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을 앞두고 캠퍼스에서 있었던 소소한 사건들을 모아봤다. 졸업하면 다시 못 겪을 일들이라고 생각하니 벌써 애틋해진다. 그저 그런 평범한 대학 생활이라고 생각했는데, 돌이켜보니 곳곳에 추억이 새록새록 하네.

 

1. 인생 첫 출튀
교양 수업 가는 길, 만개한 벚꽃에 마음을 빼앗겼다. 출석 부르는 내내 창 밖으로 하늘만 보다가 슬며시 밖으로 나왔다. 대학 생활 첫 출튀였다. 그래 봤자 겨우 학교 안에서 벚꽃놀이한 게 전부였지만, 강의실을 몰래 나왔다는 짜릿함 덕분에 굉장히 행복했던 기억이 있다. (이민영/23세)

 

 

2. 공부하기 싫을 때마다 앉아있던 벤치
학교 중앙도서관 옆에 인공호수가 있었다. 호수 주변에는 벤치가 많았는데, 그중에 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자리도 있었다. 공부하기 싫을 때 거기 앉아서, 호수 보면서 멍 때리고, 산책하는 사람들 구경하고 그랬다. 그 자리 덕분에 수많은 시험 기간을 버틸 수 있었는데. (K양/25세)

 

3. 사물함 연애
공대생이었던 남자친구는 수업이 많아서 CC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에서 보기 힘들었다. 수업 중인 남자친구 몰래 공대 건물에 가서 사물함에 음료수를 넣어두고 오면, 어느 순간 내 사물함에도 초콜릿과 쪽지가 들어 있었다. 매일 붙어 다니며 얼굴을 바라보고 있지 않아도 서로의 사랑을 확인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 물론 그 남자친구와는 얼마 못 만나고 헤어졌지만. (L양/23세)

 

4. 전과
1년간의 휴학 생활이 끝나고 전과와 동시에 복학했다. 낯선 건물, 낯선 사람, 낯선 교수님.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떨어진 섬 같은 기분이었다. 이미 친한 사람들 사이에 억지로 끼어보려는 그 어색함과 소외감이란… 결국, 한 학기 내내 겉돌다 ‘아싸’의 길을 택했다. (정다혜/25세)

 

 

5. 빈 강의실
새내기 시절엔 매일 같이 술을 들이부었다. (그게 진정한 대학 생활이라고 생각함;;) 한번은 여느 때처럼 과음했는데, 아침에 눈을 뜨니 생각보다 괜찮아서 오랜만에 1교시 수업을 나갔다. 근데 안타깝게도 자리에 앉자마자 뒤늦은 숙취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장기가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서 빈 강의실에 들어가 의자를 붙이고 숙면을 취했다. (김윤정/24세)

 

6. 의지의 수강 신청
수강신청에 실패해 못 듣게 된 전필 수업. 일단 OT에 참석해서 교수님께 여석 증원을 부탁드릴 마음으로 수업에 갔다. 수업 마친 뒤, 교수님은 학생을 추가로 받는 것에 대해 ‘고려해보겠으나 어렵겠다’고 답하셨다. 그러나 나는 왠지 모를 의지와 확신이 생겨, 청강생의 신분으로 2주간 그 수업을 출석했다. 나의 간절함과 학구열(?)이 피력되었는지 결국 나를 추가로 받아주셨다. 인생은 실전! (I군/24세)

 

7. 공포의 3연강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전공 3개가 연강이었다. 쉬는 시간에 뭐라도 먹지 않으면 하루 종일 쫄쫄 굶어야 했기 때문에, 수업이 끝나면 곧바로 편의점으로 뛰어갔다. 삼각김밥 혹은 컵라면을 손에 들고, 오직 살기 위해 흡입하고 있을 때면 자괴감이 밀려왔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건데,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이건주/23세)

 

 

