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이런 일이 있었다. 오랜만에 동기들끼리 만나기로 했고, 사람이 3명 이상 모이면 늘 그렇듯, 제시간에 도착한 사람과 조금 늦는 사람, 두 무리로 나뉘었다. 당시 나는 전자여서 먼저 도착한 친구들과 커피를 마시고 있었는데, 마지막으로 나타난 A가 씩씩거리면서 들어왔다. “x발 택시기사들 다 미친 거 아니야? 길을 모르면 택시를 때려치우던가!”

 

그 말을 끝으로 전국의 택시기사를 싸잡아 비난하는 대화가 시작됐다. 자리에 모인 모두가 택시기사에 대한 원한을 앞다투어 꺼냈다. 그 자리에 아버지가 택시 운전하시는 친구가 있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친구에게 상처를 줬다는 사실에 모두가 미안했지만, 이미 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우리는 일부만 보고 전부를 아는 것처럼 이야기한다 

어렸을 때 <논리야 놀자>라는 책을 통해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를 배웠다. 자기가 경험한 극히 일부의 사실을 바탕으로 성급한 결론을 내려버리는 오류. 그런데 살면서 이 오류가 발생하는 상황을 자주 목격하게 됐다. “오늘 또 승차거부 당했어. 택시기사들 다 너무 싫지 않아?”, “며칠전에 카페에 갔는데 세상에 그 안에서 기저귀를 갈더라. 하여간 맘충들…”

 

문제는 이렇게 특정 그룹에 대한 지배적인 편견이 생기면, 잘못하지 않은 나머지 구성원들까지 괜히 위축되고 상처받는다는 거다. 나와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악질인 양 묘사하던 택시기사가, 실은 누구보다 열심히 사시는 친구의 아버지라는 걸 알기만 해도. 내가 경험한 것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인정하기만 해도. 우리는 서로에게 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을 텐데… 본의 아니게. 몰라서. 타인에게 상처 주는 일이 줄어들길 바라며. 택시 운전하는 아빠를 둔 딸 3명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택시기사 욕하는 사람이 엄청 많더라. 그런 말 들을 때마다 마음이 따끔따끔했던 것 같아”

-김철호 기사님의 딸 김슬

 

아빠랑 어떤 부녀 사이야?
솔직히 그렇게 살가운 사이는 아니야. 아빠랑 나랑 성격이 비슷해. 무뚝뚝하고 애정 표현 잘 안 하고. 만나면 맨날 돈 없다, 힘들다, 한탄만 하니까 아빠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어. 근데 또 엄청 츤데레라서 내가 아침에 늦어서 허겁지겁 밥 먹고 있으면 뒤에 와서 말없이 머리 말려주고 그런다? 밉다가도 그런 생각하면 ‘아빠가 날 사랑하긴 하는구나’싶어서 애틋해.

 

일하는 걸 많이 힘들어 하시는 구나.
“아빠가 여덟 시간 차 몰아서 오늘 얼마 번 줄 아냐?”는 말을 어렸을 때부터 자주 들었어. 넌 꼭 사무실에 앉아서 시원한 에어컨 맞으면서 일하라는 말도. 안 그러면 사람들이 무시하고 나중에 몸도 상한다고. 그런 얘길 할 때마다 ‘우리 아빠는 왜 이렇게 불행할까’, ‘돈 버는 일은 너무 불행한 일이구나’ 하고 생각했어.

 

어렸을 땐 택시 탈 일이 거의 없잖아. 근데 대학생이 되면서 택시를 자주 타게 되니까. 아빠가 하는 일에 대한 생각이 좀 바뀌지 않았어?
나는 사실 아빠가 택시 하는 거 한 번도 부끄러워했던 적이 없어. 목포에 있을 때는 아빠가 매일 아침 학교에 데려다줬었는데, 오히려 좋았어. 그리고 친구들도 우리 아빠가 택시 하는 거 다 알아서, 적어도 내 앞에서 택시기사 욕하는 사람은 없었고. 근데 서울에 오니까 택시기사 욕하는 사람이 엄청 많더라고. 친구들부터도 그렇고. 그런 말 들을 때마다 뭔가 마음이 따끔따끔했어.

