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멀다하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길.
인스타그램 피드에는 해당 길의 카페와 맛집이 범람하는데,
그 동네의 속사정에는 누구도 관심이 없다.
젠트리피케이션은 대기업의 얼굴로만 오지 않는다
레스토랑 ‘1920경양식’, 다이닝 스토어 ‘열두달’, ‘익동다방’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해진 카페 ‘틈’, 태국 음식점 ‘동남아’, 비디오 카페 ‘엉클 비디오 타운’, 라운지 바 ‘별천지’, 게스트하우스 ‘낙원장’까지. 익선동 골목을 걷다보면 자연스럽게 마주치게 되는 업종도, 이름도 제각각인 가게들.
알고보면 이들은 모두 ‘익선다다’라는 한 업체의 작품이다. 도시 공간 기획 업체 익선다다는 점포 콘셉트를 기획해 그에 맞게 한옥을 개조한다. 일부 가게는 직접 운영하고, 익선동이 뜨면서 몰려오는 창업 희망자들에게 컨설팅을 제공하기도 한다.
서울 안의 소위 ‘힙한 동네’가 땅값이 싼 곳을 찾아 이주한 예술가들이 다양한 색을 뿜어내며 시작된 것과 달리, 한 업체의 주도 하에 상권이 형성된 셈이다. 3년도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익선동 좁은 골목길에는 약 스무 개의 가게가 들어섰다.
낡은 한옥은 서까래와 지붕, ㅁ자형 구조같이 ‘한옥 느낌 나는’ 뼈대만 남기고 대부분 헐렸고, 우후죽순 이루어진 개발과 공사에 고통 받는 건 주민들이었다. 2012년부터 익선동에 터를 잡고 공예품을 제작해온 ‘월인공방’은 지난 4월, 익선다다가 공방 옆 한옥을 라운지 바로 개조하면서 엄청난 소음과 흙먼지가 발생해 피해를 받고 있다는 트윗을 올렸다.
“공사 시작할 때 주민 동의나 양해를 구하는 것도 전혀 없었다”며 과정을 지적했고, 완공 후에도 “여긴 방음 시설도 제대로 안 된 쪽방촌이다. 옆방에 디스코텍이 생긴 거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불법 증축 공사도 문제가 됐다. 현재 익선동은 재개발 규제로 신축과 증축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런데 라운지 바를 만들면서 한옥 건물에 2층 구조물을 만드는 공사를 감행한 것이다. 주민들의 민원과 신고로 익선다다는 시와 구청으로부터 시정 조치를 받았고, 올려놓은 구조물을 철거했다.
월인공방은 익선동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일들을 트위터에 지속적으로 게재했는데, 이에 익선다다는 허위 사실로 자신들을 음해한다며 공개 사과문을 요구했다. 몇 달 후, 그간의 정황을 담은 장문의 사과문이 SNS에 올라왔지만 익선다다는 결국 월인공방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다.
치워지는 사람들
익선동은 원래 서민을 위한 한옥 지구로 만들어진 동네다. 북촌이나 서촌과 달리 한옥의 크기가 아담한 이유다. 1920년대에 만들어진 모습 그대로 세월을 관통해오는 동안, 여러 주체들의 이해관계가 얽혀 재개발 등의 변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여력이 있는 사람들은 떠나고, 월세가 싼 낡은 한옥에는 자연스럽게 가난한 고령자들이 남았다. 그들은 시간이 멈춘 동네에서 먹고 자고, 세탁소나 슈퍼를 운영하며 여느 동네의 이웃들과 다를 바 없는 일상을 보냈다. 그러나 익선동이 핫 플레이스로 떠오르면서 3년 동안 주민 377명이 동네를 떠났다.
주거용이었던 한옥의 상업적 가치가 드러나면서 평당 가격이 약 4000만원으로 2배 가까이 뛰었고, 20~30만원이었던 월세 역시 100만원을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남아있던 주민들도 집 안까지 거침없이 들이대는 카메라와 자신들의 빈곤을 대상화하며 감상하는 ‘가난 포르노’, 관광객들이 일으키는 소음에 지쳐 이사를 택했다.
이제 익선동에는 다닥다닥 붙어있는 힙한 가게의 주인들과 그곳을 찾아 해시태그를 다는 손님들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흔히 떠오르는 동네를 일컬어 ‘죽은 동네의 변신’ 같은 말을 갖다 붙이곤 한다. 예전부터 거기서 살았던 사람들은 지워버린 채로. 아니, 안 보이는 곳에 치워버린 채로.
그런데 허름하고 보기에 좋지 않으면 ‘죽은’ 동네인가? 예쁜 카페를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만 생기가 넘치는 일일까? 오래된 동네의 정취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우리는 사실, 자연스레 낡은 것이 아닌 빈티지한 ‘느낌’을 주는 것에만 열광하고 있는 건 아닐까.
