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발단은 귀찮음이었을까 허세였을까. 아마 그 둘의 찰떡 같은 콜라보가 이뤄낸 성과였을 것이다. 나는 신입생 때 많은 일에 연연하지 않는 데 연연하는 이상한 취미가 있었다. 그게 멋있다고 생각해서 일부러 여유로움을 연출했었다.

 

어떤 중요한 결정도 신중한 얼굴로 “귀찮다”고 해버리곤 ‘방금 좀 멋있었다’고 뿌듯해하는 이상한 취향. 수강 신청을 할 때도 줄곧 그런 태도였다. 이 강의가 꿀강인가요, 저 강의가 학점을 잘 주나요 같은 걸 묻는 건 참 멋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마우스 휠을 드르륵드르륵 굴리며 차분히 강의명을 훑어보고 그중 제일 멋있는 이름을 픽했다.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론’이라든지 ‘비주얼 커뮤니케이션’ 같은 강의를 발견하면 그 멋짐에 잠시 아찔해하다 떨리는 손으로 강의를 장바구니에 담곤 했다. 그러다 듣게 된 강의가 ‘내러티브 구조의 이해’였다. 연극영화나 문예창작 전공의 예술 동지들이 많았다. 강의 내용은 이해가 잘 안 됐지만 대충 멋있는 느낌이었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는 게 아니라 분위기를 마시는 것처럼, 강의에서 수업을 들었다기보다 예술적 느낌을 들었다. 대강 만족하면서 강의를 듣던 중 첫 과제를 받았다. ‘네러티브에 대한 감상을 비주얼로 표현하시오.’ 오늘 아침에 싼 똥을 팬톤 컬러로 표현하라는 요구만큼 난감했다.

 

그 과제를 받았을 때 X됐다는 걸 감지했어야 했다. 동기는 아연실색한 내게 조언을 했다. “아무거나 만들고 의미를 부여하면 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아무 말이었지만 그땐 꽤 그럴싸하게 들렸다. 그래서 정말 아무거나 만들었다. 종이접기 김영만 선생님이 봤다면 “우리 코딱지들~ 정말 코딱지 같은 걸 만들었네요~” 하지 않았을까.

 

죄송합니다, 선생님…. 드디어 과제 발표날이 됐다. 예술 동지들의 열띤 발표가 이어졌고 나는 알 수 있었다. 아무거나 만들어온 사람은 나뿐이라는 걸. 나는 약간 울컥하는 심정이 됐다. 의미만 부여하면 된다던 동기에게 의미를 부여해서 죽빵을 날리리라 다짐했다.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 내 차례가 됐다. 예술 동지들의 눈빛은 진지했다.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발표를 시작했다. 5분 정도 열심히 이빨을 털었다. 잘 털고 있는데…. “오른쪽에 검은색으로 표현한 부부느흐…ㅎ…히…ㅎ” 갑자기 현타가 온 것이다.

 

10분 만에 완성한 과제와… 거기에 추상이니 의미니… 하는 말을 욱여맞추는 나와… 그걸 경청하는 사람들… 특히 그 경청… 좀 대충 듣지… 왜들 그렇게 열심히 들어서 사람 기분을 이상하게 만들고… 다시 떠올려도 빈혈기가 도는 것 같다. 장내는 술렁였고 예술 동지들은 ‘웃기다’와 ‘웃어도 되는가’ 사이에서 치열하게 번뇌하다 하나둘 피식거리기 시작했다.

 

난 겉으론 웃음을 참기 힘들었지만 속으론 울음을 참기 힘들었다. 창밖의 벚꽃처럼 흩날려 사라져 버리고 싶었다. 여기까지가 내 치욕의 역사다. 이후에도 많은 걸 귀찮아하고 있지만 이제 이름만 보고 강의를 선택하진 않는다. 특히 어떤 과제를 주는지는 꼭 알아보는 편이다. 모두 나를 타산지석 삼아 좋은 수강 신청 하시길 바란다.

 

빵떡씨 / 사실 전공도 이름 보고 정했습니다


[841호 – special] 

Intern 최은유

Illustrator 남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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