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으로 인정받는 확실한 방법 중 하나. 바로 표정 관리다. 짜증이 나도 상대가 모르게, 초조해도 여유로워 보이게, 들뜬 마음은 티 나지 않게. 요동치는 감정의 진폭을 아무에게나 들키지 않는 것이야말로 어른의 필수 덕목이다. 일명 포커페이스. 포커페이스의 대척점에는 ‘습자지 얼굴’이 있다.
어릴 적 한자 시간에 글씨 연습을 위해 책 위에 깔고서 따라 그리기만 하면 똑 닮은 글자가 완성됐던 얇고 반투명한 습자지. 내 얼굴은 마치 그 습자지 같다. 마음의 모양을 있는 그대로 따라 그려 얼굴에 내놓는다. 짜증, 화남, 기쁨, 귀찮음, 당황스러움, 억울함. 감추고 싶은 상황에서도 내 표정은 여지없이 속마음을 홀라당 까서 전시해버린다.
동네 사람들, 얘 좀 보래요! 얘 지금 짜증 났대요~ 한때는 너무도 정직한 내 안면 근육이 ‘진정성’의 증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누군가는 넌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다고 확실히 표현해서 좋다고, 그게 너의 미덕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너 표정이 왜 그래? 기분 나빠?”라며 다그치는 선배를 앞에 두고 곧 깨달았다. 내 솔직함은 어리기 때문에 용인되는 ‘흠’이었다는 걸. 나이가 들고 사회인이 된 후에도 자기 표정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프로페셔널하지 못한 인간 취급을 받는다는 사실도.
문제는 내가 어지간히 잘 놀라고, 잘 화나고, 잘 신나고, 잘 당황해하는 사람이라는 데 있다. 자주만 그러면 다행이지. 크게 놀라고, 크게 화나고, 크게 신나고, 크게 당황하기도 한다. 일이 잘 안 풀리면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표정으로 머리를 싸매고 있다가 어려운 업무가 끝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함박웃음을 짓는다.
전자의 경우, 동료들이 내 자리를 지나갈 때마다 “고통 받고 있군” 한마디씩 하는데 그럴 때마다 ‘내가 또 힘든 걸 티 냈구나’ 싶어 자괴감이 든다. 엊그제는 같이 일하는 포토그래퍼가 “기자님, 별로면 지금 싫다고 말해요”라고 해서 얼마나 찔렸는지 모른다.
복잡한 감정과 솟구치는 생각을 정리해서 차분하게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 전에 본심을 다 간파당해버리니, 그들 눈에 내가 얼마나 애처럼 보이겠는가. 주변에 있는 포커페이스에 능한 인물들을 관찰하며 따라잡으려 시도해보았지만 역시 실패했다.
그냥 기분이 나쁠 때는 화장실로 피신해 남들에게 화난 얼굴을 보이지 않게 하고, 산책을 하며 마음을 가라앉히는 수밖에. 훗카이도 아칸 호수의 명물로 불리는 녹조식물 ‘마리모’는 기분이 좋으면 둥그런 몸이 두둥실 물 위로 떠오른다고 한다.
광합성 현상 때문이라는데, 평소엔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게 조용한 마리모가 즐겁다는 듯 떠오르는 모습이 퍽 감동적이어서 일본에서는 행운의 상징으로 불린다고. 이렇게 귀엽고 사려 깊은 방식으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끄떡하면 ‘川(내 천)’ 자가 새겨지는 이마를 문지르며 생각한다. 나는 마리모보다도 한 수 아래다!
[827호 – 독립일기]
Illustrator 이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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