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절망 속에서…

‘어른’이라고 불리는 나이가 되면서, 인생에는 종종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절망적인 일이 생긴다는 걸 배웠습니다.

 

제일 친한 친구 할머니 장례식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친구와 할머니 사이가 얼마나 각별했는지 알기에, 쌓여 있는 일을 제치고 달려가긴 했는데… 퉁퉁 부은 눈으로 손님을 받는 친구를 보니 막상 뭐라고 위로해 줘야 할지 모르겠더군요. 그 흔한 “힘내,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야”라는 말도 꺼내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친구의 상실감이 얼마나 클지 상상조차 안 됐거든요. 결국 바보처럼 육개장만 두 그릇 비우고 돌아왔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반려동물이 아플 때, 오랫동안 준비하던 시험에서 떨어졌을 때. 사랑하는 사람에게 혹은 나에게 닥친 거대한 절망을 우리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걸까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 <대성당> 안에 수록된 짧은 단편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은,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해본 적이 있으신 분에게 추천 드리는 책입니다.

 

소설에는 그동안 순탄한 인생을 살아온 부부가 등장합니다. 안정적인 직장에, 화목한 가정, 귀여운 아이까지. 행복했던 부부의 삶은, 아이의 생일에 일어난 사고로 인해 와르르 무너져요. 학교에 가던 아이가 차에 치였고, 사고 후유증으로 혼수상태에 빠져버린 겁니다. 줄거리만 들어도 몹시 절망적인 상황이라는 걸 느끼셨나요? 하지만 이 소설을 다 읽고 제가 느낀 감정은 ‘따뜻함’이었습니다. 어떤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는 절망 속에서 찾은 따뜻함을 여러분도 함께 느낄 수 있기를 바라며, 이야기를 시작하겠습니다.

 


1. 알고 나면 그날 일은 복선이 된다

이야기는 앤이 케이크를 주문하러 빵집에 가면서 시작됩니다. 앤은 다음 주면 여덟 살이 되는 아이의 엄마예요. 그녀는 아이가 가장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를 주문합니다. 케이크 겉면에는 초록색 글씨로 아이의 이름을 새겨 넣을 예정이에요.

 

그녀가 들뜬 목소리로 주문하는 동안, 빵집 주인은 묵묵히 듣기만 합니다. 빵집 주인은 퉁명했어요. “좋은 엄마시네요”라던지, “아이가 기뻐하겠어요” 같이, 예의상 주고받는 인삿말조차 건네지 않았습니다.

 

 

저 정도 나이라면 당연히 아이가 있을 테고, 아이 얘기를 하며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앤은 약간 기분이 상해서 집으로 돌아와요. 물론 빵집 주인에겐 아이가 없다는 것, 앤이 주문한 케이크를 포함해 수많은 빵을 굽기 위해 밤을 새워야 한다는 것은 알지 못했습니다.

 

시작부터 자세하게 설명하긴 했지만, 사실 둘의 만남은 빵집 주인에게도 앤에게도 그다지 중요한 일은 아니었어요. 그 일이 복선이 되어 괴로워하게 될 줄은 두 사람 모두 꿈에도 몰랐습니다.

 


2. 생일에 일어난 차 사고, 왜 우리 아이에게 이런 일이

원래 감당할 수 없는 일은 예고 없이 찾아오는 법이죠. 생일을 맞은 아이는, 친구가 자신에게 무슨 선물을 주는지 알아내려고 애쓰다가, 발을 헛디뎌 차도 쪽으로 넘어집니다. 마침 전속력으로 달려오던 차는 아이를 들이받고 달아나 버렸고요.

