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내일

휘게 유행에 가려진 북유럽식 행복의 가치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행복할 수 없을까
이번 여름 덴마크,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를 여행하면서 ‘북유럽식 가치관은 우리와 어떻게 다른가’를 고민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들은 많은 돈을 소비함으로써 느끼는 과시적 허영에 별다른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타인의 행복을 전시하는 이미지를 보고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라며 모방하지도 않는다.

행복해지기 위해 무언가를 가지려 하기보다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삶의 사소한 계기를 찾아 천천히 즐길 줄 안다. 내가 북유럽식 행복의 가치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이유는 그들이 우리보다 ‘선진적’이어서가 아니다. 외국 문화에 대한 얼빠진 동경과 부러움 때문도 아니다.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하는가’를 성찰해봄으로써 우리가 우리 자신도 모르게 잃어버린 삶의 가치들을 생각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과시적 소비가 아닌 최소한의 소박한 소비만으로도 행복해지는 비결, 말괄량이 삐삐처럼 아이들을 어린 시절부터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씩씩하고 독립적으로 크게 하는 양육법, 경쟁과 등수가 아닌 자율성과 타인에 대한 존중을 배우는 교육….

바로 이런 삶의 가치들이야말로 내가 진정으로 배우고 싶은 삶의 자세였다. 나는 핀란드 학교의 학생들이 한 번도 자신의 성적을 ‘등수’로 평가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깊은 충격을 받았다. 전교 등수로 나의 가치를 판단당하는 것 같아서, 선생님들은 물론 부모님조차 내가 공부를 잘할 때만 ‘빛나는 아이’로 인정하는 것 같아서, 학년이 높아질수록 자존감이 더 낮아졌던 불우한 학창 시절이 저절로 떠올랐다.

그 시절 내내 나는 등수가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로 평가받은 적이 없었다. 뭔가를 잘 해내야만 인정을 받을 수 있었다. 피아노를 내 맘대로 치는 것이 좋았지만 어른들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내키지 않는 콩쿠르에 나가서 벌벌 떨어야 했고, 그냥 친구들의 노랫소리에 맞춰 반주를 하는 것 자체가 좋았는데 순위를 매기는 합창대회에 나가 바싹 긴장한 채, 피아노 앞에 앉아야 했다.

음악의 즐거움을 느끼는 순수한 희열의 시간보다는 음악을 ‘어떻게 써먹을 것인가’에 골몰하는 어른들이 참으로 답답하게 느껴졌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말갛고 꾸밈없는 나라는 존재는 너무 밋밋하고 개성 없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영어 시간에는 한 챕터를 통째로 외워야만 마음이 편해졌고, 수학 공식이나 증명 과정이 이해되지 않는데도 아예 문제풀이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암기해버렸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공부하면서도 죄책감을 느꼈다. 이런 것은 진정한 공부가 아닌 것 같아서. 가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공부를 등한시하면 성적은 수직으로 낙하하여 부모님으로부터 날벼락이 떨어졌다.

공부를 안 해도 괴롭고, 해도 괴로운 진퇴양난 속에서 나의 사춘기는 시들어갔다. 핀란드식 교육을 지상의 유토피아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지만, 학생들의 진정한 자율성을 존중하는 교육철학은 정말로 배우고 싶었다. 지구상에 아이들을 성적이나 등수로 차별하지 않는 나라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 내 오랜 상처가 보이지 않는 따스한 손길로 어루만져지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자유를 만끽할 수도 있었던 소중한 학창 시절을 통째로 도둑맞은 듯한 쓰라린 박탈감도 밀려왔다. 그토록 눈부신 시절에, 숨 막히게 스스로를 가둬놓고 살 필요도, 어른들의 세속적인 기준으로 나의 가치를 재단할 필요도 없었는데. 나는 나인 채로 충분히 소중한 존재였는데 그걸 한 번도 제대로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만 특별해지기 위한 끊임없는 인정 투쟁’이 아니라 ‘나뿐만 아니라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을 꿈꾸는 것이야말로 교육의 이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북유럽 사람들에게는 ‘얀테의 법칙’이라는 삶의 가치관이 잘 알려져 있는데, 이것은 ‘북유럽 십계명’이라고도 불린다. 얀테라는 가상 마을에서 사람들이 지켜야 할 마음가짐에 대한 것인데, 북유럽 사람들의 집단적 심성이 잘 나타나 있다.

1. 당신이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2. 당신이 다른 사람들처럼 선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3. 당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4. 당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다고 확신하지 마라. 5. 당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생각하지 마라. 6. 당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7. 당신이 뭔가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8. 다른 사람들을 비웃지 마라. 9. 누구든 당신한테 관심을 갖는다고 생각하지 마라. 10.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것은 삶에 대한 비관주의가 아니라 삶에 대한 막연한 환상과 기대를 갖지 않음으로써 삶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행복 그 자체를 조용히 성찰하는 자세를 길러주는 문장들이다. 그들은 타인의 성취에 비추어 자기 삶을 판단하지 않는다. 나는 특별한 사람이며 남들보다 뛰어나야 한다는 최면에 도취된 사회에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가치관일 것이다.

하지만 저런 삶을 실천할 수만 있다면, 지금 우리가 느끼는 집단적 우울감과 필요 이상의 열등감을 치유할 수 있지 않을까. 굳이 북유럽에 가서 살지 않아도, 우리가 이곳에서 실천할 수 있는 북유럽식 행복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가면서 ‘제한된 환경 안에서 행복을 누리는 길’을 택했다.

행복해지기 위해 더 많이, 더 자주 무언가를 가지려 하는 게 아니라, 남들보다 더 중요해지고 특별해지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덜 가지고, 덜 쓰는 대신 ‘내가 직접 삶의 구석구석을 가꾸는 행위’를 통해 행복해지는 방법을 연구했다. 북유럽 아이들은 어릴 때부터 남녀 가릴 것 없이 뜨개질, 바느질, 목공을 통한 가구 만들기, 집안 구석구석 수리하기 등을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배운다.

남자아이들은 자기 옷을 바느질하여 입을 수 있고, 여자아이들은 목공으로 가구를 뚝딱뚝딱 잘 만들 수 있도록.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릴 필요 없는 자립과 독립의 힘, 그리고 내 집을 더 아름답고 편안하게 꾸밀 수 있는 인테리어 기술까지 갖춘 그들은 휴가 때 굳이 멀리 나가지 않고 그 시간을 집 인테리어를 바꾸는 데 투자하기도 한다.

그 모든 일을 스스로 함으로써 ‘나의 행복은 내가 창조해간다’는 뿌듯한 희열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내가 꿈꾸는 북유럽 라이프는 이처럼 내 손으로 삶을 가꾸어나가는 것이다. 과시적인 소비를 통한 만족을 넘어 ‘가치의 추구를 통한 행복’을 향해 가는 길이다. 특별함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남으로써, 내 삶을 스스로 가꾸고 만듦으로써,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다.

[835호 - think]

Illustrator 키미앤일이 writer 정여울 suburbs@hanmail.net 작가. 저서로 『늘 괜찮다 말하는 당신에게』, <그때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내가 사랑한 유럽 top 10>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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