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토박이 20년. 대학에 와서 인천 사람이 아닌 친구를 처음 사귀었다. 부산이나 경주처럼 유명한 여행지가 고향인 친구도 있었고, 수원이나 천안처럼 익숙하지만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에 사는 친구도 있었다. 이제 막 여행의 맛을 알기 시작한 초보여행자는, 여행을 위한 핑계에 목말라 있었으므로, “밥 한 번 먹자”는 빈말 대신 “나 너희 동네에 놀러 가도 돼?”라고 말하고 다녔다.
물론 수많은 빈말이 늘 그렇듯 실제로 약속이 성사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날도 수원행 광역버스를 기다리는 친구에게 별생각 없이 “언제 한번 수원에 놀러 가고 싶다”고 던졌는데, 친구가 “주말에 올래?”하고 답했고, 내가 “콜!”을 외침과 함께 얼떨결에 수원행이 결정되어 버렸다. 자기 전 지도 앱을 켜서, 우리 집에서 수원역까지 얼마나 걸리는지 찾아봤다. 잠깐만… 1시간 42분?
막상 수원까지 가려니 엄두가 나지 않아, 괜히 친구에게 카톡을 보냈다. “혹시 수원까지 가는 가장 가까운 루트가 뭐야? (설마 진짜로 두 시간이 걸리는 건 아니지? 내가 모르는 지름길이 있다고 말해)” 칼처럼 돌아온 답장은 절망적이었다. “버스, 지하철, 기차 다 있긴 한데, 뭘 타든 멀어^^ 그냥 니가 좋은 거 타고 와.”
그래. 뭘 타도 멀다면, 기왕 여행 기분 내는 거 기차를 타자! 주말 아침 늦잠을 포기하고 서울역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다들 아침부터 어딜 그렇게 가는지 버스엔 빈자리가 없었다. 평일엔 더하겠지. 만원 버스에서 이리저리 치인 후 서울역에 도착했을 땐 사실 이미 지쳐있었다. 매표소에서 가장 빠른 수원행 티켓을 찾았다. “열차는 한 시간 반 뒤에 있어요. 그거라도 드려요?” 털썩.
역사에 주저앉아 핫바 하나를 입에 물고, 오지 않는 기차를 하염없이 기다렸다. 친구는 어떻게 이 짓(?)을 매일 하는 걸까. 수업도 없는 주말에 서울에서 약속을 잡았던, 과거의 무지한 나를 반성했다.
친구는 내가 도착하기 두 시간 전부터 수원역에 나와 있었다. 놀러 온다고 말한 애들은 많았는데, 진짜로 온 건 내가 처음이라 어젯밤부터 설렜단다. 자신이 사는 동네에 친구가 오면 으레 하는 말, “우리 동네에 볼 거 하나도 없는데…”를 시점으로 우리의 수원 여행은 시작됐다.
첫 번째 코스는 SNS에서 여러 번 봤던 만둣집. 수원까지 오느라 배가 고팠던 터라 맛있게 먹었지만, 돌아서면 생각날 정도로 인상 깊은 맛은 아니었다. 그냥 좀 유명한 동네 만둣집 정도? 대신 만두를 먹으며 친구가 해줬던 이야기들은 또렷하게 기억난다.
사실 옛날부터 수원에서 제일 유명한 음식은 ‘수원 왕갈비’야. 어디서 봤는데 왕갈비 먹으러 가서 거기가 맛집인지 아닌지 알고 싶으면, 이운재 선수 싸인이 있나 확인해보래. 그분이 왕갈비 마니아라서 수원에 있는 웬만한 고깃집에는 다 가서 싸인을 남겼다나 봐. 요즘에는 갈비 대신 여기 만두랑 통닭이 유명한데, 통닭은 이따 저녁에 먹으러 갈 거야!
그날따라 친구는 말이 많았다. 먼 곳에서 손님이 왔다는 부담 때문인지, 평소와 다르게 이것저것 설명해 주고 싶어 했다. 아마 밤새 인터넷 검색창에 ‘수원 갈만한 곳’,’수원 맛집’ 같은 단어를 넣어보며 공부했겠지. 그 모습을 상상하니 너무 고맙고 귀여워서 괜히 피식피식 웃음이 났다.