8. 텅 빈 도서관
나는 시험 기간 직후의 텅 빈 도서관을 좋아했다. 어제까지만 해도 머리를 싸매고 이따금 한숨도 쉬던 공간에서 여유를 부리고 있으면, 어쩐지 근사한 기분이 됐다. 책상 위에는 읽지 않을 소설책을 펼쳐 놓고, 창 너머 텅 빈 캠퍼스를 내다보곤 했었는데… 졸업을 앞둔 지금, 이런 비생산적인 시간들이 가장 그립다. (A양, 24세)

 

 

9. 지하철에서 폭풍 과제
등굣길 버스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친구한테 카톡이 왔다. ‘업로드했음?’ 하… 왜 어제 그 많던 시간을 빈둥대며 보냈을까. 자괴감 들 겨를도 없이 노트북을 꺼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가장 그럴듯한 아무 말을 써 내려갔다. (Y군/24세)

 

10. 복도 프린터기
‘통계학개론’은 프린트 없이 듣기 어려운 수업이었다. 아뿔싸! 프린트를 오전에 미리 뽑았어야 했는데 잊고 있었다. 결국 교수님이 출석을 부르시자마자 “네!” 하고 슬금슬금 뒷문으로 나갔다. 그리고 곧장 1층의 프린터기로 달렸다. (I양/24세)

 

 

11. 짝사랑
배드민턴을 교양 수업으로 들은 적이 있는데, 첫 수업 날 햇살처럼 웃는 남자를 발견했다. 그리고 난 사랑에 빠졌다. 그 사람이 입고 온 과잠을 뚫어지게 쳐다보며 학과를 알아내고, 출석 부를 때를 노려 이름도 알아냈다. 그래, 말도 한 번 못 섞어 봤다는 얘기다. 짝사랑 노래를 들으며 울다, 웃다, 무려 1년을 좋아했다. 인제 와서 생각해보니 이름도 모르는 누군가를 다시 그렇게 좋아할 수 있을까 싶다. (박소희/24세)

 

12. 교수님 면담
교수님과 작품에 대해 일대일 면담을 하다가, 눈물을 주륵주륵 쏟고 말았다. (심지어 타과 수업이었다)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내가 숨기고 싶은 부분(콤플렉스나 과거 상처 같은)을 들켜서 감정조절이 안 되었던 것. 교수님은 영문도 모른 채 나를 달래주셨다. 물론 그 이후로는 교수님과 별다른 대화는 없었다. 하지만 요즘도 저 멀리 그 교수님이 보이면 그 날의 부끄러움이 떠올라 가던 길을 되돌아가곤 한다. (Y양/24세)

 

 

13. 도서 대출
이번 레포트는 정말 뼈를 갈아 넣겠다는 패기로 도서관에서 관련 서적을 왕창 빌리고 집에 왔다. 쌓아 놓은 책만 봐도 벌써 수십 장의 논문을 쓴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지 마감 기한 하루 전 아무 말을 늘어놓고 제출했다. 그 책들을 다시 그대로 돌려놓을 때의 그 허탈감이란. (김윤정/24세)

 

 

14. 늦잠
아침에 눈을 떴는데 기분이 이상하다. 시계를 보니 8시 53분. 다시 누우려다 뒤늦게 그날 점심 수업이 9시로 당겨졌다는 게 떠올랐다. 용수철마냥 튀어 올라 옷을 갈아입고 얼굴에 물을 묻히니 시간은 57분. 전력 질주로 강의실에 달려갔더니 교수님과 같이 들어가 지각을 피할 수 있었다. 아 이 맛에 기숙사 살았었는데. (최지석/23세)

 

15. 모델학과
우리 학교 모델학과는 교외에서도 꽤 유명한 편이다. 하지만 실제로 본 적은 한 번도 없으므로, 4년간 ‘모델학과’는 보이지 않는 신기루나 유니콘, 봉황 같은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모델학과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난 두 번째 라식을 하게 됐다. 키, 비율은 말할 것도 없고 손바닥만 한 얼굴에 눈코입이 어찌나 오밀조밀 들어가 있는지… 같은 종족이라는 게 신기할 정도였다. (정다혜/25세)

