댕낼대숲 다섯 번째 사연은 ‘요즘은 여자가 더 살기 좋은 세상’이라 말한
동기와 대판 싸웠다는 E가 제보해주었다. 여자라면 누구나 마음속에 불합리한 경험 7가지쯤 있잖아요. 돈, 시간, 감정 소비하느라 지친 여학우들 주목! 


 

 

# ‘여성용’이 늘 더 비싸요

“전 코트나 점퍼는 남녀 공용으로 사요. 여성용은 안주머니도 없고, 오리털 같은 충전재도 남성용보다 적게 들어가거든요. 면도기도 그래요. 여성용은 핑크색으로 칠했을 뿐인데 훨씬 비싸요. 다리 털 몇 번 밀면 날이 금세 무뎌지고요.”

여성용은 덜 실용적이고, 더 비싸다. 2015년 미국 뉴욕시 소비자보호국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 내 유통되는 800여개 제품은 여성용이 남성용보다 평균 7%나 비쌌다고 한다. 기능면에서 차이가 없다면,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쪽이 더 비싸야 맞는 게 아닌가? 최근에는 일부러 남성용 제품을 구입하는 여성들도 늘고 있다. 점퍼, 속옷, 면도기, 기초 화장품 등 같은 기능이면 남성용을 구입하는 게 이득이니까. 이래도 핑크택스가 없다고?

 

 

# 골목에선 이어폰 절대 안 껴요

“머리를 단발로 자를까 고민 중이에요. 묶은 머리는 뒤에서 잡아채기 쉽단 얘길 들어서요. 동네 골목에 가로등이 별로 없거든요. 가격대에 맞추다 보니, 대로변도 아니고 인적도 드문 동네로 오게 돼서. 음악 듣는 걸 좋아하지만, 등하교 때 이어폰도 절대 안 끼고 무조건 빨리 걸어요. 계약 끝나면 빚내서라도 이사 가고 싶어요.”

누구한테도 간섭받지 않고 혼자 살기. 매우 좋은 이야기지만, 한국에서 여자 혼자 이루기는 쉽지 않다. 여성이 체감하기에 한국은 ‘안전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총기가 없으면 뭘 해, 매일 여성을 대상으로 한 폭력 사건이 일어나는데. 그러니 예산이 없어도 울며 겨자 먹기로 치안이 좋은 비싼 동네, 비싼 집을 선택할 수밖에. 머리 마음대로 기르고 음악도 듣고 싶으니까.

 

 

# 바람에 흔들리는 도어락에도 괴로워요

“비교적 치안이 좋다는 오피스텔에 거주할 때도 있었어요. 우편함에 ‘성범죄자 거주 지역’을 알리는 고지서가 들어 있더라고요. 그 이후 누군가 술 취해서 저희 집 도어락만 잘못 눌러도 심장이 떨렸죠. 그 사람은 한순간의 실수일 수 있겠지만, 전 밤새 잠도 못 자고 떨었습니다.”

비싸다고 안심할 수도 없다. 여자더러 ‘조심하라’고 말하는 건, 주변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모든 사람과 사물을 일단 ‘의심’하라는 이야기와 같으니까. 문밖을 지나가는 발자국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문. 사소한 모든 것에 예민해진다. 근데 조심하라 그럴 땐 언제고, 왜 ‘모두를 잠재적 성범죄자 취급하냐’며 망상분자로 몰아가는지…. 역시 피해자가 조심해야 하는 사회답다.

 

 

# 술 취해도 정신 똑바로 차려야 해요

“술을 마시면 기분이 몽롱하게 좋아지잖아요. 사실 그래서 마시는 건데도, 아주 친한 사람들과의 술자리가 아니면 취하질 못해요. 안 친한 사람들은 제 주량이 센 줄 아는데 사실 정신력으로 버티는 거죠. 혹시 일행을 택시 태워 보내면 번호판도 꼼꼼히 적어놔야 하고, 제가 택시 탈 때도 가능한 취한 티를 안 내려고 말수를 줄여요. 아니면 배터리가 없어 폰이 꺼졌더라도 남친과 통화하는 척하든지.”

누구나 마음껏 풀어지는 시간에도 여성들은 자유로울 수 없다. 편하려고 타는 택시 안에서도 마음을 놓지 못한다. 택시 기사 아저씨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도 괜히 혼자 불안해지는 건 덤이다. 간혹 술에 취해 잠들면? 어떤 일을 당해도 위로나 동정은커녕 “그러게 왜 술을 마셔서”, “잠든 게 잘못”이란 소리나 들을 것이다.

