전까지는 일일이 천을 접어 허리에 고정해야만 했어요.

 

: 현대적인 일회용 생리대의 기원은 세계 1차 대전 때 참전한 간호사들이 사용한 의료용 솜으로 알려져 있죠. 병사들의 출혈을 지혈하는 솜이 피를 잘 흡수하니 그걸로 만들기 시작했다는 거예요.

 

그런데 어떤 역사학자들은 전쟁이 생각보다 일찍 끝나버리면서 의료용 솜이 많이 남은 게 직접적 계기였다 주장해요. ‘재고 처리’라는 상업적 필요에 의해 만든 거지, 여성의 자유를 위해서 만든 건 아니라는 거죠.

 

저도 후자에 한 표를 주고 싶어요. 지금까지도 생리대 시장은 유해성분이나 질적인 비교, 합리적인 가격 등 어떤 정보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죠. 그럼에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 받지 않고, 시장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졌고요.

 

E : 질적인 변화는 더디고, 갈수록 비싸지는데도 대안이 없으니 살 수밖에 없죠. 그래서 ‘생리컵(월경컵)’에 관심이 가는 것 같아요.

 

: 맞아요. 저도 국내에서 이렇게까지 빨리 반응이 올지는 몰랐어요.

 

E : ‘질이 늘어난다’, ‘처녀막이 찢어진다’, ‘유해한 균이 침입한다’ 등 논란도 있었어요. 아예 전문 의료진의 인터뷰를 실으셨던데요.

 

: ‘연약하다’는 편견이 있지만, 사실 질은 굉장히 탄력적인 근육이에요. 처녀막은 막이 아닌 주름이라 찢어지긴 힘들고요. 질 자체가 약산성이기 때문에 웬만한 균의 침입에도 강하죠. 생리컵은 물에 씻기만 해도 재사용이 가능하지만, 불안하다면 전자레인지나 뜨거운 물에 소독해서 사용할 수 있어요. 소재 유해성 논란이 있지만, 성형수술에 보형물로 사용하고 젖병에도 쓰이는 그 실리콘 소재로 만들어지거든요.

 

 

E : 적어도 생리대나 탐폰만큼은 안전하겠군요. 검색하면 나오겠지만, 그래도 생리컵을 어떻게 고르면 좋을지 팁을 주시면 좋겠어요.

 

: 무조건 부드럽고, 작은 게 좋지는 않아요. 탄성 있는 질 조직 안에서 우산처럼 잘 펴지려면 단단해야 하거든요. 너무 부드러우면 삐뚤어지거나 자리를 못 잡아 자칫 역류하거나 샐 수도 있어요.

 

처음에는 중간 정도의 크기와 단단함을 가진 생리컵을 써보다가, 점점 스스로에게 맞는 것을 찾아나 가는 게 중요해요. 기본형을 사용해보면, 자신의 생리 양도 알 수 있어 판단에 도움이 돼요. 스스로 손가락을 넣어 자궁 경부의 길이를 재보고 크기를 고르는 게 정석이지만, 쉽지 않을 테니까요.

 

E : 종류가 그렇게 다양한가요?

 

: 촬영하면서 저희 팀 모두 생리컵에 도전했어요. 저는 초심자가 많이 쓰는 핀란드의 루넷컵, 촬영감독은 가장 오래되어 생리컵의 대명사 격인 영국의 문컵, 프로듀서는 부드러운 스쿤컵을 사용했다가 실패하고 조금 더 단단한 레나컵에 정착했죠. 아, 저희 애니메이션감독은 실패했어요. 본래 생리통이 심했는데, 생리컵을 착용하고 골반 통증이 더 심해졌거든요.

 

E : 안 맞는 여성도 있는 거군요?

 

: 그럼요. 생리대를 쓰는 게 몸에 안 좋고, 생리컵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에요. 오랜 세월 사회가 여성을 가둔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걸 경험해보자는 거예요. 말씀드린 네 명의 제작진 모두 선택한 컵이 다르고, 각 자 맞는 생리용품도 달라요.

 

다만 여러 가지를 써보고, 공유하면서 ‘내 질에는 이렇게 생긴 게 잘 들어가는데, 쟤 질에는 저런 게 잘 들어가는구나’를 알게 되는 거죠. 그러면서 우리는 다르게 특색 있는 존재라는 걸 인정하게 됐어요. 질뿐만 아니라, 얼굴도, 가슴도, 엉덩이도, 다리도 다 다르잖아요. 획일화 된 기준을 잡는다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거죠.

 

E : 생리컵에서 나온 생리혈은 유독 맑고 빨갛더라고요. 생리휴가를 사용하려면 생리대를 제출하라는 학교나 회사에 내도 되겠다 싶을 만큼.

 

: 기존에 봐온 생리혈은 생리대와 만나 산패되거나 갈변된 피여서 더럽다고 느낄 수도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생리컵이 받아낸 있는 그대로의 생리혈을 보면 정말 깨끗하죠.

