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오고 있어. 그 말인즉, 옷차림도 점점 두터워질 거고, 브래지어 없이 다녀도 괜찮은 날들이 오고 있다는 거지. 여름에도 불가능한 건 아니지만, 답답한 브래지어를 벗고 다니려면 해결해야 할 질문들이 너무 많더라. ‘옷 밖으로 유두가 너무 도드라지면 어떡하지’, ‘사람들이 눈치채면 어떡하지’, ‘가슴이 처지면 어떡하지’. 그때 낡은 책 한권을 발견했어. 이 책에 담긴 ‘유방의 역사’가 답이 될 수 있을까?
# 이 중에서 어떤 유방이 제일 아름다운가?
갑자기 왜 예쁜 가슴을 고르라는 건가 싶지? 유방의 아름다움과 브래지어로부터의 탈출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거든. 무엇을 골랐건, 유구한 세월 이어진 ‘사회적 취향’을 벗어날 순 없어.
“전반적으로 후기 르네상스 시대 이래 남성들은 갈수록 큰 유방을 선호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리하여 중세 후기의 작은 언덕 같은 유방이 500년 후에는 1950년대의 제인 러셀과 1970년대 캐롤 도다 그리고 1990년대의 신디 크로포드 류의 유방에 자리를 내주었다.” p. 136
#『유방의 역사』 아니 유방 잔혹사
아쉽게도 지금은 절판된 이 책은 스탠퍼드 대학의 원로 학자인 매릴린 옐롬의 저서야. 1970년대 중반 여성해방운동에 관심을 가지면서 안정적인 교수직 대신, 학문적으로 여성을 연구하기 시작했다고 해.
그의 네 번째 저서인 『유방의 역사』에서는 고대부터 현대를 관통하며 ‘여성의 유방’이 어떻게 규정되어 왔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어. 작가들에게는 예술 작품, 상인들에게는 돈을 벌어들이는 수단, 종교인들에게는 성스러운 상징물이었던 ‘유방 잔혹사’를 읽어 나가다 보면 저절로 이 말이 나올 거야. “가슴 좀 그만 내버려 둬라!”
# 유방 잔혹사 Q & A
『유방의 역사』를 인용 및 재구성한 Q & A입니다.
Q1. 풍만한 가슴에 핑크빛 유두가 아름다운 가슴을 대표한다?
그렇지 않아. 시대에 따라 미의 기준은 바뀌어왔어. 중세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에는 ‘작은 가슴’을 아름답다고 여겼대. “유방은 작고 하얗고 사과처럼 둥글고 단단하고 처지지 않고 두 유방 사이가 넓게 벌어져 있어야 했다.” ▶p. 82
고대 이집트나 그리스에서는 병적으로 획일화된 가슴을 아름답게 여겼던 것 같진 않아. “고대 세계에서는 인간의 형상을 그릴 때 보통 남성과 구별되는 여성의 특징으로 유방을 꼽았다. 유방은 크기나 모양도 가지각색이고 심지어는 그 수도 다양하게 나타나지만, 거의 언제나 뚜렷하게 눈에 띄었다.” ▶p. 23~24
Q2. 세 살배기한테도 강철 브래지어를 채웠다?
현대적인 브래지어가 개발된 건 훨씬 이후지만, 14세기부터 20세기까지 유방을 봉긋하게 보이도록 조인 건 주로 ‘코르셋’이었어.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때는 ‘정숙하게’ 가슴을 압박하는 ‘보디스’를 입었대. “상층계급의 명문가에서는 심지어 두세 살 밖에 안 된 어린 소녀들도 고래수염이나 나무 또는 강철로 버팀살을 만들어 훨씬 견고한 보디스를 입어야 했다.
그런 옷은 너무 몸에 꽉 끼고 신축성이 없어 여성의 유방을 마치 널빤지를 대놓은 것처럼 납작하게 눌러주었으나, 가끔은 유두가 함몰되고 늑골이 부러지는 참사를 초래하기도 했다.” ▶p. 117~118
Q3. 무려 기원전 5세기부터 여성의 복장은 통제 대상이었다?