 

 

아이는 충격에 의한 가벼운 뇌진탕과 통증으로 병원에 입원했어요. 당연히 생일파티는 취소됐죠. 병원에선 의식이 없는 아이를 두고, 곧 깨어날 테니 걱정하지 말고 기다리라고 말했습니다. 이해합니다. 매일 수많은 환자를 만나는 의사 입장에선 이런 일쯤은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르죠. 하지만 아시잖아요. 집에 있어야 할 아이가, 머리에 붕대를 칭칭 감고 팔목엔 주삿바늘을 꼽은 채 누워있는데. 어느 부모가 태평할 수 있겠어요. 의사가 말한 시간이 지나도 깨어나지 않는 아이를 보며, 부부는 두려움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녀는 이제 자신들이 다른 어떤 곳, 어떤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중략)

 

누군가가 자기를 태우고 여기가 아닌 어딘가로, 그러니까 스코티가 기다리고 있다가 자신이 차에서 내리면 “엄마!”하고 외치면서 품안으로 뛰어들어오는 곳으로 데려갔으면 좋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3. “뭐라도 좀 드세요. 그래야 힘을 내죠”

부부의 간절한 바람이 무색하게, 아이는 깨어날 기미조차 보이지 않아요. 별일 없을 거라던 의사도 뒤늦게 피를 뽑고, 엑스레이를 찍으며 부산을 떠니, 엄마는 초조합니다. 이러다 정말 아이를 잃게 되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혹시나 자리를 비웠을 때 아이가 깨어날까봐, 앤 부부는 몇 날 며칠을 씻지도 먹지도 못하고 병원에서 지냈습니다. 하지만 아이 옆을 지키고 있어도 이들이 해줄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저 기다릴 뿐이었죠.

 

어쩌면 내가 여기 앉아서 눈도 떼지 않고 지켜보기 때문에 이 애가 깨어나지 않는 건지도 몰라. 내가 여기 없으면 스코티가 깨어날지도.

병원에서 간호해본 사람은 알 겁니다.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일은 심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지치는 일이에요. 병문안을 온 사람들은 관습적으로 말합니다. 힘내라고. 뭐라도 좀 먹으라고.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냐고. (사실 이 말들은 우리가 실의에 빠진 사람에게 별 생각 없이 하는 말이기도 하죠)

 

마찬가지로 지쳐있는 앤에게 모두들 집에 가서 좀 쉬고 오라고 합니다. 사실 힘을 내고 싶지도, 배가 고프지도 않지만 그녀는 일단 다녀오기로 해요.

 


4. 불길한 전화, “뭐 잊은 거 없소?”

그 시각. 누군가 앤의 집에 미친듯이 전화를 걸고 있습니다. 아이의 생일 케이크를 주문했던 그 빵집 주인이에요. 앤이 며칠 째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자 집으로 전화를 건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두 사람의 악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일단 빵집 주인은 매우 화나 있었어요. 케이크는 이미 상해서 팔 수 없는 상태가 됐고, 그의 입장에선 시간과 돈을 낭비한 거니까요. 한편 아이의 사고로 혼이 나가 있던 앤은 케이크를 주문했다는 사실 조차 까맣게 잊고 있었습니다.

 

 

그녀의 사정을 알 리 없는 빵집 주인은, 전화가 연결되자마자 다짜고짜 “아이 일은 잊은 거냐”고 묻습니다. 케이크를 주문해 놓고 연락도 없이 찾아가지 않는 이유를 듣고 싶었을 거예요. 전화 속에서 아이 이름이 나오자 깜짝 놀란 앤은 상대가 누군지 알아채지 못한 채 “무슨 일이냐?”고 되묻습니다. 이에 그녀가 시치미를 뗀다고 생각한 빵집 주인은 더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나서 전화를 끊어버리고요.

 

두 사람 중 한 사람이라도 침착하게 무슨 일인지 묻거나 답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한 쪽은 너무 화가 나있었고, 다른 한 쪽은 혼이 나가있었습니다.

 


5. 결국 아이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기분 나쁜 전화를 받고, 불길한 기운을 느낀 앤은 부랴부랴 병원으로 돌아가요. 그녀가 도착하자마자 기적처럼 의식이 돌아온 아이는 잠시 눈을 떴다가, 이내 영영 잠들어버립니다.

 

결국 아이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무 일 없을 거라 장담하던 의사는, 백만 명당 한 명꼴로 발생하는 특이 증상이었다며 고개를 들지 못했어요. 필요한 설명이 끝난 뒤 의사는 부부를 현관까지 배웅해줍니다. 아이가 죽었으니 그들이 이곳에 머물러야 할 이유가 없어진 거죠.

