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는 단순히 먹기 위한 행위만이 아니다. 문화이자 엔터테인먼트가 되었다. 이를 위해 애써온 사람들의 이름을 떠올려보자. 손가락 열 개쯤은 유명 셰프의 이름으로 채울 수 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다.

여성 셰프의 이름을 꼽아보려 하니 막막해진다. 왜일까? 그간 많은 요리학도들이 품어왔을 궁금증을 들고 김은희 셰프를 찾았다. 2009년 문을 연 프렌치 다이닝 ‘더 그린테이블’에서, 10여 년간 자신의 세계를 꾸준히 확장해온 ‘여성 오너 셰프’는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었을까?     

 

 

인터뷰 전, 『여성 셰프 분투기』를 읽고 왔어요. 이 책 내용에 굉장히 공감하셨다고 들어서요.

책을 읽고, ‘내가 겪었던 일이, 느꼈던 감정이 이거구나’를 명확하게 알게 됐어요. 미국 여성 셰프들의 이야기지만 한국에서도 현재 진행 중인 일들이었죠. 너무 적나라한 현실 묘사에 화가 나는 한편 ‘이제 여성들이 지레 겁먹거나 셰프가 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어쩌지’ 걱정되기도 했어요.

 

셰프로서의 분투 중 제일 힘든 건 뭔가요?

셰프는 일상의 균형이 깨진 삶을 살아야 해요. 요리가 너무 좋으니 이겨내려 노력할 뿐이죠. 평소에 요리 외에는 아무것도 못 해요. 남들 쉬는 주말엔 더 바쁘고, 친구들도 자주 못 보고, 집에 가면 잠만 자고, 다시 미친 듯이 일하고…. 한동안은 매주 금요일만 되면 ‘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더라고요.

 

남성 셰프 중에는 가정을 가지고도, 열정적으로 일하는 분들이 많잖아요.

남자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많아요. 체력도 좋고, 업계에서 교류도 활발히 하고, 연애결혼도 하고. 제가 시간도 체력도 없다니까 주변에서는 핑계라고 하더라고요.

한 번도 ‘결혼이나 출산은 안 하겠다’ 마음먹은 적은 없는데, 요리에 집중하다보니 자연스레 이렇게 살고 있어요. 물론 결혼한 여성 셰프들도 있지만, 저처럼 하나밖에 못하는 성격은 ‘독하다’는 소리를 주로 듣죠. 가끔 농담처럼 ‘나도 아내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도 한다니까요.(웃음)

 

   

‘여성은 체력이 약해서 주방에서 못 버틴다’는 인식도 있잖아요.

튼튼한 남자라고 모두가 잘 버티는 건 아니지만, 정말 체력이 다르기는 해요. 여성 셰프들은 10배 더 열심히 해야 하죠. 힘들어도 울지 못하고요.

왜냐하면 이미 남성 셰프들 마음속에 우리는 연약한 존재거든요. 그때 몸의 신호를 무시하면 안 돼요. 저처럼 1년 반 동안 절뚝거리며 걷게 될지 몰라요. 여성 후배들에게는 꼭 잔소리해요. “무거운 건 양손으로 들어라. 아프면 평생 간다.” 현명하게 자신을 아껴야 해요.

 

이토록 힘듦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요리를 놓을 수 없는 이유는요?

그만둘 이유는 수백 가지라도 좋아하는 마음이 1% 더 있으니까요. 오너임에도 안 하고 싶을 때가 너무 많아요. 이건 여성 셰프든 남성 셰프든 마찬가지일 거예요. 간혹 특강을 할 때마다 학생들에게 물어봐요. “누구를 위해서 요리하나요?” 그러면 표정이 다들 멍해져요. 일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해요. 존경하는 셰프나 가게를 위해서 하는 거라면 얼마 버틸 수 없어요.

 

처음 요리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특별하시던데요.

환경공학을 전공했는데 졸업 후 1-2년간 웹디자이너로 일하던 중에 경미한 교통사고를 당한 거예요. 문득 ‘정말 좋아하는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죠. 당시만 해도 졸업하고 얼마 못 가 결혼하는 게 보통이었거든요. 25살에 미국으로 요리 공부하러 가겠다고 하니 다들 제가 미친 줄 알았대요. 근데 사실 제가 여성이 최초로 자아실현하기 시작한 X세대라 주변에 노처녀가 많아요.(웃음)

 

 

그렇게 한 길만 걸어왔기 때문일까요? 셰프님의 요리에서는 어떤 고집이 느껴져요.

알아봐주셔서 감사해요. 다들 남성 셰프는 요리에 깊이와 철학을 담는다 여기면서도, 여성 셰프는 가정 요리나 아기자기한 요리를 할 거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제 요리에 어떤 철학이 담겨 있고, 어떠한 노력으로 깊이감과 균형감을 추구하는지, 또 제가 얼마나 고집스럽고 자부심을 가진 요리사인지는 관심이 없어요. 그런데 사실 섬세하고 아름다운 요리는 여성 셰프만이 아니라 모든 셰프가 추구해야 할 덕목이잖아요.

 

그래서 더 후배들에게 기회를 주시는지도 모르겠어요. 유독 여성 스태프들이 많아요.

예전엔 반대로 질문을 받았어요. “왜 너도 여성이면서 여성을 뽑지 않냐.” 상처 받은 적도 있죠. 의도한 건 없어요. 저는 무조건 실력이 기준이에요. 승진 기회도 완전히 공평하죠. 그렇지 않은 곳도 많대요. 특별한 이유 없이 후배인 남성 셰프가 먼저 승진하고. 외국도 비슷해요. 여성 셰프는 경력이 많아도 처음 들어가면 차가운 음식, 디저트나 샐러드만 만들게 하고.

 

끝으로 20대 요리학도들에게, 특히 여성 후배들에게 해주고픈 말이 있으신가요?

지금은 일만 너무 많이 하지만, 저 20대에는 되게 많이 놀았어요. 콘서트장, 미술관도 많이 가고 홍대 클럽 가서 밤새 놀기도 하고. 요리만 보는 것보다 치열하게 새로운 걸 많이 해봤으면 좋겠어요. 나중에는 싫어도 요리에만 집중하지 않으면 안 되거든요. 사회와 업계의 체계가 여성 셰프들에게 그만두라고 불난 집 부채질하기 때문에, 스스로 집착하지 않으면 안 돼요.


[828호 – Issue]

PHOTOGRAPHER 김윤희 Studio 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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