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무게 

송윤섭

 

지난주 토요일은 생일이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 자소서를 쓰겠다며 책상 앞에 앉았지만, 손은 자꾸만 스마트폰으로 향했다. 카톡,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을 번갈아 들어갔지만, 알림은 조용했다. 가끔 오는 축하 메시지도 ‘술 조금만 먹으라’는 말들뿐, ‘술 같이 마시자’는 말은 없었다. 결국 입이 삐죽 튀어나온 채 집에 돌아와, “생일은 가족과 같이 보내야 한다”는 티 나는 거짓말을 하며 마무리한 밤이었다.

 

이번 여름도 역시 쏜살같았다. 적(籍)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적(敵)이었다. 정해진 일과 따위는 없으니 방탕한 삶 자체였다. 해가 중천에 떠야 일어나서 부리나케 도서관으로 달려가, 에어컨 바람 맞으며 각종 SNS에 올라온 친구 들의 여행, 먹방 ‘인증샷’을 감상하며 도서관에 묶인 내 처지와 비교했고,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에선 오늘도 한 게 없다며 자책하는 나날의 반복이었다. 취준생 따위에게 휴가는 사치인지라, 여행 사진으로 도배된 친구들의 ‘프사’ 를 감상하는 것으로 때웠다. 지난 기말고사 기간에 이번 여름은 다양한 공부도 하고 여행도 다니겠다고 마음먹었 는데, 역시나 이번에도 빈손이다. 초등학생 때도 방학계획표를 못 지키고 일기도 개학 직전에 부랴부랴 몰아 쓰던 버릇은 대학 생활이 끝나는 지금까지도 참 여전하다.

 

여행은 성수기, 공채는 비수기라던데 내가 가고픈 회사들의 채용에는 방학이 없었다. 땀 뻘뻘 흘리며 시험 보러 다니고, 어쩌다 면접 보고, 역시나 떨어지고 다시 서류를 쓰는 상황이 반복됐다. 이제는 불합격이란 세 글자가 익숙해질 법도 하지만, 여전히 마주할 때마다 좌절감은 반복됐다. 이미 취업을 한 친구들에 비해 한없이 뒤처진 것 같았고, 초라한 지금과 불안한 미래에 잠이 오지를 않았다.

 

그런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엄마였다. 어린이집 선생님이라 퇴근하면 지칠 법도 한데, 밤늦게까지 뜬 눈으로 아 들을 기다리고 간식까지 준비해주는 엄마가 있어 멈출 수가 없었다. 내 나이 스물 일곱, 돌아가신 아버지는 가장 이 되었고 엄마는 나를 낳으셨다. 기필코 가족을 기쁘게 하겠다는 책임감으로 버텨낸 여름이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요즘, 졸업장이라는 원치 않는 선물을 받았다. ‘아직은 대학생’이라는 든든한 우산이 있었던 지난여름을 뒤로하고, 사회인(이라 쓰고 백수라 읽는다)으로서의 책임을 직접 져야만 한다. 신세가 신세인지라 여전히 두렵고 걱정뿐인 나날이지만, 그래도 한 번 더 속아보기로 한다. 그럼에도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믿으니까.

 

PHOTOGRAPHER 이성찬


 

 

 

방 내어드립니다 

조선희

 

“안녕하세요. 외즐렘이에요. 한국어 배우러 왔어요.” 내 생애 가장 한국말을 잘하는 외국인이었다. 터키에서 온 외즐렘은 서울대 규장각연구원 2주 코스를 다니러 서울에 왔다. 친절한 소개 글 덕분에 우리 집을 찾았다고 했다. “Anything else?(필요한 것 있어요?)” “하하, 없어요. 괜찮아요.” 한국인은 영어로 묻고 외국인은 한국어로 대답하는 우스운 상황에 둘 다 깔깔 웃었다.

 

나는 숙박업 사장님이다. 이번 방학부터 ‘에어비앤비’ 호스트 활동을 시작했다. 에어비앤비를 처음 써본 건 지난 해 호주 여행에서였다. 자기 전 현지인들과 두런두런 얘기 나눴던 기억이 좋게 남아 있었다. ‘한국으로 여행 오는 외국인들에게 이런 경험을 선물하면 어떨까?’

