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브이아이피>가 개봉한 후 한동안 시끌시끌했어. 여성 캐릭터를 담아낸 방식 때문이었지.

이 영화에는 살아 있거나 비중이 있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았거든.

살아 있으면 몇 분 못가 잔인하게 살해되었고, 유일하게 비중이 있는 여성 캐릭터는

주인공의 잔인함을 보여주는 장치로 더 길게 고문 받다 죽는 처지였지.

‘주인공이 사이코패스 살인마니까 그럴 수도 있지’라고 품기에는 어쩐지 불쾌해.

대체 대중문화에서 여성은 언제부터 이런 취급을 받게 된 거야?


 

  

01. 여자 시체 역 ⇢ 여자 역

  

비판이 계속되자 <브이아이피>의 연출자 박훈정 감독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여성 관객들에게 좀 더 공포스러울 거란 예상은 했다. 그 부분(젠더 감수성)에 있어 상당히 무디고 무지했다.”라는 입장을 밝혔어. 함께 논란이 된 포털의 캐스트 소개도 수정되었는데, 다른 건 몰라도 해당 담당자의 젠더 감수성은 무딘 게 맞는 것 같아. ‘여자 시체’ 역을 ‘여자’ 역으로 바꾸었거든. 살인마의 잔인함을 묘사하는 데, 시체보다 여자가 중요하다 생각했나봐.


 

  

02. 예술 안에서 여성의 존재

  

여성 캐릭터가 남성 캐릭터의 묘사나 부각을 위한 장치로 쓰인 첫 번째 예가 <브이아이피>는 아니야. 남성의 시선으로 쓰인 작품 속에서 여성은 인격체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도구로 ‘사용’될 뿐이지. 캐릭터의 감정선은커녕 이름도 없어.

  

소위 ‘알탕문학’, ‘알탕영화’가 상업적으로 흥행하면 흥행할수록 여성 캐릭터가 주체적으로 행동하는 작품은 설 자리를 잃고 있지. “배우 전도연과 김혜수가 시나리오가 없어 연기를 못 한다.”는 소리 들어봤지? 우스갯소리로 치부할 일만은 아니야.

  

유명한 배우가 주인공을 못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액면 그대로 ‘맡을 역할’ 자체가 부족하다는 뜻이거든. 2016년 12월, 「매거진 M」의 특별취재팀은 100만 명 이상의 관객을 동원한 23편의 국내 영화를 분석했어. 그 23편 중 여성 배우가 주인공으로 크레딧에 맨 처음 이름을 올린 영화는 <아가씨>·<덕혜옹주>를 포함해 7편에 불과하대.

  

영화 성평등을 양적으로 측정하는 벡델 테스트와 비중면에서 면밀히 살피는 마코 모리 테스트도 함께 진행했는데, ‘1. 최소 1명 이상의 여성이 등장하는가, 2. 그 여성에게 자신의 서사가 있는가 3. 그 서사가 남성 인물의 서사를 보조하는 데 그치지 않았나’ 하는 마코 모리 테스트를 기준으로 거르면 남는 건 8편뿐.

  

근데 납치·폭행·강간·살해 등의 범죄에 희생당하는 여성이 등장하는 영화는 11편에 달한다는 거야. 2017년은 좀 다를까? 글쎄. 고작 3개월 남았는데 올해 국내 흥행 영화에서 인상적인 여성 캐릭터를 본 기억은 몇 손가락에 꼽아. 오죽하면 배우 문소리가 며느리, 딸, 엄마, 아내 역할에 질려 직접 감독하고 출연한 영화 <여배우는 오늘도>를 내놓았겠어.


 

  

03. 표현의 자유 VS 젠더 감수성의 결여

  

당연히 여성 캐릭터를 조역으로만 소비하거나, 때리고 강간하는 게 영화계의 일만은 아니야. 오디션 프로그램 참가곡으로 자주 쓰여서 익숙한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에도 여주인공 둘시네아가 윤간 당하는 장면이 나오거든.

  

브로드웨이에서부터 검증된 작품의 완성도와는 별개로, 인물의 비극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장면에 불편함을 느끼는 관객도 존재해. 치명적인 여성 스파이를 주인공으로 하는 뮤지컬 <마타하리>도 자극적인 강간 장면으로 비판을 받았지. 결국 <마타하리> 제작진은 공연을 수정하는 방향을 택했고 그 장면은 삭제되었어.

