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눈을 뜨면 곧바로 스마트폰을 켠다. 화장 할 때도 틈 틈이 날씨를 검색하고, 포털 사이트 메인에 걸린 자극적인 제 목에 낚여 기사 몇 개를 대충 읽는다. 지하철에 몸을 실은 후엔 더욱 본격적으로 스마트폰에 시선을 고정시킨다. 회사까지는 20 분 남짓. 그리 대단하지도, 새롭지도 않은 내용들을 엄지손가락으 로 슥슥 넘기느라 내려야 할 역을 지나칠 뻔한 적도 몇 번 있다.

 

가끔 너무 생각 없이 살고 있지 않나, ‘현타’가 오는 날엔 핸드폰 대 신 책을 먼저 눈앞에 갖다 댄다. 회사에서 하루 종일 컴퓨터를 쳐 다보고 집에 가는 길에도 마찬가지다.분명히 벌겋게 충혈돼 있는데. 내 눈은 대체 무엇에 그렇게 허기져 있는 걸까.

 

 

 

 

<효리네 민박>을 보며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이효리의 쿨함도, 그들의 부부애도 아닌 아이유가 참 ‘가만히’ 잘 있는다는 사 실이었다. 꾸벅꾸벅 조는 것도 아니고, 분명 초점이 살아 있 는데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가만히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다니. 그 모습이 대단해 보이는 나를 느낀 순간, 다시 한 번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나는 언제부터 멍 때리는 법을 잊었을까? 다행히(?) 그게 나뿐만은 아닌 듯하다. 오죽하면 잔디밭에 앉아 가 장 오랜 시간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이 이기는 ‘멍 때리기 대회’가 생 겼을까. 심장박동을 평온하게 유지하되 졸아선 안 된다고 하니 꽤 고난이도다. 내가 그 대회에 나간다면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눈을 감고 그냥 잠을 청해버릴 것 같다. (매년 봄에 개최되는데, 참고로 작 년 우승자는 우리가 아는 그 ‘크러쉬’다.)

 

모두가 포화 상태로 보고, 듣고, 말하다 보니 ‘멍 때리기’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목소리도 많다. 미국의 신경학자 마커스 라이클 박사는 뇌 가 쉴 때만 작동하는 특정 부위가 있다고 밝혀냈다. 이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 영역’이 가동될 때 그동안 받아들인 정보를 잘 저장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다. ‘번 아웃 증후군’에 걸 린 사람들이 일을 할 때 자꾸 이것저것 놓치는 이유도 뇌가 쉬어주 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라고. 내 얘기다. 사실 요즘 빠릿빠릿한 판단 과 정리가 쉽지 않다. 예전엔 뇌가 ‘팽팽’까진 아니더라도 ‘패앵’ 정도 로는 돌아갔는데, 요즘에는 ‘패애애애애애앵’ 하다 멈춰버릴 듯 위 태롭다. 하지만 내가 가장 무서운 것은 따로 있다.

 

 

 

 

올 여름휴가 때, 바로 앞에 바다가 보이는 전철역에 혼자 30분 정도 앉아 있을 기회가 있었다. 3분쯤은 바다를 응시하며 가만히 앉아있 었지만, 이내 심심함을 못 견디고 수평선처럼 펼쳐진 바닷가를 자전 거 타고 지나가는 사람들을 동영상으로 찍었다. 로밍을 안 해서 동 영상이었지, 인터넷이 됐다면 검색 창을 켰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1 분 30초 정도의 영상을 촬영한 후, 별거 없는 동영상을 몇 번이나 돌 려봤다. 인이 박힌 행동이었다. 오른손에 핸드폰을 들고 고개를 살 짝 기울여 숙이고 눈을 떼지 않는. 뚫어지게 핸드폰 화면을 쳐다보 다가 고개를 든 순간. 눈앞에 바다가 있는데 핸드폰에 코를 박고 바 다 영상을 보고 있는 내가 참 우습기도 하더라. 가까이 있는 자극에 눈이 팔려 저 앞의 바다가 얼마나 예쁜 색으로 반짝이는지 깨닫지 못하는 사람. 그런 바보가 되는 게 내게는 세상 에서 제일 두려운 일이다.


[825호 – 독립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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