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가 ‘뚱녀’를 바라보는 시선은 개그콘서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뚱뚱한 캐릭터의 역할은 대개 잘생기고 예쁜 개그맨에게 무시당하거나, 반대로 ‘니까짓 게’ 하거나 둘 중 하나다. 무시당하는 건 당연해서, 그 반대라면 비현실적인 상황적 가정을 통해 웃음을 유발한다. 자조적 개그는 외모=능력이라는 공식의 합의가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는데, 가학적 개그를 아무렇지 않게 웃어 넘길 수 있는 사회가 오히려 코미디 같다.

이 공식을 반박이라도 하듯 정면으로 뒤엎는 작품들이 있다. 물론 드라마와 영화 속 상황이다. 하지만 이들의 이야기가 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이유는 그녀들의 진짜 매력을 껍데기로 가릴 수 없기 때문이 아닐까.

 

 

 

자해와 폭식까지 섭렵, 하지만 결국은 킹카를 점령. <마이매드팻다이어리>

귀여워 깨물어주고 싶은 핀

영국 드라마 <마이매드팻다이어리>는 최근 시즌3를 시작했다. 애태우며 썸만 타던 남주 핀과 사랑을 확인하며 마무리된 지난 시즌. 드디어 러브씬을 비롯한 핀의 상체 노출이 대방출 되는 것인가, 마음 졸이며 1년을 기다렸더랬다. 근데 왓더퍽?! 작가 너님들, 저랑 싸울래염? 아직 시즌3을 영접하지 못한 미혹한 중생을 위해 스포일러는 자제하겠다. <마이매드팻다이어리>의 주인공 레이는 60kg도 안 넘게 생겨놓고 자꾸 ‘나 뚱뚱하다’고 우기는 여주들과 차원이 다르다. 우울증에 초코바를 우겨넣다 살이 찌고, 또 자해까지 하는 콤플렉스 덩어리 레이이지만 그녀에게는 순정남 핀이 있다. 학교 최고의 킹카 핀은 금발미녀들이 아무리 추파를 던져도 레이만 바라본다. 핀을 사로잡은 레이의 필살기는 도대체 뭘까. 레이는 자격지심이 심한 대신 남의 작은 상처도 먼저 알아보는 예민한 소녀다. 핀은 레이에게 ‘너와 있을 때 진짜 내가 되는 것 같다’고 말한다. 객관적으로 예쁜 구석 별로 없는 레이이지만, 감추고픈 비밀도 고백하고 극복하는 담대함으로 학교 킹카 핀을 ‘GET’했다.

 

 

남자보다 으리으리한 의리, <막돼먹은 영애 씨>

가장 오랜 시간 영애의 남자였던 산호

뚱뚱한 여자는 마음이 태평양처럼 넓고 착할 거라는 편견을 사람들은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평생을 온몸에 토실한 튜브를 끼고 살다 보면 갖은 핍박 속에서 성격까지 드세 질 수밖에 없다(물론 제가 그렇다는 것은 아님). 국내 최장수 시트콤 <막돼먹은 영애씨>의 영애는 평균 이하의 외모로 대한민국에서 삼십 평생을 살면서 말투까지 험악해진 직장 여성. 하지만 영애의 연애사만큼은 평균 이상으로 문란하다. 시즌마다 남자를 갈아치우는 것은 물론 ‘여자는 무조건 어리고 예뻐야 한다’며 외모 비하 발언을 일삼던 산호까지도 결국 영애를 놀리다 사랑에 빠져버리고 만다. 술 취해 떡이 된 남자도 거뜬히 등짐지고 집까지 바래다주는 든든함과 의리가 영애의 매력. 물론 의리 지키다 후배에게 사기당해 전 재산까지 탈탈 털리는 것은 안 매력.

