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삼 년간 내가 제일 많이 한 말은 아마 “바빠.” 일거다(세상에 뽀뽀도 아니고 예뻐도 아니고 바빠 라니. 진짜 멋없는 인생 아닌가…).

 

언젠가 거울을 보고 새삼 놀란 적도 있다. 실핏줄이 가득한 눈은 방금 운 사람처럼 벌겠고, 미간엔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아 보이는 주름이 선명했다. 그 상태로 두 계절을 보내고 몸에서도 마음에서도 이제 좀 쉴 때가 됐다는 신호를 보낼 즈음. 뒤늦은 선물처럼 한 달의 휴가가 주어졌다.

 

좀처럼 얻기 힘든 긴 휴가이니 유럽에 갈 수도 남미에 갈 수도 있었겠다. 하지만 내 발걸음이 향한 곳은 결국 제주였다. 특별한 목적이 없어도 계절에 한 번씩 드나드는 아지트 같은 섬.

 

워낙 익숙한 곳이라 꼭 보고 싶은 풍경이나 먹어야만 하는 음식이 있진 않았다. 다만 그냥 시간을 펑펑 쓰고 싶었다. 해야 할 일이 빼곡히 적힌 수첩을 들고 인색한 표정을 짓는 대신, 시간이 아주 많은 어른처럼 여유롭게 웃고 싶었다.

 

그리고 한달 동안 정말로 그렇게 살았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면서. 일기장은 뻔하지만 좋은 것들로 채워졌다. 바다, 산책, 나무, 노을, 그리고 별.

 

누군가 “매 순간은 영원히 돌아갈 수 없는 여행” 이라고 하더라. 실제로 한 사람의 인생에서 어떤 것도 한 번 이상 일어나지 않는다. 바다 앞 정자에서 돌고래를 기다리며 보낸 하루도, 쏟아지는 별을 보며 술에 취한 밤도 이제 기억 속에만 겨우 남아있는 것처럼. 2017년 초여름. 내 인생 최고의 계절은 그렇게 지나갔다.

 


 

 

바다도 좋고 산도 좋은 욕심쟁이를 위한 곳, 송악산 둘레길

제주는 생각보다 큰 섬이다. 그래서 서쪽 촌 동네에 머무는 뚜벅이 여행자는 버스 한 번 타면 닿을 수 있는 만만한 장소만 찾아갔다. 당연히 이미 가본 곳을 또 가는 일도 잦았다. 가장 자주 간 곳은 송악산 둘레길. 일단 ‘산’이라는 이름이 붙어있긴 한데 실제로는 경사가 완만한 언덕 같아서, 산책하듯 오르내릴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사실 여긴 굳이 올라가지 않더라도, 입구에 앉아 바다와 산을 한꺼번에 보는 것만으로 좋은 장소다. 가장 최근에 갔을 땐 비가 많이 와서, 바다랑 산이 물세례 맞는 풍경만 하염없이 보다 돌아왔다. 이상하게 그날의 송악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쉽니다, 날이 좋아서 수영하러 가요

제주 가게 중엔 문을 자주 열지 않는 곳이 많다. 여행 초반엔 큰맘 먹고 찾아간 카페가 닫혀 있어서 시무룩해하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후에 이 섬의 영업방침(?)에 적응하고 나서는, 되려 그들이 ‘쉬는 이유’에 관심이 갔다.

 

‘수영하러 가요’, ’낮잠 자러 감’, ‘친구 생일 파티 참석’. 닫힌 문 앞에 붙어 있는 각각의 사유들이 너무 사소하고 귀여워서 혼자 조용히 웃곤 했다. 그래, 이 사람들도 이러려고 제주에 온 거겠지.

 

 

 

우리 동네 모슬포

누가 나만의 제주 풍경이 뭐냐고 묻는다면 단숨에 떠오를 장면. 모슬포 대정오일장 앞 하얀 집에서 내 몫으로 주어졌던 공간. 정리되지 못한 채 널브러진 캐리어 위로 햇살이 떨어지는 걸 보면서 낮잠을 자곤 했다.

 

한 달 동안 머문 집이 있던 동네 모슬포는 화려하고 예쁜 여행지는 아니다. 옛날 제주 사람들은 유독 바람이 세게 부는 모슬포를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는 뜻으로 ‘못살포’라 불렀다고. 그래도 나는 바다가 가까이 있어서, 노을이 근사해서, 바람이 나뭇잎 흔드는 소리를 또렷하게 들을 수 있어서 이 동네가 좋았다.

 

솔직히 말하면 제주에 ‘우리 동네’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생겼다는 사실에 마냥 들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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