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대 여신은 있는데 홍대 남신은 없고

 

“네가 음악을 좋아한다고? 그냥 밴드맨이랑 자고 싶어서 온 거잖아.” 공연을 보러 갔는데 이런 소릴 듣는다면 어떨까요? 인디 씬에는 ‘그루피(groupie)’라는 오래된 단어가 있어요. 밴드맨들을 따라다니며 사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여성 관객을 비하하는 용어죠. 여성 관객이 대상화되고 낙인 찍히는 문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어요.

 

애초에 여성이 음악을 온전히 이해하고 즐기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 거죠. 반면 이렇게 성희롱하고, 여성혐오적 발언을 일삼는 밴드맨이나 남성 관객을 지칭하는 용어? 그런 건 없거든요. 저는 한 인디 밴드의 드러머로 활동하고 있어요. 왜 드럼을 치게 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데, 드럼은 여자가 다루기 어렵다는 편견 때문인 것 같아요.

 

 

숨을 거칠게 쉬거나 땀을 흘리는 역동적인 이미지는 주로 남성적인 것으로 여겨지고, ‘여자는 조신하게 앉아야 해’ 같은 말을 흔히 하잖아요. 그러다 보니 여성들이 몸을 자유롭게 써보는 경험이 제한되는 거죠. 사회가 여성들로 하여금 신체 활동을 두렵게 여기게 만든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저는 활동적인 거, 특히 몸 쓰는 걸 좋아하거든요! 드럼에 매력을 느끼게 된 것도 그래서예요. 제가 몸담고 있는 인디 씬은 분위기가 상당히 남성 중심적이고 폐쇄적인 편이에요. ‘남자는 되는데 여자는 안 되는’ 것들이 많거든요. 공연장에서 여성은 수시로 대상화되고 성추행에 노출되지만 잘 공론화되지 않았죠.

 

한번은 여기에 대해 문제 제기를 했어요. “니네들도 같이 자면서 왜 여자만 욕해? 그냥 여자라서 욕하는 거 아니야?” 그랬더니 대뜸 앞의 저 말이 나온 거예요. “걔네가 음악을 뭐 알아? 그냥 자고 싶어서 온 애들이야.” 그러니 피해자들의 문제 제기에 제대로 반응할 리도 만무하죠. 늘 나는 그런 적 없다거나, 그렇게 말하는 애가 허언증이라거나, 아님 아예 반응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해요.

 

관객이 아니라 여성 뮤지션이라고 해서 어디 다를까요. 여성주의적 가치관을 공유하는 건 둘째치고 인디 씬에선 여성 음악인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요. 남성 중심적인 씬에서 살아남으려면 명예 남성이 되거나 스스로 성적 대상이 되는 선택지밖에 없거든요. 왜 ‘홍대 여신’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여성 뮤지션은 늘 외적인 모습으로 평가되지만, 누가 크라잉넛을 ‘홍대 남신’이라고 부르나요?

 

 

 

여성 뮤지션들은 음악으로 제대로 평가받지도 못하고, 그러다 보니 음악을 할 수 있는 무대에 대한 목마름이 훨씬 심하죠. 저는 온전히 한 인간으로서, 드러머로서 공연하고 싶었어요. 내가 가진 성별로 인해 눈치 봐야 하는 공연 말고, 걱정 없이 마음껏 뛰놀 수 있는 그런 공연이요.

 

그러던 어느 날 제의가 들어왔죠. “여성들을 위한 뮤직 페스티벌을 준비 중인데 같이 해보지 않을래?” 바로 <보라X뮤직페스티벌> 얘기였어요. 여성혐오 없는 음악을 들으며 성폭력, 시선강간, 몰카 걱정 없이 여성들이 편히 즐길 수 있는 페스티벌이라니. 당장이라도 그런 판을 같이 만들어보고 싶었어요.

 

이런 뮤직페스티벌 경험해봤니?