만두를 먹고, 친구가 준비한 수원 여행의 메인 코스, 화성으로 이동했다. 많은 사람이 화성이라고 하면 영화 <살인의 추억>을 떠올리는데, 영화의 배경이 된 도시 화성과 수원에 있는 유네스코 세계문화 유산 화성은 완전히 다른 장소다.
수원역에서 불과 몇 정거장 떨어져 있을 뿐인데, 화성 일대에는 유적지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가 돌았다. 도시 전체를 성벽이 둘러싸고 있어서 그런지 경주 같기도 했고, 과거의 건축물과 현대의 건축물이 경계 없이 섞여 있는 걸 보면 교토 같기도 했다. 면적도 꽤 넓어서 종일 걸어 다니며 이곳저곳 구경하기에 더없이 좋았다.
“집 근처에 이런 곳이 있으니까, 친구들이랑 동네에서만 만나도 늘 여행하는 기분이겠다.” 내내 부러워했더니, 친구가 멋쩍게 웃으며 답했다. 사실 여긴 태어나서 딱 두 번 와봤고, 심지어 행궁에는 들어가 본 적도 없다고. 수원 친구들은 밥집, 술집이 몰려있는 나혜석 거리나 인계동에서 만난단다. 하긴 나도 인천에 살았지만, 신포 닭강정 딱 한 번 먹어봤고, 월미도 디스코팡팡 안 탄 지도 한참 됐구나.
어찌 됐든 중요한 건 친구가 준비한 코스가 내 마음에 쏙 들었다는 것! 역시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취향을 잘 아는 8년 지기 친구다웠다.
이 친구와 만날 때마다 꼭 등장하는 대화 주제가 있다. “우리가 어떻게 친해졌지?” 이미 여러 번 얘기해서 답을 알고 있지만, 할 때마다 재미있어서 자꾸 묻는다. 우리는 같은 동아리도 아니었고, 겉으로 보기에 딱히 비슷한 점도 없었다.
남는 게 시간뿐이던 시절에 집 가는 방향이 같아 우연히 함께 걷기 시작했는데, 어쩐지 그 이후부터 자주 만나 목적지 없이 걷게 됐다. 알고 보니 우리 둘 다 웬만한 거리는 걸어가는 걸 선호하는 산책자형(?) 인간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민폐 끼치는 걸 싫어하고, 눈치를 많이 본다는 공통점이 있다는 건 친해지고 나서 한참 뒤에야 알게 됐다.
우리나라 사람보다 외국인이 더 많은 행궁에서 나와, 공방거리로, 행궁동 카페거리로 계속 걸었다. 중간에 비가 조금 왔고, 어쩌다 들어간 빈티지 소품 가게에서 예정에 없던 시간과 돈을 왕창 써버렸지만 아무렴 어떤가. 우리 둘이 즐거우면 그만이지.
긴 산책을 마치고 마지막 목적지, 통닭 거리로 갔다. 작은 골목에 열 곳이 넘는 통닭집이 모여 있었다. 몇몇 가게 앞에서는 사람들이 통닭을 먹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기도 했는데, TV 맛집 프로그램에 나오면서 유명해진 집이라 그렇단다. 친구는 이 골목 통닭은 어딜 가도 중간 이상은 한다며, 줄이 가장 짧은 집을 골라 앞장섰다. 기다리는 걸 싫어하는 나를 위해 한 거짓말이라는 걸 알았지만 모른 척 넘어갔다.
통닭을 먹으며 오늘 여행이 어땠냐는 이야기를 하다, 이렇게 둘이 시간을 보낸 게 오랜만이라는 걸 알았다. 남는 게 시간뿐이던 시절을 지나, 사는 게 바쁜 어른이 되어버린 탓이다. 언제 또 이런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싶어 코끝이 찡했지만, 굳이 티 내지 않았다. 대신에 밀린 산책을 조금 더 하기로 했다. “배도 부른데 우리 버스 정류장까지 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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