익선동 상인회 ‘익선다락’은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익선동의 임대료가 급격히 오르는 것을 막고, 젠트리피케이션의 대응책을 마련해 한옥 마을의 정체성을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급격한 상권화로 어떠한 대책도 제공 받지 못한 채 동네를 떠나야 했던 주민들이 겪은 일은 무엇이라고 이름 붙여야 할까?
8인의 연구자가 쓴 책 『서울, 젠트리피케이션을 말하다』는 종로의 도시 재생 사업에 대해 이렇게 정리한다. “이제 정화 사업은 주변 환경을 아름답게 가꾸거나 거리를 깨끗하게 청소하는 것을 뛰어넘어 사람들마저 정화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Editor 김슬
Photographer 김신지
소설 『난쏘공』 배경이 ‘핫플’이 된 사연
만리동에 5년 동안 거주 중인 김영주씨는 최근 동네의 급작스러운 변화로 인한 당혹감을 토로했다. “원래 집 주변 식당 물가가 싸서 좋았는데, 이제는 맥주 한 잔에 6~7천 원씩 해요. 집 근처에서 외식을 자주 하는데 예전보다 생활비 부담도 커졌어요.”
지난 6월 ‘서울로 7017’ 보행로가 개장하면서 동네의 전반적인 물가가 상승한 것이다. 인근 주민들의 불편함도 덩달아 늘었다. 서울로 인근의 오피스텔 화장실을 이용하려는 외부인의 출입이 잦아져 관리인과 주거인들에겐 골치 아픈 일상이 됐다.
시끌벅적함을 한껏 뿜어내는 서울역과 달리, 바로 뒤편의 만리동과 중림동은 원래 한산했던 주거 밀집 지역이었다. 소설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배경이었던 중림동은 50여 년 전 밥벌이를 위해 상경한 사람들이 무허가 주택을 지으면서 주거지가 형성됐다.
굽이치는 언덕길, 켜켜이 쌓인 낡은 지붕들, 녹슨 간판들을 보면 그 세월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서울역 고가도로의 그늘에 가려 최근까지 낙후된 지역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던 중림동과 만리동 일대가 최근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됐다.
음습했던 고가도로가 새롭게 탈바꿈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전시 공간이 확보되고, 산책로가 생기자 사람들의 발길이 잦아졌다. 중림동에서 치킨집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예전에는 다리 밑에 노숙자들이 많았는데 새로 길이 깔리고 나서는 많이 쾌적해진 것 같다”고 말했다.
인근에 예쁜 카페와 식당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도 서울로가 생겨난 이후의 일이다. 낙후된 지역을 개발하고, 주변의 도시환경을 새롭게 정비하는 것. 도시재생사업은 유동인구를 늘리고, 지역 상권을 활성화 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도시개발 패러다임으로 주목 받고 있다.
서울로와 더불어 중림로 일대에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도 이것의 연장선상. 서울시가 손기정 체육공원, 약현성당, 염천교 제화거리를 서울로와 연결해 ‘중림동 역사문화탐방로’로 조성해 관광명소로 만들려는 계획에 있기 때문이다. 후미진 동네의 낡은 집들과 오래된 거리는 ‘도시 경관’을 위해 철거되거나, ‘역사 자원’으로 지정돼 관광 상품이 되고 있었다.
누구를 위한 개발인가
이런 탓에 언론에서는 중림동 일대의 잠재적 가능성을 보고 재빨리 ‘중리단길’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른바 ‘핫 플레이스’의 세 가지 필수 요소인 역사 관광지, 고급 카페 거리, 보행 친화 거리를 갖추게 될 거라는 전망에서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중림동 역시 젠트리피케이션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하지 않게 됐다. 취재를 나가 만난 인근 상인들 대부분이 최근 몇 달간 급격하게 상승한 임대료 문제로 어려움을 호소했다. 중림로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B씨는 서울로가 개장하기 전 막연한 기대감을 가졌다.
하지만 서울로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잠시 ‘반짝’했을 뿐, 3주 정도 지나자 이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문제는 실질적인 수익 상승은 발생하지 않았는데, 임대료만 상승해버린 까닭에 오히려 이전보다 상황이 어려워졌다는 것.
“건물주가 보증금을 2천에서 1억 가까이 올린 가게들도 더러 있대요. 기본적으로 임대료가 2배 정도 올랐어요.” B씨는 건물주와의 재계약을 앞두고 걱정이 산더미라고 했다. 수십 년간 터를 지켜온 치킨집 사장님 A씨의 상황도 다르지 않았다. “동네가 홍대 앞처럼 활성화될 줄 알았는데, 임대료 오른 거에 비해 장사가 잘 되지는 않아요.”