 

 

# 여행 한번 가기 힘들어요

“방학 때 여행이라도 가볼까 하면, 돈이 아무리 없어도 너무 저렴한 숙소는 고려조차 안 해요.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살인 사건’ 이후에는 걱정이 더 늘었거든요. 숙박 후기부터 게스트하우스 주인 SNS까지 이 잡듯 뒤지는 건 우리나라 여성들밖에 없지 않을까요? 여행 전, ‘몰카 탐지 어플’을 깔아두는 건 기본 중 기본이고요.”

남학생들처럼 배낭여행하면서 캠핑하기나, 잔디밭에서 술 먹다 잠드는 낭만. 다 같은 청춘인데 왜 꿈꿔보지 않았겠나. 하지만 꿈도 함부로 꿀 수 없다. 위생을 따지는 결벽증 때문이 아니라, 자칫하다 생명의 위협도 당할 수 있어서다. 공중화장실 못 자국을 막아본 적 있는 사람, 집에 돌아와 침대 밑에 아무도 없는지를 살펴본 적 있는 사람만이 이 고통을 이해하겠지.

 

 

# 택배가 와도 마냥 뛰어나가진 못해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택배가 와도 달려 나갈 수가 없어요. 집에서는 브래지어도 벗고 편하게 있으니까요. 집에 없는 척하고, 문 앞에 두고 가 달라고 하죠. 보일러나 에어컨을 고칠 때는 꼭 남자 지인을 부르고요. 기사님과 단둘이 한 공간에 있는 게 두렵기도 하지만, 제가 직접 요구하는 사항들은 무시당하기 일쑤거든요. ‘아가씨’가 뭘 아냐면서.”

한 식당에서 배달 어플에 컴플레인을 남긴 여성 고객을 찾아가 따지고, 급기야 고객의 개인 신상을 공개적으로 게시한 사건이 있었다. 여성으로 산다는 건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늘리는 것이다. 눈을 마주치며 노상방뇨하는 취객을 만나고도 길을 돌아가고, 빈 자리를 놔두고 굳이 내 앞에 온 아저씨에게 순순히 자리를 양보하는 것처럼.

 

 

# ‘아이스 아메리카노 Me Too’에 화낼 수 없었어요

“알바하는 카페 근처에 대기업이 있는데요. 점심시간에 직장인들이 와서 농담처럼 ‘Me Too’를 남발해요. 아이스 라떼 Me Too, 아이스 아메리카노 Me Too. 당연히 화가 나지만, 어떻게 화를 내겠어요. 고용주인 카페 사장님부터 ‘펜스 룰’ 어떻게 생각하냐고 은근히 저를 떠보는데.”

여성들은 #MeToo 운동으로 성범죄 가해자들을 고발했다. 스스로 개인 정보를 낱낱이 밝혀야 믿어주는 한국 사회의 분위기 상, 인생을 건 제보였다. 그런데 이런 ‘Me Too’를 고작 농담으로 소비할 줄이야. 그 정도로 공감능력이 낮아지려면 무얼 먹어야 하나? 어쨌든 여성들은 일상에서 아무리 불합리한 말을 들어도 또 견딜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야 ‘안전’할 테니까.


[844호 – Bamboo Forest]

EDITOR 원더우먼 wonderwomen@univ.me *열 받는 사연 제보 환영

INFORMER 얼마나 더 조심하고, 얼마나 더 불편하게 살라는 건지 어리둥절한 E


대학생 신선원정대 1기 모집

유통업계의 모든 것을 경험해보세요!


시작이 어려운 이유 <더 글로리>, <더 웨일>

3월의 문화 리뷰

 

농식품분야로의 진로를 꿈꿔도 괜찮은 5가지 이유

이렇게나 좋은 혜택들이 많기 때문에

 
시리즈20's Voice

또 하나의 마디를 채울 우리에게

시작은 언제나 서툰 법이다.

 

이 세상의 모든 시작은 다 서툴고 보잘것없다.

'완벽한 시작'이라는 덫에 걸린 대학생에게

 
시리즈표지모델

표지모델! 고려대학교 행정학 18 김민우

대학내일 표지모델이 3년만에 돌아왔다.

 

여러분의 에세이를 기다립니다

대학내일 온라인 매거진 대학생 에세이 모집

 

#댕낼대숲 #핑크택스 #평범한_삶을_원해요

 

#댕낼대숲 #핑크택스 #평범한_삶을_원해요

 

#댕낼대숲 #핑크택스 #평범한_삶을_원해요

 

#댕낼대숲 #핑크택스 #평범한_삶을_원해요

 
시리즈 로즈뷰티

어디서도 보지 못한 친절하고 정직한 뷰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