 

 

못난 남자일수록 사이다에 끌린다, <못난이의 눈동자를 사랑해>

남자가 억지로 끌려온 것 같은 표정인 건 기분탓이겠지

<못난이의 눈동자를 사랑해>는 일본의 개그우먼 오오시타 미유키와 방송작가 스즈키 오사무의 실화를 소재로 했다. 일본에서는 이 두 사람이 결혼할 때, ‘웃기려고 쇼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까지 있었다고 한다. 웃음에 집착하는 잘생긴 예능 작가 오사무와 배우를 꿈꾸는 못난이 미유키가 사랑에 빠지는 내용이다. 미유키는 주변에서 비웃어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다부진 여자. 프로그램에 그녀를 출연시켜 웃음을 뽑아내려는 예능작가 오사무도 결국 미유키의 당찬 매력에 빠져버리고 만다. 미유키는 좋아하는 남자에게 이용당했다는 것을 알고도 질질 짜지 않는다. ‘당신이 웃기고 싶다면 그 방식이 정정당당해야 한다’고 ‘사이다’같은 가르침을 준다. 그러니 마음에 품은 이가 있다면 ‘살’ 때문에 주저하지 말고 그 앞에 당당히 서 보자. 이도 저도 안 되면 뺨이라도 올려붙이자. 원래 잘난 남자일수록 ‘나한테 이런 여자 니가 처음이야’에 약한 법 아닌가. 물론 청첩장 대신 고소장이 날아올 수도 있다.

 

 

모델 몸매도 이기는 훌륭한 영혼, <드롭데드디바>

깨어나보니 이 몸매! 내가 뚱뚱하다니 라며 놀라고 있음

보통의 드라마가 뚱뚱한 주인공이 날씬한 몸을 갖게 되어 겪는 일을 그리는 것과 달리 <드롭 데드 디바>는 그 반대의 상황이다. 늘씬한 몸매의 모델 지망생 뎁이 사고로 죽는데 천사의 실수로 뚱뚱한 제인의 몸에 영혼이 깃들게 된다는 내용. 갑자기 XXL사이즈가 돼서 좌절하는 것도 잠시, 천성이 밝은 뎁은 똑똑한 제인의 머리로 변호사 일을 하면서 주변 사람들을 도와주면서 외모보다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 특히 그녀가 얻는 가장 큰 선물은 수호천사 프레드와 전 남친 그레이슨. 편한 친구 프레드에게는 진심을 말하고, 진중하고 멋진 남자 그레이슨과는 썸을 타는데, 법정 드라마이니만큼 회마다 멋진 남자 변호사, 검사, 의뢰인도 등장한다. 날씬한 모델 몸매보다는 똑 부러지는 일처리와 타인을 대하는 배려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주는 정신승리 드라마다.

 

 

연애는 도전정신이 필요해, <걸스>

20대의 섹스앤더시티라는 별명답게 4명이 친구들이 끊임없이 섹…아니 연애한다

<걸스>는 주인공 한나가 부모님으로부터 ‘더 이상 경제적 지원은 해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으며 시작한다. 졸업 후 작가를 지망하지만 일은 안 풀리고, 돈 아끼려 방을 나눠 쓰는 친구들과는 서로 상처 주기 일쑤. 괴짜 남자친구는 취미가 시체놀이(똥차 같던 이 남자는 시즌3에서 갑자기 그랜저가 된다). 어쨌든 한나는 언제나 씩씩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하체 비만이지만 비키니를 입고 시내를 활보하는 데도 거리낌이 없다. 주인공이자 각본가인 레나 던햄은 통통한 자기 몸이 자랑스러우며 다이어트를 할 생각이 없다고 공공연히 말한다(그래서인지 드라마에는 한나의 벗은 몸이 끊임없이 나온다). <걸스>의 주인공들은 열심히 연애하고 섹스하고, 차이고 찬다. 첫눈에 반한 남자가 있으면 집까지 따라가서 급고백 후 침대로 돌진할 정도로 도전정신이 투철하다. 한나, 마르니, 쇼사나의 연애는 18색 크레파스처럼 다양하게 찌질하지만, 뭐 어떤가. 미친 짓도 해보고, 부딪치고, 상처도 받고, 되든 안 되든 한번 해보는 게 연애인 것을. <걸스>는 몸매 타령하며 집구석에 쭈그려있지 말고, 당장 나가서 뭐라도 해보라고 등을 떠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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