 

‘서울대입구역 도보 3분, 갖출 건 다 갖춘 두 자매가 사는 집이에요!… (중략) … 서울살이 5년 차인 유쾌한 언니가 여행 정보 많이 줄게요:)’ 겨우 소개 글 하나 쓴 것치곤 마음이 너무 부풀어 있었다. ‘어떤 손님이 올까?’, ‘어딜 가보라고 추천해주지?’, ‘저녁에 맥주 한잔 같이 할까?’ 내가 호주에서 받았던 따스함을 돌려주고 싶었다.

 

“혹시 iron 없어요? 그, 다리미라고 하던가?” 첫날 입고 갈 셔츠를 손에 든 채 물어오는 외즐렘에게 나는 당황하며 말했다. “앗, 없어요. 미안해요.” 흔한 대학생 자취방에 다리미가 있기는 쉽지 않다. 대충 입고 다니는 두 자매가 사는 집에선 가능성이 더 적다. 외즐렘은 괜찮다고 말했지만 정말 미안했다.

 

막 폭염이 시작되던 때였다. 외즐렘이 묵은 지 5일쯤 지났다. 다리미에 미안함을 느꼈던 나는 선풍기를 하나 샀다. 배송이 좀 늦긴 했지만 뿌듯했다. “더웠는데 정말 고맙습니다.” 많이 더웠던지 외즐렘은 연신 고맙다고 인사했다.

 

외즐렘이 떠나는 날, 나는 늦잠을 잤다. 일어나보니 그는 벌써 떠나고 없었다. 작별 인사를 나누지 못해 무척 아쉬웠다. ‘어젯밤에라도 인사할 걸.’ 한두 시간 정도 그 생각을 하던 찰나, 애플리케이션 알림이 떴다. ‘후기를 확인하세요!’

 

“★★★★ 침대나 소파가 없으니 바닥에 자도 괜찮은지 확실히 하세요. 집은 약간 덥고 답답했어요.” 대부분 별 다섯 개를 남기며 감사하다거나 잘 묵고 간다고 하는 것에 반해 너무 현실적인 후기였다. 사실 소개 글만 번지르르하지 숙소로선 꽝인 그냥 자취방이었다. 따뜻한 마음만 있으면 되겠지, 친절하면 되겠지 생각했었다. 하지만 손님은 손님이요, 갖출 건 갖춰야 했다.

 

시행착오 끝에 숙소의 모습을 얼추 갖췄다. “제가 8월에 가는데, 혹시 선풍기 있나요?” “네, 있습니다^^” “매트리스 같은 건 있나요?” “그럼요!” 외즐렘이 남겨준 초대박 리얼 짱 후기 덕분에 이제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대학내일」 독자 여러분, 저희 집으로 놀러 오세요!


 

 

 

계란 프라이 견습생

김정현

 

라면 말고도 하나쯤은 더 있을 거라 믿었다. 할 수 있는 요리 말이다. 이를테면, 계란 프라이. 얼마나 쉬운가. 툭, 껍질 깨고, 열고, 떨어뜨린다. 적절히 뒤집기만 하면 끝난다. 실패할 수가 있나? 요리라는 게 별거 있겠습니까. 이제야 알았다. 내가 오만했다. 아니, 순진했다. 바닷가 노동자가 되었다. 넓은 서해 바다를 껴안은 변산 반도의 아름다운 목조 주택. 친구 J가 아버지와 함께 운 영하는 숙박 시설에 나는 8월 한 달간 머물렀다. 이전에도 자주 놀러 갔었는데 이번만큼은 일을 돕기로 했다. 일종의 ‘노동자’ 신분인 셈이다.

 

그간 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들을 접할 거라는 기대감이 컸다. 이곳은 각종 노동을 비롯한 다양한 체험의 기회가 가득하니까. 바다가 나를 부른다. 네, 갑니다. 사실 결정하기 힘들었다. 돈이 나를 괴롭혔다. 이번 달 자취방 월세와 방학 이후에 필요한 생활비가 아른거렸 다. 변산에 내려가면 돈을 못 번다. 숙식을 제공 받으니 돈 쓸 일은 없지만 그렇기에 벌지도 못한다. 그냥 서울에서 아르바이트를 할까. 취업 관련 고민 때문도 아니고 그런 걸로 머리 싸매는 내가 미웠다. 밤새 서러웠다.

