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아침 식사 대용으로 ‘밀스’, ‘랩노쉬’ 같은 대체식사들이 인기다. 이 제품들은 ‘미래 식사’라는 이름으로 주목받고 있는데, 미래 식사라면 삼시 세끼를 똑같이 먹어도 괜찮은 게 진정한 미래식사 아니겠는가.
과연 이 대체식들이 정말 식사를 대체할 수 있을지, 에디터가 직접 일주일간 체험해 보기로 했다. 제품군은 총 세 가지. 밀스와 랩노쉬, 그리고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소일렌트! 체험하는 동안 객관성을 위해 스스로 지켜야 할 세 가지 규칙을 정해두었다.
규칙 1. 삼시 세끼 대체식만 먹는다
규칙 2. 대체식을 먹는 6일 동안 물 외에는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규칙 3. 운동 등 과격한 신체 활동을 중단한다(어차피 원래 안 했다)
– 가장 식사답고, 가장 재미없고, 가장 재미없는 대체식사
첫날부터 이튿날까지는 밀스 6종을 먹어보기로 했다. 밀스는 함께 온 랩노쉬보다 훨씬 용량이 커서 한 끼 식사 대용으로 충분할 것 같다. 매 끼니를 먹는 시간은 첫 끼를 먹고 난 후 포만감에 따라 정하기로 했다.
안에는 분말이 들어 있고, 기호에 따라 물이나 우유를 부어 마시는 방식이다. 삼시 세끼를 미숫가루로 때워야 하는 운명인 만큼 물 대신 우유를 부어 먹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 참고로 우유를 붓고 똑바로 세워 흔들면 안 된다. 반드시 뒤집어서 흔들자. 다 먹고 난 후 바닥에 뭉쳐서 섬을 이룬 가루를 보고 있으면, 두루미의 식사에 초대받은 여우가 된 기분이다.
알갱이가 많이 씹힌다. 어린이대공원 노점상에서 파는 미숫가루에 비교하자면, 이건 투 샷이다. 아주 걸쭉하다. 게다가 견과류 입자가 시리얼처럼 담겨 있으니 꼭꼭 씹어먹어야 한다. 결국, 클렌징 주스처럼 단숨에 마실 수 있는 음료가 아니라서 전부 먹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아침밥 먹는 데 걸리는 시간이랑 비슷하다. 이동식 아침 식사랄까.
미숫가루 맛인데, 좀 더 고소하고 느끼하다. 쉽게 말해 어른들이 좋아할 맛이다. 여러 맛이 있는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결국 다 미숫가루 맛인데.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무슨 맛이라고 안 쓰여 있다. ‘그린’은 녹차 맛, ‘핑크’는 딸기 맛을 내려 한 것 같은데 전부 그냥 조금 달달한 미숫가루 맛이다. 만약 특유의 고소하고 느끼한 맛이 싫으면 두유를 섞어 먹으면 된다. 두유의 강한 고소함이 밀스의 고소함까지 삼켜버린다.
1병당 칼로리는 약 400kcal 정도. 아침 9시 30분에 섭취하고 나서 무려 6시간을 견뎌냈다. 먹고 있을 땐 전혀 만족스럽지 않은데, 다 먹고 나면 뒤늦게 포만감이 느껴진다. 포만감 지속 시간은 평균 6시간 정도. 한 끼 식사로 충분하다 싶을 정도다.
처음 시작한 게 밀스라 가장 고통스러웠다.(랩노쉬를 만나기 전까진) 첫날 저녁까진 그럭저럭 버틸 만했으나 둘째 날 아침부터 눈앞이 노랗게 된다. 단식하는 것도 아니고 고작 이틀간 대체식량까지 먹어놓고 빌빌대고 있으니 어머니께서 혀를 쯧쯧 하고 차셨다. 무엇보다 힘든 건 아침이었다. 기력이 없어서인지 아침에 일어나는 게 너무 힘들다.
