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나는 ‘캡슐옷장’에 단단히 꽂혔다. 3개월, 즉 한 계절당 의류, 신발, 가방 같은 패션 아이템을 딱 서른세 가지로 제한해 ‘333 프로젝트’라고도 불린다. 한창 미니멀 라이프에 빠져 있을 때라 질 좋고 언제 입어도 기분 좋은 옷만 걸어두자는 캡슐옷장의 취지에 나는 깊이 감화되었다.
실제로 행거를 보니 안 어울려서, 불편해서, 입고 갈 곳이 없어서 방치해놓은 옷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었다. 저게 다 얼마야? 이런 구제 못 할 스튜핏. 그래, 매일 옷을 사들이면서도 아침마다 입을 옷이 없는 굴레에서 빠져나와보자. 궁극의 옷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버리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2년 동안 한 번도 안 입었는가? 내일 이 옷을 입고 데이트 할 수 있는가? 싼 티가 나지 않는가? 나름의 기준을 세워 이별할 옷들을 추려냈다. 그렇게 멀쩡한 옷들 네 박스는 ‘아름다운 가게’로, 남 주기 뭐한 옷들은 헌옷 수거함으로 갔다. 평소 청소도 안 하는 위인이 집 안에 있는 옷을 다 끄집어내서 정리를 하려니 도통 진도가 나가질 않았다.
전의를 불태우기 위해 원목 옷걸이 30개를 주문했다. 세탁소 옷걸이로 빽빽하게 옷을 걸어두면 옷이 망가지고 무슨 옷이 있는지 잘 보이지도 않아 비슷한 옷을 또 사게 된다. 쇼룸처럼 원목 옷걸이를 사용하되 그 개수를 정해두면 옷을 한층 더 소중히 여기게 된다, 고 미니멀 라이프 책에서 읽었기 때문이다.
다음은 리스트 작성. 앞으로 함께 갈 상의, 하의, 신발, 가방, 머플러 등을 하나하나 써보았다. 혼자서만 예쁜 옷보다는 어떤 아이템과도 잘 매치되는 심플한 옷이 유리하다. 효과적으로 돌려 입을 수 있으니까. 그때부터 난항이 시작됐다. 코디를 생각하지 않고 예쁘다고 사 재낀 옷들이 발목을 붙잡은 것이다.
3개월 동안 33가지 아이템으로 생활하려면 최대한 여기저기에 잘 어울려야 하는데, 하나의 상의에 하나의 하의밖에 조합할 수 없는 사례가 속출했다. 이유는 다양했다. 길이가 애매해서, 하체 비만을 부각시켜서, 너무 많은 색상이 들어가 있어서….
뭘 입어도 도화지처럼 받쳐줄 ‘기본 템’이 없는 것도 한몫했다. 아하, 미니멀한 옷장을 가지려면 기본 템이 있어야 하는구나! 결국 나는 남길 옷 리스트가 아닌 사야 할 옷 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이쯤에서 의문을 가지는 사람들이 있을 거다. 아니, 미니멀 라이프 한다며? 못 들은 척하고 말을 이어보자면, ‘기본 템’을 사는 여정은 결코 쉽지 않았다.
옷은 보는 것과 걸치는 게 너무 달라서, 똑같은 일자 청바지여도 핏은 천차만별. 그걸 아는 사람이면 직접 입어보고 사면 참 좋을 텐데. 저질 체력을 이유로 인터넷 쇼핑몰에서 마우스 몇 번 딸깍하기 일쑤였고, 그렇게 배송 온 옷들은 승률이 높지 않았다.
택배 아저씨에게 3일 연속 ‘고객님, 현관문 앞에 놓고 갑니다’라는 문자를 받았을 때는 나도 혼란스러워졌다. 미니멀 라이프 하려고 했는데? 분명 캡슐옷장이 목표였다고! 그러나 캡슐옷장을 궁극의 옷장으로 해석해버린 내 뇌는 지금도 외치고 있다.
한 철 입고 버릴 옷 말고 제대로 된 옷을 사라! 제대로 된 옷! 그 덕에 옷을 구매할 때 혼용률 등 소재를 체크하는 좋은 습관이 생겼지만, 그렇게 예쁘고 소재 좋고 핏까지 좋은 옷은 언제나 비싸다는 사실. 비싼 게 늘 좋진 않지만, 좋은 건 언제나 비싸다는 만고의 진리를 깨닫게 된다.
물건에서 행복을 느끼지 않고 소유욕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게 진정한 미니멀 라이프일진대, 왜 오늘도 나는 새 옷을 입어보며 반품할지 말지를 고민하는가. 이번 생에 미니멀 라이프는 그른 걸까?
[835호 – 독립일기]
illustrator 이다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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