 

어쩌면 간단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 답을 알면서도 외면해왔을 거다. 네 마음은 이미 기울어진 것 같은데? 신뢰하는 사람이 말했다. 몇 번의 계산과 몇 번의 한숨 을 거치고 나서 결론을 냈다. 내려가자. 포기할 수 없었다. 이건 정말이지 붙잡아야 하는 기회다. 나는 나의 정직한 욕망을 따라갔다.

 

해봐야 안다. 여기서 제대로 체감했다. 풋내기 노동자로서 그저 새롭기만 한 일들을 하나하나 구경하고 시도하기에 바쁜 시간이었다. 해보고 안 해보고는 이토록 다르구나. 작고 사소해도 하나하나 배워가는 과정, 이런 게 나의 세계를 넓혀간다. 한 뼘씩 넓어질수록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 없었다.

 

예컨대 노른자가 터지지 않은 계란 프라이가 있다. 내가 아무리 요리에 소질이 없어도 계란 프라이 그까짓 거. 하지만 곧 나는 그마저도 시원찮은 인간이라는 걸 깨달았다. 툭 터진 노른자가 퍼져버리는 꼴을 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중요하다. 제대로 금이 가게끔 껍질을 깨뜨리고 엄지손가락에 힘을 주지 않는 것, 팬과 가까운 높이에서 떨어뜨려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걸 뭐 대단한 것처럼 얘기하느냐고 묻는다면 이거 참 송구스럽다. 번번이 실패했다. 엄지에 자꾸 힘이 들어갔다. 어찌어찌 잘 넘어가도 무의식중에 높 은 위치에서 떨어뜨렸고 노른자가 성할 리 만무했다. “괜찮다”라는 J의 말이 “제발 좀”으로 들린 건 기분 탓 인가. 수련에 돌입했다. 계란 두 개를 바닥에 깨뜨렸다. 짜증나도 패인을 분석하며 비장하게 불 앞에 섰다. 지금은 뭐, 손님들 조식쯤은 손쉽게 만들어드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생전 처음으로 전동 드릴을 잡았다. 연거푸 헛도는 대못이 사람 마음 심란하게 했다. 페인트 칠은 일상이었다. 우드스테인이니 폴리우레탄이니 하는 것들과 함께, 곧 완성될 오픈 키친의 벽과 싱크대를 발랐다. 간밤에 행복하셨을 커플 손님의 객실을 청소하면서 한동안 못 본 여자친구를 떠올리기도 했고, 앞으로의 공간 운영 방향에 관한 열띤 토론을 밤새 이어간 날도 숱하다. 하여간 잡다하게 많이도 했다.

 

해야 할 일들이 다양하게 펼쳐져 있는 날들이었다. 난 그날그날의 일정에 충실했고 대부분 새로 마주하는 것들이라 그 자체로 재미있었다. 그렇다고 큰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매일매일이 생산적이거나 보람찼던 것 도 아니다. <쇼 미 더 머니>나 돌려보며 하루 종일 뒹굴거린 게으른 하루도, 방학이 끝나면 어떡해야 하지 하는 불안과 두려움의 시간도 많았다. 요일 개념이 사라질만큼 느긋하게 지내는 동안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문제들이 수시로 찾아들었다.

 

다만 귀중한 경험이 생겼다. 나의 정직한 욕망을 따라간 경험. 초라한 현실적 여건 틈에서도 기어이 버티고 있는 내밀한 욕망을 나는 놓지 않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재미를 느꼈다. 재미있어서, 즐거웠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겠냐고 생각했다. 그 외의 일들은 더 이상 내가 관여할 수 없는 거니까. 그걸 알아야 속 편하다. 썩 괜찮은 여름이었군, 하고 말하는 게 마냥 쿨한 척만은 아닐 것 이다. 방학 한번 잘 보냈다.

 

 

PHOTOGRAPHER 김정현


 

 

  

오후만 있던 요일들

백승민

 

베를린에서의 한 달 가운데 반 정도는 맑았고 반 정도는 비가 내렸다. 눈꺼풀 위에 빛이 내리면 바깥이 기대되어 어떻게든 몸을 일으켰으나, 뜨나 감으나 어두울 때 는 다시 풀썩 누웠다. 그런 날은 침대에서 일어나면 이미 정오가 훌쩍 지나 있었다. 커튼을 걷어보면 하늘에는 검은 구름 덩어리가 몸을 구긴 채 끼어있었고 창문 앞에 세워진 자전거에는 빗방울이 먼저 온 빗물을 밀어내며 똑 똑 떨어졌다. 나는 비가 오면 나갈 의욕을 잃었다. 남은 일정의 리스트를 읊어봐도 ‘비가 그치면’이라는 단서가 붙으면 무용지물.

