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토요일엔 못 보겠다.”

“왜?”

“동네 형 결혼식이 있어서 가족들이랑 가기로 했어.”

“동네 형이 결혼하는데 엄마랑 아빠도 가셔?”

“응. 가족들끼리도 다 아는 사이니까.”

<응답하라 1988>의 녹번동 버전. 정확히는 덕선이와 택이를 빼고 동룡이만 가득한 버전. 남자친구의 어린 시절은 대충 이렇게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친구들과 딱지 치고 가끔은 형에게 얻어맞아 엉엉 울던 골목에서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았다. 장장 이십 몇 년을 한 집, 한 동네에서 보낸 것이다. 땅콩만 한 시절부터 서로의 집을 들락거리던 아이들이 막역한 친구가 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고.

 

 

문득 대구가 고향인 선배의 ‘띵언’이 떠올랐다. “동네 친구? 서울 토박이들에게만 있는 유니콘 같은 존재지.” 그도 그럴 것이 ‘지방러’들은 늘 여러 동네를 전전하며 살기 때문이다. 나만 해도 서울에 올라온 지 십 년도 안 됐는데, 지금까지 다섯 개의 동네를 거쳐 왔다.

 

대방동, 대흥동, 청파동, 갈현동…. 지하철 노선도 위치도 제각각인 그 동네들을 고른 기준은 동네가 예뻐서, 학교나 회사가 가까워서 같은 이유가 아니라 오로지 돈이었다.

 

내 존재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는 곳. 어쩌면 몇 년에 한 번씩 낯선 동네에 던져져 그 동네에 적응하고, 또 정 붙일 즈음에 떠나가는 것이 서울살이의 전부일지도 모른다. 새로운 동네에 짐을 푸는 날이면, 지하철에서 집까지 걸어가는 거리를 익히며 먹을 만한 밥집을 물색하곤 한다. 혼자 들어가도 부담스럽지 않은 수더분한 얼굴의 식당들을.

 

 

낯선 골목을 알아가고, 낯선 슈퍼 아줌마와 안면을 트고, 낯선 식당들 중 어디가 제일 맛있는지 알아가는 과정이 마냥 싫은 일만은 아니다. 다만 동네에 반가운 얼굴 하나 없다는 사실은 종종 나를 쓸쓸하게 한다. 약속이 없는 주말, 집에서 입던 넝마를 걸치고 슬리퍼를 끌고 나가 같이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친구.

 

남자친구와 그의 친구들이 그렇듯, 오밤중에 “야. 치킨 콜?” 문자 한 통이면 집 앞 치킨집에 모일 수 있는 동네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이런 외로움이 사무쳐서 요즘은 집 계약 시기가 비슷한 친한 언니 두 명에게 제발 가까이서 살자고 징징대는 중이다. 돈 없는 ‘지방러’들답게 모두 서울 외곽에 뿔뿔이 흩어져 살아서 각자 동네에 놀러 가려면 여행을 가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서로 자기 동네가 좋다며, 이쪽으로 오라고 꾀는 게 문제지만, 사실 나는 반쯤 넘어가줄 의향도 있다. 내년에는 심심할 때 함께 공원을 걸을 수 있는 동네 친구가 생기길 바라며 다짐해본다. 서울 토박이들의 20년 차 동네 친구(a.k.a. 유니콘)는 가질 수 없지만, 기필코 그냥 친구를 동네 친구로 만들고 말리라.


[826호 – 독립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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