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공식 하나로 세상 모든 ‘힘과 운동’을 설명해내는 물리에 재미를 붙여 공대에 왔다. 무턱대고 들어간 로봇 동아리에서는 코딩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 세계적인 로봇 학회 RAS가 주최한 교육 프로그램에 여성으로서 유일하게 참석했다.

‘삽질’을 두려워하지 않다 보니 여기까지 왔고, 앞으로도 갈 길이 한참 남았다. 졸업을 앞둔 학부생으로 바쁜 와중에도 이공계 여성들을 위한 소셜 벤처 ‘걸스로봇’의 매니저이자 로봇 개발 업체 ‘로보티즈’ 인턴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세리 연구자를 만났다.

 

 

섭외하기 전에 세리씨 기사들을 읽다가 “어려서부터 가장 좋아하고 잘하는 과목이 물리”라는 걸 보고 에디터들이 전부 “우와!” 소리를 질렀어요.(웃음) 어디서 매력을 느끼셨는지….

물리라는 개념을 처음 배운 건 중학교 때였어요.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있잖아요. 얼음 위에서 미끄러지거나, 도르래를 사용하면 힘이 덜 든다거나. 이런 게 수식으로 딱 맞아떨어질 때 쾌감이 있어요.

고등학교 때 배우는 공식 ‘F=ma’ 같은 경우도, 이 식 하나로 다양한 현상이 전부 설명되는 게 재밌었어요. 물론 어렵긴 하죠. 근데 저는 과학이 제일 낫더라고요. 오히려 역사나 지리는 곱절의 시간을 투자해도 머리에 잘 안 들어와요.

 

공대도 그렇고, 로봇 동아리도 그렇고 남초였을 텐데 그것 때문에 주저하진 않았어요?

어떤 친구들은 입시 상담 때 수학·과학을 좋아한다고 했더니 담임선생님이 “그럼 넌 수학 선생님 하면 되겠다”라고 했대요. 자기는 공대에 가고 싶었는데. 그런데 사실 저는 편견을 느끼면서 자란 케이스는 아니에요. 제 주변 사람들은 ‘과학을 좋아하니까 기계공학과에 간다’는 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셨고요. 그래서인지 들어갈 땐 남초라는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어요.

 

 

그랬다면 더더욱 연구실의 ‘군대 문화’에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처음엔 진짜 당황스러웠어요. 사람들이 전부 ‘하셨습니까’, ‘했습니다’ 이러니까 너무 어색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해보면 사실 군필인 사람도 거의 없었는데.(웃음) 근데 이건 단순히 남자들이 많아서라기보다는, 한국의 전반적인 문화인 것 같아요.

일단 존댓말이라는 게 존재하고, 상하 관계도 좀 명확하고. 어디를 가도 윗사람 말과 반대되는 의견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곳은 거의 못 봤거든요. 다만 아직도 성별 사이의 권력 관계는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들이 딱히 저를 차별하고 배척하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느낄 수밖에 없는.

 

학교 안에서든 밖에서든 ‘이공계 여성’에 대한 편견을 느끼는 일이 많을 것 같아요.

학교도 학교 나름인데요, 좀 폐쇄적인 학교의 어떤 친구는 “여자애 성적이 좋은 건 남자친구가 대신 해줘서 그런 거”라는 말도 들었대요. 근데 알고 보면 사실 남자친구가 더 못 하고.(웃음) 저희 학교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었는데, 오히려 학교 밖에서 좀 느꼈어요.

‘March for science’라는 과학 행사에서 이공계 여성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핑크 부스를 꾸린 적이 있어요. 근데 그런 질문들을 하시더라고요. “왜 굳이 여학생들만을 위한 부스를?” “여학생들이 이공계 선택을 안 하는 거잖아.” 왜 선택을 안 할까요?