 

무시하고 나가면 될 일이지만 우산도 없이 나갔다간 5분 만에 흠뻑 젖고 말 것이다. 언젠가는 비가 그칠 거라고, 그러면 갠 날씨가 내내 이어질 거라고, 그때 우산은 캐리어 자리나 차지하는 짐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베를린을 떠나는 날까지 우천으로 인한 항공지연이라는 고초를 겪을 줄은 몰랐다. 내일은 안 오겠지, 하면서 못다 이룬 일정을 정리하고 자면 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비가 와서 어이없었다.

 

이런 때에 같이 온 친구들은 평안했다. 한 친구는 가족과 영상통화를 했고 다른 친구는 자고 있었다. 느지막이 일어나서는 음악을 켜고 각자 할 일을 했다. 그러면 더 어이가 없었다. 나만 비 오는 걸 속상해하나? 평정심을 가지고 싶었으나, 그럴 수 없어서 더 괴로웠다. “바깥은 서울이 아니라 베를린이라는 사실을 즐기라”는 친구의 말은 납득할 수 없었다. 그런 말로 위로하기에 나는 무료했고, 그럴수록 생각이 많아졌다.

 

주변 사람들한테는 “숨만 쉬다 올 것”이라고 얘기했다. 여행을 준비할 즈음 읽은 소설에서는 여자가 인도여행을 떠나는 남자에게 “무언가 깨달은 표정을 지을 거면 돌아오지도 말라”고 얘기한다. 돌아온 남자는 “아프고 정신이 없어서 뭔가를 깨달을 순간도 없었다”고 대답한다. 나는 아플 건 없지만 어쨌든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몸을 멈추는 순간 생각이 여기저기를 유영할 것이고, 그러면 이 여행이 괜히 깨달음의 시간이나, 위대한 전환점이 될 것 같았다.

 

 

한국의 여름은 너무 더우니까, 견디기 어렵다 못해 싫어서 떠났다. 거창한 이유들을 얘기하면서 괜히 의미를 꾸며보기도 했지만 그게 거짓말인 건 알고 있었고, 결국 목적은 피서. 무언가 기대했다간 실망할 게 뻔하고, 여행을 다녀와서 반짝 다른 사람이 되는 건 유통기한이 짧다. 그러니까 서울의 불볕더위를 피했음에 감사하며 좋은 환경에서 숨이나 쉬고 가자고, 그것이 욕심의 전부라고 착각했다.

 

막상 그 상황이 오니까 불안했다. 일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돌아가면 나는 이 기억을 빨아먹고 살 거라서 하루하루를 다르게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런데 비가 오면 나가기 싫거나 나갈 수 없다. 그 결과 매일이 똑같아진다. 어느 날이 어느 날인지 기억도 잘 안 날 거다. 좋지 않고 우울해진다.”

 

그것은 내게 여행이 끝나고 돌아갈 학교가 없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떠난 여행이다. 학사 일정도, 학생 신분도 끝이고 아무런 의무도, 계획도 없다. 취업 준비라는 막연한 답 앞에서는 시동이 걸리지 않았다. 의미있다고 생각하는 일이 좋기야 하겠지만, 하다가 실패할 여유도 없다.

 

내 시간은 더 이상 학교를 중심으로 순환하지 않으며 그저 앞으로 뻗기만 할 것이다. 적응이 안 돼서 우물쭈물하고는 있는데 나아가진 못하겠고, 새로 시작한답시고 지금까지 쌓아놓은 걸 무너뜨리기는 싫었다. 그 후회를 디디는 게 인생 전체로는 도약이지만 당장은 너무나 괴로웠다. 마음 편히 쉬지도 못하고 비를 뚫고 나갈 용기도 없는, 베를린의 그날들과 비슷했다.

