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고 가난하고 고단할수록 와인을 마신다. 소주를 마시면 왠지 더 서글퍼지기 때문이다.

맥주를 마시면 너무 배가 부르기 때문이다. 엉망인 하루를 보낸 뒤에 와인 마개를 뽕! 하고 따면

왠지 보상 받는 기분. 콸콸 따라 홀짝홀짝 마시다 보면 구질구질한 이야기를 하더라도

인생이 조금은 파티처럼 느껴진다. 가장 자주 구매하는 4종을 소개해보겠다. 

# 트웬티 파이브 – 까베르네 쇼비뇽

편의점에서 이틀에 한 병씩 구매하는 레드 와인이다. 너무 많이 마셔서 맛을 외워버렸을 정도다. 딱히 특출나게 맛있지는 않다. 재미도 없고 매력도 없지만 그냥 집이 가까워서 엄청 친해져버린 이웃집 남자 같은 맛이다. 자꾸 마시다 보면 정이 들어버린다. 딱히 맛있지도 맛없지도 않은 와인이기 때문에 아무 안주랑 먹어도 무난하게 어울린다. 만원도 안 되는 착한 가격에 꽉 찬 한 병을 살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할 따름이다.

PLUS 달지는 않아도 은은한 과일향이 있어 모찌롤케익 같은 디저트와 궁합이 좋다.

STORE GS25 PRICE 9,900원

# 빈야드 – 까베르네 쇼비뇽

마트에 갈 때 꼭 백팩을 메고 간다. 이 와인을 최소 네 병은 담아와야 하기 때문이다. 예쁜 디자인의 칠레산 와인인데, 가격이 5,900원이다! 꼭 사야 한다. 화이트도 레드도 무난하게 맛있는 편.

친구를 여럿 초대한 날에 종류별, 색깔별로 여러 병 사서 테이블 위에 촤라락 올려놓으면 거의 추수감사절 식탁처럼 풍요로워진다. 병에는 위풍당당한 네 발 동물이 그려져 있는데 취한 채로 보면 라마 같기도, 낙타 같기도, 조랑말 같기도 하다.

PLUS 어떤 와인에도 잘 어울리는 안주 1탄 육포가 제격이다.

STORE 홈플러스 PRICE 5,900원

# 솔데빼냐스 – 레드 & 화이트 와인

편의점에서 처음 이 와인을 보고 두 가지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1. 와인 병이 이렇게 작고 귀엽다니! 2. 가격이 삼천원 대라니! 고민 없이 세 병을 집어 계산대 위에 올려놨다. 사장님 왈, 행사 중이어서 네 병에 만원이란다.

마치 세계맥주 할인 행사처럼 와인을 만원에 네 병이나 먹을 수 있는 것이었다! 지체 없이 한 병을 더 집어왔다. 그날 밤 네 병을 다 비웠다. 당연하지만 하프 보틀 사이즈의 와인도 여러 병 마시면 취하는 것이었다. 기억을 잃고 잠들었다. 이렇게 작고 싼 와인에도 거나하게 취할 수 있어서 놀라웠다.

PLUS 어떤 와인에도 잘 어울리는 안주 2탄 편의점표 스트링치즈를 추천한다.

STORE GS25 PRICE 3,500원

# 카르멘 – 까베르네 쇼비뇽

이마트 대표 저렴이 와인. 데일리 와인으로 마시기에 매우 좋다. 가격은 9,900원인데 맛은 99,000원 같다는 평도 있다. 와인에 기대하는 대부분의 맛이 담겨 있다. 저렴해 보이지 않는 패키지의 심플한 디자인도 좋다. 이 와인을 마실 때면 꼭 고기가 먹고 싶어지므로 미리 치킨을 주문해놓거나 삼겹살 혹은 목살을 내놓는 것이 좋다.

PLUS 기름진 맛을 잘 잡아주는 와인이라 편의점 편육이나 족발과도 어울린다.

STORE 이마트 PRICE 9,900원

[834호 – issue]

Writer 이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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