당 부족으로 머리가 안 돌아간다
기사를 쓰는 데 머리가 안 돌아간다. 이 기사가 이렇게까지 재미없는 가장 큰 이유다. 그래서 당 충전을 시작한 랩노쉬부터는 조금 재미있어진다. 조금만 참고 읽어 보자 제발.
방귀가 계속 나온다
곡류가 많은 밀스의 치명적인 부작용이다. 그런데 방귀도 힘이 없어서 자꾸 쉬익쉬익거리니까 주변에 있는 동료 에디터들이 화난 줄 알았을 거다. 다행히 냄새는 안 났다.
욕도 계속 나온다
배는 안 고픈데 힘이 너무 없다. 첫째 날 퇴근하고 저녁에 집에 들어가서 식탁 위에 놓인 빠알간 김치찜을 보고 낮게 욕을 읊조렸다. 한 손에 밀스 카카오 맛을 꼭 쥔 채.
– 맛과 허기를 바꾼 대체식사계의 메피스토
대체식사 데뷔전을 치른 밀스로 이틀을 버티고 나니 자신감이 붙었다. 가장 힘들었던 이틀째 저녁을 보내고 3일 차부터 새로운 식사인 ‘랩노쉬’를 시작했다. 참고로 이 제품은 현재 ‘올리O영’ 같은 드럭스토어에서도 낱개로 판매 중이라 꽤 인기가 많은 상품이라고.
이 역시 안에 분말이 들어 있는 페트병인데, 밀스보다 용량이 현저히 적다. 게다가 무난한 미숫가루 맛 위주였던 밀스와 달리 별의별 맛있는 맛이 죄다 있어서 입맛을 자극한다. 참고로 우유와 두유를 추천했던 밀스와 달리 랩노쉬는 물에 타 먹으라고만 안내하고 있다. 그래서 말 안 듣고 우유를 섞어 봤는데 물과 기름처럼 잘 안 섞인다. 그러니 제발 하라는 대로 하자.
밀스의 심심한 선식 맛에 질려서 시작부터 ‘쇼콜라’를 집어 들었다. 결과는 굉장했다! 정말 달콤하고 맛있는 초콜릿 맛이 난다. 사전 조사를 하다가 어떤 블로그에서 “이걸 맛있다고 한 사람은 1. 돈을 받았거나 2. 초코우유 맛을 모르는 사람이다”라고 혹평한 걸 봤는데, 하나 더 추가하고 싶다. 3. 밀스 세 끼를 먹어본 사람.
밀스와 달리 씹히는 알갱이가 전혀 없다.(그린 시리얼 제외) 그래서 물을 타고 흔들어서 마시는 데까지 5분도 안 걸린다. 목 넘김(?)이 훨씬 부드럽다. 게다가 맛 하나는 기똥차게 표현해서 자색고구마 맛은 정말 달콤한 자색고구마 맛이고, 요거트 맛은 정말 요거트 맛이 난다. 과장 좀 보태서 얼음 잔에 내서 빨대 꽂고 팔아도 손색이 없다.
아침 9시 반에 먹고 두 시간 만에 배고파졌다. 이걸 삼시 세끼 먹었다간 지옥을 맛본다. 맛있는 건 0칼로리라고 하더니 진짜 0칼로리인 거 아니냐 이거. 이틀째에는 위장의 융털이 지옥의 아귀처럼 울부짖고 있었다. 포만감 지속 시간은 길어야 4시간. 참고로 사이트에서도 대체 섭취량을 하루 한 병 정도로만 추천하고 있다.
밀스와는 다른 스트레스가 찾아온다. 맛이 무척 달고 실제 당 함유율도 밀스보다 훨씬 높아서 심리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덜 피곤한 건 맞다. 하지만 정말 미친 듯이 배가 고프다. 4일 차 저녁에 집에 왔을 때 내 몰골을 보신 어머니께서 혀를 쯧쯧 하고 차셨다. 대체 이걸 왜 시작했을까. 벌써 눈 앞에 보이는 개고생 길과 예상되는 무플 때문에 서러워서 눈물이 났다.