 

맑은 베를린은 즐거웠다. 해는 밤 10시가 다 돼야 졌고, 늦게까지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고소한 라떼 마시기, 카페마다 당근케이크를 비교하는 재미도 있었다. 집 앞에 좋은 수제 맥줏집이 있는 걸 알았을 때는 친구들한테 빨리 알려주고 싶어 하루 종일 들뜬 채로 돌아다녔다. 이런 날들은 각자 뾰족해서 각각 날씨와 기분과 상황이 기억난다. 하지만 비 오는 베를린의 날들은 결국 뭉뚝해졌다. 비슷한 빗소리와 축축한 공기를 느끼며 나는 그냥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 편편(便便)한 날 중 한순간만 우뚝 솟아 있다. 들국화의 노래처럼 ‘어둠 속으로 들어가 한없이 걸었고’, ‘빗속 으로 들어가 마냥 걸었’던 날. 툭툭 소리가 나는 거센 비였다. 내가 내내 칭얼거렸던가, 친구는 산책을 제안했다.

혼자라면 절대 못 나갔을 비였는데 둘이라 그런지 용기가 생겼다. 우리는 우산 없이 비를 많이 맞았다. 친구는 “이렇게 비를 많이 맞았는데 두피는 안 젖는 게 신 기하다”고 그랬다. 나는 그 말에 동의했고, 비가 내리면 어쨌든 비를 맞으며 나가는 것도 꽤 재밌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PHOTOGRAPHER 곽재민


 

 

축제가 끝난 후

지혜

 

축제가 끝나도 누군가는 그곳에 남는다. 대학에 온 후 처음으로 일을 하며 여름을 보냈다. 그리고 지금도 같은 곳에서 일하고 있다. 동기는 단순하다. 영화가 좋고 축제가 좋았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좋았다. 행사가 끝난 영화제 사무국이 궁금하기도 했다. 그래서 영화제에 남았다.

 

3월에 행사가 끝난 영화제 사무국은 폭풍이 지나간 것 처럼 고요하다. 관객과 자원 활동가, 감독 등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하던 시간은 끝나고 조용한 마무리가 계속 되었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정기상영회를 갖고, 조금씩 내년 영화제를 준비한다. 다른 많은 영화제들이 개막하고 또 폐막하는 것을 보며, 우리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만 아직 실감 나진 않는다.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아직 많은 영화제들이 남아 있으니까.

 

영화제가 끝나고 얼마 동안은 외로웠다. 사회성이 그렇게 뛰어난 편도 아닌데, 사람들을 만나고 바쁘게 뛰어다니는 것이 좋긴 좋았나 보다. 행사 며칠 전부터는 너무 많은 것들이 정신없이 돌아가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도 몰랐으면서. 힘들었던 건 다 잊혀지고, 내가 얼마나 활기차고 보람을 느꼈는지, 그리고 얼마나 많이 웃었는지만 기억난다. 여름이 되자 외로움도 익숙해졌는데, 아마 외로워하기엔 이번 여름이 너무 더워서였던 것 같다. 나는 그저 가끔씩 손가락을 접어가며 다음 영화제가 얼마나 남았는지 세어보곤 했다.

 

아르바이트도 최장 3개월을 넘기지 못했던 나에게, 이번 여름은 오래도록 지치지 않고 일하는 법을 배운 시간이 기도 했다. 이곳에서 활동한 지 8개월이 지났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낸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길지 않겠지만, 8개월은 나에게 두 학기를 합친 것만큼의 시간. 한 학년을 또 올라가는 시간. 무척이나 긴 나날이었다. 이렇게나 더운 여름날엔 더 길게 느껴졌다.

 

새로운 계절은 마음을 다잡기 좋은 핑계이니, 여름을 보 내며 새로운 다짐을 하려고 한다. 바람 부는 계절엔 무더운 계절보다 더 자주 뿌듯하고, 덜 지치고 싶다. 다만 이제 해가 지고 퇴근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 슬프다.

 

PHOTOGRAPHER 이성찬


 

 

목포, 광주, 부산 찍고

이희선

 

7월엔 목포와 광주, 8월엔 부산에서 시간을 보냈다. 큐레이터 수업을 들었고, 일주일간 47시간 정도 몰아서 근로장학생으로 일했으며, 가끔 광주에 야구를 보러 갔다. 그리고 8월에는 대망의 부산에서 스무 날을 먹고 놀았다. 부산은 6년 전에 갔다가 뿅 반하게 됐는데, 고향에는 없는 탁 트인 바다를 보고 있으면 속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그 바닷가의 분위기에 반해서 부산에 사는 친척 언니 집에 한 달간 눌러앉은 것이다.

