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쓰는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써요?”라는 물음을 자주 마주하듯이, 광고인들에게는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질문이 끊임없이 따라붙는다.

 

돈키호테 프로젝트는 이에 대한 TBWA 0팀의 대답이다. 창의성은 약간의 발상력과 대부분의 ‘돈키호테력(이라 쓰고 미친 실행력이라 읽는다)’으로 이루어진다는. 이 생각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기 위해 ‘돈키호테력’으로 역사를 바꾼 인물들에 대한 열 두 편의 짧은 다큐를 만들었고, 두 달 전『안녕 돈키호테』라는 책으로 엮어냈다.

 

올레길부터 고흐까지, 시대와 국가를 넘나드는 크리에이터들의 이야기에 몰두하다 보니, 역으로 지금 여기 현재를 살고 있는 돈키호테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TBWA Korea 0팀 이태호 김재호 김민철

 

 

 

Editor : 『안녕 돈키호테』 책날개에 나온 TBWA 0팀에 대한 소개는 이렇습니다. ‘광고 제작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각 분야의 전문 인력들이 하나로 모인 컨버전스 팀.’ 그중 돈키호테 프로젝트가 가장 눈에 띄는 성과라고 들었어요.

 

민철 : 지금은 다 다른 팀으로 흩어졌어요. 약 2년 반 동안 같은 팀에서 일했는데, 이 멤버로 만든 유작인 셈이죠.

 

E : 0팀의 목표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저지르는 것’이라고 하던데요. 클라이언트의 요구에 의해서가 아닌, 오리지널 콘텐츠 ‘돈키호테 프로젝트’를 만든 것도 어처구니없는 일의 일환일까요?

 

민철 :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드는 건 사실 요즘 모든 광고 회사가 관심을 가지는 일이에요.

 

재호 : 춘추전국 시대가 시작됐잖아요. 크리에이터들이 도처에 널려 있고, 모두가 자기 콘텐츠를 만들어서 다양한 매체에 올리고.

 

민철 : 그런 시대이다 보니, 뭐가 길인지는 모르지만 해보는 거예요. 우선 해보고, 이게 맞는지 아닌지 타진해보는 거죠. 그 사이에 우리에게 다른 근육이 생길 수도 있고요.

 

E : 『안녕 돈키호테』의 서문을 보면, 광고인이기 때문에 창의성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대답해야 했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많은 이들이 ‘광고인=크리에이티브’라는 공식을 믿기 때문이겠죠. 이를 뒤집어보면 애당초 창의적인 사람만이 광고인이 될 수 있다는 소리처럼 들리기도 하는데요. 세 분의 경우는 어땠나요?

 

재호 : 그냥 여기저기에 관심이 많은 사람인데, 비슷한 일만 계속 하면서 살 순 없을 것 같았어요. 잘은 모르지만 왠지 우유 광고를 하면 우유 회사를 다니는 것 같고, TV 광고를 하면 TV 회사를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재밌게 오래 다닐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광고 회사에 지원했어요. 자신에 대한 믿음은 별로 없었고요.(웃음)

 

태호 : 그리고 처음엔 크리에이티브는커녕 시키는 일도 제대로 못 하기 때문에…. 하하.

 

01 어떻게 하면 창의적 인간이 될 수 있느냐는 오랜 질문들에 대한 TBWA 0팀의 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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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 말 나온 김에 여쭤볼게요. 초짜 광고인 시절은 어떠셨나요?

 

민철 : 입사 한달쯤 됐나? 그만둬야겠다고 생각했어요.

 

E : 왜요?

 

민철 :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는지 조사 말곤 하나도 모르겠더라고요. 상식도 부족했고, 내가 아는 것들은 다 책 속에만 있어서 세상이 진짜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어요. 광고 아이디어를 내려면 사람들이 어디 가서 뭘 먹고 뭐하고 노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따라가기가 너무 벅차더라고요. 3년 차쯤 돼서야 익숙해졌어요.

 

태호 : 전 이제 4년 차인데요.

 

민철 : 핏덩이죠.(웃음)

 

태호 : 처음에 너무 어렵고, 내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많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쉴 때도 책을 읽거나 영화, 드라마를 봐야 한다는 압박감이 심했어요. 쉬어도 마음이 계속 불편한 거죠. 지금은 오히려 쉴 땐 진짜 쉬어야 더 도움이 된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아요.