 

“이렇게 놔두고 갈 순 없어. 안돼!” 그녀는 자기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는 걸 듣고는, 흘러나오는 말이라는 게 고작 TV 프로그램 같은 데 보면, 폭력이나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넋이 빠진 사람들이 쓰는 그런 따위라는 건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했다.

부부는 절망에 빠질 새도 없이, 아이를 보낼 준비를 합니다. 거실 여기저기에 흩어진 아이의 물건을 정리하다 눈물을 흘리고, 친척들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하다 울음을 터뜨리면서요.

 

그때 전화벨이 또 울리기 시작합니다. 빵집 주인이에요.

 


6. 불길한 전화의 실체, 빵집 주인과 부부의 삼자대면

전화는 이전과 같은 패턴이었습니다. 아이에 대해서 잊어버린 것이 없냐고 물은 뒤 전화를 끊어버리는 식이었죠. 아이가 죽은 뒤 그런 전화를 받았다고 상상해봅시다. 어떤 성인군자라도 분노를 누를 수 없을 거예요. 앤은 전화를 건 사람이 악의를 가지고 자신들을 괴롭히는 거라고 확신합니다. 그리고 드디어 불길한 전화의 실체가, 빵집 주인이었다는 걸 알아채고 즉시 빵집으로 달려가요.

 

빵집에 찾아간 부부는 피곤함에 찌든 빵집 주인에게 따집니다. 계속 전화질을 해대던 게 당신이냐고. 생일 케이크의 주인공, 우리 아들은 차에 치어 죽었다고. 당신이 이걸 알리는 없었겠지만 그래도 너무한 거 아니냐고.

 

 

모든 사정을 알게 된 빵집 주인은 진심으로 미안해해요. 케이크를 주문해두고 말도 없이 숨어 버린 진상 손님에게 그런 사연이 있는 줄 알았다면… 그렇게 무례하게 전화를 하진 않았을 텐데. 이젠 어떤 말을 해도 변명이 되지 않을 것이고, 용서를 받거나 위로를 건네기도 어려운 상황이 돼버렸어요.

 


7.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

이 부분부터가 소설의 클라이맥스입니다. 어쩔 줄 몰라 하던 빵집 주인은 의자를 가져와 앤과 남편을 앉히고, 투박하고 서툰 위로를 시작해요.

 

“내게는 아이가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지금 당신들 심정에 대해서는 간신히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라오. 지금 이순간,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미안하다는 것뿐이라오.”

어떤 미사여구도 거짓 감정도 없는 마음을 전한 뒤, 그가 한 일은 커피를 내리고 따뜻한 빵을 가져다주는 거였습니다. 빵집 주인다운 위로였죠.

 

 

“뭔가를 먹는 게 도움이 된다오. 더 있소. 다 드시오. 먹고 싶은 만큼 드시오. 세상의 모든 롤빵이 다 여기에 있으니.”

빵집 안은 따뜻했고, 제대로 먹은 게 없던 앤은 빵 냄새를 맡자 갑자기 허기를 느꼈습니다. 롤빵은 달콤하고 따뜻했어요. 그녀가 그 자리에서 롤빵을 모두 집어 먹고, 빵집 주인이 계속 새로운 빵을 내오는 장면으로 이 소설은 끝이 납니다.

 


우리가 타인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실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내 앞에 있는 사람이 얼마나 슬픈지는, 빵집 주인의 말대로 간신히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지요. 그런 마음으로 줄 수 있는 위로가 뭐 얼마나 대단한 것이겠어요. 이 소설의 제목처럼 ‘별 것 아닌’ 걸 거에요. 다만, 지금 내가 당장 줄 수 있는 것 중, 가장 따뜻한 걸 건넨다면, 의외로 도움이 될 겁니다. 원수 같았던 빵집 주인이 내어 놓은 따뜻하고 달콤한 롤빵이 그랬듯. 덧붙여 별것 아닌 이 글이 누군가에겐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illustrator 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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