 

나는 특히 광안리 해수욕장을 좋아하는데, 이유는 되게 단순하다. 어디에 있어도 반짝이는 광안대교가 잘 보이기 때문이다. 부산에는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 풍경들이 많다. 친구들도 나를 보러 종종 부산에 왔다. 우리는 낙지, 곱창, 새우를 한꺼번에 넣고 볶아 먹는 ‘개미집’에서 거나하게 먹었다. 너무 맛있어서 친구가 간 뒤에도 두 번이나 더 갔다. 부산에서 돌아온 지 며칠이나 지났는데, 사실 아직도 ‘개미집’ 앓이 중이다.


 

 

 

한 여름밤의 꿀 맥주

이구름

 

여름내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 알바를 했다. 밤 10시에 일을 마치면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간신히 집에 도착했다. 갈증 나는 여름밤에 시원한 맥주 한 잔 만한 위로가 있을까. 하지만 매번 혼자 마시기도 심심하고, 친구를 부르기엔 애매했다. 그러던 와중, 가게에 새로운 주방 직원이 들어왔다. 그 친구와는 첫날 회식을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금세 친해졌다. 그러다가 번호를 교환했는데…. “퇴근하고 맥주 한잔 같이 하실래요?” 그렇게 2주 동안 퇴근 후 우린 서로의 맥주 친구가 되었다.

 

사실 뻔한 ‘구실’들을 만들었던 것 같다. 날이 더우니까 한잔, 보답의 의미로 한잔, 힘드니까 한잔. 문제는 이 친구가 나를 좋아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무런 신호를 보내지 않는 거였다. 난 답답한 걸 너무 싫어하는데! 결국 소주 세 병을 마시고 전화를 걸었다. “너 나 좋아하면서 언제까지 말 안 할 거야?” 쑥스러움이 많은 그 친구는 지금 내 옆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다. 아, 물론 식당에는 비밀이다. 우리는 퇴근 후 몰래 만나 심야 데이트를 즐긴다. 화장이 땀으로 지워지고, 하루 종일 서 있느라 피곤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마음이 충만하다. 맥주를 마시다 보니 어느새 여름이 다 가버렸다. 가을밤에 마시는 맥주도 몹시 기대가 된다.


 

 

한 것과 안 한 것들

윤소진

 

나의 방학 일과를 읊어보겠다. 놀랍게도 아침 7시에 기상. 출근하는 아빠와 밥을 먹는다. 8시가 넘으면 엄마와 <달콤한 원수>라는 아침 드라마를 시청. 빨래 담당으로서 충실하게 세탁기를 돌린다. 엄마와 시장을 보고 온 후엔 맥주 타임이 시작된다. 엄마 역시 ‘맥덕’인지라 모녀가 사이좋게 부루마블하듯 세계의 맥주들을 정복한다.

 

살짝 취기가 올라오면 힙합계의 황교익, 최자의 믿고 먹는 맛집 ‘최자로드’를 검색하면서 뭘 먹을지 고민한다. 최자의 인스타에서 볼 수 있으니 꼭 보세요, 여러분. 그러고 나면 어느새 밤이 되고, 침대에 누워 네이트판 ‘결시친(결혼, 시집, 친정)’게시판을 정독하며 다짐한다.

역시 인생은 혼자 살아야 해! 혼자가 최고다! 이런 나를 보며 동생이 ‘사람 구실’ 좀 하라며 혀를 쯧쯧 찼다. 아니, 강아지 산책시켜야 하는데 발바닥 뜨거울까봐 못 나간 거랑 다이어트 한다고 해놓고 기력 달린다고 이것저것 먹은 죄밖에 없는데! 아, 물론 졸업 작품 준비를 두 달 동안 내팽겨쳐 놓긴 했다. 세 작품이나 써야 하는데….

 

어쨌든, 지금 나는 오랜만에 학교에 와서 너무 신난다. 너무 신난 나머지 교수님께 왜 이렇게 들떴냐고, 자중하라는 주의까지 받았다. 음, 교수님껜 죄송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즐거운 복학생’이라고 이마에 써 붙이고 다닐 예정이다.


 

변심의 계절

이송희

 

원래 저의 본진은 방탄소년단의 지민이었습니다. 데뷔 6개월 때부터 제 통장의 모든 잔고를 걸고 덕질하기 시작했죠. 하지만 올여름, 괴로운 입덕 부정기를 거쳐 결국 갈아타고 말았습니다. 네. 큐브 6개월 차 병아리 연습생 라이관린에게로요. 그는 2001년생, 17살, 특기는 랩, 현재는 워너원 활동 중입니다.

