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여름에 가야 맛이다. 습식 사우나에 들어온 듯 숨 쉬기가 약간 버겁고, 공기 중의 물방울을 만질 수 있을 것 같은 끈적끈적한 날씨야말로 여행하기 딱 좋다. 악명 높은 불지옥에서 발바닥이 뜨끈해지게 돌아다니다 보면, 맥주가 삼십 배쯤 맛있어지거든. 샤워하고, 에어컨 바람 아래에서 차가운 맥주 한 모금. 활자로만 봐도 흐뭇하지 아니한가.
그러나 꽤 오래도록 나는 완벽한 일본 여행을 할 수 없었다. ‘맥주형 위장’으로 태어나지 못한 탓이다. 맥주가 가장 맛있어질 밤이 되면, 1일 5끼를 들여놓느라 이미 위장에는 여백이 없었다. 한 캔을 말끔하게 정복하지 못하는 스스로를 원망하는 데도 지칠 무렵 드디어 만났다.
INFO + 호로요이 시즌 한정 스위트 섬머 사워. 약 3000 원
이름도 어찌하여 호로요이인가. 맥주와 용량이 그리 다르지 않은데, 과일 향에 취해 호로록 들이켜다 보면 바닥이 보여서일까. 분명 술임에도 탄산음료처럼 청량한 디자인에, 평소에는 손 떨려 못 먹는 고급 과일을 자연스러운 향으로나마 즐길 수 있다니. 매 계절 출시되는 한정판은 어떻고.
제조사인 산토리의 ‘덕후 조련술’에 인간 ATM이 되어갈 즈음, 작년부터 국내 마트나 편의점에서도 호로요이를 만날 수 있게 됐다. 원가와 비교하면 눈물이 나지만, 비행기 티켓값 대신이라고 여기면 마음이 좀 편하다. 재미있게도 출시 1년 만에 일본을 제외한 나라 중 한국이 호로요이 판매율 1위 국가로 등극했단다. 전국에 같은 마음을 품은 형제자매가 이리 많다니. 내심 든든할 따름이다.
어쨌든 올 여름도 어김없이 호로요이는 한정판으로 돌아왔다. 밀감을 주제로 한 아마나츠(甘夏). 직역하면 달콤한 여름이다. 국내에는 어쩐지 아이돌 앨범 이름 같은 ‘스위트 섬머 사워’로 소개 되었지만, 3도짜리 술의 마력은 그대로다. 시음 소감? 할 말은 이것뿐이다. “호로요이, 나 사는 동안 많이 버시오.”
[822호 – taste]
Photographer 김준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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