 

 

E :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이야기는 이거군요. ‘어차피 흘려야 할 피라면, 좀 잘 흘려보자’.

 

: 사실 ‘피를 안 흘릴 수 있다’는 선택지도 취재했었어요. 저랑 동갑인 네덜란드 친구는 19살 때 반영구 피임기구를 넣어, 생리를 안 하게 되었대요. 스스로를 ‘Non Period Person(생리 안 하는 사람)’이라고 부르더라고요.

 

그런 데 섣불리 다룰 수는 없었어요. 10대들이 많이 봐줬으면 하는데, 정서적 혼란이 올 수도 있고 성장기에는 최대한 자연스러운 몸 상태가 좋으니까요. 저희 영화 이후에 논의가 되거나 다른 분이 만들어주시면 좋겠어요.(웃음)

 

E : <피의 연대기> 시즌 2를 기대하겠습니다! 왜 10대가 많이 봤으면 하시나요?

 

: 20대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이기도 한데, 생리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것들을 그때 알았더라면 훨씬 자유롭게 살았을 것 같거든요. 옷 입고, 화장 하고, 연애하는 것 등 전반적인 생활에서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대신 스스로를 좀 더 사랑해줬을 것 같아요.

 

 

: 미디어가 주목을 안 해서 그렇지, 징글징글하다고 ‘완경’을 손꼽아 기다리는 여성들도 많아요.

 

: 진화학적으로는 인체 밖으로 세포를 내보내는 게 좋지 않대요. 그렇다면 여성의 신체는 왜 오랫동안 소비적인 일을 해왔냐는 거죠. 결국 임신을 위한건데, 출산을 원하지 않는 여성들은 아무 이유 없이 30년이 넘도록 피를 흘려야 하는 거잖아요. 생리 때문에 올 수 있는 월경증후군(PMS), 생리통, 호르몬 변화 등 귀찮고 힘든 부분을 감수하면서요.

 

E : 덧붙여 ‘생리할 때는 예민하다’는 인식도 견뎌야 하죠. 몸이 욱신대고, 피가 흘러 축축하니 기분 안 좋은 게 당연하잖아요. 생리대 뒤처리는 얼마나 번거롭고요. 깜빡 잊기라도 하면 주변에서 난리가 나죠.

 

: 전 혼자 사는데 가끔 남자친구가 놀러와요. 생리 이야기를 1년간 해서인지, 이젠 쓰고 난 생리대를 봐도 놀라지 않고, 바빠서 세면대에 두고 가도 별다른 반응 없이 잘 가져다주더라고요. 영화 포스터를 디자인해준 분들도 전부 남자였는데, 처음에는 놀라고 민망해하셨지만 나중에 생리컵 실물을 보여드리니 여자 친구와 아내에게 선물해주고 싶다고 하시고요. 생리가 자연스럽고 편한 일이 되기까지 결국 대화가 부족한 것 같아요.

 

E: 인식의 변화도 시급하지만, 공공 화장실 생리용품 무상 비치부터 이루어지면 좋겠어요.

 

: 열심히 노력한 국내 대학 중 한 곳이 영화에도 나온 한양대죠. 총여학생회가 기업에 제안서를 내는 등 노력 끝에 지원을 받아 여학생 휴게실과 총여학생회실, 단과대 과실 등에 비치했더라고요.

 

E : 역차별이니 남자 화장실에도 면도기를 무상 비치하라는 목소리도 있죠. 그런데 생리용품은 편리가 아니라, 한 인간의 존엄과 관련된 필수품이잖아요.

 

: 영화엔 못 넣었지만 미국 브라운대 등 명문대에서는 탐폰을 무료로 비치하되, 공평하게 남자 화장실에도 둔대요. 트렌스젠더들을 위해서죠. 대학, 레스토랑, 호텔 등은 비교적 사정이 나은 편이에요. 젊고 고등교육을 받은 여성들이 있으니까. 하지만 정말 간절한 저소득층 여성들은 정보도 부족하고, 그나마 경제적으로 생리컵을 직구할 여력도 없는 거죠.

 

 

E : 부디 누구도 ‘깔창 생리대’를 사용할 필요가 없는 날이 오길 바라요. 누구나 옷 치수 알듯 본인의 자궁경부 길이를 아는 날이 온다면 더 좋겠고요.

 

: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소설『82년생 김지영』을 뒤늦게 읽고 많이 울었어요. “이렇게 우리를 대하는 건 정당하지 않고, 더 이상 획일화 되고 싶지 않다”라고 함께 말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을 거예요.

 

그러려면 여성 서로가 더 긴밀히 정보를 나누어야 하고요. 생리든 낙태든 아니면 더 큰 문제에 있어서도, 여성들끼리 먼저 터놓고 무엇이 좋고 무엇이 불편한지를 나누면 좋겠어요. 그러다 보면 남성들도 자연스럽게 알게 될 테니까. 결국 대화가 시작이 되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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