일시적인 부스터가 된다
열량은 1병 당 약 330~340kcal. 밀스가 허기만 채우는 식량이라면 랩노쉬는 ‘부스터’처럼 먹고 난 후 당 충전 효과를 바로 볼 수 있다. 이게 아침 식사 대용으로 좋다는 증거다. 멍때리는 아침을 활발하게 시작할 수 있다.
머릿속이 허기로 꽉 찬다
그러나 당 충전 효과도 굉장히 일시적인데, 섭취한 지 2시간 쯤 지나면 배가 너무 고파서 아무 생각이 안 난다. 특히 두 끼를 이걸로 때웠다면 저녁은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
잠이 잘 온다
그래서 배고파서 잠이 안 올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 기력이 없어서 눕자마자 꿀잠을 잔다. 잠이 너무 잘 와서 이대로 영원히 자는 게 아닐까 하는 공포에 시달린 적도 있었다.
– 물 건너온 대체식사의 끝판왕, 과연?
사실상 이번 대체식 체험기를 하게 된 이유이자 국제적으로 화제를 불러일으킨 진정한 미래형 식사. 주문 배송만 일주일이 걸렸다. 이틀 간 주린 배를 움켜쥐고 랩노쉬로 연명할 때도 ‘소일렌트 만큼은 괜찮을 거야’라며 자가 세뇌를 했다. 그리고 결국 묵직한 박스 하나가 사무실에 도착했다.
소일렌트는 분말형과 완성형이 있는데, 분말형의 경우 믹서를 따로 구매하지 않으면 먹기 불편해 완성(액상)형 페트병 12개 들이 1박스를 주문했다. 참고로 이 ‘소일렌트(soylent)’라는 이름은 해리 해리슨의 고전 SF <소일렌트 그린>에 등장하는 미래 식량 ‘소일렌트 그린’에서 따왔다.
미니멀리즘을 적용한 디자인이 SF나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풍겨서 멋지다. 그도 그럴 것이 2036년 보급형 식량에도 백종원이랑 김혜자 선생님 그려져 있으면 실망스러울 거야.
밀스와 랩노쉬를 먹어 본 나로서는 전혀 예상치 못한 맛이었다. 여태껏 먹어 본 대체식품 중 가장 한국적인 맛이다. 뭔가 특별하고 미국인이 좋아하는 달달한 맛을 예상했던 나로서는 꽤 충격적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진짜 맛있는 콩국수 콩 국물 맛이다. 여기에 소면 말아서 얼음 동동 띄우면 맛집으로 소문나겠는데?
즉, 랩노쉬처럼 달아서 입맛을 떨어뜨려 배고픔을 억제하는 맛이 아니다. 오히려 짭조름하고 고소한 맛이다. 억지로 씹어 보면 미세한 결정이 씹히는 게 느껴질 정도로 적당히 점성이 있다. 그러나 1/3 정도 남았을 때부터 콩물 특유의 비린내가 느껴지며 질리기 시작한다. 과연 이걸로 삼시 세끼를 버틸 수 있을 것인가. 그래도 셋 중 가장 음식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생각보다 배가 안 부르다. 오전 9시 반에 한 병을 마셨는데 불과 3시간 만에 배가 고파졌다. 병을 자세히 보니 일일 영양분의 20%만 함유(20% of daily nutrition)하고 있다네? 그럼 이걸 하루에 다섯 병 먹어야 하는데 이미 두 병째부터 느끼해서 질린다. 버스에서 먹다가 멀미+느끼함으로 토할 뻔했는데 그러면 내 위장에 남은 음식물(=소일렌트와 랩노쉬 약간)도 쏟아내야 하잖아. 아까워서 토하려다 꾹 참았다.
사실 랩노쉬로 지옥문 벨튀를 몇 번 하다 보니 사실 소일렌트는 충분히 버틸 만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이미 미래 식량은 개뿔 거의 반 단식이나 다름없는 빈약한 식량으로 4일을 버텨 왔다. 5일 차에 소일렌트 2병을 까고 저녁으로 3병째를 깠을 무렵 강한 현자타임이 왔다.