 

02 전력투구와 셀프 칭찬의 달인 김민철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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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 “창의력을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가장 많이 나오는 답변이 책 많이 읽고, 이것저것 많이 보라는 거잖아요. 그런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그냥 많이 보면 되는 건가, 막막한 게 사실이에요. 양질의 인풋을 쌓는 구체적인 방법을 여쭤보고 싶어요.

 

민철 : 책 많이 읽으면 다 카피라이터가 되나? 그건 명백히 아니에요. 저는 어떤 콘텐츠를 볼 때 ‘왜 좋았는지’ 생각을 많이 해요. 왜 저 장면이 좋았지? 저 인물의 행동에 유독 끌리는 이유는 뭘까? 한 번 더 생각해서 기록하면 내 것이 돼서 쉽게 날아가지 않더라고요. 여행기를 쓸 때도 ‘오늘 어디서 밥을 먹었고~’ 이런 서술보다 ‘왜 내가’ 좋았는지, 싫었는지, 위로 받았는지에 대해 한 번만 더 질문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E : 오, 진짜 좋은 방법이네요.

 

재호 : 박웅현 CCO(크리에이티브 대표)님도 책을 읽을 때 본인에게 울림을 주는 문장에 밑줄 치고, 타이핑을 또 한 번 하시더라고요. 타이핑하면서 다시 한 번 보고, 언젠가 그 구절이 생각나면 또 보면서 구체화하신다고. 나 뭐 읽었어. 끝! 하는 게 가장 헛헛한 지식인 것 같아요.

 

태호 : 전 좋아하는 게 생기면 ‘나무위키’에 들어가요. 깊이 있게 파고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기억에 많이 남거든요.

 

E : 요즘은 뭐에 꽂혀 있으세요?

 

태호 : 80-90년대 일본에서 유행했던 ‘시티팝’이라는 음악 장르가 있어요. 최근 빈지노 앨범 타이틀곡이 너무 좋아서 찾아보니까 ‘시티팝’이라고 하더라고요. 일본에서 작곡했던 노래를 샘플링한 거였고, 우리나라 트로트랑 약간 비슷한 느낌도 있고. 요새 나무위키 따라 계속 파보고 있어요.

 

민철 : 너는 나무위키가 잘 맞는 사람이구나.

 

태호 : 네. 근데 거기에 글을 쓰진 않는답니다.

 

03 나무위키와 숟가락 잘 얹기의 달인 이태호 카피라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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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 약간 찔리신 것 같은….(웃음) 그러면 반대로 이것저것 간만 보고 쉽게 포기하는 저 같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살면서 뭔가를 깊이 파본 적이 거의 없는데.

 

민철 : 계속 간을 봐야죠. 전 여러 가지 언어를 손만 대고 다 그만둔 전력이 있어요. 두 달 전력투구하고 깨닫죠. 아, 난 중국어는 안 되겠다. 독일어도 안 되겠다. 다 안 되겠다.(웃음) 그래도 그 과정에 대해 옳았다고 스스로 믿어주려고 해요. “그래도 해봤잖아. 됐어.” 해 봐야 이게 나한테 맞는지 안 맞는지 알죠.

 

재호 : 완전 동의. 운동을 3년 정도 꾸준히 하고 있는데,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내가 과연 운동이 좋아서 계속 하는 걸까? 꼭 운동이 아니더라도 몰입하는 순간을 좋아하기 때문에 하는 것 같다는 결론이 나더라고요. A를 해볼까, B를 해볼까 고민하는 건 바깥의 대상을 주어로 두는 일인데, ‘내’가 뭘 좋아하는지 깨닫고 나면 그냥 계속 하게 돼요. 근데 그게 뭔지 깨닫는 게 쉽나요. 계속 간을 보면서 알아나가는 과정이 필요한 이유예요.

 

E : 다시 ‘크리에이티브’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오면요. 요즘 인터넷에 창의적인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생각지도 못했던 드립이나 짤을 보면 콘텐츠 제작자로서 막 기가 죽기도 하고요. 직업인과 비직업인의 경계가 매우 모호한 상황에서 ‘크리에이티브’를 업으로 삼는 사람으로서 어떤 노력을 하시나요?

 

재호 : 남의 말을 잘 들으려고 노력합니다. 내 아이디어만 좋다는 생각이 제일 무서운 것 같아요. 그럼 아이디어 자체도 발전되지 않고, 자기 자신 역시 한발짝도 못 나아가요. 우주에 완전히 새로운 방법은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귀를 열어놓아야죠.

 

04 세상에 뭘 하기 늦은 나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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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 주변에 아이디어가 기똥찬 분들이 되게 많을 것 같은데, 열등감을 느낀 적은 없으세요?