꼭 직접적으로 “여자들한테 이공계는 무리이지 않아? 수학·과학 못 하는 건 사실이잖아” 이런 얘기를 듣지 않더라도, 그냥 자라면서 자연스럽게 겪는 것들이 있어요. 여자애가 치마 입고 그렇게 앉으면 못써, 여자애가, 여자애가, 하는 사소한 편견들이 쌓여서 이공계와 멀어진다고 생각해요.

 

 

로봇 분야는 공대에서도 특히 남자들이 많은 곳이라던데, 그래서 이공계 여성들의 생존을 돕는다는 취지의 ‘걸스로봇’이 더 반가우셨을 것 같아요. 처음에 어떻게 인연이 닿으셨어요?

온라인에서 정보를 나누는 ‘로열모(로봇 공학을 위한 열린 모임)’라는 페이스북 페이지가 있었어요. 거기 학생들끼리 오프라인 모임을 추진하면서 강연자들을 섭외하는데, 다 남자뿐인 거예요.

여자 연사를 찾다가 초청한 분이 ‘로봇 덕후’로 알려져 있던 이진주님이었어요. 그때 현장에서 그분 강연 반응이 엄청 좋았어요. 그게 이진주님한테 일종의 방아쇠가 됐나봐요. 바로 다음 로열모 모임에서 ‘걸스로봇’ 론칭 파티를 여셨거든요. 그러니 어떻게 보면 시작부터 ‘걸스로봇’과 같이했던 거죠.

 

이공계 여성들을 만나 고충을 나누다 보면 공감대가 형성될 것 같아요.

다른 구성원들과 어울리기 어렵다는 거? ‘공대 여자는 공주 아니면 남자야’라는 말이 있어요. 옳은 말은 아닌데 맞는 말 같아요. 남자가 대부분인 곳에서 둘 중 하나를 택하지 않으면 적응하기가 힘들어요. 남자들끼리는 자연스럽게 PC방을 가거나 족구를 하는데, 여성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문화예요.

당연히 어울리기 힘들죠. 저희 랩에선 심하지는 않았는데, 사실 저도 다들 족구하러 가버리면 그 순간엔 아무래도 조금 붕 뜨더라고요. 근데 결국 가장 많이 얘기하는 건 범죄예요. 몰카 찍히고, 카톡방에서 내가 폭력적으로 소비되고, 어떤 선배가 나를 약간 불쾌하게 만지고 이런 건 그냥 불편한 수준을 넘어서니까. 꼭 이공계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사실은 이런 문제가 더 많이 얘기돼요.

 

 

로봇 개발업체 ‘로보티즈’ 인턴으로도 활동 중인데, 연구자로서 본인의 장점은 뭐라고 생각하세요?

모든 연구는 삽질에서 시작해요. 연구를 잘 하느냐 못 하느냐는 삽질을 얼마만큼 덜 하느냐로 갈리는 것 같아요. 사실 저는 아직 연구를 잘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근데 삽질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맞는 것 같아요. 될 때까지 삽질을 계속하는 거죠. 지금도 마찬가지고요. 많이 돌아가는 길이긴 하지만, 어쨌든 포기하지 않는 거니까 제 연구력이 조금 더 쌓이면 장점으로 발현되지 않을까 하고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어요.

 

다른 인터뷰에서 “다양한 이공계 여성들을 만나면서 다음 단계에 대한 상상을 하게 됐다’고 말씀하신 걸 봤어요. 세리씨의 다음 단계에 대한 상상은 어떻게 바뀌었나요?

원래는 상상을 안 했어요. 그래도 사는 데 지장 없으니까. 근데 결혼·육아 때문에 포기한 분들을 많이 만나다 보니, 내가 내 일을 갖고 있다는 게 얼마나 귀한 일인지 느끼게 됐어요. 적어도 나에게는. 그래서 유학을 준비 중이에요. 결혼하지 않고 살려면 한국에서 살 수도 있겠는데, 전 아직까지 결혼을 하고 싶고, 아이를 갖고 싶거든요. 제 일도, 제 생활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어느 정도 자리 잡을 때까지는 해외에서 생활을 하고 싶어요.


[828호 – Issue]

PHOTOGRAPHER 이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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