 

아빠한테 그런 얘기 해 본 적 있어?
우리 그런 말 하는 사이 아니라니까. (웃음) 이런 소리는 해. 내가 승객으로 택시 타면서 불편했던 것들. 예를 들어서 나는 택시기사들이 다짜고짜 반말 하고 짜증내는 게 싫거든. 그 얘기 해주면서 아빠는 그러지 말라고 하지. 그러면 막 결백한 척해. “나는 안 그래야~”

 

반대로 택시 기사님한테 못되게 구는 손님도 많잖아.
평소엔 나한테 미주알고주알 손님들 이야길 하진 않는데, 가끔 엄청 화난 날은 얘기 해. 젊은 여자가 탔는데 “야”라고 하더라, 이런거. 그런 애기 들을 때 속상하지.

 

택시타면 아빠 생각 나고 그러나?
서울에서 탈 때는 아닌데, 광주나 목포에서 택시 탈 때는 생각나. 아빠랑 말투 비슷한 아저씨들이 정겹게 말 걸고 그러면 괜히 아련해지지. 그래서 아빠한테 카톡 했다가 읽씹 당하고 그래.

 


“우리 아빠도 택시 운전하니까 너무 막말하지 마세요”

-이남현 기사님의 딸, 이연제

 

 

아버지와 어떤 사이신가요?
제가 큰딸이라서 사랑을 많이 받으면서 자랐어요. 어릴 땐 같이 피서도 가고, 주말마다 놀러도 다녔는데… 요즘은 많이 멀어졌어요. 생활 패턴이 달라져서 마주칠 일 자체가 없어요. 저는 아침에 출근해서 밤에 오는데, 아버지는 오후 1시에 나가셔서 새벽 3~4시에 집에 오시거든요. 어쩌다 만나면 “왔냐?”, “네, 쉬세요” 하는 정도.

 

아버지가 어렸을 때부터 택시 운전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택시를 탈 일이 거의 없었던 어린 시절과, 성인이 돼서 일상적으로 택시를 타게 된 지금. 아버지의 직업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진 않았나요?
저랑 동생이랑 좀 생각이 다른데, 저는 어릴 때부터 아빠가 택시 하는 게 너무 좋았거든요. 어디 먼데 가고 싶은데 있으면 아빠가 다 데려다주니까. 요즘도 택시가 안 잡히면 아빠한테 연락해요. 그럼 아빠가 구시렁거리면서도 데리러 오시거든요. 근데 동생은 어린 마음에 아빠가 부끄러웠나 봐요. 한번은 친구랑 걸어가고 있는 동생을 아빠가 본 거에요. 그래서 창문을 내리고 불렀는데 동생이 모른 척 했나 봐요. 그때 아빠가 많이 속상해하셨어요.

 

사람들이 택시 운전기사에게 가지는 편견들이 있잖아요. 너무 쉽게 무시하고 비난하고…
이런 적이 있었어요. 소개팅했는데 상대가 굉장히 맘에 드는 거예요. 그래서 다시 만났는데, 차를 가지고 나왔더라고요. 데이트 잘하고 차로 저를 집에 데려다주는 길이었는데, 택시 한 대가 급하게 끼어들었어요. 그랬더니 그분이 “운전하는 꼴 하고는… 택시 기사들 다 미친 것 같지 않아요?”하고 물었고, 저는 “저 택시가 급하게 끼어들어서 잘못하긴 했네요. 근데 저희 아버지도 택시 기사니까 너무 막말하지 마세요”라고 했어요. 근데 10분도 안 돼서 다른 택시가 끼어 들었는데 또 욕을 하더라고요. 그날 이후 조용히 연락을 끊었던 기억이 있네요.