고대는 사고방식이 좀 자유로웠다니까 그래도 희망이 생길 뻔했는데…. 무려 민주주의가 시작된 그리스 아테네에서도 여성의 복장은 통제 대상이었다고 해. 여성은 투표권이 있는 시민이 아니었거든.
“기원전 5세기 아테네의 여성들은 그들을 정치에서 배제시킨 채 집안일에 묵혀두고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온몸을 가리도록 강요했던 가부장제에 의해 용의주도하게 통제되었다. 그들은 집 안에서는 속옷 같은 길다란 ‘키톤’을 입고, 집 밖에서는 보온을 위해 망토를 걸치고 베일로 머리를 가렸다.” ▶p. 33
Q4. 젖꼭지 좀 보인다고 마녀사냥을 당했다?
중세 시대에는 마녀의 몸에 제3의 젖꼭지가 있다고 믿었대. 알고 봤더니 그 정체가 클리토리스든, 사마귀든, 주근깨든, 아니면 200명 중 한 명꼴로 생긴다는 또 하나의 젖꼭지든 간에 “마녀의 젖꼭지로 추정되는 곳을 바늘로 찔러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는가를 봐서 진짜 마녀를 가려내도록 되어 있었는데, 이런 절차에 그만 겁에 질려 몸이 굳어버린 결백한 여성들이 처형을 당했다.” ▶p. 91
우스운 건, 로코코 시대로 넘어가면 그토록 음탕하게 취급하던 여성의 젖꼭지를 한 번이라도 더 보기 위해, 목선을 최대한 깊이 판 드레스가 유행했단 거야.
Q5. 브래지어, 몸뿐만 아니라 정신까지 억압한다?
최근 브래지어는 ‘21세기 코르셋’이라 불리고 있어. 몸을 억압하는 것뿐 아니라, 정신까지 옥죄기 때문일 거야. 구매자이자 판매자인 여성들이 자연스러운 몸을 추구하도록 사회가 가만히 놔두지 않거든.
“코르셋이 처음 발명되었던 중세 후기 이래, 패션은 이상적인 여성의 체형 변화에 따라 지속적으로 개량되며 이득을 보았다. 일정한 틀에 맞춰 몸매를 만들거나 감추기 위해 몸을 덮어 가리고 졸라매고 패드를 넣어 부풀리고 혹은 몸매를 다듬거나 ‘길들이고’ 아니면 심지어 잘라내기까지 하는 시도들은 ‘자연스런’ 몸을 이야기하기 힘들 정도로 집단 무의식 속에 깊숙이 새겨져 있다. ▶p. 235~236
Q6. 자연스러운 몸으로 돌아가려면 모든 여성이 브래지어를 벗어 던져야 한다?
아니. 그냥 원하는 대로 하면 돼. 가슴이 처지는 게 싫다면 브래지어를 하고, 불편하면 벗고, 모유 수유를 하기 싫으면 하지 않고, 확대하든 축소하든 수술을 받고 싶으면 받고. 우리에겐 내 가슴을 결정할 권리가 있으니까. 애초에 ‘토플리스’라는 문화적 현상은 1960년대 서구 여성들이 모든 외적인 억압을 거부하면서 시작됐거든.
당시 미국 여성들은 ‘브래지어 화형식’을 거행했고, 프랑스 여성들은 ‘토플리스 수영복’을 입고 해변을 활보했대. “여성들의 경우 새로운 수준의 남녀평등을 이루고 자신의 신체에 대해 자치권을 행사하려는 욕구가 제일 먼저 수영복의 윗도리를 제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p. 265
[835호 – 원더우먼]
Editor 원더우먼 wonderwomen@univ.me
Reference 매릴린 옐롬, 윤길순 역, 『유방의 역사』, 1999, 자작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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