 

<프로듀스 101>이 끝날 때쯤 보기 시작한 게 잘못이었을까요? 그때는 관린이가 2차 순위 발표식에선 2위였다가 3차 때 20위로 떨어진다는 스포가 돌 때였습니다. 누군지도 잘 몰라 찾아보았는데, 엄마. 내 심장. 그러다 본방송에서 진짜 20위로 호명되고, 관린이의 어른스러운 소감에 치이면서 입덕 고속열차를 타게 되었습니다. “사실 11위 안에 있는 것도 당연한 게 아니죠.” 크으으….

 

그때부터 현생불가였네요. 아, 물론 덕질의 1순위는 얼굴이고요. 인성은 2위에 불과합니다. 지금은 공식 팬클럽에 가입했고, 정말 운 좋게 데뷔 쇼케이스 티켓팅에 성공해서 고척에서 데뷔하는 걸 눈에 담고 왔습니다. 팬 사인회, 공방, 각종 방송 방청도 신청했지만 다 떨어지는 바람에 안방 1열에서 열심히 응원하면서 2019년을 대비해 적금을 드는 중이랍니다. 2019년 이전에 또 다른 사람으로 갈아타면 어쩌냐고요? 에이, 설마….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드는 중입니다

양현수

 

방학 내내 가구 실측 대비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테리어 스토어 앱을(헥헥) 준비했다. 음, 쉽게 말하자면 사고 싶은 가구가 내 집 사이즈에 맞을지 배치해볼 수 있는 앱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디자인을 전공한 친구와 시작했고, 학교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서 전자공학과 팀원을 모집했다. 셋이 성향, 성격, 방향까지 잘 맞아서 쿵짝쿵짝 재밌게 일했다.

 

여름이 기획을 위한 시간이었다면, 이제 진짜 개발을 하기 위한 돈을 모아야 할 차례다.(눈물) 에어비앤비가 사업 초기에 시리얼을 팔아서 돈을 모았다는 기사를 보고 영감을 얻어 예전에 내가 디자인했던 배지를 보완해서 판매하려고 했는데… 결과적으론 앱과 배지를 동시에 만들고 있다.(눈물X2) 시간이 부족하긴 하지만, 괜찮다. 학점은 예전에 버렸으니까.


 

 

여름방학 ‘순삭’당한 학생회장 이야기

박현종

 

흑석과 신촌, 충무로와 안암을 뻔질나게 다녔다. 생각해보면 방학의 3할 정도는 길 위에서 보낸 것 같은데, 버스 안에서 했던 생각이라곤 ‘아, 시X. 존X 덥네’ 류의 탄식밖에 기억이 안 난다. 나는 6개 대학의 신문방송 전공 학생들의 교류 프로그램 ‘신방인 네트워크’의 단장이었다. 2박 3일 동안 진행되는 행사인데다 올해로 5회째라 기획에서부터 홍보까지 준비할 게 많았다. 그러다 보니 끝없는 회의의 연속이었는데, 여름 날씨만큼 큰 장애물은 없었던 것 같다.

 

이제야 말하지만 더위 말고도 때려치우고 싶은 충동이 든 적이 왕왕 있었다. 이렇게 큰 행사를 책임지는 게 부담스러웠던 까닭이다. 기업과 기획 미팅을 꾸리고 후원을 받는 것, 또 그 과정에서 서로의 이해를 맞추는 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행사 당일엔 250여 명이나 모이는 곳에서 혹시 무슨 일이 생길까 노심초사 할 수밖에 없었다. 더위에 체력은 고갈되고, 일 때문에 잠도 제대로 못 잔 적이 많았다. 한번은 회의 전에 과방에서 새우잠을 자고 있는데 다른 학교 학생회장이 와서 깨워주기도 했다.(웃음)

 

동시에 올해 여름은 남다른 나날이기도 했다. 어딘가 깊이 몰입해서 뭔가를 만들어낸다는 느낌이 있었다. 예전엔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잘 몰랐는데.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행사를 기획하면서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좀 더 선명해지는 것 같았다. 물론 바쁜 탓에 친구들의 원성을 살 수밖에 없었지만. 임기 끝나면 시원~ 하게 맥주 한잔 산다고 큰소리 치는 수밖에.


[825호 –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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