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우리 귀한 장손 왔다!” 나의 추석은 매년 이 말과 함께 시작된다. 태어나보니 장손이었다. 3대 독자의 운명은 애석하게도 날 비껴가지 않았고, 고작 손가락 한 마디만 한 고추 하나 달고 태어난 이유로 나는 장손이 되었다. 장손에 대한 어른들의 관심은 매우 지대하다.
관종인 나도 견디기 힘들었던 이 ‘장손 스포트라이트’에 대해 지금부터 소상히 읊조려보겠다. 첫째, 난 우리 집안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사명을 가졌더랬다. 친척 어른들이 못다 이룬 학업을 수행해야 했으며, 화이트칼라의 전문직 종사자가 되어야 했다.
그들이 쌓지 못한 부를 대신 쌓아 올려, 소작을 지어 먹었던 조상님의 원통한 한까지 풀어야 한다나? 둘째, 강씨 집안의 유구한 번영을 위해 가정을 꾸려야 한다. 고작 스물여덟 살인 내게 결혼은 매우 가혹한 처사인데 할머니는 적령기를 놓친 것 아니냐며 노심초사하신다.
빨리 어여쁜 색싯감을 데려오길 간절히 소망, 희망, 갈망하신다. 아, 하나 더! 아들을 낳아야 한다. 장손의 장손을 보셔야겠다는 소리다. 사실 가정을 꾸리는 것은 아들을 낳기 위한 전초 과정쯤으로 생각하시는 것 같기도 하고. 셋째, 장손은 누구나의 자식이어야 한다.
나는 엄마와 아빠 사랑의 결실임에도 불구하고, 고모, 작은아빠, 할머니 등 기타 강씨 집안 어른들의 자식이 되어야 했다. “난 아들이 없으니까 넌 내 조카가 아니라 아들이지!”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또 하나의 부모님이 생겼음에 오금이 저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가만 생각해보자. 만약 내가 그렇게 빼다 박았다는 아빠의 아들이 아니라면? 산부인과에서 아이가 바뀐 거라면? 이 뻔뻔하고도 막장스러운 클리셰가 있다면 나는 장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 영화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는 그 발칙한 상상을 겁도 없이 풀어냈다.
6년이나 ‘나랑 발가락이 빼닮았다’며 키웠는데 아들이 아니란다. 낳은 정이냐 기른 정이냐 하는 상투적인 질문은 꽤나 사람을 고민하게 만든다. 그놈의 ‘씨’가 문제다. 평생을 아들로 알고 키웠는데 염기서열이 다르다는 사실에 아들의 지위를 박탈할 수 있는 것일까?
대답은 박탈할 수 있다, 우리 집 어른들이라면. 내가 장손으로서 사랑을 받는 것은 김씨도 이씨도 아닌 바로 강씨이기 때문이다. 부러 곡해하자면 그놈의 씨를 빼면 우린 바로 남남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얘기다. 과연 한 번만이라도 장손이 아닌 나로 추석을 맞이하는 날이 올까?
– 외동에 장손에 3대 독자, 결혼하기 어려운 남자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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