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운. ‘무언가 본격적으로 찾아오기 전에 어렴풋이 느껴지는 초기 증상’을 이르는 말이다. 마른 가지 끝에 달린 노란 꽃망울을 보고 느낀 봄기운이라던가. 뜨끈한 이마를 짚으며 알아챈 몸살 기운 같은 거. 여기서 비극은 미리 알아채더라도 막상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데 있다.

 

가령 일단 몸살 기운이 돌고 나면, 무슨 짓을 해도 결국 앓아눕게 된다.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고 조심(‘다음 주에 바빠서 아프면 곤란한데’)해봤자 별 소용이 없다. 이처럼 내게 있어 기운이란 신통하면서도 무용한 존재다.

 

가장 최근에 감지된 기운은 까닭 없는 한숨과 무기력함을 동반한 놈이었다. 평소 좋아하던 것들에 문득 시큰둥해져 이상하다 생각한 참이었는데…

 

“요즘 사는 게 왜 이렇게 재미가 없지?”

육성으로 혼잣말을 뱉고 나서야 놈의 실체를 파악할 수 있었다. ‘노잼 시기’의 기운이었다. 노잼 시기란 ‘뭘 해도 재미없는 시기’라는 뜻으로 대충 붙인 이름이다. 누군가는 ‘인생 권태기’라 부르기도 하더라. 처음엔 나와 친구들 사이에만 통하는 농담인 줄 알았는데, 제법 대중적으로 쓰이는 걸 보아 모두가 겪는 사춘기 같은 현상인가 싶다. 사춘기와 다른 점은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미세먼지처럼 주기적으로 돌아온다는 거.

 

그 시기에 갇힐 때면 숨만 쉬어도 기분이 축축 처졌다. 중대한 고민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가 괴롭히는 것도 아닌데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한숨이 나왔다.

 

말로만 들으면 언뜻 우울감과 비슷해 보일 수 있을텐데 , 실제로는 전혀 다른 부류다. 노잼 시기엔 슬픔의 감정조차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웬만한 일에는 무감각해진다. 주변에선 애가 웃지도 울지도 않으니 무슨 일이 있냐고들 물어왔다. 그럼 나는 배부른 소릴 하는 것 같아 의기소침한 채로 답하곤 했지. “…실은 아무 일도 없는 게 가장 큰 문제야.”

 

일년 만에 다시 만난 놈은 변한 게 하나도 없었다. 이미 겪어봤던 터라 걔가 데려올 후폭풍도 쉽게 예상할 수 있었다(우선 확실한 건 이번 봄은 망했다는 거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게 지겨워. 다 놔 버리고 싶어.’ 단계에서 ‘여길 벗어나 완전히 낯선 곳으로 가야만 괜찮아질 것 같아’ 단계를 지나 ‘아니야. 어딜 가나 똑같을 것 같아. 사는 게 무슨 의미일까?’ 단계에 이르러 땅굴을 파고 지하 세계로 들어가겠지.

 

입문 코스는 이렇게 똑똑히 기억나는데. 거기서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는 왜 몇 번을 겪어도 가물가물한지 모르겠다.

 

몇 주 전 기사에서 “일상의 루틴을 지키면서 새로운 자극을 찾아”보라는 조언을 읽었다. 음 그러니까, 평소처럼 학교도 가고, 과제도 하고, 시험도 보고,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활력소가 될 일을 찾아보란 소리였다.

 

그날 밤 꼬인 마음으로 섀도복싱을 하며 날을 샜다. ‘일상을 치러내고 나면, 휴대폰 들 힘밖에 남지 않는데 무슨 수로 활력소를 찾나. 그리고 어렵게 새로운 걸 찾았는데 막상 그것도 재미가 없으면 어쩐담? 그럼 더 거대한 상실감에 빠지게 될 텐데?’

 

여전히 해답을 찾지 못한 채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SNS 피드가 벚꽃 사진으로 도배되는 걸 보니, 그사이 작은기운 정도였던 봄이 완연해진 모양이다. 유행가 가사처럼 창문을 닫아둔 사이에 계절이 왔다. 며칠 전까지 가지만 앙상했는데 언제 저렇게 꽃이 폈나 싶다. 나의 지긋지긋한 노잼 시기도 이렇게 투덜대는 사이 지나있었으면 좋겠다.

 

알랭 드 보통 오빠의 말대로, 인생이 회전식이라 반복과 순환을 무한히 되풀이해야 하는 거라면, 노잼 시기 다음엔 유잼 시기(?)의 차례일 테니까.

 

P.S. 방금 생각났는데 예전에도 이런 식으로 어영부영 투덜거리다, 노잼 시기가 끝났던 것 같다.

 

마음을 홀가분하게 만드는 주문

인생은 회전식이라서 노잼 시기와 유잼 시기가 무한히 반복된다.


[847호 – small mind]

ILLUSTRATOR l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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