 

민철 : 엄청 많죠. 회의 시간마다 그래요. 누가 카피를 내놨을 때 내 것보다 좋으면 패배감을 느끼죠. 다만, ‘난 정말 쓰레기야’ 자괴감에 빠지지 않고 소소한 패배감을 발판 삼아 계속 해나가는 것 같아요. 나도 다음에 더 잘해야지, 다짐하면서요. 잘하는 사람들이 옆에 있으면 그런 점에서 힘이 돼요.

 

E : 좀 센 패배감이 밀려올 때는 어떻게 극복하세요?

 

민철 : 술?(웃음)

 

태호 : 빨리 숟가락을 얹는 게 좋은 방법이에요. 이게 좋은데, 왜 좋은지 밀어주는 거죠. 얘기하다 보면 옆 사람이 숟가락을 얹고, 또 얹어요. 한 단어만 바뀌어도 좀 더 좋아지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렇게 회의가 끝나면 ‘그래도 뭔가 했어’ 정신승리를 할 수 있어요.

 

민철 : 어차피 사람들은 몰라요. 이걸 누가 썼는지. 하하.

 

E : 여러 명이 하나의 결과물을 만들다 보면 과정이 굉장히 힘들지 않나요? 대학 팀플도 갈등이 끊이질 않는데, 톡톡 튀는 사람들이 모여서 의견을 개진하다 보면 많이 부딪칠 것 같아요.

 

민철 : 그렇죠. 다들 자기 것이 최고라고 내밀면, 박웅현 CCO님이 길을 잡아주세요. 모두의 아이디어를 연차 따지지 않고 보시고, 인턴이 자기도 대단한 건지 모르고 써온 한 단어나 문장을 잡아서 “이 부분 괜찮다”고 말해주시죠. “이거랑 이거 되게 괜찮다. 합쳐볼까, 우리?” 굉장히 자유로운 분위기로 서로 아이디어를 내고, 같이 해나가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세요.

 

05 돈키호테 프로젝트의 뼈대를 보여주는 박웅현 CCO의 메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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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 그럼 만족스러운 콘텐츠가 나왔는데 막상 반응은 별로 없을 땐 어떠세요? 『안녕 돈키호테』에서도 고흐의 사례가 나오지만, 결과물이 인정받았기 때문에 창의적이라고 규정되는 건 아닌가 의문이 들 때도 있거든요.

 

민철 : 광고 한 편 제작하는 데 스태프 백 명 정도가 달라붙는데, 아무도 모르는 광고를 만들 때가 되게 많아요. 어디 가서 말하면 “그런 게 있었나?” 이런 반응이 돌아오는.(웃음) 그래도 그런 것에 크게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하죠. 베스트셀러가 꼭 좋은 책은 아니잖아요. 광고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재호 : 어떤 콘텐츠는 노출이 많이 되다보니 콘텐츠의 질과 상관 없이 회자가 되고, 익숙해지는 경우가 있어요. 그러다 보면 성공한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죠. 세상이 인정해주는 평가도 의미 있지만, 우리가 일을 하면서 얼마나 만족했는지를 우선으로 하려고 해요.

 

06 경청과 몰입의 달인 김재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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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크리에이티브를 기르는 것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안녕 돈키호테』에 나오는 수많은 창의력의 덕목 중 어떤 게 제일이라고 보세요?

 

민철 : 잡지 「뿌리 깊은 나무」는 주변에서 안 된다고 하는 모든 것들을 소신껏 밀고 나갔어요. 제일 어려운 일이지만, 남들의 반대에 주저앉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길로 나아가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차피 뭘 하든 반대하는 사람은 늘 있으니까요.

 

재호 : 그렇게 자기가 생각하는 길로 가되, 끝까지 했으면 좋겠어요. 중간에 포기하면 아무 것도 아니게 되니까요. 겸재 정선에 대해 처음 조사를 했을 땐 얕은 지식으로, 모두가 중국 산수화를 그릴 때 한국의 풍경을 그린 창의적인 화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선이 진짜 대단했던 건 그냥 그린 거예요. 남들과 다른 걸 그려야겠다는 위대한 생각을 한 게 아니라, 금강산을 가봤더니 좋고, 좋아서 계속 그렸어요. 그렇게 끊임없이 그린 덕에 거장이 될 수 있었고요. 뭔가를 이룬 사람들의 가장 대단한 점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는 사실이에요.

 

민철 : 사람들은 창의력을 ‘아이디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가장 큰 창의력은 실행하는 거예요. 아주 작은 거라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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