 

정말 친하더라도, 아버지의 직업을 모르는 친구의 경우에는, 연제님 앞에서 택시 기사 욕을 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친구들이 난폭운전이나 승차거부를 당하고 와서 심한 욕을 할 때가 종종 있죠. 근데 저도 다른 택시에서 당하면(?) 엄청 욕하거든요. 그래도 택시기사들을 싸잡아 욕하진 않아요. 그럴땐 우리 아버지는 어디 가서 안 그랬으면…하는 생각을 해요.

 

“아버지는 어디 가서 그러지 마세요”라고 이야기해 본 적 있으세요?
아뇨. 아버지가 손님이랑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시는 것 같거든요? 집에 와서 “저번에 기자를 태웠는데 말이야~, 기업 임원을 태웠는데 말이야~”이런 소리를 자주 하는 것을 미루어 봤을 때. (웃음) 근데 보통 손님들이 말 많이 거는 기사를 싫어하잖아요. 귀찮아하고. 근데 그 이야기를 못 하겠더라고요. 하루에 열 시간 넘게, 좁은 의자에, 혼자 앉아 계시는데. 얼마나 심심하겠어요. 그래서 손님한테 말을 붙이는 걸 텐데, 그것마저 하지마시라고 할 수가 없네요.

 


“저는, 나중에 꼭 아빠 같은 남자 만나고 싶어요”

-한명훈 기사님의 딸 한화수

 

 

아버지랑 친한 편이세요?
저는 외동딸이자 늦둥이라서 아빠의 사랑을 많이 받았고, 어렸을 때부터 친구처럼 지냈어요. 같이 여행도 꾸준히 가고, 평상시에도 하루에 1~2시간은 이야기해요.

 

생활 패턴이 달라서 함께 시간을 보내기 어려울 텐데… 아버지가 가정적이신가 봐요.
제가 소풍을 갈 때면 항상 아빠가 김밥을 싸 주셨어요. 일 끝나고 밤늦게 들어와서 피곤하셨을 텐데… 요즘도 집안일은 아빠가 반 이상 해요.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도 나중에 아빠같이 가정적인 남자를 만나고 싶다’라고 생각해 왔어요.

 

대화를 많이 하면, 일하면서 힘든 점에 대해서도 종종 이야기하시겠어요.
직업 특성상 사람을 많이 만나니까 무례한 손님 때문에 괴로운 경우가 잦으시대요. 예를 들어 손님이 목적지까지 빨리 가달라고 했는데, 도로 상황상 그 요청을 못 들어줄 수도 있잖아요. 그게 택시 기사 잘못도 아니고요. 그런데도 막 아빠한테 화를 내는 사람들이 있대요. 그런 이야기 들으면 좀 속상해요.

 

올해 대학생이 되셨잖아요. 어렸을 때와 달리 일상 속에서 택시를 탈 일이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 친구들이 아버님 직업을 모르고 화수님 앞에서 택시기사를 욕하는 경우도 있지 않나요?
그럴 때는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해요. 너무 정색하면 서로 민망해지니까 농담을 좀 섞어 가면서. “야~우리 아빠도 택시 운전하신다. 너무 그러지 마.”

 

사람들이 택시기사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너무 쉽게 비난하는 것 같기도 해요.

무의식적으로 택시기사를 무시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해요. 한번은 길을 가는데 어떤 아줌마가 초등학생 딸이랑 대화하면서 걸어가고 있었어요. 그리고 옆에는 택시가 손님 태우려고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그 아줌마가 택시를 가리키면서 “공부 안 하면 저런 직업 가지면서 힘들게 사는 거야”라고 말하는데 화가 났어요. 저희 아버지는 이 일로 가족을 책임지고, 지금처럼 지낼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일하시는데. 왜 저렇게 말하지?

 

그런 사회적인 편견에 대해 아버지와 이야기 나눠본 적도 있으세요?
네. 종종 이야기해요. 그 주제로 이야기할 때마다 아빠도 저도 아주 속상하고요. 뻔한 이야기지만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는 인식과, 서로를 배려하는 마음이 없으면 해결될 수 없는 문제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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