기력이 없다
이건 비단 소일렌트만의 이유는 아닐 거다. 대용식으로 6일간 버텼으니 몸이 남아날 리가 있겠나. 매일 내가 섭취한 평균 열량은 1,500kcal가 채 안 된다. 참고로 성인 남자 하루 영양 섭취 권장량은 2,200~2,300kcal다.
속이 니글거린다
이건 소일렌트만의 이유다. 아까 콩 국물처럼 고소하고 담백하다고 했는데, 여기에 이놈들이 뭔가 더 탄 것 같다. 절반 이상 마셨을 때부터 담백함은 비린내와 느끼함으로 바뀐다. 이건 다섯 끼니를 소일렌트로 먹어도 적응이 안 되더라. 이 기사를 쓰려고 틈틈이 휴대폰 메모장을 열어 일기를 썼는데 그걸 그대로 갖다 붙이자면
“속이 너무 쓰리다. 더 마실 자신이 없다. 과연 내일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내일 아침까지만 하고 그만두는 게 낫지 않을까?”
당시 느꼈던 간절함이 지금 이 순간 다시 느껴지며 소름이 돋는다. 일단 기력이 너무 없고 지쳐서 소일렌트고 랩노쉬고 밀스고 나발이고 다 내다 버리고 싶었다. 눈 아래에는 황달이 낄 정도였다. 당시 기억을 떠올려 보자면, 다음 날 아침에도 배가 고파 소일렌트를 벌컥벌컥 마셨다. 게다가 마지막 날은 토요일이었는데, 결국 그 날 저녁을 버티지 못했다.
사실 토요일 저녁 한 끼를 남기고 결국 미래식사를 종료해버렸다. 한 끼만 더 버티면 6일간의 여정을 채울 수 있는데 아니 내가 뭣 하러 누구 좋으라고. 사실 체험이 끝날 무렵엔 주변인들이 “당장은 보식해야 한다”며 다그쳤다. 빈속에 갑자기 음식이 들어가면 탈이 난다고.
하지만 그건 단식의 경우고, 나는 일일 권장량의 절반에 가까운 영양소를 매일 섭취했다. 마지막 날 저녁엔 홍대 근처에 있는 돼지갈빗집에 가서 소금구이를 2인분 흡입했다. 그리고 그 돼지갈빗집을 내 인생 고깃집 랭킹 3위 안에 넣기로 했다.
혹시나, 이 글을 보고 미래 식사를 체험하려는 당신에게 몇 가지 충고를 해 주고 싶다. 내가 체험한 미래 식사 섭취 방식은 굉장히 극단적이었기에…
#1. 될 수 있으면 하루 세끼를 전부 미래 식사로 먹지 마라
밀스, 랩노쉬 그 어느 대체식품도 하루 3끼를 전부 해결해 주지 못한다. 밀스 기준 최대 2끼, 랩노쉬의 경우 1끼 정도 섭취하고 나머지는 식사할 것을 추천한다. 소일렌트는 하루 5병 전부 먹으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데 토해서 역류성 식도염에 걸릴 가능성이 아주 높다.
#2. 기존 식사시간보다 늦게 먹어라
포만감이 오래 안 가기 때문이다. 저칼로리 식품으로 몸이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기존 식사시간보다 한 두 시간 정도 늦게 먹어야 24시간을 버틸 수 있다. 특히 저녁은 더더욱.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야식의 유혹에 빠지게 될 거다.
#3. 미래 식사에도 균형잡힌 보식이 중요하다
사실상 균형 잡힌 영양소라고 하지만, 미래 식사만으로 채우기 힘든 영양소들이 있다. 밀스와 랩노쉬의 경우 약간의 당류(탄수화물) 섭취를 권장하고 있으며, 특히 과일을 함께 섭취해 주는 게 좋다. 중간에 한라봉 한 조각을 먹었는데 아담과 이브가 왜 선악과에 매혹됐는지 알 것 같았다. 내가 아담이었으면 에덴동산에 선악과 농장을 차렸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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