때문에 문을 닫거나 이전을 고민하는 가게들도 많아졌다. 실제로 중림로의 한 국밥집이었던 공간은 현재 점포가 비어 있었다. 높아진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쫓겨나게 된 것이다. 서울로 개장으로 인한 상업화가 자영업자들에겐 오히려 더 큰 부담을 안겨주고 있는 셈이다.
그렇게 생겨난 빈 자리들은 무엇으로 메워지고 있을까. 만리동 방향의 서울로 출입구 쪽에는 최근 맥주집을 비롯해 세련된 인테리어의 카페, 플라워숍 등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흡사 ‘◯◯길’의 신화가 돼버린 경리단길 초입을 연상케 한다. 프랜차이즈 가게들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상인 B씨는 “옆 가게들이 원래 동네 빵집이랑 파스타집이었는데 지금 프랜차이즈점으로 다 바뀌었다”고 했다. 높은 임대료로 영세 상인들은 설 자리를 잃고, 이를 감당할 수 있는 대기업 자본이 동네에 침투하는 것은 시간문제다. 또 다른 상인 C씨는 ‘중리단길’이라는 표현에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미디어에서 중리단길이라고 장밋빛 전망을 떠들어대는데, 솔직히 혜택은커녕 임대료 때문에 장사만 더 힘들어졌어요.” 새롭게 단장한 ‘서울로 7017’의 조명이 비추는 곳은 어디고, 또 가려진 곳은 어디일까.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무대였다는 중림동, 그때와 경관은 180도 달라졌지만, 여전히 원주민이 소외되는 개발의 모순이 되풀이되고 있는 것은 아닐지.
Editor 김신지
Intern 김영화
누가 이름을 함부로 짓는가. 단순히 성명학의 가르침에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이름에서 때로 많은 것들을 읽는다. ‘◯◯길’이라는 이름이 붙으면서 사라진 건 ‘중림로’, ‘포은로’ 라는 지역 명칭뿐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을 부추기는 ‘–리단길’, ‘-로수길’이란 명명은 한 지역에 드리운 일률적인 상업화의 그늘을 보여준다.
망원동은 2015년부터 급격한 변화를 경험했다. 오랫동안 터를 지키던 사진관과 가게들이 문을 닫고, 그 자리를 대형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대체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른바 ‘망리단길’. SNS와 언론을 통해 유명세가 퍼져나간 건 삽시간이었다. 임대료 상승은 불을 보듯 뻔했다.
주민들의 평범한 일상도 수많은 관광객들과 미디어에 의해 침범됐다. 원주민들이 터전을 옮기는 현상이 계속되자 망원동 주민회에서는 토론회를 열어 문제의식을 공유하기 시작했다.
망원동 주민회 조영권 대표는 “생활에 필요한 가게들은 없어지고, 카페와 술집만 늘어나서 불편함이 늘었다”며 “외부로부터 유입 인구가 많아져 교통 문제며 쓰레기 처리며 새로 발생한 문제들을 주민들이 오롯이 감당하게 됐다”고 토로했다.
이후 망원동 주민회에서는 언론과 미디어에 ‘망리단길’이라는 용어를 쓰지 말아달라는 ‘망리단길 싫어요’ 서명 운동을 벌이고, 주민회의를 통해 대안을 강구하는 등 저항운동을 지속해왔다. 조영권씨는 여전히 우려를 표했다. “망리단길이라고 하는 순간 지역 자체의 특색이 사라지게 돼요. 망원동이 가진 고유한 가치가 있는데 다른 곳에 빗대어져 아류처럼 느껴지니까 ‘무슨 무슨 길’들에 대해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거죠.”
문제는 사라지는 것이 상점들만이 아니라는 것이다. 망원동 인근, 성미산 마을공동체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작은나무 카페’가 지난 7월 끝내 문을 닫게 됐다. 2004년, 주민들이 함께 만든 유기농아이스크림 가게로 출발한 이곳은, 이후 지역주민과 개인 조합원들이 ‘작은나무협동조합’을 만들면서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하는 공유 공간이 됐다.
지역 주민들의 자치 활동의 무대이자, 아이를 마음 놓고 맡기는 공동 육아의 장이기도 했다. 성미산 마을 네트워크 ‘사람과 마을’ 공병각 운영위원장은 “공동체의 거점인 마을 카페는 수익을 내는 것보단 커뮤니티 공간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임대료가 100만원을 넘으면 감당이 어려워진다”며 “동네 인근이 상업화되면서 높아지는 임대료를 막을 수가 없었다”고 전했다.
