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친구의 딸이 서울에 취업을 하게 됐는데, 일주일 후에 바로 출근을 해야 하는 바람에 그때까지 묵을 곳이 없다고 했다.
“집 구할 때까지만 너네 집에 데리고 있으면 안 돼?”
순식간에 머릿속이 시끄러워졌다. 온갖 살림살이가 방만하게 널브러져 있고 고양이털이 휘휘 날아다니는 이 작은 집에, 두어 번 스치듯 본 게 다인 엄마 친구 딸이 들어와서 씻고, 자고, 출퇴근하고, 둘이 얼굴을 계속 마주친다고? 닭살이 돋았다.
엄마는 전화기 너머 기함한 내 표정을 읽었는지 다른 거 해줄 필요 없고 ‘진짜 잠만 재워주면 된다’고 강조했다. 말이 쉽지. 어린 친구가 내 집에서 밥을 먹든 말든 방치하면 퍽이나 마음이 편하겠다. 그렇다고 살갑게 챙겨주기엔 깜냥이 안 되고, 내 낯은 너무 많은 인간을 가리며, 그래, 포장지 다 벗겨놓고 말하자면 부담스럽고 귀찮다.
그래도 그렇게 말하는 건 인간적이지 못하니까 대신 몇 가지 핑계를 늘어놓기로 했다. 걔가 고양이 싫어할 수도 있잖아. 알러지 있으면 어떡해. 우리 집 지하철역이랑 너무 멀어서 다니기 불편할걸? 엄마도 알겠지만, 내 방 너무 더러워서 부끄러운데. 퇴근하고 오면 피곤해서 걔를 챙겨주기도 힘들 것 같고…. 주저리주저리 쏟아내는 걸 한참 듣고 있던 엄마가 툭 말을 끊었다. “너 서울 처음 올라갔을 때를 생각해봐. 생각해보고, 연락 줘.”
뒷맛이 찜찜한 통화.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다. 서울 처음 올라갔을 때의 기억은 아니지만, 면접 전날의 신림동 자취방이 떠올랐다. 졸업하고 이렇다 할 대책 없이 토익 공부만 하다가, 집 계약이 끝나는 바람에 고향에 내려가 있던 참이었다.
서울에 있을 땐 일이 더럽게 안 풀리더니, 고향에 내려간 지 한 달쯤 됐을 때 가고 싶었던 회사에서 최종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서울에 가려면 4시간이나 걸리므로, 면접 전날 미리 올라가 하룻밤 자야 했다. 회사 근처에 숙소를 알아봐야겠다는 내 말에, 전 직장에서 친해진 J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뭐 하러 돈 쓰노? 니 돈도 없는데. 집이 좀 좁고 광화문에서 멀긴 한데, 니만 괜찮으면 언제든 와서 자도 된다.”
다음 날 도착한 J 언니의 집은 신림동에 있는 반지하 원룸이었다. 체구가 작은 언니가 들어가도 꽉 차 보이는 집에 키 크고 한 덩치 하는 나까지 발을 들이자 산소마저 부족해지는 느낌이었다. 언니는 손을 쫙 뻗으면 가려질 것 같은 작은 공간에 3분의 2를 내게 내어주었다. 아무리 괜찮다고 자리를 무르려 해도, 내일 면접 보니까 편하게 자야 한다며 고집을 꺾지 않았다. 길치인 내가 헷갈릴까봐 버스 타러 가는 길을 몇 번이나 알려준 것도 모자라, 내일 아침에 꼭 밥을 챙겨 먹고 가라며 집 근처에 일찍 여는 밥집까지 알아봐주었다.
주인보다 넓은 자리를 차지하고 누워 있는 게 염치없고, 괜히 언니를 불편하게 만든 것 같아서 울적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가슴이 찌르르 떨릴 만큼 좋기도 했다. 누군가에게 이토록 환대 받는다는 사실이. 내가 아주 귀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면접장에 가는 내내 그 느낌을 떠올리고 또 떠올렸다.
언니는 이렇게 말할 수도 있었을 거다. 나도 재워주고 싶은데 집이 너무 좁네. 너 광화문에서 면접 본다며. 우리 집은 너무 멀어서. 지하철역 가는 길도 복잡해서 아침에 찾아가기 힘들 거야. 어디서 많이 본 말들이다. 언니는 이 말을 하는 대신, 자기의 시간과 공간을 내어주길 택했다. 부담스럽고 귀찮았겠지만, 기꺼이. 그에 비하면 나는…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순전히 J 언니에 대한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그 친구 오라고 하세요. 근데, 웬만하면 일주일 안에 집 구했으면 좋겠어.” 당연하지! 호들갑을 떨며 전화를 끊은 엄마가 저녁에 더 좋은 소식을 물어다 주었다. “서울에 아는 부동산이 있어서 집을 구했대. 내일 올라가서 계약한대!” 100%의 진심으로 외칠 수 있었다. “진짜 잘 됐다(너에게도, 나에게도)!”
[823호 – 독립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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