 

 

16. 구썸남
학교 근처에 저녁에만 맥주를 파는 카페가 있었다. 구썸남과의 첫 데이트 날 나는 그 카페에 갔다. 우리는 나무 향이 나는 탁자에서 저무는 노을을 보며 맥주를 마셨다. 그 뒤 한두번 정도 더 만났는데, 그분은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셨는지 연락이 뜸해지더니 결국 끊겼다. 그렇게 나는 가장 좋아하는 카페의 가장 좋아하는 자리를 잃었다. (D양/25세)

 

17. 공모전
1학년 때 들었던 교양수업에서 만난 조원들과 마음이 잘 맞았는데, 패기 있게 그 멤버 그대로 큰 공모전도 지원하게 되었다. 한 달 동안 수업 마치고 저녁까지 빈 강의실에 모여 너 나 할 것 없이 열심히 했지만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첫 공모전에 대한 기대가 내심 컸는지 이후로는 단톡방에서 말도 없어지고, 점차 그렇게 서먹해졌다. 우리 그때 그래도 즐거웠는데. 다들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 (I양/24세)

 

 

18. 동아리 유령회원
2학년 때 가벼운 마음으로 음악 동아리에 가입했다. 매주 음악감상회(이하 음감회)를 하는 것이 주 활동이었는데, 각자 좋아하는 가수의 앨범이나 음악을 소개하며 함께 듣는 자리였다. 첫 음감회에 내가 골라 간 음악은 평소 좋아하던 아이돌 그룹의 수록곡이었다. (TMI: Airplane-F(x)) 그러나 다른 동아리원들은 듣도 보도 못한 해외 밴드나 국내 인디밴드의 음악을 소개하는 것이었다. 그 날 음악 동아리를 가장한 ‘힙스터’들의 모임에서 나는 철저히 소외되었고, 결국 유령회원이 되었다. (Y양/24세)

 

 

19. 도서관에서 밤샘
주3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학기를 병행하느라, 시험 기간 과제 기간이면 밤새는 날이 많았다. 학교-알바-도서관의 연속인 나날이었다. 밤 11시쯤 아르바이트가 끝나면 학교 도서관에서 해가 뜰 때까지 있곤 했다. 새벽 4-5시쯤 출출해지면 도서관 근처 편의점에서 라면을 먹었다. 의욕 없는 취준생으로 하루하루 버텨내는 요즘, 인생에서 가장 치열했던 그때가 그립다. (김윤정/24세)

 

 

20. 축제 주점
2학년 축제 때 정말 원 없이 놀았다. 아는 사람도 작년보다 많았고, 1학년 때처럼 과 주점에서 일할 필요도 없었다. 거나하게 먹고 마신 뒤, 만취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휴대폰이 없어졌다는 걸 알았다. 하하! (Y군, 25세)

 

21. 수면실
밤새서 과제를 한 다음 날. 공강 시간에 말로만 듣던 수면실에 갔다. 문을 열자 허술한 매트리스들이 있었다. 이미 자리를 잡고 숙면하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다. 빈자리에 누워 쿰쿰한 냄새를 맡으며 달게 잤다. (A군, 25세)

 

22. CC

나는 학교 CC다. 지난 학기 여자친구와 교양수업을 같이 듣기로 하고 시간표를 맞췄다. 들뜬 마음으로 첫 수업에 들어갔는데 낯익은 얼굴이 있네? 전 여자친구였다. 이게 다 같은 학교에서 CC 두 번 한 죄라고 생각하고 조용히 그 수업을 포기했다. (B군, 26세)

 

 

23. 졸업 사진
개인적인 사정으로 동기들보다 일찍 졸업사진을 찍게 됐다. 혼자 뻘쭘하게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나처럼 혼자 있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머뭇거리다 옆 사람과 말을 트고, 이내 서로 사진도 찍어주면서 나름 즐겁게 마칠 수 있었다. (안예빈, 23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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