이곳을 사랑했던 주민들이 카페를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 했지만 새 건물주의 수익 사업에 결국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이 자리엔 대형 주상복합 빌딩이 들어설 예정이다. 공병각씨는 “정체불명의 현대식 건물들이 들어서면서 모든 동네가 똑같아지고 있다”며 “일종의 문화 파괴”라고 말했다.
동네가 뜨면 건물주가 임대료를 올리고, 프랜차이즈 카페가 들어오고, 고유한 지역 문화와 정체성이 사라지게 되는 것. 이런 일련의 과정이 전국의 ‘뜨는 동네’마다 일괄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작은나무 카페가 없어지면서 마을공동체의 자치 활동도 위축될 상황에 놓였다. ‘공유 공간’은 구성원들의 연대와 참여를 돕는 문화적 자산이기도 했다.
공병각씨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지역의 공동체 문화를 위협하지 않도록 행정적 지원과 정책적 보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무리 지역공동체가 자발적으로 형성됐다 하더라도 행정적 지원이 없으면 자본의 구조에서 버틸 수가 없어요. 공공 건물에 대한 매매나 계약을 통제하는 ‘시민 자산화’나 ‘임대료 상한제’ 등의 정책이 뒷받침돼야 해요.”
Editor 김신지
Intern 김영화 movie@univ.me
Photographer 이성찬
‘대림창고’에서 샤넬의 패션쇼와 다양한 브랜드 행사가 열리면서 성수동은 ‘서울의 브루클린’이라고 불렸다. 빈곤의 상징이었던 뉴욕의 브루클린이 공장을 개조한 펍과 멋진 카페로 맨해튼의 힙스터들을 유입시킨 것을 비유한 말이었다.
그러나 거리가 핫해지고 고급스러운 시설들이 들어서면서 그 지역에 살던 흑인 5만 명 이상이 다른 곳으로 밀려나야 했다. 브루클린은 성공적인 도시 재생의 레퍼런스인 동시에 대표적인 젠트리피케이션 사례이기도 하다. 서울의 브루클린 역시 최근 젠트리피케이션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성수동에선 요즘 두 개의 길이 흥하고 있는데, ‘대림창고’를 선두로 빈 창고를 고쳐 투박한 멋을 살린 성수역 인근의 카페와 편집숍 거리. 또 하나는 가정집을 개조한 아기자기한 가게들이 늘어선 서울숲 카페 거리다. 매력이 다른 두 길이 동시에 떠오르면서, 2016년 4분기에 성수동은 서울의 25개 구 중 점포 증가율이 가장 높은 동네로 조사됐다.
하지만 새로운 가게가 생기는 속도만큼 창업과 폐업의 주기 역시 빨라진 추세다. 급증하는 임대료와 치열한 경쟁 때문에 성수동 인근의 상점 15~23%가 평균 2년 6개월 만에 문을 닫는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성수동은 지난 2년간 경리단길 다음으로 임대료가 많이 오른 지역이기도 하다.
그래도 고무적인 사실은 성동구가 일찍이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해 고민했다는 점이다. 성동구청은 2015년에 전국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선포하고 전담 부서를 신설했는데, 여기에는 프랜차이즈 입점 제한, 건물주와의 상생 협약, 공공 안심상가 운영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건물주와의 상생 협약은, 구청 직원이 건물주를 찾아가거나 전화를 걸어 ‘젠트리피케이션’의 개념을 이해시키고 임대료 상승을 자제하겠다는 협약에 서명을 받는 것이다. 재산권을 침해한다는 불만이 빗발쳤고, 사실상 강제력이 없는 상징적인 약속에 불과해 효과가 미미하리라 예상됐다.
하지만 올 상반기, 성동구가 지정한 지속가능발전구역(서울숲길, 방송대길, 상원길 일대)에서 계약을 갱신한 78개 점포 중 무려 60곳에서 임대료가 동결됐다. 구청은 협약 지역의 범위를 점차 확대할 것이라 밝혔다. 영세 상인과 청년 예술가를 위한 안심상가도 조성 중이다.
임대료 급상승으로 쫓겨나게 된 상인들이 2년간 시세의 60%만 내고 장사할 수 있는 단기 안심상가의 입주가 이미 마무리되었고, 지하 1층, 지상 8층 규모의 장기 공공안심상가가 내년 1월에 완공될 예정이다. 브루클린의 흑인들은 젠트리피케이션이 ‘인권의 문제’라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은 주민과 세입자를 사람이 아닌 자본으로 보기 때문에 극심해진다. 성동구의 시도가 결과적으로 얼마나 성공을 거둘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지자체가 앞장서서 사람을 사람으로 보자고, 함께 오래 가자고 설득하는 장면은 무척 생경하면서도 반가운 일임에 틀림없다.
Editor 김슬
[829호 –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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