 

지난해 트위터에서 시작된 #OO계_내_성폭력 해시태그 운동이 기점이 된 것 같아요. ‘예술’이나 ‘자유’라는 이름으로 여성 관객의 몸을 훑고, 만지고, 희롱하는 문화, 그리고 그걸 방관하고 방조해왔던 문화가 폭로되기 시작했죠. 그전까진 여성들 개개인이 느끼는 ‘불편함’에서 끝났다면, 이제 그게 명백한 ‘문제’란 걸 깨닫고 말할 수 있게 된 거예요.

 

그건 정말 큰 변화였어요. 제가 남성 중심적인 분위기의 밴드와 결별하고 지금의 밴드에 들어가게 된 것도, 여성들만 올 수 있는 페스티벌을 함께 만들게 된 것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나서였어요. 이런 변화는 무엇보다 비슷한 고민을 공유하는 여성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어요.

 

 

 

<보라X뮤직페스티벌>에서 기억에 남는 것 중 하나가 ‘배리어 프리존(barrier free zone)’을 만든 거였어요. 휠체어 이용 장애인들이 들어올 수 있도록 공연 장소를 고려하고, 청각 장애인들도 공연을 즐길 수 있게끔 노래 가사와 공연자들의 멘트가 스크린에 속기로 입력되도록 했죠.

 

그제야 지금까지 제가 다녔던 공연장에 한 번도 휠체어 이용 장애인을 본 적이 없다는 걸 인지하게 됐어요. 공간 자체가 소수자들의 접근을 제한하고 있었던 거죠. 이렇게 기존에 없던 걸 만드는 게 저는 저항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일까요. <보라X뮤직페스티벌>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해방감을 느꼈어요.

 

여태껏 공연장 접근권이 없었던 장애인들에게도, 성희롱에 수시로 노출되던 여성 관객들에게도, 설 무대가 부족했던 여성 뮤지션에게도 모두 새로운 경험이었을 거예요. 보통 공연을 할 때 반응이 없으면 괜히 더 긴장되고, 집중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여기서는 뮤지션이 이야기하면 관객들이 경청하고, 호응하고, 그 반응을 또 뮤지션이 그대로 흡수하면서 서로 교감할 수 있었어요.

 

이 공간이 서로에게 안전하다는 느낌을 주고, 몸을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되면서 관객과 공연자 사이에 생긴 연대감이 시너지가 된 게 아닐까요. 이전에는 인디 씬의 가부장적인 사람들과 젠더 이슈로 대화하면 진전이 어려웠어요. 내가 받은 피해를 하나하나 설명해야 하는 것도 힘들었고요.

 

 

 

그러다보니 이 사람을 바꾸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어요. 그냥 나랑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을 모으는 게 훨씬 쉽고 재밌을 것 같은 거예요. ‘우리는 우리가 즐거운 걸 할게. 그러다 보면 그 즐거움이 다른 사람에게도 전이되고 더 넓어지겠지. 그럼 변화를 거부하는 이들은 자연스럽게 퇴화될 거야. 애써 그들을 바꾸려 하지 않더라도.’ 하는 생각에 이른 거죠.

 

저는 제가 좋아하는 걸 하고, 이렇게 즐거움을 넓혀가는 게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여성이라는 이유로 발언권을 뺏기는 경우가 많은데, 여성들이 주체적으로 말하고 느끼는 것 그대로를 표출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해요. 당장 사회를 그렇게 바꾸지 못한다면, 우리가 하는 공연부터라도 그렇게 만들어보는 거죠.

 

여성들이 겪었던 불편과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 용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네트워크가 되어주는 거예요. 마음껏 나대고 설칠 수 있는 그런 공간을 계속 넓혀가고 싶어요.


[833호 – 20’s ㅇㄱㄹㅇ]

Intern 김영화 movie@univ.me

Interviewee 둠(가명)

인디 씬에서 드러머로 활동 중인 둠씨(가명)와의 인터뷰를 인턴 에디터가 옮겨 적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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