  

“이야기의 본질은 갈등이다.” 창작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어디에선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말이야. 그 말처럼 세상에 갈등이나 결핍이 없는 이야기는 없어. 예술가들은 본능적인 감각으로 캐릭터를 성장시키고, 개연성을 부여하기 위해 시련을 만들지.

그 시련이 ‘강간’이나 ‘폭행’이나 ‘살인’이 되어야만 하는 나름의 이유도 있을 거야. 캐릭터가 여성이건, 남성이건, 중성이건 간에 말이야. 하지만 소재를 다루는 방식이 이렇게까지 가학적이거나 선정적이어야만 할까? 문제는 전문가들조차 의견이 분분하다는 거야.

  

어디서부터가 표현의 자유이고, 어디까지가 젠더 감수성의 결여인지 자로 재듯 판단할 수 없으니까. 까딱하다가는 예술에 대한 검열이 되기 십상이고, 악용하려는 세력도 등장하겠지. 반대로 극단적인 표현의 자유까지 인정한다면 그 끝엔 ‘여성 유튜버에 대한 살해 예고 콘텐츠’처럼 오직 혐오와 성적 대상화만 남을 테고.


 

  

04. 개념녀라는 자기 검열

  

논란이 있다는 것 자체는 고무적이지만 여성 예술가들의 현실을 보면 아직 멀었어. 스스로도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지극히 남성적인 시각에서 자신을 재단하기도 해. 얼마 전 걸 그룹 프리스틴은 신곡 ‘We Like’로 컴백했어. 가사를 멤버가 직접 썼다고 했는데, 순간 이 편견이 깃든 가사를 멤버들이 직접 쓴 게 맞는지를 확인해보고 싶었어.

  

“먹고 싶은 건 내가 골라. 그 대신에 계산은 내가. 흔하지 않아 이런 내게 더 끌릴 걸.” 여성이 밥을 사는 건 흔하지 않은 아주 개념이 박힌 행동이며, 그 행동이 여성인 ‘나’를 특별하게 만든다는 편견. 완벽한 명예 남성의 시각으로 여성인 자신을 판단하고 있었지.

  

결국 팬들의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마지막 소절을 ‘좋고 싫은 건 분명히 하니까’로 수정했어. 도무지 명확한 차이를 모르겠다면 현아의 신곡 ‘Bebe’를 보자. “I am just 26, 26, 26” 26살로 시작한 이 노래의 화자는 24살, 21살을 거쳐 “이건 어리광이 맞아 예뻐해 줘”를 노래하며 “I feel like 열다섯, 열다섯, 열다섯. 또 듣고 싶나 봐 Tell me I’m your babe babe” 15살까지 내려 가.

‘자아 퇴행송인가?’하는 생각이 드는 건 현아의 2011년 발표곡 ‘Bubble Pop’과 대비되기 때문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날 바꾸려 하지 마, 아니면 차라리 다른 사람 만나, 투덜대지 마!” 첫 소절부터 ‘평가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를 아주 분명히 하고 있지.

  

어떻게 하면 자유롭게 표현하되 젠더 감수성을 날카롭게 유지할 것인가. 언급한 작품만이 아니라 상업예술 전반에서 고민해야 할 과제야. 소비 주체의 절반인 여성들은 더 이상 성적 대상화와 자기 검열과 명예 남성화로 범벅된 작품에 지갑을 열길 원하지 않으니까.

  

그런 건 이미 현실로도 충분하거든. 대신 어떤 굴레에도 갇히지 않은 여성이 만들고, 여성 자신의 의지로 행동하고 말하는 예술을 원하지. 그래서 뉴욕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페미니스트 미술 그룹 ‘게릴라 걸스’의 슬로건은 여전히 유효해. “여성이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들어가려면 발가벗어야 하는가?”


[826호 – 원더우먼]

Editor 심쿵쾅 wonderwomen@univ.me

여성에 대한 괴소문을 들으면 마음이 쿵쾅대는 사람입니다.

실체가 궁금한 괴소문이 생기면 쿵쾅쿵쾅 달려갑니다. 제보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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