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사러 가서 내가 제일 먼저 하는 말은 “여기서 제일 저렴한 모델이 뭔가요?”다. 그러면 대부분이 ‘거참 보기 드문 젊은이일세’ 하는 표정으로 되묻는다. “한번 사면 적어도 2년 이상은 쓸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이런 디자인은 주로 어르신들이 쓰세요.”

 

이때가 바로쑥스럽지만 tmi를 꺼내야 하는 타이밍이다. “근데 제가 휴대폰을 좀 험하게 써서요. 자주 잃어버리기도 하고. 지금도 기기값만 3대를 내고 있거든요.” 내 고백을 듣고, 백만원이 넘는 최신형 모델을 권하던 점원은 머쓱한 표정을 지을 테다. 익숙한 실랑이 후, 그가 쇼케이스 구석에서 꺼내준 투박한 기계 중에서 그나마 나은 것을 골라 산다. 별로 마음에 들진 않지만 괜찮다. 어차피 금방 잃어버릴 건데 뭐.

 

내가 처음부터 이런 기준으로 휴대폰을 골랐던 건 아니다. 매일 들고 다니는 물건인 만큼 성능도 디자인도 최고를 바랐던 시절이 있었다. 그래서 가격이 좀 부담되더라도 최신형 모델을 샀다. 내가 답도 없는 덜렁이라는 사실을 간과한 채… 주인을 잘못 만난 귀한 물건은 각종 봉변(ex.아스팔트 바닥과 정면충돌해 액정 파괴됨, 물을 뒤집어써 침수됨)을 당한 뒤, 허름한 술집이나 택시에 버려지곤 했다. 그리하여 회생 불능으로 망가진 놈이 3대, 내 손을 떠나 다른 나라(위치 추적 결과 주로 중국에 가 있더라)로 팔려간 놈이 4대 정도. 마침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나 따위 인간에게 비싼 휴대폰은 사치다!

 

상대적으로 값이 싼 보급형 휴대폰 쓰면서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나라에는 특정 브랜드의 고급형 모델을 쓰는 사람이 다수더라. 휴대폰을 테이블에 올려두면 열에 아홉은 “이거 무슨 기종이야? 처음 보는 건데?”라고 물어보고, 내 휴대폰으로 다 같이 셀카라도 찍을라치면, 화질이 너무 후지다며 다른 걸 찾는다. 말이 나온 김에 하소연 하나 더 보태자. 예쁜 케이스는 사과폰과 은하수폰 두 종류로만 나온다. 그래서 휴대폰 케이스를 파는 매장에 가면 어쩐지 주눅이 든다. “△△폰 케이스 있나요?”, “없는데. △△폰이 뭐예요. 언제 나온 거예요?” 괜히 얼굴이 화끈거리고, 머릿속에선 친구들의 놀림이 메아리처럼 울린다. 그러게 사과폰을 쓰라니까.

 

온갖 수모(?)에도 불구하고 나는 휴대폰에 한해 지금의 입장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매년 분실 이벤트를 연례행사처럼 치러야 할 텐데, 내 수입으로는 그 비싼 기기값을 감당할 수 없으니까(조심이야 하겠지만 천성이 어딜 가겠나). 나름 장점도 있다. 웬만한 사람은 탐내지 않는 모델이라 잃어버려도 다시 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촌스러운 휴대폰 케이스는? 내가 감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작은 바람이 있다면, 왜 보급형 모델을 쓰는지 매번 구구절절 설명하지 않아도 됐으면. 어떤 휴대폰을 사용하는지로 내 취향이나 감각이 평가절하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가도 될까. 소수가 되는 아주 사소한 경험을 한 뒤, 그동안의 언행을 돌아보고 크게 반성했다. 세상엔, 다수 집단에 속해 있을 땐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그들에게 소수가 된 이유를 묻는 것, 이제 그만 다수로 넘어오라고 권하는 것, 그걸 농담의 소재로 삼는 것. 전부 무례다. 악의 없이 뱉은 말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기에. 모두가 섬세한 언어를 배워야 한다.

 

‘그런 거까지 일일이 신경 쓰면 불편해서 어떻게 사냐’싶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다 함께 평화로울 수 있다면, 그 정도 불편함은 감수할 수 있는 거 아닐까? 아니 그 정도는 불편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마음을 홀가분하게 만드는 주문

다수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844호 – Small Mind]

ILLUSTRATOR l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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